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78화 (78/468)

78화. 명의(名醫) 탄생 (1)

쿠쿠쿠쿵! 둥둥! 쿵!

북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울렸다.  부둣가에서 노닐던 갈매기 떼가 소리에 놀라 날개를 퍼덕였다. 흩어지는 날갯짓 아래로 운집한 수천의 시민들. 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사람들의 눈길이 모인 곳. 부둣가 광장 한쪽에 세워진 단상. 그 위에서 라키엘은 셔츠 깃을 가다듬었다.

“흠흠.”

절로 나오는 헛기침. 아까부터 목청을 몇 번이나 푼 건지.

‘……후우, 떨리네.’

역시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수십, 수백 명도 아닌 수천 명의 인파 앞에 서서 주목받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라키엘은 고개를 들었다. 단상 위에 걸어둔 플랜카드가 보였다.

‘크레모 시 특별훈장 수여식이라.’

그걸 보자 문득, 이틀 전의 일이 떠올랐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틀 전의 시장 관저 정원.

대낮부터 불려 온 크레모 시장이 움찔했다. 이쪽에게 들은 이야기가 놀라운 걸까. 아니면, 방금 미노타우황청심원을 먹고 쌔근쌔근 잠든 우루스의 모습이 부담스러운 걸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문득 떠오른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시장이 놀라지 않도록 차근차근, 이쪽의 계획을 말해주었다.

“신약 홍보를 위해 훈장 수여식을 열어볼까 해서 말이지.”

“훈장 수여식을…… 신약 홍보를 위해서 말입니까?”

“으음.”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다.

“여러 이유가 겹치기는 했지만, 어쨌건 크레모 시는 이번에 몸살을 앓았지. 미노타우로스, 이 녀석이 날뛴 까닭에 많은 사람이 놀랐고,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고, 힘든 복구의 시기를 맞이하게 됐어. 그래서야. 그날 밤, 날 지켜주기 위해 애쓴 사람들, 타인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 용기와 희생의 모범을 보인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할까 해.”

“전하께서 직접 말입니까?”

“으음. 명분은 충분할 거고. 훈장을 수여하면서 이걸 같이 상으로 내려볼까 싶어서.”

“이건…… 뭡니까?”

시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태자가 ‘이거’라면서 손바닥을 펼쳐 보인 물건. 금박이 입혀진 구슬이었다. 눈깔사탕보다 조금 작은 크기쯤 될까. 쌉싸름하면서도 알싸하고 독특한 향기가 났다. 황태자가 빙긋 웃었다.

“미노타우황청심원.”

“……예?”

“새로 개발한 약이야. 협심증을 비롯한 심장 질환의 치료에 탁월하고, 부가적인 효과로는 몸을 쾌적하게 만들어줄 완벽한 숙면을 제공하기도 하고. 여기, 이 미노타우로스가 꿀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설마 미노타우로스에게 그걸 먹이신 겁니까?”

“어.”

“그럼 전하께서, 이걸 직접 만드신 겁니까?”

“으음. 만들었으니 판매해야지. 귀한 재료가 들어갔으니 아주 값비싸게. 그래서야. 훈장 수여식에서 이걸 훈장과 함께 하사하는 거.”

“……아, 과연.”

“내 뜻을 알겠어?”

“예, 전하.”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나름 반평생 넘도록 정치판에서 구르며 한 지역을 다스려온 사람이었다. 이 정도만 들어도 황태자의 의중을 대번 파악할 수 있었다.

“특별한 재난을 극복하고, 그 성과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내리는 훈장…… 그것도 황태자 전하의 이름이 걸린 훈장과 함께 하사되는 약이라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약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게 되겠군요.”

“그래. 바로 그거지.”

척 하고 말했는데 착 하고 알아들으니 참 좋다. 라키엘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황태자가 상으로 하사한 약이라니 얼마나 궁금하겠어. 말 그대로 황태자 에디션. 황태자 프리미엄 상품인 거니까.”

