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76화 (76/468)

76화. 미노타우황청심원 (1)

심문관은 압송되었다.

그의 죄목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황태자 수색 공무에 대한 고의적 부실 수사 및 방해’라는 죄목이었다. 다른 이도 아닌 황태자의 실종 사건을 날림으로 처리하려 했던 행동. 그 죄는 컸다.

“운이 나쁘면 사형, 아니면 최소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겠지요?”

“아마도 그렇지 않겠나, 허허.”

“그렇겠지요. 어쨌건 뭐, 황태자 전하도 무사히 돌아오셨고, 우리는 이렇게 뙤약볕에서 땀이나 흘리고, 끄응차. 어이구, 힘들구만요.”

“힘들긴 무슨. 덕분에 우리도 일거리가 생겨서 좋지 않나.”

“하긴 뭐, 이렇게 큰 공사를 따낸 건 오랜만이긴 합니다.”

“그렇지. 공사 거리가 생기면 우리 업자들이야 좋은 거지.”

건장한 노인이 허허 웃으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시장 관저는 온통 공사판이었다. 며칠 전, 미노타우로스가 난동을 부렸던 밤. 그날 부서진 관저 건물과 정원을 복구하는 현장 곳곳에서 인부들이 자재를 나르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건설업자 노인이 말했다.

“한데 자네, 혹시 어제 부두에 나갔었나?”

“예? 아뇨. 집에 있었습니다.”

“그래? 좋은 구경거리를 놓쳤구만?”

“구경거리라니요?”

“황태자 전하께서 길들여 데려오신 미노타우로스 말일세.”

“아, 저도 이야기로는 들었습니다. 그거, 진짜입니까?”

“당연하지.”

“어르신도 직접 보신 겁니까?”

“허허. 그것도 당연하지.”

노인이 껄껄 웃었다.

“갑자기 바다가 출렁이더란 말일세. 그러더니 글쎄, 집채보다 큰 미노타우로스가 바닷물을 헤치고 확 치솟아 부두에 올라오는 게 아닌가. 한데 그 목덜미에 황태자 전하께서 앉아 계시더라, 이 말일세.”

“많이 놀라셨겠군요.”

“놀랐다마다. 처음엔 믿기지가 않아서 숨도 못 쉬었지. 내가 벌써 노망이 들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구만. 게다가 그 거칠고 사납다는 미노타우로스가 황태자 전하의 말을 어찌나 고분고분 듣던지 말이야. 전하께서 눈짓하는 대로 움직이고, 철창을 부수고, 마치 수족처럼 움직이는 게 아니겠는가.”

“설마…… 정말로 길들이신 걸까요?”

“미노타우로스를? 전하께서?”

“예, 어르신.”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아마도…….”

“아마도?”

“제압하신 게 아니겠는가?”

“제압……이요?”

“그래.”

“하지만 어르신.”

“으음?”

“평범한 사람인 전하께서 괴수인 미노타우로스를 제압한다니, 그게 말이 좀…….”

“안 된다고 생각하나?”

“예. 그날 밤엔 미노타우로스에게 납치되셨던 전하가 아니십니까? 한데 납치된 후에 그 괴물을 제압했다니…… 조금…… 말도 안 되는 일인 듯해서 말입니다.”

“허긴. 나 같아도 그런 의문을 가질 걸세. 그 증언을 못 들었다면 말일세.”

“증언이라니요?”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인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실 이건 조금 조심스러운 이야기일세. 자네, 입을 무겁게 닫아둘 자신이 있는가?”

“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러시는 겁니까?”

“쉿. 목소리 좀 낮춰보게. 다름이 아니라, 황태자 전하께서 미노타우로스만큼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네.”

“……예에?”

“어허. 목소리 낮추래도.”

“아니, 무슨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닐세. 자네, 내 조카 알지?”

“알다마다요. 시장님 개인 범선의 선원으로 들어갔다고 그러셨지 않습니까.”

“그놈이 직접 봤다고 그랬네. 그날, 미노타우로스가 날뛰던 밤에 말일세.”

“……정말입니까?”

“그래. 황태자 전하께서 무슨 수를 쓰셨는지 미노타우로스만큼 거대해졌다더구만. 글쎄, 미노타우로스와 대거리를 하며 등짝이며 목덜미에 커다란 가시를 푹푹 꽂아넣는 모습도 봤다고 그랬네.”

“조카분이 술에 취했던 건 아니고 말입니까?”

“떼끼. 그 상황에 술 마실 틈이 있었겠나? 다른 선원들도 다 같이 봤다는데.”

“…….”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아무래도 황태자 전하께서는 정말로 미노타우로스를 때려잡아서 제압하신 것 같다, 이 말일세.”

“허허…….”

“웃을 일이 아닐세. 생각해 보게. 미노타우로스가 어떤 괴수인가. 그 흉맹하다는 오우거도 한 수 접는다는 흉포한 놈이 아닌가 말일세. 한데, 그런 미노타우로스가 자신보다 약한 존재의 말을 듣겠는가? 심지어 고분고분하게?”

