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07화 (107/468)

107화. 연쇄 힐링마의 계획 (2)

[이러한 특별한 사회적, 역사적 의료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5,000 HP가 특별 지급됩니다.]

[현재 당신이 보유한 HP : 5,400]

‘허허, 허허허.’

라키엘은 벌쭉 웃었다.

자신은 그저 부상병을 안심시키기 위해, 딱히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성의 없는 핑계를 댔을 뿐이었다. 군의관이 부상병을 치료하는 게 뭐가 이상하냐고.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나름의 상식선에서 그야말로 당연한 대꾸를 했다.

한데 그게 이런 파급효과(?)를 불러오다니. 보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딩동!

십이지장 융털돌기를 찌르르 울리는 상큼한 알림음. 뒤이어 비루한 각막 쪼가리를 은혜롭게 수놓아 주는 메시지.

[오늘, 당신은 성자의 기적에 가까운 능력을 선보이며 부상병의 통증을 완벽하게 차단하였습니다.]

[다수의 캠프 관리병들이 당신의 이러한 모습을 목격하였습니다.]

[캠프 관리병들이 경악감을 느꼈습니다.]

[캠프 관리병들이 진심 어린 경외의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이러한 위업이 소문을 타고 부상병 캠프 전체로 퍼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명망이 가파른 기세로 드높아질 것입니다.]

[76 GDP를 획득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명의 포인트(GDP) = 98]

[현재 보유 중인 GDP로 구매할 수 있는 거짓말 이용권 : 0 장]

‘……후아.’

여기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보상 폭격은 계속 이어졌다.

딩동!

[당신은 ‘내 손은 약손’ 스킬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마취를 통하여 환자 : 티에리에 대한 수술을 무난하게 마쳤습니다. 이는 당신의 ‘내 손의 약손’ 스킬의 첫 성공적 성과입니다. 이러한 첫 성공의 경험이 스킬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내 손은 약손 스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스킬명 : 내 손은 약손 Lv.3]

[대상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통증을 감소시킵니다. 국소마취(+40%) 수준의 통증 감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전의 레벨업 메시지와 비슷했다. 한데 그 뒤에 따라오는 안내문이 색달랐다.

[스킬의 레벨이 상승하며 새로운 영역의 마취 능력이 개방되었습니다.]

[상완신경총 마취가 가능해집니다.]

[인체의 어깨에 있는 상완신경총(사각근, 쇄골의 위와 아래, 겨드랑이) 지점을 쓰다듬어 팔 부위 전체를 완벽하게 마취할 수 있습니다.]

[스킬을 사용하여 마취를 시행할 시에는, 일반적으로 상완신경총 마취에 함께 따라오는 부작용과 위험성(중추신경계의 합병증, 심박수 저하, 심정지, 부정맥, 기흉, 횡격막 신경 마비에 의한 호흡곤란)은 전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정성을 담아 마음껏 쓰다듬어 주세요?]

‘헐?’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완신경총 마취라니. 내손약손으로? 그냥 쓰다듬어서?

‘미친 거 아냐?’

처음엔 장난을 치나 싶었다. 한데 거듭 읽어 보니 아니었다. 확실한 진짜였다.

‘대박.’

라키엘은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상완신경총 마취. 이건 어깨 부위를 지나가는 신경 줄기를 마취하여 팔의 감각을 없애는 마취술이었다. 신체적으로 부담이 가는 전신마취를 피하면서도 팔 부위를 완벽하게 마취할 수 있다는 굉장한 장점이 있었다.

‘그럼 이제 팔 부위를 수술할 때는 체스나 눈 가리기 등등의 꼼수를 안 써도 돼. 멘탈 튼튼한 병사라면 자기 팔이 꿰매지는 모습을 봐도 아무 감각을 못 느낄 거니까. 게다가 상완신경총 마취에 따라오는 일반적인 부작용 위험도 없대. 이거, 실환가 진짜.’

라키엘은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3레벨에 상완신경총 마취가 뚫렸다는 건? 레벨을 더 올리면 더욱 유용한 마취 기술이 개방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예를 들자면 경막외마취라거나. 척추마취라거나. 나중엔 전신마취도 가능해지겠네.’

그게 실화가 된다면, 정말로 이루어진다면, 진료 범위가 확 넓어지게 될 것이다.

‘거의 고시원 골방에서 강남 34평 아파트급으로 넓어지는 거겠지!’

단순한 수술뿐만이 아니다.

고난이도 하드코어한 레벨의 뜸. 혹은 벌독을 이용한 봉침 치료. 온몸을 레고처럼 다루는 교정. 그 밖에도 갖가지 치료에 내손약손의 마취를 응용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이건 기회야. 이참에 스킬 경험치도 팍팍 쌓아보자.’