“예,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래. 손에 넣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워할 귀족들이 제법 있을 거야. 혹은 유행의 조짐을 느끼고선 당장 필요가 없어도 일단 사두자 싶은 이들도 있을 거고.”

그렇게만 인식이 박히면? 따로 더 알리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돈을 싸들고 와서 사려고 들 것이다. 그게 바로 고오급 명품 브랜드의 힘이니까.

‘그런 거, 한국에서 많이 봤거든. 브랜드 마크의 힘에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도.’

돌이켜보면 정말로 그랬다.

자동차 하면 벤처. 시계라면 롤락스. 사실 기능만 따지고 보면 다른 경쟁 브랜드보다 압도적인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경쟁 브랜드보다 가격이 비쌌다. 엄밀하게 따지면 가성비가 떨어졌다.

한데도 더 잘 팔렸다!

‘벤처만 봐도 그래. 오죽하면 삼각별 마크 자체가 천만 원짜리 옵션이라는 말이 있겠냔 말이지. 롤락스도 그렇고. 매장에서 직접 사는 성골에 성공하려고 아침 오픈 시간에 찾아가서 오픈런을 하고, 대기번호 따내고, 제발 팔아달라고 난리 부르스를 춰가며 사지. 그런데 막상 성능을 보면 비슷한 급의 다른 경쟁 브랜드보다 압도적인 건 절대로 아니거든.’

경쟁 관계인 벤처와 BWM, 아오디.

롤락스와 오미가.

차나 시계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 보기엔? 둘의 성능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아니, 실제로도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만 다를 뿐, 어느 한쪽의 성능이 확 우월한 것도 아니었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반인들일수록 더더욱 한 분야의 대명사격인 브랜드만 잘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거지.’

그게 바로 브랜드의 파워였다. 이번에도 똑같다고 라키엘은 생각했다.

‘미노타우황청심원의 주 소비층이 될 귀족들…… 그들이 약에 대해 빠삭하진 않을 거야. 아니, 오히려 거의 아는 바가 없겠지. 그러니까 이런 홍보 방식이 오히려 먹힐 거고. 약의 정확한 성분이나 효과를 따지기보단, 브랜드가 지닌 이름에 먼저 주목할 거니까. 거기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소비층이니까.’

게다가 미노타우황청심원은? 브랜드빨(?)로만 밀어붙이는 거품이 아니었다. 엄연히 최상급 미노타우로스 우황으로 만든, 엄청난 약효와 더욱 엄청난 부작용(?)을 지닌 약이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광고를 해야지. 넉넉한 값을 받을 수 있게. 그러기 위해 훈장 수여식이 필요한 거고.”

“하면, 수여식을 최대한 성대하게 치러야겠군요.”

“그런 내 마음까지 알아주니 더욱 고맙고.”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전하. 하면, 곧바로 준비를 하면 되겠습니까?”

시장이 다 알겠다는 듯 말했다. 볼수록 믿음직한 아저씨였다. 라키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배어났다.

“그래 주면 난 더 고마워지는 거고. 이 신세는 잊지 않을 테니까 잘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전하.”

……라고 하였던가.

그것이 이틀 전의 일이었다.

실제로 크레모 시장은 정말로 열심히 일했다. 행사를 조금이라도 더 크게, 일찍 치러내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했다. 덕분에 불과 이틀 만에 지금, 훈장 수여식이 치러지게 되었다.

라키엘은 고개를 들었다.

“…….”

광장에 운집한 수천 명의 크레모 시민들이 보였다. 광장에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광장 주변 창문마다 옹기종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곳, 단상을 향해 몰려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후아.’

라키엘은 심호흡을 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시선을 한몸에 받아본 적이 있던가. 대한민국에서는 한 번도 없었다.

