74화. 나를 증명하는 사람들 (2)
햇살 속에 우뚝 선 미노타우로스. 그 목덜미 위에 워낭소리 충만한 자세로 올라탄 남자. 라키엘은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으로 크레모 부둣가의 광경을 둘러보았다. 철창에 갇힌 데미안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서둘러서 돌아오길 잘했네.’
절로 흘러나오는 헛웃음. 그 사이로 하루 전의 일들이 문득, 떠올랐다.
♣
‘미친. 대박.’
햇살을 등지고 우뚝 선 미노타우로스. 그 거대한 덩치와 마주한 라키엘은 가까스로 환호성을 참았다. 방금 우루스가 토해낸 정사면체 덩어리. 우황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서 꿀이 떨어졌다.
‘이건 진짜다. 완전 제대로 된 생황이야.’
그는 우황에 대한 지식을 떠올렸다.
우황. 소의 쓸개에 생겨나는 결석. 그런 우황 중에 최고는 소가 즉석에서 딸꾹질을 하며 토해낸 것이라 하였던가.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물건이 그러했다. 심지어 이건? 사이즈마저 X라지급 특대였다.
‘보통 우황은 아무리 커도 5센티를 못 넘기는데 이건…… 최소 20센티는 되겠어.’
말 그대로 배구공만 했다. 이게 어떻게 담관을 지나서 나왔는지. 인체, 아니, 우체(?)의 신비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등급? 당연히 S급 이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 엄밀히 따지자면, 이건 등급을 매기는 자체가 죄송할 정도로 최상품이야.’
라키엘은 우황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크기에 비해서는 가벼웠다. 알싸하고 맑은 향이 났다.
‘맛은 어떨까.’
손가락으로 표면을 슬쩍 문대어보았다. 표면층이 쉽게 부스러졌다. 가루를 혀에 댔다. 처음엔 쌉싸름한 맛이 났다. 반면, 뒤에 남는 끝맛은 달고 청량했다. 동시에 머릿속에 맑은 알림음이 울렸다.
딩동!
[당신은 최상급 우황을 섭취하였습니다.]
[우황에 함유된 소량의 타우린(taurine)이 혈압 강하 및 진정 효과를 촉진합니다. 콜릭산(cholic acid)과 엘고스테롤(ergosterol)이 심장의 열을 내려주는 청심(淸心), 화담(化痰)작용을 불러옵니다.]
[단, 섭취한 우황의 양이 적고, 정제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그 효과는 미미합니다.]
[당신의 오장육부가 우황 간식에 눈을 번쩍 뜹니다.]
[심장 : 힘…… 힘이…… 솟는다!]
[허파 : 허? 파학!]
[대장 : 아드레날린…… 팍팍!]
[간장 : 활력도…… 슉슉!]
[위장 : 후우. 몸에 좋다는 것들은 어째서…… 이렇게나 한결같이 맛대가리가 없는 걸까.]
[오장육부가 당신에게 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1,500]
‘허허허?’
결국, 라키엘은 찐으로 흘러나오는 행복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뜻밖의 오장육부 인증(?)을 따냈다. 우루스의 반응 덕분에 더욱 흡족해졌다.
“누우우? 푸르륵! 누우!”
쿵쿵! 텅텅텅!
우루스가 킹콩처럼 손바닥으로 제 가슴을 쳐댔다. 그걸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시원해하고 있어.’
우루스의 눈빛과 헤 벌어진 입매. 고개를 흔드는 몸짓과 푸륵거리는 콧구멍. 그 모두가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마치 온종일 어금니 사이에 끼어 있던 팽이버섯 조각을 빼내는 데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다. 혹은, 며칠 만에 쾌변에 성공한 중증 변비 환자를 보는 듯했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당연하지. 이만한 담석이 뱃속에 있었는데 얼마나 답답했을까.’
항상 체한 기분을 느끼며 살아왔을 것이다. 온종일 더부룩해서 헛트림을 연거푸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뱉어내니까 시원하고 후련하지? 완전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지?”
“누우!”
쿵쿵! 쿵텅쿵!
우루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춤을 추었다. 그 모습에 라키엘은 더욱 흡족하게 웃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성공이라고.
‘이제 넌 내 거야.’
우황도 얻고 미노타우로스도 얻었다. 그러니 이제는 할 일을 할 때다. 그는 만면에 짓던 웃음을 수습했다. 우루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좋아. 더부룩하던 곳이 나았다니 나도 기쁘구만. 축하해. 그런데 우리, 이제는 좀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누우?”
“크레모로 돌아가자.”
“……누우우?”
