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89화 (89/468)

89화. 거짓말 이용권 (1)

앙부아즈의 왕녀.

아델린 보아르네 앙부아즈.

왕가의 실세이자, 제1 왕위 계승자. 또한, 그녀는 ‘앙부아즈의 미소 천사’라는 애칭을 지니고 있었다.

마더 테레사 같은 자비로운 사람이라서? 자애롭고 따스한 인품을 지니고 있어서? 아니었다.

그녀는 일류 격투가였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기사 수준이었다. 그런데 사람을 팰 때 독특한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상대를 짓밟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미소 천사라고 불리게 된 이유였다.

‘어쨌건, 그런 독특한 성향과는 별개로 그녀는 정치적으로는 평화주의자였다고 했지.’

라키엘은 기억을 더듬었다.

원작 마검황의 내용이 떠올랐다. 왕녀 아델린이 직접 소설에 등장한 적은 없었다. 다만, 소설 내의 인물의 대사나 기록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언급된 부분은 꽤 있었다. 그 내용들을 종합해서 추론하자면…….

‘지기 싫어하는 호전적인 성격이었지만, 의외로 전쟁보다는 평화를 선호했다고 했어. 현명한 자질을 지녔다고도 했고. 하지만…… 그런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었지. 바로, 자신이 지닌 여러 장점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일찍 죽었다는 것.’

요절.

그것이 왕녀 아델린이 보인 최악의 단점이었다. 더없이 건강하고, 튼튼하고, 강력했던 그녀였지만 왕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하고 갑작스레 죽고 말았다. 그 결과 방계 혈족의 다른 이가 앙부아즈의 왕이 되었다.

어부지리였다. 또한, 마젠타노에게는 재앙이었다. 새로 왕이 된 방계 혈족의 인물이 아델린과는 전혀 다른,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확장적 군국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거의 집착증 수준이었지. 전쟁을 위해 태어난 인간처럼 굴었어. 덕분에 원래부터도 상승세를 타고 있던 앙부아즈 왕국의 모든 역량이 군사력 확장에 집중됐어. 그런 움직임에 마젠타노는 경계심을 느꼈고, 둘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다가 결국엔 쾅.’

갈등이 터졌다.

마젠타노의 몰락을 불러온 사건, 대전쟁의 시작이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게 두어선 안 돼.’

라키엘은 다짐했다. 그리고 계산했다. 지금 시점에서 대전쟁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급진적 군국주의자가 앙부아즈의 왕이 될 수 없도록 저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왕녀 아델린이 요절하지 않는 거지.’

그녀가 안 죽으면 된다. 왕위 계승 서열 1순위니까. 죽지만 않으면 그녀가 왕이 될 것이다. 앙부아즈 왕국이 급진적 군국주의의 길을 걷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대전쟁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거의 확실해. 소설에서도 그런 언급들이 있었으니까.’

소설 마검황 속 역사가들이 평하던 내용이 떠올랐다. 만약 앙부아즈의 왕녀 아델린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예정대로 왕의 자리에 등극했다면?

그녀는 강성해진 국력을 백성의 풍요로움을 위해 썼으리라고.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마젠타노를 비롯한 주변국과 평화로운 상생의 길을 걸었으리라고. 그렇게, 애꿎은 젊은이들이 대전쟁에 동원되어 무수히 죽어나가는 참극을 만들지는 않았으리라고 평가했던가.

‘그러니까 왕녀 아델린이 죽지 않으면 돼. 그건 내가 해줄 수 있을 거고.’

라키엘은 더욱 깊은 곳까지 기억을 더듬었다. 소설 마검황의 사소한 언급까지 되짚었다. 왕녀 아델린이 요절했던 원인이 떠올랐다. 정확한 병명이 밝혀지진 않았더랬다. 다만, 그녀가 어떤 증상을 겪으며 죽었는지는 정확하게 묘사된 바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질환이라고 했지. 평소처럼 훈련과 식사를 마친 저녁에 격한 복통을 호소했다고 했어. 명치 오른쪽 어름을 부여잡고서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다고…….’

그 뒤로 며칠도 되지 않아 급격한 황달 증세를 보였다고 했다. 그렇게 쇠약해지다가 그대로 사망했다. 그 내용을 짚어보니 문득,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왕녀 아델린이 겪은 그 증상, 아무래도 담석에 의한 담도 폐쇄 같단 말이지.’

아무리 봐도 그거였다.

