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연쇄 힐링마의 계획 (1)
수술은 무섭다.
누구나 그렇다.
마취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혹시 자신이 마취가 잘 안 먹는 희귀한 체질이면 어쩌지? 수술하다가 중간에 마취가 깨 버리는 건 아닐까. 진짜 혹시나 의료사고가 나서 마취에서 못 깨어나진 않을까, 등등. 수술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볼 고민, 혹은 망상이 되시겠다.
‘한국에서 알던 지인 백경 씨도 수술 중간에 잠깐 의식이 깼다고 했지, 아마?’
담낭 제거 수술을 하던 때였다던가. 수술 중간에 잠이 깨듯 눈이 스르르 떠졌다고 했다.
비몽사몽한 채로 ‘뜨으, 의사쌤……’ 이라고 하니까 의사쌤이 친절하게 다시 자장자장 재워(?)주셨다던가.
어쨌건, 생살을 찢고 가르고 꿰매는 수술은 마취가 있어도 무섭다. 두렵다. 절로 갖가지 걱정과 번뇌를 불러온다. 하물며 마취가 없는 시대는 오죽할까.
“그러니까 이젠 괜찮을 거야. 알겠지? 내 손이 약손~ 내 손이 야아악손~”
“그, 그럼……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혹시 제 팔을 자르는 겁니까?”
“아니. 내 손은 약손~”
부상병 티에리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내 손은 약손 스킬 덕분에 어깨 부위의 통각이 마취되었음에도 여전히 두려움을 다 떨쳐내진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라키엘은 스킬의 유지를 위해 꾸준히 노래를 부르며 대답했다.
“내 손은 약손~ 자르진 않고 꿰매기만 할 거야. 화살촉을 뽑으면서 상처 부위를 제대로 정리를 안 해놔서. 내 손은 약손~ 에헤이야~ 피부 조직에 괴사도 생겼고 하니까.”
티에리를 안심시켰다. 그 와중에 손도 열심히 움직였다. 수술할 팔뚝 주위를 꾸준히 쓰다듬었다.
그런 덕분일까.
딩동!
[당신은 환자 : 티에리의 통증을 성공적으로 누그러뜨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첫 경험이 스킬의 성장에 귀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내 손은 약손 스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명 : 내 손은 약손 Lv.2]
[대상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통증을 감소시킵니다. 국소마취(+20%) 수준의 통증 감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마취의 강도와 범위, 지속 시간은 스킬의 레벨 성장과 함께 증가할 것입니다. (발동 조건 : ‘내 손은 약손~ 내 손은 약손~ 에헤이야~’ 라는 주문을 운율에 따라 정확하게, 지속적으로 불러주어야 함. 단, 주문의 노랫소리가 마취 대상과 주변인들에게 들릴 정도로 또렷하고 낭랑하지 못하면 마취 효과가 취소됨.)]
‘오옷?’
생각보다 스킬 레벨의 성장이 제법 빨랐다. 게다가 마취 성능이 20%나 향상되었단다.
‘과연 효과는?’
라키엘은 시험을 위해 티에리의 팔뚝을 아까보다 세게 꼬집었다.
꼬집!
하지만 티에리는 딱히 얼굴을 찡그리거나 하지 않았다. 여전히 별다른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성능 확실하다. 마취가 제대로 되고 있다. 라키엘은 확신을 느꼈다. 하지만 쉽게 방심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내손약손 스킬, 국소마취 정도밖에 안 되니까.’
환자가 고통을 완전히 잊을 수 있도록, 긴장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궁리를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마침 대대장의 간이 테이블 위에 놓인 적당한 물건이 보였다.
체스판이었다.
“티에리 하급병사? 혹시 체스 좋아하나?”
“……예?”
“체스, 좋아하냐고. 내 손은 약손~”
“저, 적당히 둘 줄은 압니다. 그런데 그건 왜…….”
“수술하는 동안 체스나 한판 두면 좋겠다 싶어서.”
라키엘은 빙긋 웃었다. 의아해하는 티에리에게 문득 떠오르는 고사 한 가지를 말해주었다.
