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77화 (77/468)

77화. 미노타우황청심원 (2)

딩동!

머릿속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동시에 머릿속을 땅, 하고 때리는 깨달음 한 조각.

‘이거 미쳤는데?’

라키엘은 경악했다.

눈앞에 떠오른 미노타우황청심원의 성분, 스펙. 그걸 읽어내리다 보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경악이 담긴 그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미노타우황청심원]

[유효성분 : 콜릭산, 빌리루빈, 비타민 D, 진세노사이드, 프로토파낙시디올, 올레아놀릭산, 파낙시놀…… 이러쿵저러쿵…… 쿠마린, 람놀리퀴리틴…… 이거저거…… 레데보우리에롤, 하마우돌…… 블라블라…… 시미푸진, 임페라토린 등등]

[성상 : 황금색 금박을 입힌 구형의 환제]

[효능과 효과 : 근육세포 내 칼슘이온 농도 하강을 통한 근육이완 및 혈관확장, 협심증 및 각종 심혈관계 질환과 통증 해소, 특발성 폐동맥 고혈압(idiopathic 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 치료]

[용법, 용량 : 성인 1회 1환 (8~15세 2/3환, 5~7세 1/2환, 2~4세 1/3환, 1세 이하는 1/4환을 1일 1~2화 씹거나 따뜻한 물에 개어서 복용합니다.)]

[사용상의 주의사항 : 다음과 같은 사람은 이 약을 복용하기 전에 의사, 한의사, 약사와 상의할 것 - 1.고혈압 환자 2.신장장애 환자 3.부종 환자 4.고령자 5.식욕부진, 구토의 증상이 있는 환자 (증상이 악화될 수 있음)]

……여기까진 괜찮았다. 딱 나쁘지도 않고, 원래 기대하고 예상했던 청심원의 효과와 대강 들어맞았다. 한데 대박인 점은 다음에 있었다.

[부작용 : 신체에 무리가 없고, 부작용과 중독성이 없는 완벽한 꿀잠 숙면을 유발합니다.]

‘허허허.’

라키엘은 그저 웃었다.

황당해서? 아니었다.

‘미쳤네. 대박 맞네.’

그것도 그냥 대박이 아니었다.

초대박이었다.

‘신체에 무리가 없대. 시중에 파는 수면제 같은 위험성이 없다는 뜻인 거야. 게다가 부작용과 중독성도 없어? 그럼 프로포폴도 가뿐히 제끼는 거고. 그런데 완벽한 꿀잠 숙면을 유발한다는 건…… 이건 거의 혁명급인데?’

요모조모 살펴볼수록, 이리저리 분석할수록, 장난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청심원 류의 약이 원래 제공하는 몸에 좋다는 약효? 물론 그것도 좋았다. 그런데 분석하면 할수록 부작용의 메리트가 더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문득, 이와 비슷한 사례도 떠올랐다. 지구의 미국, 어느 제약 회사에서 일어났던 대박 사건이었다.

‘1990년대 초였지. 어느 제약회사가 협심증 치료 약을 개발하고 있었어. 개발은 순조로웠지. 한데 결과를 분석해보니까? 뜻밖의 부작용이 발견됐다고 했어.’

원래 목적은 협심증 치료약을 개발하려던 거였다. 한데 임상시험 중에 뜬금없는 부작용이 발견됐다. 약을 복용한 임상시험 남성 참여자들의 신체에 의외의 변화가 생겨난 것이었다.

‘아주…… 엄청나졌지. 남자한테 참 좋은데, 아,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쨌건, 그 효과(?)는 엄청났다. 제약사는 뜻밖의 부작용에 주목했다. 오히려 부작용을 안전하게,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렇게, 80억 인류의 밤을 바꾸고, 바다표범과 순록에 대한 밀렵과 남획을 50% 이상 감소시킨 기념비적인 역사적 약품이 개발되고, 출시되었다. 그것이 바로 전설 속 레전드로 불리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였다.

덕분에 그걸 개발한 제약사는? 3단 분리 로켓 부스터 날개를 달고서 찬란한 전성기를 맞이했다. 훗날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게 되는 회사, 화이자(Pfizer) 제약사였다.

‘그러니까 오늘 이건, 비아그라 개발 사례와 비슷한 거야. 원래 의도했던 용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런데 엄청나게 유용한 부작용을 발견해 버린 거.’

먹기만 하면 완벽한 꿀잠 숙면을 보장한다니. 최상급 미노타우로스 우황 덕분인 걸까.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미쳤다. 미쳤어.’

우연이 이끌어낸 초대박 완판 상품 탄생의 예감. 라키엘은 절로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어쩌면 이 약이 마젠타노 제국의, 로라시아 대륙의 약품계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 또한 들었다. 하지만 그는 마냥 기쁜 예감에만 빠져들지 않았다.

