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79화 (79/468)

79화. 명의(名醫) 탄생 (2)

소문은 무섭다.

사람의 입과 입을 통해 퍼지는 소식. 그 소식의 진위나 진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런 소문이 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현명하다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그렇다. 소문에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게 된다.

소문이 첫인상을 만들고, 이후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경우가 셀 수 없이 많다. 때로는 그런 극단적인 예시를 온몸으로 직접 겪는 이도 있다.

‘……그게 바로 나였지.’

라키엘은 회한과 한숨이 섞인 탄식을 삼켰다. 떠올릴수록 아픈 기억이 쑴펑쑴펑 돋아났다. 대한민국에서 겪었던 일이었다.

‘동네 아파트 단지 카페에…… 우리 한의원에 코로나 환자가 다녀갔다는 소문이 쫙 퍼져가지고…… 그것도 두 번이나…… 어오 씨.’

생각만 해도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다가도 PTSD가 올 것 같았다. 지금도 억울했다.

확진자가 그냥 다녀가기만 했을 뿐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두 번 모두, 한의원의 누구도 감염되지 않았다. 격리와 소독, 방역도 철저하게 했다. 말 그대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선 달랐다.

‘동네방네 퍼진 소문이 이미지를 만들었지. 코로나 한의원이라는 이미지. 저기 갔다간 코로나 걸릴지도 모른다고. 재수 없으면 감염된다고. 저기 갈 바엔 차라리 약간 더 멀어도 다른 델 가겠다고…….’

이미 그걸로 끝이었다.

한번 그렇게 인상이 박히니까. 최악의 이미지가 고정되어 버리니까. 수습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만회는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텅 빈 한의원. 간판을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진료실에 남았던 저녁. 혼자 소주를 병째 마시며 얼마나 울었던지.

덕분에 그는 소문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소문이라는 게, 홍보라는 게 어떤 영향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너무나 잘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모처럼 수천 명의 사람이 모였어. 그냥? 아니. 오직 내 연설을 듣기 위해서.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황태자의 얼굴을 보겠다고 이렇게나 많이 모였지. 그러니까…… 이건 대놓고 깔린 멍석이란 말씀이거든.’

라키엘은 눈길을 들어 광장에 모인 수천의 군중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모두가 조용해진 광장. 황태자의 연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느낄 수도 있었다.

‘아마 감동적인 연설을 기다리고 있겠지. 황실은 항구도시 크레모의 번영에 큰 힘을 얻고 있다고. 이러한 번영을 이끌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시장의 노고에 감사하고, 더 나아가 항구와 도시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준 그대 시민들의 공로에 가장 크게 고마워하고 있다고. 또한, 뜻밖의 재난 앞에서도 끝끝내 일어서 복구에 매진하는 그대들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다고, 어쩌고저쩌고, 여러분이 최고, 블라블라…… 뭐, 이런 판에 박힌 정석 멘트들 말이지.’

아마도 그게 연설의 정석이리라. 모두가 그런 연설을 예상하고 있으리라.

덕분에 빙긋, 절로 웃음이 나왔다. 라키엘은 입맛을 촵촵 다셨다. 음성증폭 마법이 걸린 수정구를 잡았다. 이쪽의 연설을 기다리는 광장의 시민들. 그들을 향해 차곡차곡 준비된 멘트를 조정간 연발로 발사했다.

“반갑습니다, 크레모의 시민 여러분. 다들 아시다시피 저는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입니다. 그리고 또한, 황도에서 성업 중인 별궁 한의원의 원장이기도 하지요.”

……술렁술렁?

이쪽의 인사가 예상과 달라서였을까. 모두가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라키엘의 미소가 짙어졌다.

오늘 이처럼 대놓고 깔린 멍석. 별궁 한의원을 알리기 위한 최고의 멍석.

‘……한의원 홍보는 못 참지!’

이런 기회를 그냥 보낼 순 없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그건 바보다.

모름지기 모든 영업에는 홍보와 광고가 기본이자 핵심인 법. 하다못해 동네에서 오픈한 식당도 알바생까지 써가며 전단지를 돌리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노력하는 법.