실제로 주변 지인 중에 똑같은 증상을 겪은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 있던 당시의 절친 원호와 은수. 녀석들을 한 다리 통해서 알던 웹소설가.

이름이 백경 씨였던가.

백경 씨가 앙부아즈의 왕녀와 똑같은 증상을 겪었다고 했다. 어느 날 저녁, 명치 오른쪽의 갑작스러운 격통을 느꼈다고 했다. 축구 게임을 하다가 명치를 부여잡고 아이고, 아이고. 그 와중에 팀이 골을 넣어서 아이고, 아이…… 고오올!

……을 외치며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했다.

‘그 양반 결국엔 담낭을 통째로 제거했댔지. 수술하는 날 아침에 원고 마감 떼고, 점심에는 내장 떼고, 마취 풀린 저녁에는 돌아온 원고 교정 뗐다고 자랑하던데.’

하여간 세상엔 별별 신기한 인간들이 많다.

‘어쨌건, 왕녀 아델린이 겪었다는 증상을 보면 거의 확실해. 담석 때문에 담즙이 흘러나오는 담관이 막혔던 거야. 거의 출산에 버금가는 엄청난 고통을 며칠간 계속 겪었을 거고. 하지만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게 따로 있지.’

원래는 담관을 통해 십이지장으로 흘러나가야 할 담즙, 쓸개즙이다. 하지만 담관이 막히게 되면? 꽉 막힌 하수구와 똑같이 된다. 담즙이 역류한다. 역류의 끝에는? 간이 있다.

‘답즙이 간을 침범하게 되지. 간이 망가져. 간경화, 간경변이 진행되고. 비장과 췌장이 망가지고. 결국엔 손 쓸 수도 없이 죽는 거야.’

실제로도 지인이었던 백경 씨는? 병원에 갔을 때 이미 간수치가 정상인의 무려 40배가 나왔다고 했던가. 그만큼 담석에 의한 담관 폐쇄는 장난으로 볼 질환이 아니었다.

정확한 진료를 받지 못하면? 거의 죽는다고 보아야 할 질환이었다. 그러니까 왕녀 아델린을 이곳으로 불러야 한다. 자신이 직접 진맥하고, 상태를 보아야 한다.

‘만약 담낭 안에 담석이 어느 정도 생성된 상태라면 담석을 제거하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담석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해줘야겠지.’

그러면 될 것이다.

그녀가 요절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로운 왕이 되어 대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마젠타노 황가가 무너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 모두가 행복해지는 거지. 내 아름답고 부유한 황족라이프도 지켜지는 거고.’

……완벽한 계획이다.

라키엘은 내심 만족했다. 협상 테이블 맞은편의 앙부아즈 대사를 쳐다보았다.

대사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포커페이스 아래로 숨긴 은은한 분노가 엿보였다. 아마도 방금 이쪽이 요구한 내용 때문일 터다.

‘자신들의 왕녀를 향후 6개월간 이곳 황도에 체류시키라는 거. 아마 상국이 신하국의 왕족을 볼모로 삼는 행위로 여겨서 저렇게 화가 난 거겠지.’

안 봐도 뻔했다.

하지만 라키엘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사의 분노를 잠재울 고민 또한 하지도 않았다. 대신 거짓말을 준비했다.

앙부아즈의 왕녀 아델린을 황도를 불러들일 수 있을 거짓말. 그 거짓말에 자신이 지닌 ‘거짓말 이용권’을 사용했다.

[거짓말 이용권 1장을 소모합니다.]

[지정된 대상 : 앙부아즈 대사 뱅자맹 백작은 당신의 거짓말 한 가지를 무조건적으로, 영구적으로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좋아.’

준비는 다 됐다. 이제는 거짓말 이용권의 위력(?)을 확인할 때다. 라키엘은 입술을 촵촵 적시고는 입을 열었다. 꽉 찬 명란처럼 알차게 장전된 거짓말을 발사했다.

“사실은 내가, 우리 마젠타노와 귀측 앙부아즈 사이의 건설적이고도 평화로운 우호적 관계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예?”

대사가 멈칫했다. 뭔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색도 잠시에 불과했다.

딩동!

[앙부아즈 대사 뱅자맹 백작이 당신의 거짓말에 홀라당 넘어오기 시작합니다.]

“역시, 그러셨던 겁니까……?”

얼떨떨하게 되묻는 대사. 대사의 굳었던 표정이 차츰 풀렸다. 이제야 이쪽의 진짜 뜻을 이해했다는 듯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걸 보며 라키엘은 확신했다.