‘아직 좋아하기엔 일러. 정신 차려라, 이한!’

짝짝!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짝짝 때렸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칫국 마실 때가 아니야. 설레발 칠 단계도 아니야. 신중하게. 모든 걸 확인해야지.’

그는 냉철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성분표의 나머지 부분, 저장방법과 사용기간 등등의 항목을 확인했다. 미노타우황청심원 10알을 챙겼다.

주방을 빠져나갔다. 관사 건물을 벗어났다. 정원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우루스!”

관사 정원 한쪽에서 한가롭게 되새김질을 하던 미노타우로스의 왕을 불렀다. 햇볕 아래 뒹굴거리던 우루스가 고개를 들었다.

“……누우?”

내 작고 하찮은 덩치의 은인이다. 우루스의 눈가에 반가움의 기색이 떠올랐다. 라키엘이 워낭소리 돋는 미소를 만면에 떠올렸다.

“잘 쉬고 있었냐. 오늘 컨디션은 어때?”

“누우?”

“으음, 나쁘진 않아 보이네. 가슴 통증은 없었고?”

“누우우!”

“다행이야. 그럼 이거 좀 먹어볼래?”

불쑥, 라키엘이 손을 내밀었다. 미노타우황청심원 10알이 모습을 보였다.

“……누우우?”

“약이야. 원래 사람은 한 알만 먹으면 충분한데 넌 덩치가 커서, 최소 이 정도는 먹어줘야 약빨이 들 거거든.”

“……누우우우?”

“이거, 먹으면 가슴 아플 일이 사라질 거야.”

“누우!”

우루스의 눈이 번쩍했다. 가슴이 아픈 건 싫었다. 며칠 전에 겪었던 끔찍했던 통증도. 수시로 떠오르는 기억의 가슴 저림도. 그런데 저 약을 먹으면 그 아픔들이 사라질 거란다.

“누우우! 누우!”

우루스는 다시 한 번 은인을 믿어보기로 했다. 몸을 낮추었다. 커다란 입을 벌렸다.

“늬에에에에-”

쏙쏙!

라키엘이 미노타우황청심원을 우루스의 혓바닥 위로 던졌다. 우루스도 그걸 야물딱지게 받아먹었다.

“잠깐! 바로 삼키진 말고!”

“……누우?”

“혀 위에 올려둬. 그리고 천천히 녹여서 먹어볼래?”

“누으으으.”

“맛없어?”

“누!”

“어쩔 수 없어. 조금만 참자. 응?”

“……누우우.”

“해치웠나?”

“누!”

“그래, 삼켜.”

꿀떡!

우루스의 커다란 목울대가 움직였다.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의 두 눈이 빛났다.

‘경혈 스캐닝.’

[<진맥> 스킬 전용 옵션 ① : 경혈 스캐닝이 활성화됩니다.]

[시야 속 10미터 범위 내에 Lock-on 가능한 대상이 감지되었습니다.]

[대상 : 미노타우로스의 왕, 우루스]

[대상을 Lock-on 하시겠습니까?]

[YES / NO]

라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경혈 스캐닝이 발동되었다.

키이이이잉-!

방금 미노타우황청심원 10알을 녹여 삼킨 우루스. 녀석의 거대한 몸속에 흐르는 별빛이 보였다.

신체 곳곳의 경혈들. 그곳을 흐르는 마나의 움직임. 그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방금 녀석이 삼킨 미노타우황청심원 성분의 흐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보인다.’

황금색으로 환하게 빛나는 기운이 감지되었다. 우루스의 기다란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게 보였다. 위장에 머물렀다.

되새김질? 그런 복잡한 과정은 다행히 없었다. 황금색 기운이 첫 번째 위에 들어가자마자 위벽을 통해 흡수되었다. 혈관을 따라 빠르게 번져갔다. 심장에 깃들었다. 심장을 둘러싼 관상동맥을 확장시켰다. 동맥 내벽에 달라붙어 있던 혈전 덩어리들을 녹여냈다.

마치 오래 벼르고 있던 대청소를 하듯이. 묵은 때를 속 시원히 싹싹 벗겨 내듯이.

“……누, 누우?”

우루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약효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푸륵! 푸르륵!”

신체의 곳곳. 전신의 혈관 내벽. 온갖 부위에 조금씩 자리하고 있던 염증이 빠르게 사라졌다. 오랜 감금 생활로 망가지고 지쳐 있던 우루스의 전신에 활력을 주었다.

근육이 손에 손을 잡았다. 적혈구가 벽을 넘었다. 림프액이 자기네 사는 세상을 더욱 살기 좋게 만들었다. 아주 그냥 기쁨과 환호의 올림픽이 열렸다.

그 순간.

딩동!