한데 그런 홍보를 수천 명을 대상으로, 공짜로, 일방적으로 할 기회가 생겼다. 이런 기회는 무조건 잡아야 한다. 최후의 국물 한 방울까지 뽕을 뽑아야 한다. 모름지기 그게 강호(?)의 도리다.

그러한 일념으로 그는 욕망의 정주행에 피치를 올렸다. 전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 구상하고 달달 외운 멘트를 노골적으로 톡톡 던졌다.

“그렇기에 이렇듯, 모처럼의 자리가 마련된 김에 홍보를 좀 하겠습니다. 황도의 별궁 한의원은 설립된 역사가 깊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각종 탕약과 침, 뜸, 부항 등의 요법으로 다양한 병증을 치료하고, 면역력을 키워 병마에 대항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그래서 혹시나 말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 중에 별궁 한의원의 소식을 접해본 분이 있을까요?”

운집한 시민들을 향해 뻔뻔하게 물었다. 처음엔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그저 서로를 돌아보기만 할 뿐. 그러다가 조금씩, 한 사람씩, 드문드문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교역도시답다. 라키엘의 미소가 한결 짙어졌다.

“생각보다 제법 있군요. 다행입니다. 혹시나 유명하지도 않은 주제에 이런 말들을 꺼낸 거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말입니다. 별궁 한의원의 원장인 제가 직접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이대로 입만 놀리는 홍보만 하다가 돌아가면 섭섭하겠지요?”

……웅성웅성?

사람들의 술렁임이 커졌다.

온다.

반응이 온다.

‘이쯤에서 낚싯대를 살살.’

흔들어주자. 매혹적으로, 귀가 솔깃해지도록, 떡밥을 살포시.

“그렇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곳 크레모가 어떤 곳입니까? 북해의 가장 아름다운 중심 교역도시, 제국 북부의 심장 같은 곳 아니겠습니까? 한데 그런 이곳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이가 누구일까요? 이곳을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도시로 만드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건강해야 크레모가 더욱 번영합니다. 크레모가 번영해야 제국이 부강해집니다. 즉, 여러분이 건강해야 제국이 강성해진다는 뜻이고! 여러분의 건강이 제국의 국력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목소리를 교묘하게 드높였다. 때로는 은근슬쩍 낮추었다. 앞줄에 있는 시민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었다.

“저는 여러분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꼭 그러면 좋겠습니다. 그렇기에 묻겠습니다. 혹시 여기 모인 분들 중에 어딘가 몸이 불편하고 아픈 분이 있다면, 앞으로 나와주세요. 심한 질환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감기, 몸살, 두통, 치통, 근육통, 신경통, 산후 몸조리 중인데 자꾸 아프신 분, 관절통과 관절염, 상습적으로 배가 더부룩하고 불편한 소화장애까지. 전부 제가, 별궁 한의원 원장인 제가 살펴보아 드리겠습니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술렁임이 한층 커졌다. 저마다 옆 사람을 돌아보았다. 각자가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나 아픈 곳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까 우리 엄마, 요즘 무릎이 시원찮으신데. 고작 그런 걸로 황태자께 진료해달라고 나서도 되는 걸까. 광장에 운집한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 덕분이었다. 라키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백만 송이의 장미로 피어났다.

‘아이고, 내 복덩이…… 아니, 보너스 수명 고객님들.’

고객님들이 고민에 빠져 있다. 그러니 이제는? 슬슬 결정타를 꽂아넣을 때다. 라키엘은 혓바닥에 침을 촵촵 적셨다. 고민하며 망설이던 사람들을 향해 결정적인 멘트를 꽂아넣었다.

“지금 나오시는 분들께는…… 100명 한정으로 무료 진료권 쿠폰을 드릴 겁니다.”

“……?”

“공짜, 선착순, 시작.”

“……!”

그렇게, 완벽한 멍석을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활용한 덕분이었다. 연설을 빙자한 라키엘의 한의원 즉석 홍보와 영업질. 그 결과는 대박이었다.

‘대박. 이게 바로 대박인 거지, 후후 룰루루!’

절로 쾌재가 나온다.

이곳, 항구도시 크레모. 여기에 와선 모든 결과가 대박의 연속이다. 뜻밖에도 공짜(?)로 미노타우로스의 왕을 손에 넣었다. 최고 등급의 미노타우로스 우황도 계속 얻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한의원 홍보 대박까지.