라키엘은 전의(?)를 다졌다.

가르딘 경과 함께 부상병 캠프를 순회했다. 당장 수술이 가능한 부상병부터 치료했다. 열심히 쓰다듬고, 마취했다.

다만 절단 수술은 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기준으로는 당장 팔다리를 잘라내어야 할 병사들이 보이긴 했다. 대부분이 병장기에 베이거나 찔린 상처를 입은 이들이었다. 그런 병사가 실려 올 때마다 가르딘 경이 난색을 표했다.

“전ㅎ…… 아니, 도련님? 이거, 당장 안 잘라내면 상처가 썩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안 돼.”

“하지만…….”

“다 생각이 있으니까 일단 상처 부위 정리와 봉합부터.”

“……알겠습니다.”

가르딘 경이 못내 수긍했다.

사실 그의 말에 틀린 구석은 없었다. 이곳 세계의 의료 수준이라면 이런 상처들, 절단을 하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구 역사의 근대 전쟁터에서도 그랬으니까.

‘당장 1800년대인 나폴레옹 전쟁이나 남북전쟁 때만 해도 야전병원엔 병사들의 잘린 팔다리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 다들 총에 맞거나 칼에 맞아서? 아니. 단순한 피부의 생채기 때문에도 상처가 괴사하고 썩었으니까.’

그게 바로,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예비역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봉와직염’이었다.

‘현대 사회에서야 마데카솔이나 빨간약만 있어도 나을 상처가, 그때는 절단 수술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졌으니까. 안 그러면 감염으로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아마 가르딘 경의 걱정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무시했다.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래서야. 두 사람을 이렇게 따로 부른 건.”

당장의 급한 수술을 모두 마치니 이틀이나 시간이 지나 있었다. 라키엘은 가르딘 경과 데미안을 지휘관 천막으로 불러들였다. 둘을 향해 말했다.

“우선 가르딘 경?”

“예, 도련님.”

“경은 내가 없는 동안 캠프의 위생 상태를 개선해줘. 부상병이 머무는 천막과 침구, 의복을 모조리 새것으로 교체해. 마침 오늘 보급이 왔으니까 충분히 가능할 거야. 식단 개선에도 신경을 써주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도련님께서 없는 동안이라니요?”

“잠깐 어딜 좀 다녀올 거거든. 데미안이랑 같이.”

“예에?”

가르딘 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미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를 데리고 어딜 다녀올 생각이신지.”

“아주 으슥한 곳?”

“…….”

“꼭 필요한 일이야. 안 그러면 부상병들이 죄다 죽어나갈 거라서.”

라키엘은 희미하게 웃었다.

방금 말한 그대로였다. 병사들 대부분의 부상 부위를 ‘봉합만’ 해둔 상태였다. 한데 그들을 이대로 방치하면? 대부분이 응급 수술을 한 보람도 없이 감염으로 죽게 될 것이다.

“감염을 막고 치료할 약이 필요해. 한데 여긴 그런 항생제가 없어. 그럼 방법이 뭐가 있을까. 직접 만들어야지.”

“…….”

항생제?

가르딘 경과 데미안은 눈을 끔벅거리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약이었다. 어쨌건 엄청 좋은 건가 보다.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하는 사이, 라키엘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야. 항생제 만들 재료를 좀 구해와야겠다.”

“보급을 받거나 사들이면 안 되는 겁니까?”

“응. 안 돼.”

“…….”

“그런 방식으로는 못 구하니까.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재료라서.”

사실이었다.

지금 자신이 구하려는 재료의 존재를 이곳 사람들은 ‘아직은’ 모른다. 그게 알려지는 건 몇 년이 더 지난 후가 될 것이다.

‘마검황에서 그랬거든.’

문득, 소설 중후반부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엘프 왕국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엘프들이 사용하는 특이한 약재와, 그걸 활용한 치료법이 나온 적이 있었다. 덕분에 반죽음 상태였던 데미안이 살아났다.

자신은 그때 본 내용을 응용할 생각이었다. 언제부터?

‘별궁을 떠나 앙부아즈로 오는 마차 안에서. 그동안 내내 고민하고 궁리했거든. 병사들의 감염 방지책을 말이지.’

전쟁터의 부상병을 돌보러 오는 길이었다. 당연히 외상과 그에 따르는 감염 방지 대책이 필요했다. 하여 고민했고 떠올렸다.

“어쨌건, 그런 이유로 지금 당장 출발할까 싶고.”

“지금 당장 말입니까?”

“어.”

황당한 듯 되묻는 데미안. 녀석을 향해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당장 움직여야지. 재료를 구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거고, 그걸 가져와서 손질하는 데에 시간이 또 걸릴 건데. 그동안 부상병들은? 그들의 부상 부위는? 그게 얌전히 우릴 기다려 주나?”