라키엘의 귓가에 맑은 알림음이 울렸다. 반가운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당신은 직접 조제한 미노타우황청심원을 환자 : 우루스에게 복용시켰습니다.]

[스킬 : 탕약조제 (Lv.1) 의 효과로 약효가 10% 증가하였습니다.]

[환자 : 우루스는 오랜 감금 생활과 학대로 인하여 안정형 협심증 및 각종 성인병, 대사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조제한 미노타우황청심원을 복용한 덕분에 관상동맥의 혈전이 완벽히 제거되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성인병 증상들이 다소 완화되었습니다.]

[진료비 청구 (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환자 : 우루스는 당신의 미노타우황청심원 복용을 통해 총 79년 3개월의 기대수명 연장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에 당신은 79년 3개월의 1/1950에 해당하는 보너스 수명을 정산받습니다.]

[환자 : 우루스가 인간이 아닌 관계로, 이종족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정산받는 보너스 수명이 50% 삭감됩니다.]

[7.31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정산되는 수명의 최소 단위는 1일입니다.]

[정산되는 보너스 수명이 반올림 처리됩니다.]

[총 7일의 보너스 수명이 정산됩니다.]

[당신의 예상 기대수명 : 116일]

‘……오옷.’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대 이상의 효과였다.

‘한 방에 완치라니…….’

우루스가 앓고 있던 안정형 협심증이 싹 나았다. 그 밖에 약간씩 지니고 있던 성인병도 제법 호전되었다. 대성공적인 임상시험 결과였다. 거기에 보너스 수명까지 쑴펑쑴펑 퍼 받았다! 그 소식에 오장육부도 곧바로 반응했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성과에 기쁨을 표현합니다.]

[심장 : 저거 hoxy, 심장에 좋은 약이야?]

[허파 : 허허…… 파하학.]

[대장 : 안 그래도 요즘 몸이 찌뿌둥해서 변비 생길 거 같았는데…… 저도 저거 먹으면 간만에 쾌변으로 슬럼프에서 벗어날 거 같지 말입니다.]

[간장 : 슬럼프는 평소에 잘하던 놈이 쓰는 말 아님? 넌 맨날 변비잖냐.]

[위장 : ……풉!]

[오장육부가 당신에게 6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2,100]

‘허허? 크하하. 크하하하핫!’

라키엘은 방긋 웃었다. 절로 어깨춤이 덩실덩실 나왔다. 자신이 만든 미노타우황청심원. 확인할수록 대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대놓고 협심증 특효약이야. 성인병 완화에도 도움이 되고. 게다가 아까 봤던 부작용까지 생각하면…….’

이건 어디에 내놔도 팔릴 거다. 비싸게 값을 매겨도 무조건 팔린다. 아니, 전국의 귀족들이 돈을 보자기로 싸와서라도 사려고 줄을 설 것이다. 게다가 이쪽이 오늘 얻은 성과는 더 있었다.

“누우? 누우우움…….”

우루스가 하품을 쩌억 했다. 갑자기 온몸이 상큼해졌다. 한편으론 나른나른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청량한 풀밭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두 눈을 꿈벅꿈벅. 천천히 감았다가 뜨며 라키엘을 바라보았다. 고마웠다. 그 마음을 전했다.

할짝?

“……그읍읍?”

거대한 혓바닥이 라키엘의 상반신을 푹 적셨다. 라키엘은 기겁했다. 머리며 얼굴이며 옷이며, 한 큐에 미노타우로스의 침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우루스를 밀어내지 않았다. 우루스가 건네는 마음을 느낀 덕분이었다.

‘고마워하고 있구나…….’

미노타우황청심원의 부작용인 숙면에 빠지고 있는 걸까. 그 와중에도 이쪽을 바라보는 까만 눈망울이 유독 유순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문득, 어릴 때 시골 할아버지 집에서 봤던 누렁이 황소가 떠올랐다. 녀석이 할아버지를 바라볼 때면 이런 눈빛을 했었던가.

앞으로도 평생 당신을 따르겠노라고. 당신을 더더욱 충실히 지키겠노라고. 오직 당신만이 나의 친구이며 주인이라고. 그 눈빛을 받으며, 따스한 마음을 진심으로 실감하며, 라키엘도 우루스를 향해 부드러운 눈길을 보냈다. 내심 조용히 되뇌었다.

‘……호구 확보!’

호구, 혹은 노예.

앞으로도 평생 널 부려먹겠노라고. 너를 더더욱 충실히 굴려먹겠다고.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쌔근쌔근 잠드는 우루스를 향해 야물딱지게 다짐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는 곧바로 크레모 시장을 불렀다. 성공적으로 개발한 비장의 무기, 미노타우황청심원. 그 신약을 전국 각지에 각 잡고 제대로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라키엘의 홍보 계획을 들은 크레모 시장. 그의 눈동자가 16비트 자진모리장단으로 탭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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