절로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줄 좀 섭시다, 줄!”

“거기! 새치기는 하지 마시고!”

온통 소란스러운 광장.

수많은 사람들의 줄이 늘어서 있었다. 흡사 수타박스 카페의 시즌 신상 텀블러나 피크닉 세트가 나왔을 때, 혹은 아이펑 신모델 첫 판매일 아침에 줄을 선 사람들 같았다. 혹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트 1+10 행사를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몰릴까.

라키엘은 흐뭇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쪽과 마주앉은 사람이 보였다. 크레모의 이름 모를 할머니였다.

“어르신?”

“예, 예에, 황태자 전하.”

“소화력이 많이 떨어지셨네요?”

“예? 맞습니다, 맞아요. 아이구 용하셔라.”

“그건 조금 전에 할머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건데.”

“…….”

“어쨌건, 이렇게 연세가 들면서 떨어진 소화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음식을 되도록 꼭꼭 씹어서 드시고, 식사 전후에 주무시는 건 자제하시고요.”

“아이고, 전하의 분부라면 아무렴요.”

“그리고 돼지고기, 소고기보다는 해산물과 닭고기를 많이 드세요.”

“예에? 그건 왜…….”

“그게 체질에 맞으실 겁니다.”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키엘은 빙긋 웃었다. 방금 해준 말은 사실이었다. 진맥을 해본 결과, 할머니의 체질은 붉은 육류가 궁합이 맞지 않았다. 아마도 미약한 지연성 알러지가 생기며 염증 반응도 생겼을 터다. 덕분에 먹을 때마다 체한 기분이 들었겠지.

거기다가…….

“아마 종종 목덜미나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겨나며 가려움증이 올라왔을 겁니다. 맞죠?”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거, 히스타민이 많은 음식을 계속 먹으면 생기는 알러지 반응이거든요. 숙성된 돼지고기는 되도록 멀리하세요. 아보카도나 바나나, 토마토 같은 후숙 과일이나 채소도 멀리하시면 됩니다. 아, 고등어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그런 것들을 덜 먹으면 가려움증이 사라지는 겁니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이건…… 뭡니까, 전하?”

“쿠폰입니다.”

“예에?”

더욱 동그래지는 할머니의 눈.

라키엘은 겸연쩍게 웃었다.

“오늘 이렇게 즉석에서 진료를 봐 드리느라 그저 진단만 하게 됐지 않습니까. 제가 황도에서 따로 약재를 챙겨온 것도 아니고. 변변한 처방전을 써드리지도 못하게 됐고. 그래서입니다.”

할머니의 눈을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이 마음이 할머니에게 통하길. 이 진심이 투명하게 닿길.

“이 쿠폰을 가지고 황도의 별궁 한의원에 오시면, 제대로 체질개선 약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물론 공짜로 말입니다. 여기서 황도까지 오가는 교통비, 숙박비까지 전부 지원해드릴 거고요.”

“……!”

공짜.

이 세상 어떤 이의 가슴이라도 단번에 촉촉하게 적셔줄 마성의 단어. 할머니의 눈동자도 감동의 물결로 반짝였다.

그걸 보며 라키엘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이 할머니에게 통했구나. 내 진심이 투명하게 닿았구나.

‘영업 성공!’

내심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들었다.

“네, 다음 환자분!”

아니스가 외쳤다. 차착, 할머니가 물러난 자리에 선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앉았다. 사내의 맥을 짚고, 진맥 스킬을 발동했다. 경혈 스캐닝 옵션도 활용했다.

“어깨 관절이 안 좋으시네요? 이만큼, 더 위로 들어 올릴 때마다 이쪽에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오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전하?”

선원 사내의 눈도 똥그래졌다. 라키엘의 눈가에 눈웃음이 배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럴 때는…… 어쩌고저쩌고해서…… 블라블라 하니까, 여기, 이거 받으시죠. 쿠폰입니다.”

“……예에?”

스으윽.

진료의 마지막은 언제나 쿠폰으로 장식했다. 즉석에서 수십 수백 명을 빠르게 진료하려니 어쩔 수가 없었다. 모두에게 먹일 어마어마한 양의 탕약 재료를 맞춤으로 마련하기도, 탕약을 달여주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침술은 시간이 걸리니 곤란했다.

