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꿀벌 잡는 말벌 (2)
콰아아아아아-!
굉음이 울렸다.
주위의 공기를 모조리 찢어발기는 듯한 폭음의 연속.
‘이거, 완전 헬리콥터 소린데?’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풀숲 속으로 더욱 깊게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눈길만 빼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헬리콥터 소리를 내는 괴물들이 있었다. 코뿔소 사이즈의 말벌이었다.
‘……미친.’
아까 아피로스 떼가 날아다니던 소리가 오토바이의 것이었다면, 새로 등장한 거대 말벌은 정말로 공격헬기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렇듯 살벌하게 사방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키이이이아아악! 콰작! 콱!
유성처럼 내리꽂혔다.
아피로스를 덮쳤다.
아피로스가 저항하며 반격했다.
하지만 아피로스의 몸부림은 애처로울 정도로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그저 말벌의 거대한 턱에 잡혔다. 콰직, 소리와 함께 목이 잘렸다. 허리가 동강 났다.
키이이악!
그런 말벌이 수십 마리였다.
턱질 한 번에 아피로스 한 마리씩을 으깨고 조각냈다. 아피로스 떼가 수없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병아리 떼 속으로 달려든 호랑이 같은 기세였다.
그러니까 저건, 사냥이 아니다.
학살이다.
꿀꺽.
라키엘은 초조하게 마른침을 삼켰다.
‘저런 놈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지.’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다. 그 정도로 일방적인 학살극이었다. 만약 이쪽이 조금만 더 일찍 작전을 시작했다면? 그래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저 말벌 떼가 둥지를 습격했다면?
‘우리도 공격을 받았겠지.’
나름 운이 좋았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 나란히 엎드린 병사가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구, 구, 군의관님? 우리, 우리 이제,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일단 숨어 있어야지.”
“하, 하,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혹시 뭔가 알고 있나? 있으면 설명부터. 침착하게.”
“그게, 그…… 저 말벌 같은 괴물 말입니다. 저거, 베스파로스입니다.”
“베스파로스?”
“예, 군의관님. 저놈들, 아피로스를 주식으로 삼는 놈들입니다. 혼자서 아피로스를 백 마리는 거뜬히 죽이는 놈들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놈들이 사냥과 학살을 마친 후에 주변을 꼼꼼하게 정리한다는 점입니다.”
“정리?”
“예. 주위에 널브러진 아피로스 사체를 정리해서 한곳으로 모은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숨이 붙어 있거나, 숨어 있던 아피로스를 찾아내서 죽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잠깐, 그 말은…….”
“저 사냥과 학살이 끝나면 저놈들, 이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면서 쥐새끼 한 마리도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물론 우리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
병사의 말에 라키엘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허풍이나 낭설이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최대한 빨리,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거네.’
식은땀이 줄줄 흘러나왔다.
한편으로는 눈물도 나올 것 같았다.
‘그래. 일단은 다 알겠는데. 도망은 쳐야겠는데. 내 여왕 애벌레는 어떡하냐.’
여왕 애벌레를 야물딱지게 납치하려 했는데. 항생물질을 왕창 얻어서 부상병을 치료하고 싶었는데. 그래야 보너스 수명도 알뜰살뜰하게 챙길 텐데.
그 계획이 뿌리부터 박살 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유린당하고 있는 아피로스 둥지와 함께 말이다.
‘어오, 진짜.’
라키엘은 아쉬움 가득한 눈길을 던졌다. 이 순간에도 아피로스 떼가 무수히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장수말벌에게 습격당한 꿀벌 둥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난리의 끝도 뻔하리라.
‘저 둥지, 망했네.’
다 죽을 거다.
여왕 애벌레고 뭐고 아무도 못 살아남을 거다. 그러면 이쪽의 계획도 망하는 거겠지.
‘여기선 여왕 애벌레를 구하는 건 완전히 텄어. 나가리야. 그렇다고 다른 숲에 가서 처음부터 다시 수색을 하는 건? 다른 아피로스 둥지를 탐색하는 건? 무리지. 안 돼, 그건.’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이미 이곳 숲을 수색하느라 하루가 넘는 시간을 보낸 터였다. 한데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캠프의 부상병들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각종 감염에 시달리며 죽어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계획은 명백하게 망했다. 비분강개의 심정이 절로 쑴펑쑴펑 샘솟았다.
‘하아. 차라리 나는 자연인이다 57회 말벌 아저씨로 빙의하고 싶다. 그 아저씨처럼 용맹하게 호다닥 달려가서 말벌이고 뭐고 전부 찰싹찰싹 후려쳐서 쫓아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왜 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이런 타이밍에 이런 일이 벌어지나 싶었다. 너무 짜 맞춘 거 아니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이 세계가 일부러 나를 굴리고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싶은 피해망상도 들었다.
만약 이게 소설 속 일이라면, 이따위 전개를 쓰는 작가에게 현피라도 신청하고 싶다는 충동마저 새록새록 돋아났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눈물을 훔쳤다. 늦기 전에 도망치자고 모두에게 신호를 보내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
머리 바로 위쪽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가까웠다. 그것도 너무 심하게 가까웠다. 반사적으로 위쪽을 홱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덜컥, 온몸이 굳었다.
“……!”
머리 위쪽 5미터 상공.
딱 2층 창문 높이에서 베스파로스 한 마리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저놈과 눈이 마주쳤다고.
키아아아악!
베스파로스가 포효했다. 놈이 이쪽을 향해 급강하로 내리꽂혀 왔다!
“허억?”
너무나 빠른 속도였다.