“…….”

“그래서 지금 바로 움직이는 거야. 잊지 마. 환자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아요.”

“하지만 도련님은…….”

“내가 뭐?”

“항생제라니. 그런 약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재료라고 하셨는데, 도련님께서는 그런 걸 어떻게 아신 건지.”

“미심쩍다고? 책에서 봤다. 됐냐?”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 안 나는데.”

“…….”

“뭐. 왜. 뭐. 어쩌라고.”

“…….”

데미안은 할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라키엘을 향한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지는 않았다.

‘황태자는 가끔씩, 조금 이상하니까.’

갑자기 대뜸 앙부아즈까지 온 결정이 그러했다. 부상병의 다친 곳을 어루만지며 괴상한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그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치 이 세상을 한 계단 위에서 훤히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해. 바로 지금처럼.’

가끔 저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다. 미리 세상을 한 번 살다 온 사람 같은 느낌? 혹은 다른 상위의 세상에서 이곳을 둘러본 경험이 있는 느낌?

그렇듯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그런 느낌을 주는 때가 가끔씩 있었다. 지금이 딱 그랬다.

“…….”

하지만 데미안은 이내 표정을 가다듬었다. 의혹을 드러내는 대신 평소처럼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따르도록 하지요. 다만-”

“다만?”

“수당을 따로 챙겨주셔야겠습니다.”

“……콜.”

협상(?)이 성사되었다. 곧바로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라키엘은 데미안에 이어 왕녀가 붙여 준 여섯 명의 기사도 함께 차출했다. 인근의 지리에 밝은 길잡이 병사도 불러들였다. 그렇게 총 9명의 일행이 캠프를 출발했다.

“이 일대에서 사람의 발길이 가장 드문 깊은 숲으로. 안내해줘.”

길잡이 병사에게 주문했다.

병사가 앞장을 섰다.

캠프를 떠나.

개울과 들판을 건너.

완만한 산기슭을 올랐다.

숲이 울창해졌다. 사람 다니는 오솔길이 점점 드문드문해졌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전진했다. 마침내 사냥꾼들이 아주 가끔 사용하는 외딴 오두막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푸스스스…….

깊은 숲은 심연과 흡사했다. 오로지 바람과 새 소리만 이따금 흘러드는 공간. 그 외의 익숙한 기척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강원도 생각나는구만.’

문득, 홍천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 선배와 트래킹을 하다가 샛길로 잘못 들어간 적이 있었다. 홍천에서 양구로 넘어가는, 군인들만 아주 가끔 사용하는 길이었던가.

아차 하면 우랄산맥 떡멧돼지와 조우해서 하이파이브를 하게 될 법한 분위기였다. 그때 봤던 풍경이 지금과 비슷했다. 일행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 듯했다.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만.”

데미안이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염려가 배어나는 말투였다.

“이런 곳이라면 몬스터와 맞닥뜨릴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이면 의도치 않게 아피로스 둥지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될 수도 있고 말입니다.”

“어. 아마 그렇겠지.”

“예. 그래서 다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데미안의 말이 사실이었다.

왕녀가 보내준 기사들도. 길잡이 병사도. 모두 긴장된 기색이 역력했다. 이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알고 싶다는 눈치였다.

‘다들 안심시켜 줘야겠네.’

라키엘은 빙긋 웃었다.

일행을 향해 말했다.

“다들 불안해할 필요 없어. 아피로스 둥지? 그래. 이런 외진 숲이라면 놈들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될 수도 있겠지. 아피로스는 마젠타노 중부에서부터 이곳 앙부아즈 중북부 일대에 폭넓게 무리를 짓고 서식하는 몬스터니까.”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향해 더욱 신뢰감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다들 알잖아? 아피로스는 누군가가 먼저 둥지나 애벌레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비교적 얌전하다는 거. 그게 상식 아닌가?”

끄덕.

모두가 다시금 끄덕.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나마 저 뚱땡이 군의관이 거대 꿀벌인 아피로스의 습성을 모르지는 않는구나. 그러니까 개념 없는 뻘짓을 하지는 않겠구나.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확실히 나름의 생각이 있긴 한가 보구나, 라고.

그러니까 우리, 크게 위험한 일을 겪진 않겠지. 다들 조금은 안도했다. 약간이나마 불안감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라키엘의 미소가 의미심장해졌다.

“그래서야.”

여기까지 온 것은.

감염을 예방하고 치료할 항생 물질, 그걸 구하기 위해 이제부터 해야 할 짓은 바로…….

“이제부터 우리는, 아피로스 둥지의 여왕 애벌레를 납치할 거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