거기선 그저 평범한 학생, 더 나이 들어서는 평범한 동네 한의사 아저씨였을 뿐이었으니까. 남달리 주목받을 일이라곤 꿈에도 없을, 흔한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물론 이곳에선…… 주목받은 적이 있긴 했지만.’

딱 한 번.

황도의 로이-하비 현수교에서 2황자와 대결했던 때였다. 지금과 비슷하게 수천 명의 인파가 대결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 느낌이 달랐다.

‘당장 2황자와 어떻게 대결할지 궁리하기에도 벅찼으니까. 거기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거든.’

그래서 주위의 시선이고 뭐고 의식할 여유가 별로 없었다. 한데 지금은? 그냥 맨정신(?)으로 저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아내게 됐다. 솔직히 좀, 아니,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쫄지 말자, 이한!’

라키엘은 스스로를 격려했다. 이제부터 잘해야 한다. 그래야 미노타우황청심원 홍보가 제대로 된다. 별궁 한의원을 괴롭히는 자금난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흠흠!”

그는 냉철함으로 무장했다. 목을 가다듬으며 앞을 보았다. 어느새 단상 위에 올라온 데미안이 이쪽을 마주하고 있었다. 모처럼 정복을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그의 뒤에 나란히 선 아니스, 특근대원, 근위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을 지켜주기 위해 개고생을 했던 이들. 오늘 훈장을 받을 수훈자들이었다.

이제, 쇼타임이 왔다.

“데미안 카이엔. 그 외 33인.”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가 마법 구슬을 통해 증폭되었다. 광장 전체에 우퍼 스피커 터지듯 빵빵하게 울려 퍼졌다.

“그대들은 미노타우로스가 난동을 부리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여,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황가의 핏줄을 지켜내고자 분투하였으니, 이에 오늘, 이 자리를 통하여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의 이름으로 그대들의 공적을 특별히 치하하노라.”

준비된 멘트의 포문을 열었다. 데미안과 모두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들에게 다가갔다. 모두의 목에 훈장을 걸어 주었다. 그리고 호화로운 함을 꺼냈다.

함을 열었다.

그 안에 금박 번쩍번쩍한 미노타우황청심원 34개가 2열 횡대로 줄지어 놓여 있었다.

“또한 나,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는 그대들의 용기와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특별한 약을 만들었도다.”

라키엘은 미노타우황청심원이 담긴 함을 높이 들어 올렸다. 광장의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멘트가 모두의 귓가에 숑숑 박혀 들도록, 더욱 목청에 힘을 주었다.

“그대들은 흉맹하게 날뛰는 미노타우로스에 맞서 싸운 진정한 용사이며 전사. 그렇기에! 미노타우로스의 우황으로 만든 이 특별하고도 강력한! 약을 받을 자격이 있도다.”

……웅성웅성?

광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미노타우로스의 우황으로 만들었’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런 재료로 만든 약재가 있었나 싶은 의문. 황태자가 하사하는 약이라는 상징성. 이내 서서히 고개를 드는 호기심까지.

‘미노타우로스의 뭔가를 넣었으면…… 엄청 좋은 약인 건가?’

‘아무래도 그럴 거 같은데?’

사람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과연 저걸 먹으면 어떻게 될까. 혹시 미노타우로스처럼 강력한 힘을 얻게 되는 걸까. 그런 모두의 흥미와 기대감 속에 라키엘의 혓바닥이 더욱 현란한 춤을 추었다.

“이걸 먹는 즉시 그대들의 심장은 한층 강해질 것이다. 혈전이 제거될 것이고, 미노타우로스처럼 지치지 않는 불굴의 체력을 얻게 될 것이다. 타우린을 비롯한 콜릭산, 비타민 D, 진세노사이드, 프로토파낙시디올이 그대들의 혈관에 활력을 주고,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웅성? 웅성?

사람들의 술렁임이 더욱 커졌다.

‘타우린? 콜릭산?’

‘비타민 D가 뭐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한데 그래서 어쩐지 더욱 그럴듯하게 들렸다!