“아주 옛날 옛적에 말이야. 잊혀진 고대의 왕국이 있어. 한나라라고. 내 손은 약손. 못 들어봤지?”
“예…….”
“그 나라가 몰락하던 시기에 관우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어느 날 팔뚝에 독화살을 맞았어. 내 손은 약손~ 하급병사, 자네의 팔뚝과 거의 똑같은 자리에 말이야.”
“그렇, 습니까?”
“어. 내 손은 약손~ 한데 관우라는 그 양반의 사정은 조금 더 지독했어. 화살촉에 묻은 독이 뼈에 스몄거든. 내 손은 약손~ 에헤이야~ 어쨌건 그래서 그 양반도 수술을 받게 됐지. 팔을 찢고, 독이 스민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받았어. 아무런 마취도 없이.”
“그게…… 가능했습니까?”
“어. 수술을 받는 동안 앉아서 태연하게 체스 비슷한 걸 뒀다더라고. 내 손은 약손~”
“…….”
“그러니 우리도 오늘 비슷한 걸 해볼 거야. 봉합수술을 하는 동안 마음 편히 체스나 둬 보자고. 내 손은 약손~ 그래서 여기, 체스 둘 줄 아는 사람?”
주위의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어느 상급병사가 주춤주춤 손을 들었다.
“잘됐네. 맞은편에 앉아.”
체스판이 펼쳐졌다.
라키엘은 티에리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앉혔다. 내손약손 스킬을 유지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눈길을 받은 가르딘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준비가 끝났다는 무언의 대답이었다.
“그럼 시작하지.”
이쪽의 말에 부상병 티에리가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이내 체스판 위의 폰을 움직였다. 동시에 가르딘 경이 칼을 들었다. 수술용이라기보단, 차라리 고문이나 도축에 어울릴 듯한 모양의 칼이었다.
하지만 티에리는 그걸 보지 못했다. 체스판에 눈길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라키엘이 내손약손 스킬을 사용하는 쪽의 팔을 이용해서 티에리의 시선을 일부러 가로막기도 했다.
‘사람은 시각에 많은 영향을 받으니까. 아무리 국소마취가 되어 있어도, 저런 흉악하고 살벌한 비주얼의 칼을 본다면? 그 칼이 자기 생살을 서걱서걱 잘라낼 장면을 상상하게 될 거고. 그때부터 심리적인 통증을 왕창 느끼게 될 거거든.’
자칫 잘못하면 내손약손 스킬이 풀릴지도 모른다. 지옥 같은 고통이 한 큐에 몰려올 거다.
그러면?
수술이고 뭐고 끝이다.
괜히 체스를 권한 게 아닌 것이다.
‘어떻게든 저 살벌한 도구들에 신경 쓰지 못하게 해야 해.’
열심히 내손약손 스킬을 사용하며 요령껏 티에리의 시야를 가렸다. 그러면서 가르딘 경이 진행하는 수술을 힐끔 살폈다. 과연 가르딘 경의 외과 수술 솜씨는…….
슥, 스슥!
‘오오.’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만큼 가르딘 경의 솜씨는 예상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깔끔했다.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입장에서 보아도 그러할 정도였다.
‘저거, 그냥 칼질이 아닌데? 봉합에 앞서 혈액 공급이 끊긴 피부층 아래 지방 조직만 깔끔하게 전절제를 해냈어. 저러면…… 세균이 퍼지며 생겨날 감염이 효과적으로 예방되지. 완전 제대로 된 실력이야.’
뒤이어 봉합이 이어졌다.
그 과정도 깔끔했다.
차착, 착!
바늘잡개 도구가 신들린 듯 움직였다. 마치 한국인의 젓가락질을 보는 듯했다. 덕분에 바늘이 봉합 부위의 층을 정확하게 맞추며 조직을 봉합했다.
근막은 근막끼리.
진피와 진피.
표피와 표피.
어느 한 층도 어긋남이 없이 맞물리는 깔끔한 봉합이었다. 심지어 활용하는 봉합법마저도 범상치가 않았다.
‘저거 설마?’