“흐음, 하긴. 들어보니 그렇군요?”

“그렇지?”

“예. 그러고 보니까 말입니다. 저도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뭔가?”

“황도에 널리 퍼진 적이 있는 소문인데…… 황태자 패왕설이라고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노인의 얼굴에 흥미가 떠올랐다. 사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주위에서 자재를 나르던 인부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근거도 뿌리도 없는데 그럴싸하게 들리는 ‘황태자 패왕설’이 크레모에도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그 너머의 정원 구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던 미노타우로스, 우루스가 꼬리를 휘휘 휘두르며 파리 떼를 쫓아냈다.

쫓겨난 파리 떼가 흩어졌다. 그중의 한 마리가 햇살을 타고 날아올랐다. 반쯤이나마 남은 시장 관저 건물의 3층 창가로 올라갔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가락에 맞아 추락했다.

틱-!

“한데 저 미노타우로스 말입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려던 파리를 딱밤으로 격추한 남자, 데미안이 아래쪽 정원의 우루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전하께서는 대체 어떻게 길들이신 겁니까?”

“길들여?”

물음을 받은 라키엘이 싱긋 웃었다.  며칠이나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까닭인지 어젯밤부터 껌딱지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는 꼬슴이와 뽀복이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길들인 적 없어. 혼자 오해를 하길래 놔뒀을 뿐이지.”

“……예?”

데미안의 고개가 갸웃.

오해라니. 아리송한 말이었다. 사실 눈으로 보고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리가 났던 그날 밤, 황태자를 죽이려고 그렇게도 날뛰었던 미노타우로스였다.

한데 황태자를 납치했다가 돌아온 지금은? 달라졌다. 그날의 일이 무색할 정도로 황태자를 따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길들인 걸까. 무슨 수를 썼기에 미노타우로스가 황태자를 저렇게나 추종하는 걸까. 그건 어제부터 데미안뿐만이 아닌, 이 도시의 거의 모두가 떠올리고 있는 의문이었다.

‘한데 길들인 게 아니라니.’

오해라니. 대체 뭘까. 황태자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라키엘의 말이 이어졌다.

“그날, 기억하지? 내가 갑자기 거대해졌던 거.”

“……예.”

그 일 또한 궁금한 점 투성이다. 라키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별거 없어. 환상종한테 먹이는 해바라기씨를 먹어서 그랬던 거고. 왜 먹었으냐고는 묻지 마. 죽지 않으려면 뭐든 해야 했던 상황이었으니까.”

“…….”

“어쨌건, 그렇게 커진 상태에서 녀석을 진정시켜보려고 침을 놔줬더니, 녀석의 아프던 다른 곳이 우연히도 잠깐 나았던 거야.”

“예? 그럼 설마…….”

“감이 오지?”

“전하가 자신을 치료해준 것으로 오해한 겁니까?”

“어. 날 은인으로 여기더라.”

“…….”

“뭐, 따지고 보면 애초부터 내가 녀석한테 원수였던 것도 아니잖아? 원만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은 거지. 안 그래?”

“그건 그렇군요. 물론 제게도 다행스러운 일이고 말입니다.”

“다행?”

“예.”

데미안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받기로 했던 위험수당이 안 날아가게 됐으니까요.”

“……내가 무사한 덕분에?”

“예.”

“내가 월급 셔틀이야?”

“셔틀이 뭡니까?”

“막 퍼다주는 호구?”

“그런 의미라면…… 정확하군요.”

“헐. 이젠 돈 밝히는 거 숨기지도 않아.”

“어차피 고용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어쭈. 막 뻔뻔하기까지.”

라키엘이 웃으며 핀잔했다. 데미안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말은 이렇듯 뻔뻔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은 씁쓸했다. 그날 밤 날뛰었던 미노타우로스. 그 앞에서 황태자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돈을 받을 생각은 하면서 돈값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어. 부끄러운 일이야.’

자신의 실력에 의구심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자신이 있었다.

한데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특대 사이즈의 미노타우로스. 그 괴수 앞에서 자신의 검은 미력했다. 황태자를 지켜내기에 충분할 만큼 강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수치스러웠다.

‘……더 훈련하자.’

앞으로 다시는 그런 굴욕을 겪지 않으리라. 황태자의 호위에 어울리는, 봉급에 어울리는 강자가 되리라. 내심 굳은 다짐을 되새기며 데미안은 화제를 돌렸다.

“제가 이렇게 뻔뻔하게 대답을 드릴 수 있는 건, 어젯밤 전하께서 지시하신 일을 전부 처리해둔 뿌듯함 덕분이기도 합니다.”

“음? 내가 지시한 일?”

“예. 어젯밤에 전하께서 제게 시키신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설마 그걸 벌써?”

“예.”

“내가 일러줬던 그 많은 종류의 약재를 전부 다 준비해뒀다고? 하루 만에?”