“네가 날뛰었던 그 항구도시 말이야. 사실 이건 내 개인적인 예상이긴 한데, 지금쯤 거기 남겨진 내 일행들이 제법 고초를 겪고 있을 것 같아서.”
“……누우우우?”
“내 일행, 알고 보면 나쁜 사람들 아니야. 해치지 않아요.”
“누우우…….”
“괜찮아. 진짜로. 나랑 같이 돌아가면 아무도 너 안 괴롭힐 거야. 아니, 못 괴롭혀.”
“누우우?”
“정말이야.”
“누우?”
“약속.”
“누!”
처음엔 망설이는 듯하던 우루스였다. 하지만 꾸준히 설득하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을 믿겠다는 뜻인 걸까. 녀석이 거대한 등짝을 내밀었다. 그 등짝에 올라탔다.
“누우우! 푸르륵!”
마치 꽉 잡으라는 듯, 녀석이 호기롭게 콧김을 뿜어냈다. 그리고 질주를 시작했다.
쿠쿠콰콰콰-!
“……!”
오픈카로 만들어진 덤프트럭을 타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과속방지턱을 박살 내며 질주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어둡고 눅눅하던 동굴을 순식간에 벗어났다. 시원한 바람이 콧구멍으로 들어올 틈도 없이 우루스가 도약했다.
“누우!”
투확-!
“……!”
녀석이 도약한 지점은 해안가의 끄트머리. 해안 절벽이었다. 그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덕분에 졸지에 30미터 높이 해안 절벽 다이빙 체험을 만끽해야 했다.
‘……그, 그와아아악?’
쿵콰풍덩!
거친 북녘의 바다에 장렬한 배치기로 입수! 그때부터였다. 우루스를 타고 남서쪽으로 부지런한 항해(?)를 시작했다.
“누우! 누우우! 훅훅훅!”
우루스의 체력은 엄청났다. 녀석은 지치지도 않는 소헤엄을 선보였다. 덤으로 헤엄치는 와중에 물고기를 잡아주기도 했다. 무려 탱글탱글 싱싱한 다랑어였다.
‘……아, 초장이랑 쏘주 마렵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맵고 얼큰한 맛을 본 지도 좀 됐다. 이런 상태로 1년만 더 있으면 한국인 약정(?)이 만료되는 건 아닐까. 나름의 걱정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배를 채웠다.
바다를 헤엄치는 공룡 사이즈의 소 등짝 위에서 즐기는 즉석 다랑어회! 덕분에 굶주림을 겪지 않고 항해를 이어갈 수 있었다. 마나써클에 담아둔 담수 덕분에 목마름도 없었다. 온종일, 밤낮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지금. 마침내 크레모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서둘러서 돌아오길 잘했네. 어쩐지 이럴 거 같더라니.’
라키엘은 크레모 부둣가를 슥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갑옷을 걸친 병력도 보였다. 기사와 병사들. 크레모의 경비대가 아니었다. 라키엘은 그들의 뒤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알아볼 수 있었다.
‘황제 직속 감찰대구만.’
다행히 소설 마검황의 일러스트로 본 기억이 났다. 직속 감찰대. 오직 황제의 명에 의해 움직이는 내부 감찰기관이라 하였던가.
‘그래. 황태자인 내가 실종된 상황이었으니까. 저들이 와서 사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애꿎은 내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을 거고.’
곳곳에 쌓인 장작더미가 보였다. 스무 개가 넘는 철창들이 보였다. 철창 안에 갇힌 얼굴들. 모두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데미안, 아니스, 세르지오, 그리고 모두들.’
특근대원과 근위기사들. 자신의 수행원들이었다. 크레모 시장의 모습도 보였다.
‘쯧.’
감찰대인지 뭔지. 일 처리를 뭔 이따위로 하는 건지.
‘향수병 치미네. 어째 사고 수습하는 모양새가 딱 대한민국스러운데.’
문득, 대한민국식 사고 수습의 절망편 버전이 떠올랐다. 뉴스에 오르내릴 사고가 났을 때 가장 피를 보는 건 누굴까. 책임을 덮어씌우기 만만한 이가 타겟이 된다. 가장 추리와 고민을 적게 했을 때 딱 제일 먼저 떠오르는, 죄인일 것 같은 대상. 일단 그들부터 족치는 거다.
제대로 된 조사?
그것보다는 실적이 중요한 거다. 범인을 잡았다고. 죽일 놈을 찾았다고. 대대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증거와 증언보다는 여론의 분위기에 기대어 만만한 대상을 매장시키는 전형적인 수법인 거다.
‘마녀사냥이 그랬지. 인터넷 세상의 사이버 렉카도 그렇고.’