‘좋은 건가?’

‘엄청나게 좋은 거 같은데?’

‘미노타우로스에게서 뽑아낸 마법의 기운이 아닐까?’

모두의 귀가 쫑긋쫑긋 열렸다. 분위기를 탄 라키엘의 혓바닥이 풀악셀을 밟았다.

“그뿐일까. 지치고 잠들지 못하던 육체에 더없는 휴식과 숙면을 안겨줄 것이다. 그렇게 기운을 차린 그대들은 더더욱 용맹한 영혼으로 거듭날 것이다. 마치 지치지 않는 미노타우로스처럼! 이 약을 먹는 즉시! 그대들은 한층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웅성웅성?

먹으면 용맹해진단다. 끝없는 힘이 치솟고, 지친 몸에 활력까지 생겨난단다.

그러나 라키엘의 멘트 폭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서 멍하니 티브이 틀어놓을 때 나오곤 하던 홈쇼핑 방송 진행자의 멘트를 떠올렸다. 한층 교묘한 멘트를 연타석으로 뻥뻥 날려댔다.

“그렇기에, 오늘 그대들이 이 자리에 오른 사실이 참으로 기쁘도다. 더없이 충실하고 충직한 그대들 덕분에 제국의 시민들에게 이 약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 되어 더더욱 기쁘도다. 왜냐. 바로 오늘부터 단 1개월! 1개월 동안만! 이 약을 황태자 수여 에디션이라는 알찬 구성과 착한 가격으로! 시민들을 향한 판매의 문을 열어둘 것이기 때문이다!”

……웅성웅성!

황태자 수여 에디션? 저토록 특별한 약을 판매할 거라고? 쫑긋해진 시민들의 귓구멍으로 라키엘의 멘트가 쇽쇽 박혀 들었다.

“단돈 9,999마젠! 한정 수량 특가판! 완판 매진 소식이 벌써부터 들려오는 절호의 가격으로! 오직 지금부터 한 달 동안만! 앞으로 다시는 없을 최대 구성으로! 판매할 특별한 상품을! 그대들에게는! 공짜로, 수여하노라.”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알릴 것만 딱 알렸다. 상큼하게 멘트를 마쳤다. 그 순간.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려…… 9,999마젠이라고?’

‘한정 특가판으로 싸게 내놓는 가격이 저렇게 비싸다고?’

‘그럼 원래 가격은 얼마나 더 비싼 거야?’

‘진짜로 좋은 거 맞나 봐. 그러니까 저렇게 비싸지.’

‘그 정도로 좋고 귀하니까…… 황태자께서 수훈자들에게 하사하시는 거겠지?’

‘당연하지!’

‘저런 약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비슷한 생각들. 아무나 쉽게 구할 수 없을 진귀한 물건.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에 자랑할 수 있을, 선망의 대상이 될 엄청난 명품. 말 그대로 황태자 특별 에디션!

미노타우황청심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탐욕이 서려갔다.

‘아…….’

‘갖고 싶다.’

‘지르고 싶어라.’

마치 홈쇼핑 채널을 돌리다가. 혹은 폰으로 쇼핑 페이지를 둘러보다가. 지름신에 덕통사고를 당한 사람의 눈빛처럼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그 시선들을 보며 라키엘은 확신했다.

‘됐다.’

오늘의 수훈식이, 방금 날린 멘트가, 모두 제대로 먹혔다. 덕분에 행복한 완판 예감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약 홍보만 하고 수여식 행사를 마친다? 그건 너무 아쉬울 터였다. 그의 계획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기왕 행사를 열었으면 뽕을 뽑아야지!’

오늘 챙길 건 다 챙기리라. 못 챙길 것도 주머니에 쑤셔 담으리라. 야물딱진 일념으로 시민들을 돌아보았다. 오늘 그려둔 계획의 다음 단계를 혓바닥에 올렸다. 힘차게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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