‘된다. 좋아.’

거짓말 이용권. 긴가민가했는데 진짜인 듯했다. 라키엘의 거짓말에 탄력이 붙었다.

“그렇게 보아주시니 저 또한 기쁩니다. 어쨌건, 전부터 저는 고민했습니다. 우리 마젠타노와 귀측 앙부아즈가 더욱 긴밀하고도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려면, 앞으로의 항구적인 평화를 지속할 수 있으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하고 말입니다.”

“하여서, 떠올리신 방법이 있는 겁니까?”

“예. 다행히도 떠올렸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앙부아즈의 왕녀를 황도로 초빙하여 6개월간 체류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면…….”

“서로의 문화와 교양을 나누며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겠지요. 아니, 사실은 개인적으로 친교를 다지고도 싶습니다.”

“친교를…… 말입니까?”

“예. 저는 장차 마젠타노의 황제가 될 몸입니다. 왕녀 또한 앙부아즈의 왕이 될 분이시지요. 하니 미래의 양국을 이끌 지도자가, 미리 개인적인 친교를 돈독히 다지게 된다면 양국의 미래 또한 더욱 평화로워지지 않겠습니까?”

“아, 역시, 그렇군요. 그런 복안이 있으셨을 줄이야…….”

대사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평소라면 절대 이러지 않을 사람이었다. 라키엘의 말을 듣는 즉시 ‘무슨 미친 개소리를 하는 거지?’라고 의심부터 했을 인간이 바로 대사, 뱅자맹 백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라키엘이 사용한 거짓말 이용권. 그 절대적 권능 때문에 그의 이성이 마비되었다. 라키엘의 거짓말을 향한 맹목적 믿음만을 품게 되었다. 오히려 라키엘의 거짓말을 스스로 오해하기까지 했다.

‘……설마, 마젠타노의 황태자는 우리 왕녀님께 마음이 있는 것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의 생각이 상상의 나래를 뻗쳐갔다.

‘왕녀께서 황도로 오시고…… 6개월간 체류하시다가……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황태자와 마음이 통하고 눈이 맞으신다면?’

어쩌면.

진짜로 어쩌면.

혼인을 통한 강력한 동맹, 혹은 연합체가 성사될지도 모른다. 전통의 강자인 마젠타노 제국과 신흥 강국인 자신의 조국. 둘이 결합한, 전무후무한 대제국이 건설될 수도 있으리라.

‘허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세워질 대제국의 출발점에 자신과 황태자의 회담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가슴이 뛰었다.

‘어쩌면 내 이름이 역사서에 영원히 새겨질지도 모르고.’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 대제국의 초석을 세운 회담. 그 회담을 이끈 위대한 외교관 뱅자맹!

“…….”

대사의 들숨과 날숨이 절로 거칠어졌다. 덕분에 그걸 지켜보던 라키엘은 쓴웃음을 삼켜야 했다.

‘거짓말 이용권 이거, 성능 확실하구만.’

대사가 무슨 망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쪽의 거짓말에 홀라당 넘어왔기 때문에 저러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는 자신감을 과자 봉지 속 질소처럼 빵빵하게 채우며 거짓말을 이어갔다.

“예.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양국의 건설적인 미래를 꿈꾸는 제 입장에서는, 결국엔 이렇게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간절히 바라는 평화니까 말입니다. 그래서였습니다.”

촵촵, 이쯤에서 혓바닥 한 번 축이면서 감속하고.

다시 풀악셀.

“크레모의 사태에 대한 배상금을 요구하거나, 혹은 무역 관세를 일방적으로 조정해달라거나 하는 요구는 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런 요구를 하는 순간 양국의 관계는 그저 이해타산에 따라 반목과 전략적 협조를 반복하는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각별하게 돈독한 동맹국의 관계는 영영 바랄 수 없게도 될 테고요.”

“허어…… 그런 생각까지 하셨을 줄은…….”

“예, 조금은 뜻밖이실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저는 다만 이것이면 족합니다. 왕녀님과의 교류를 통한 양국의 우호 증진. 이것보다 더욱 값진 보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마무리로 촉촉한 눈빛을 반짝였다. 대사의 눈을 바라보며 호소력(?) 짙은 거짓말을 콕콕 던졌다.

“제 진심은 여기까지입니다. 부디, 대사님께서 조금은 낯뜨거운 제 진심을 헤아려주시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후우.”