그렇기에 오늘은 진단만.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으면 쿠폰 가지고 별궁 한의원으로 오세요. 대신 황도행 왕복으로 교통비까지 묶어서 서비스 드림. 그러한 영업 전략으로 접근했다.

수많은 시민들을 진맥했다. 정말로 별궁 한의원 방문 진료가 필요해 보이는 이들을 100명까지 선별해서 쿠폰을 지급했다. 그렇게 저녁노을이 질 무렵까지 무려 481명의 시민을 진료해냈다.

실로 쿠폰이 웅장해지는 성과였다.

‘좋아. 딱 좋아. 무료 쿠폰을 100장이나 돌렸어. 그러니 저들 중에 10퍼센트만 별궁 한의원에 와주기만 해도? 환자 10명은 확보한 셈인 거야.’

성과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오늘의 무료 진료 행사 덕분에 크레모 시에서 별궁 한의원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됐다. 한데 이곳 크레모 항구는 북부 최고의 교역도시. 교역도시답게 사람의 왕래가 더없이 활발했다.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리라.

‘소문이 배 타고 말 타고 사방팔방으로 번지겠지. 최소 한 달 이내에 제국 북부 전체로 퍼질 거야. 황태자가 운영하는 별궁 한의원. 그걸 모르면 외국 첩자 소리까지 들을걸.’

일단은 무조건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사람이 모인다. 성과가 나온다. 기업들이 광고에 목숨을 거는 이유도 그래서다.

“후우.”

라키엘은 숨을 돌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려 9시간 동안의 폭풍 같은 진료였다.

‘너무 무리했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눈이 뻑뻑하고 현기증이 몰려올 지경이었다. 오장육부도 온통 아우성이었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에게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합니다.]

[심장 : 야! 우린 대체 언제 쉬냐?]

[허파 : 허…… 파하학…… ㅠㅠ]

[대장 : 9시간 무휴식 연속 진료라니, 이 인간 진심 미쳤지 말입니다.]

[간장 : 잔업 수당은? 야근 수당은?]

[위장 : 있겠냐ㅋㅋㅋㅋㅋㅋㅋ 일 시키려면 밥이라도 좀 주라고 아ㅋㅋㅋ]

“…….”

사실 이쪽도 힘들다.

말이 9시간 진료지, 저질 체력에겐 엄청난 중노동이었다. 하지만 그걸 내색할 수는 없었다. 라키엘은 지친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홍보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진료도 끝냈어. 칠 건 다 쳤으니까 이젠 칼 같이 빠져야지.’

그래야 할 타이밍이다.

쿨하게 자리를 떠야 한다. 그래야 홍보의 마무리 인상까지 완벽해진다. 라키엘은 그러한 일념으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벌떡 일어나려 했다. 한데 그게 생각처럼 되지가 않았다.

“어어?”

……!

역시 무리를 한 탓일까.

일순간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헛구역질이 느껴지며 어지러워졌다. 마음과 상관없이 다리가 풀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끝까지 쿨하게 보여야 하는데. 그러니까 쓰러지는 따위의 모습, 보여선 안 되는데.

하지만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쿠당!

“……으읏!”

다리가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꼴사납게도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순간, 라키엘은 입술을 와락 깨물었다.

‘망했다.’

사람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쌔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다 잘해놓고 마지막에 스스로 재를 뿌리다니.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한 건강이, 저질 체력인 몸뚱이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딩동!

뜻밖의 알림음이 귓가에 울렸다. 더욱 뜻밖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당신은 불과 한나절 사이에 수많은 환자를 성심껏 진료하였습니다. 그 결과, 당신은 과로와 탈력 상태에 빠졌습니다.]

[당신의 모습이 크레모의 시민들에게 목격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진료해준 끝에 탈진하여 쓰러진 황태자의 모습이 크레모 시민들의 가슴속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크레모의 시민들이 당신의 진심을 느낍니다.]

[크레모의 시민들이 당신에게 열광합니다.]

[이렇듯 수많은 이들의 감동과 추앙, 찬사가 계기가 되어, 당신의 한의술 능력에 새로운 힘이 부여됩니다.]

[명의 포인트 (GDP : Great Doctor Point) 시스템이 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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