한데 여기도 똑같구나. 보고 있자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광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책임자는 누구지?”
이쪽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부둣가는 괴괴한 침묵과 혼란에 휘감겨 있었다.
쓴웃음이 나왔다.
‘다들 혼이 나갔구만.’
아마도 이쪽과 우루스 때문일 거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귀환한 황태자. 그런데 미노타우로스가 세트메뉴(?)로 딸려왔다. 덕분에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모두의 뇌세포가 단체로 정전 사태를 맞이한 것이겠지.
그러면 어쩔 수가 없겠다.
“흠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우루스에게 말했다.
“사람들 정신 좀 들게 해주자. 철창 내려놓고 소리 한 번만 질러줄래?”
“푸륵!”
지시와 실행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우루스가 데미안이 갇힌 철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부두의 사람들을 향해 워낭소리 터지도록 포효했다.
“누워어어어어어억-!”
“……!”
누군가는 깜짝 놀라고, 누군가는 얼굴이 해쓱해졌다. 감찰대 기사들이 굳은 얼굴로 검자루를 붙잡았다. 그 모두를 향해 다시 물었다.
“재차 묻겠는데, 여기 책임자가 누구지?”
우루스가 한바탕 화들짝 놀라게 해준 덕분이었을까. 그제야 감찰대 심문관으로 보이는 이가 나섰다.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반문해 왔다.
“……책임자를 찾는 거라면, 나요.”
“나요?”
“그렇소.”
“…….”
저 심문관이라는 자, 어쩐지 말이 짧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이었다. 심문관이 굳은 눈길로 오히려 물음을 던져 왔다.
“미노타우로스를 이끌고 온, 황태자 전하를 꼭 빼닮은 자여. 당신은 누구요?”
“나?”
“그렇소.”
심문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노타우로스의 위세가 신경이 쓰이는지, 먼발치에서 더 다가오지는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우리의 황태자 전하는 미노타우로스에게 납치되셨고,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이시오. 한데 댁은 그 미노타우로스를 수하처럼 부리며 이곳에 나타났소. 그러니 내 입장에선 댁을 의심할 수밖에 없소.”
“허. 내가 가짜인 주제에 황태자 흉내를 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말인가?”
“그렇소. 황태자 전하께서 실종되신 지금이 더없이 위급하고 특수한 상황이며, 이런 상황을 악용하여 황가에 해를 입히려는 이들이 얼마든지 준동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그렇소.”
심문관이 굳은 눈길을 보내어 왔다. 그 눈길을 마주하자 헛웃음이 나왔다.
‘저 작자. 마음에 안 드네.’
심문관이 자신을 함부로 의심해서? 그건 아니었다. 사실 심문관의 의심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타당했다. 이쪽이 반대 입장이라도 똑같은 의심을 한 번은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심문관이 자신을 의심하건 말건, 신분을 증명하라고 요구하건 말건, 그건 아무 상관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민증 까는 거랑 별반 차이도 없으니까. 다만-’
저 작자가 데미안과 자신의 수행원들을 대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문관을 보는 라키엘의 눈빛이 까칠해졌다.
“좋다. 그대는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말이지?”
“그렇소.”
“한데 어찌하여, 저들이 누구인지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지?”
“뭐요?”
“저들 말이다.”
라키엘의 더없이 굳은 목소리. 그의 손길이 철창 속의 데미안을 가리켰다. 아니스를 가리켰다. 특근대장 세르지오와, 근위기사를, 크레모 시장을 차례로 가리켰다.
“그대는 왜, 저들이 보인 희생과 고초, 헌신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지?”
“무슨…….”
심문관이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라키엘은 괘념치 않았다. 우루스의 등에서 내려섰다. 철창 앞으로 다가갔다. 안에 갇힌 데미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데미안 카이엔. 그대는 나,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를 지키기 위하여 온몸을 던졌다. 미노타우로스의 주먹에 맞아 죽을 뻔했던 나를 밀어내고, 대신 잔해에 깔려 다리를 다쳤지. 또한, 그대는 내게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하여 단신으로 미노타우로스에 맞서 싸우는 용맹과 헌신을 보였도다.”
“…….”
라키엘의 고요한 눈길. 데미안의 일렁이는 눈동자. 두 눈길이 철창을 사이에 두고 얽혔다.
그 순간.
콰작-!
우루스의 손이 철창 창살을 부수고 벌렸다. 심문관이 움찔하며 무어라 외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외칠 수 없었다.
“…….”
어느새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는 라키엘의 눈빛 때문이었다.
“다음. 하신토의 딸 아니스.”
라키엘의 걸음이 아니스를 가둔 철창으로 향했다. 심문관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