대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난감함 때문에?

당혹스러워서?

모두 아니었다. 감동을 받아서였다.

“설마, 황태자께서 앙부아즈를 그토록 중히 여겨주시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욱 감사합니다.”

대사는 진심이었다.

이제는 황태자의 저 말들이 너무나 진실되게 들렸다. 한편으로는 회담장에 오기 전에 자신이 했던 준비들이 너무나 쪼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저 크레모 사태의 배상을 어떻게 해야 손해가 덜 생길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황태자가 우리에게 이토록 우호적인 인사였을 줄이야. 게다가 저렇게나 깊고도 원대한 시야를 지녔다니.’

대사는 혼자만의 김칫국을 연신 들이켰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황태자와 자신들의 왕녀가 혼인도장을 쾅 찍은 뒤에 부케까지 던지고 있었다. 자신은 그 옆에서 역사적인 혼인을 성사시킨 위대한 외교관으로 존경을 가득 받고 있었다.

그럼 내 이름은 역사서에 어떻게 새겨질까. 지금이라도 그럴듯한 초상화 한 점쯤 남겨둬야 하나. 어쨌건, 결론은 명확하다.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다. 이 요구를 안 받으면 바보다. 대사는 행복한 망상 끝에 계산을 마쳤다.

“황태자께서 하신 말씀을 잘 알겠습니다. 어떤 뜻이신지도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예. 하여 황태자께서 주신 요구에 대해, 앙부아즈의 외교권을 위임받은 제가 대답을 드리자면…….”

“드리자면?”

“황태자께서 주신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흐음, 검토라니요?”

라키엘은 짐짓 미간을 찡그렸다. 물론 그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과연 돌아오는 대사의 대답이 예상 그대로였다.

“다른 이가 아닌, 왕녀께서 무려 6개월간 타국에 체류하게 되실 일입니다. 제가 아무리 외교권을 위임받은 바 있다고는 하나…….”

“역시. 그걸 독단적으로 결정하실 수는 없겠지요. 이해합니다.”

“예,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여 제가 조금 염려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염려되는 부분이요?”

“예.”

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저는 황태자께서 밝히신 진심을 믿습니다. 양국의 우호를 위해 내리신 큰 결단을 신뢰하고, 존경합니다. 하지만…… 제 주군과 본국의 여러 대신들이 그걸 믿어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조금은 회의적인 우려만 떠오릅니다.”

“그들까지 내 마음을 믿어주진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애석하지만, 그렇습니다.”

대사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잘만 하면 양국의 미래를 탄탄하게 다져둘 수 있을 협상이었다. 자신을 역사적인 외교관으로 만들어줄 엄청난 딜이었다.

한데 황태자의 요구가 현실적으로 조금 과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걱정이었다. 다른 이도 아닌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왕녀를 타국의 황도에서 6개월간 체류하게 해달라니.

냉정하게 따진다면?

정신 나간 수준의 요구였다.

자신이야 황태자의 진심을 믿으니 그 요구를 수용했을 때 따라올 장기적인 이득을 계산했지만 다른 이들은? 앙부아즈의 수많은 신하들은? 그리고 자신의 주군인 국왕은?

‘코웃음만 칠 것이야.’

오히려 감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양국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역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

대사는 그런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안타까웠다. 황태자의 저토록 고마운 진심을 사람들이 몰라줄 것이란 사실이 못내 애석했다. 이 협상을 반드시 성사시키고 싶었다. 그렇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저 진심을 사람들이 알아줄 방법이 있으면 참 좋겠건만.’

그런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한데 그때였다.

“뭐, 그건 괜찮습니다. 다 방법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마치 이쪽의 속마음을 읽기라고 한 듯, 황태자가 싱긋 웃었다. 정말로 별거 아니라는 듯. 그런 반응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기색으로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깔끔하게 밀봉된 서신 한 장이었다.

“이건…….”

“앙부아즈의 지배자이신 왕에게 보내는 제 서신입니다.”

“제 주군께 말입니까?”

“예. 여기에 제 진심을 담았습니다. 그러니 이걸 전해주시지요.”

그러면 될 것이다.

이건 무조건 된다.

확신할 수밖에 없다.

‘앙부아즈의 왕에게 보내는 이 서신. 여기 담긴 내용에도 마지막 남은 거짓말 이용권을 썼으니까.’

라키엘의 상큼한 미소가 사악하게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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