“예. 이곳이 북부 최대의 항구이자 교역도시인 덕분이었습니다.”

“후아. 그건 좀 대단하네.”

라키엘은 혀를 내둘렀다.

어제 크레모로 돌아온 자신이었다. 감찰대 심문관을 압송시킨 후, 일행과 반가운 해후를 나누었더랬다. 한편으로는 데미안에게 따로 특별한 지시를 내렸었다. 미노타우황청심원에 들어갈 약재. 그 재료들을 준비해두라는 지시였다.

‘한데 그거…… 한두 가지가 아니었거든.’

산약, 자감초, 인삼, 포황, 신국, 서각, 대두황권, 육계, 아교, 백작약, 맥문동, 황금, 당귀, 방풍, 백출, 시호, 길경, 행인, 백복령, 천궁, 영양각, 사향, 빙편, 웅황, 백렴, 포건강, 대추, 벌꿀까지.

그야말로 한약재의 약벤저스 총출동. 몸에 좋다는 한약재는 죄다 필요한 수준이었다.

‘물론 수은이 함유된 주사는 뺐지만. 그건 너무 리스크가 커서. 어쨌건, 필요한 약재 종류가 너무 많아서 최소 일주일은 걸릴 줄 알았는데.’

한데 그것들을 하루 만에 다 구했단다. 새삼 교역도시의 위엄(?)을 느끼고 있는 도중이었다. 데미안 녀석이 말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소식이 더 있습니다.”

“소식? 뭔데?”

“황제 폐하께서 황도로 발길을 돌리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래?”

“예. 이곳으로 오던 도중에 전하가 무사히 귀환했다는 소식을 접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황도로 턴했다는 거구만?”

“예.”

“거 참. 냉정한 양반일세.”

라키엘은 피식 웃고 말았다. 황제 아스테리온답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졌다.

‘그 아저씨, 좀 부담스럽거든.’

사실 이쪽은 그 아저씨의 아들이 아니다. 그저 아들인 라키엘의 껍데기를 덮어쓰고 있을 뿐이다. 한데 그런 사실을 숨긴 채로 부자의 정을 나누고, 관심을 받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스스로가 가증스럽게 느껴질 것 같았다. 아니, 그 이전에 일단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잘됐어. 앞으로도 이렇게 쭈욱!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게 최고일 거야.’

꼭 그러자고 라키엘은 스스로를 향해 다짐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할 일에 대한 각오도 함께 다졌다.

“좋아. 마침 폐하도 걸음을 돌리셨고, 약재도 다 구해놨다니까 바로 시작할 수 있겠네.”

“시작이라시면?”

“미노타우황청심원 조제.”

라키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모든 재료가 마련되었다. 가장 핵심인 미노타우로스 우황도 특 S+ 급으로 확보된 판국이다. 조제를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당장 관저 주방부터 비우라고 해. 약재 손질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때부터였다.

복구 중인 시장 관저 주방에서 라키엘의 요리교실(?)이 펼쳐졌다. 각종 약재를 각자에 맞는 방법으로 다듬었다. 껍질을 벗겨냈다. 말리고 뜯어냈다. 지지고 볶았다. 가루를 내고, 쪘다. 졸인 대추에 꿀을 섞어 밑재료를 만들었다.

밑재료에 나머지 재료들을 황금비율로 정확히 첨가하여 섞고, 버무렸다. 마무리로 금박을 입혀 고오급스러운 명품 브랜드 포장까지 곁들였다.

그렇게 마침내 닷새째가 되는 날.

‘……완성!’

미노타우황청심원의 첫 시제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라키엘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약이란 제대로 된 정확한 약효를 발휘해야 쓸모가 있는 법. 아무리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도? 약효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니 테스트부터 해봐야 해.’

그는 미노타우황청심원 시제품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시제품을 노려보았다. 스킬을 발동했다.

딩동!

[당신이 직접 조제한 약을 감지하였습니다.]

[탕약조제 스킬 옵션 : 성분 분석을 발동하시겠습니까?]

[YES / NO]

‘당연히 예스지.’

선택과 동시에 옵션이 발동되었다.

[탕약조제 스킬 옵션 : 성분 분석을 발동합니다.]

[스캔 중]

[3…… 2…… 1…….]

[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

딩동!

머릿속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미노타우황청심원에 대한 내용이 주르륵 떠올랐다.

그 직후.

‘……음?’

미노타우황청심원의 각종 스펙. 그걸 읽어내리던 라키엘이 멈칫했다. 어느 한 부분에서 눈길이 휘둥그레졌다.

‘어? 잠깐. 이거 뭐야?’

만들면서도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부작용의 내용이…….

‘이거, 미쳤는데?’

라키엘은 마른침을 꿀꺼덕 삼켰다. 순식간에 트리플악셀을 뛰며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과 함께, 초 대박 완판 상품 탄생의 예감이 쑴펑쑴펑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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