라키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보고 있자니 한의대에서 실습하던 때가 떠올랐다.
‘저거,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 같은데?’
암만 봐도 맞았다. 상처가 아물 때 흉터가 최소화되는, 상처 모서리를 외전시켜서 봉합하는 테크닉이었다!
‘헐.’
이 시대에도 저게 가능한 사람이 있구나. 그런데 그게 가르딘 경이라니. 외과 수술이 주특기라더니. 그게 허풍이 아니었다. 실로 엄청난 실력이었다.
‘우리 가르딘 경, 괜히 젊은 나이에 황궁 주치의로 일하는 게 아니었구만.’
이렇게 보니 새삼 사람이 달라 보였다. 감탄하는 사이에 마무리 매듭까지 끝이 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덜너덜했던 상처였다. 누군가의 무성의한 손길에 화살촉이 뽑히는 과정에서 피부와 주변 조직이 그야말로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괴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깔끔해졌어.’
제대로 붙였다.
한 땀 한 땀. 이탈리아 장인이 정성껏 만든 핸드백처럼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는 바느질로 완벽한 봉합이 이루어졌다. 낫기만 하면 흉터도 크게 남지 않을 것이다.
“자아, 그럼 옆구리 들어가자.”
“예, 전ㅎ…… 도련님.”
팔뚝 다음은 옆구리였다.
다행히 옆구리도 팔뚝과 상태는 비슷했다. 화살촉이 내장이나 복막까지 건드리진 않았다. 덕분에 한층 흉흉한 수술 도구를 동원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르딘 경의 깔끔한 바느질 솜씨가 마음껏 발휘될 수 있었다.
물론, 라키엘의 내손약손 스킬도 효력을 십분 발휘했다.
‘내장이나 복막까지 건드린 상처였다면 곤란할 뻔했어.’
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자신의 내손약손 스킬은 국소마취 수준밖에 안 된다. 그런데 국소마취로는 피부와 근처 근육 조직만 마취할 수 있을 뿐, 더 깊은 부위까지는 커버할 수가 없다.
라키엘은 그러한 자신의 한계를 새삼 명심했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를 보는 병사들의 시선은 달랐다.
‘저 뚱보 군의관, 진짜야?’
‘수술받는 부상병 저거, 정말로 통증을 못 느끼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으으, 생살을 잘라내는데 태연하게 체스를 두고 있어…….’
‘저게 가능한 겁니까?’
‘바늘이 옆구리를 들락날락하는데 어떻게 하면 저렇게 평온할 수 있지?’
‘심지어 입에 칼집을 물지도 않았지 말입니다.’
그러했다.
라키엘의 내손약손 스킬. 그리고 적절히 시야를 가려준 요령.
덕분에 부상병 티에리는 어느새 체스에 집중해 있었다. 수술에 대한 걸 잠시나마 거의 잊었다. 때마침 맞상대를 하는 병사의 체스 실력이 자신과 엇비슷해서. 체스판 위에서 때아닌 격전(?)이 벌어진 바람에.
더욱 체스에 몰입할 수 있었다. 평온한 얼굴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수술을 구경하던 캠프 관리병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설마 우리 몰래 아편 탄 술을 먹인 건 아니겠지 말입니다?’
‘바보냐? 그러는 거 못 봤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저건…… 기적이야. 확실해.’
‘하긴, 제가 봐도 그렇지 말입니다. 술이나 마약도 쓰지 않았는데 저런 거라면…… 그건 극소수의 성자들이나 행할 수 있다는 기적이 확실한 거 같지 말입니다.’
‘그렇지? 내가 봐도 그렇다. 우린 지금 대단한 걸 목격하는 중인 거야.’
‘예. 그런데 저 노래는 좀…….’
‘요상하긴 하구만.’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사이에 옆구리 수술도 끝났다. 라키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어때? 기분이?”
“…….”
부상병 티에리는 침만 꿀꺽 삼켰다.
“생각보다는 버틸 만했지?”
“……예. 그런데, 벌써 끝난 겁니까?”
“어.”
“…….”
“그래도 아직은 안심할 수 없어. 사실 이제부터가 더 진짜거든. 감염 예방과 회복이 최우선이니까. 이제부터는 푹 쉬면서 잘 먹는 게 중요해. 이틀 뒤에 보급이 오면서부터는 탕약도 처방해 줄 테니까 그것도 잘 마셔두고. 알았지?”
“…….”
티에리는 말없이 라키엘을 쳐다보았다. 이 뚱보 군의관은 뭐 하는 사람일까. 어째서 이러는 걸까. 사실은 아까부터 많이 궁금했더랬다.
“그런데…… 군의관님께서는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겁니까?”
솔직히 짐작이 되지가 않았다. 아까 처음 이곳에 실려오던 때부터 그랬다. 대대장이 군의관에게 내기 제안을 하던 때도. 그랬다가 군의관 일행에게 제압당하던 때에도. 이후에 수술을 받으면서도 내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는 부상병입니다. 당장 전투를 치를 수도 없고, 누워서 식량만 축내는 존재입니다. 모두가 저를 그렇게 여기더군요. 저를 전쟁터로 끌고 갔던 영주님도, 이곳 부상병 캠프의 사람들도, 모두가 말입니다.”
그런데 달랐다.
“군의관님이 처음입니다. 저를 이렇게 다르게 대해 주신 분은 말입니다. 제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달래 주고, 제대로 치료를 해 주셨지요. 그래서 저는…….”
“이해가 잘 되지가 않는다고?”
“예,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싶었다.
무엇을 위해, 무얼 하려고 자신을 치료해 준 건지. 미리 알고나 있으면 조금은 마음의 대비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뚱보 군의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사람 살리는 데에 이유가 있나?”
“……예?”
“자네는 다친 병사고, 나는 다친 병사를 치료하는 군의관이야. 그거면 충분하지. 내가 자네를 치료하는 데에 더 이상의 특별한 이유가 필요해?”
“…….”
“그러니까 쓸데없는 잡생각은 접어두고 푹 쉬셔. 알겠지?”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자신이 부상병을 치료하는 이유? 당연히 보너스 수명 때문이다! 그거 챙기려고 이 짓을 하는 거다!
하지만 그걸 솔직하게 말해주진 않았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인 사실도 있으니까.
“어쨌건 궁금한 점이 다 풀렸으면 여기까지. 난 다른 부상병들도 살펴봐야 하니까. 그럼 이만.”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얼굴 가득 철판을 깔았다. 그걸로 끝일 줄 알았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크흐읍. 크흑. 가, 감사…… 감사합니다.”
티에리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참았던 눈물보가 얼마나 쌓였던 건지. 혹은 그동안 감내했던 두려움과 절망이 얼마나 깊었던 건지. 이쪽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그런데 티에리뿐만이 아니었다.
“후, 후우…….”
“커흠! 흠!”
캠프의 관리병들도 황급히 고개를 돌려댔다. 제각각 당황스러운 손길로 눈가를 훔쳐댔다.
“…….”
이건 또 무슨 상황인 걸까. 설마 내 거짓말에 다들 감동해서 저러는 걸까. 라키엘의 양심이 내심 뜨끔하는 그때.
뜻밖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딩동!
[환자 : 티에리와 주위의 관리병들이 당신의 발언에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발언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상병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개념을 접하였습니다.]
[발언의 근거가 본심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앞으로 부상병 캠프 전체에 당신의 미담이 널리 퍼질 것입니다.]
[앞으로 당신은 부상병 캠프의 모두에게 성자에 준하는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은 전쟁터에서의 부상병 관리에 대한 혁명적인 신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인물로 의학의 역사서에 길이 새겨질 것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사회적, 역사적 의료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5,000 HP가 특별 지급됩니다.]
[현재 당신이 보유한 HP : 5,400]
“…….”
그저 적당한 거짓말을 한 번 했을 뿐인데. 대박 보상이 쏟아져 내렸다.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뭉클한 깨달음도 다가왔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열심히 거짓말하라는 거지?’
라키엘의 입가에 사악한 웃음꽃이 보람차게 활짝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