집게처럼 거대한 위턱이 엇, 하는 사이에 지척까지 쇄도해 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그 직후, 엎드려 있던 지면이 강제로 지형개조(?)를 당했다.
푸크걱!
베스파로스의 위턱이 땅바닥을 푹 찔렀다. 놈이 거대한 머리를 휘저었다. 지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 와중에 땅속의 커다란 바위가 위턱에 물린 걸까.
놈이 턱에 힘을 주었다.
콰득!
짐볼 크기의 바위가 단숨에 으깨졌다. 만약 방금 때맞춰 몸을 피하지 못했다면?
‘허리가 잘렸겠지.’
소름이 쫙 돋았다.
“도망쳐!”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그 외침이 신호라도 된 듯, 일행이 모조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함께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후우웅!
“……!”
뒤쪽에서 들려오는 공기 찢어지는 소리. 듣자마자 몸을 날렸다. 굴렀다.
처컹-!
거대한 위턱이 공기를 가르며 허공에서 맞물렸다. 그 살벌한 소리가 머리 바로 위쪽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안도할 틈은 없었다.
커다란 쇠파이프, 아니, 가로등 기둥 같은 물체가 옆에서부터 날아왔다. 전신을 후려쳤다.
뻐억!
“……컥!”
일순간 세상이 흔들렸다. 온몸이 허공에 붕 떴다. 의식이 멍해졌다.
‘앞다리?’
아마도 난 베스파로스의 앞다리에 맞은 거겠지. 빨리 일어나야 하는데. 그래야 도망치는데.
생각하는 사이에 추락의 순간이 다가왔다.
콰당탕!
“……끄억!”
아프지는 않았다. 아니, 아픈 줄도 몰랐다. 그저 어지러웠다.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애를 썼다.
하지만 베스파로스의 공격적 대응이 더 빨랐다.
키아아아악!
“……!”
몸을 일으키며 위를 보는 순간. 바로 위에서 도사리고 있던 베스파로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놈이 거대한 위턱을 벌렸다. 그걸 아래로 내리찍었다.
이쪽으로. 전신을 세로로 쪼갤 기세로. 한데 그걸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끝장…….’
오싹 다가오는 예감. 그 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강렬한 충격이 옆구리를 걷어찼다.
“피하십시오!”
뻐억-!
“……꽤액!”
혹시 몸이 기역자로 접히며 날아가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언제? 한강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쫄쫄이 입은 라이더의 자전거에 받혀서.
지금, 그때와 똑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물론 이번의 원인은 자전거가 아니었다. 데미안이었다. 녀석이 다리를 뻗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명백하고도 확실한 옆차기 자세였다.
‘……크레모에서도 이러더니, 또?’
그때도 옆차기로 날 후려차서 위기를 모면하게 했지, 아마?
쿠당탕!
“거억!”
오늘 몇 번을 넘어져 뒹구는 걸까. 하지만 불평할 틈은 없었다. 그 사이에 데미안이 베스파로스의 위턱을 막아내고 있었다.
카카카카카캉-!
사납게 번득이며 몰아치는 데미안의 검격! 베스파로스가 위턱을 벌리며 맞섰다. 데미안의 검이 살벌하게 번득일 때마다 베스파로스의 위턱에 커다란 흠집이 새겨졌다. 때로는 날개가 잘려나갔다.
마침내 데미안의 폭풍 같은 연격이 끝났을 때.
……키이이이익!
그곳에는 양쪽 위턱과 날개를 모두 잃고서 애처롭게 버둥거리는 베스파로스가 남아 있었다.
“지금입니다! 뛰십시오!”
데미안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녀석과 나란히 달렸다. 뒤에선 위턱을 잃은 베스파로스가 발광을 하며 쫓아왔다. 성난 코뿔소 같았다. 저 덩치의 돌진에 깔리면? 상상하기 싫었다.
더 바쁘게 뛰었다.
하지만 상황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
새로운 굉음, 아니,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위를 보았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목격해야 했다.
‘아 진짜.’
이번엔 스무 마리도 넘는 베스파로스가 위쪽에서 살벌한 선회비행을 하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게다가 암담한 상황에 처한 건 이쪽뿐만이 아니었다.
“으아아악! 저리 가! 살려줘!”
“이쪽으로! 물러서!”
“방패! 막아!”
길잡이 병사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러댔다. 앙부아즈 기사들이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걸 보자 절망적인 확신이 들었다.
‘이대로 있다간…… 다 죽겠어.’
동시에 깨달음이 몰려왔다. 베스파로스 떼가 일행을 감지한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작전을 준비하느라 온몸에 묻힌 들꽃 가루. 그리고 전신에 비벼서 바른 꽃잎과 줄기 수액 때문이야.’
그것들 때문이다. 아피로스의 적대감을 누그러뜨리려 바른 준비물 때문이다. 그것들 때문에 오히려 베스파로스가 이쪽을 아피로스로 인식해 버렸다. 즉, 아피로스와 똑같은 사냥감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럼 어떡하지?’
무작정 도망쳐서는 답이 없을 것이다. 이미 사냥감으로 낙인찍힌 이상, 베스파로스 떼가 끝까지 일행을 추격해 올 것이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그럼 맞서 싸워?’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데미안이 전력을 다 쏟아부어야 고작 예닐곱 마리를 막아낼 수 있을까. 나머지 기사들까지 가세한다 해도 열 마리쯤 감당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런데 베스파로스 떼는 최소 수십 마리 이상이었다.
‘어떡해야 하지?’
손끝과 입술이 차가워졌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배어났다.
당장 쇄도해 오기 직전인 머리 위의 베스파로스 스무 마리. 뒤에서 광분하며 달려오는 한 마리. 놈들을 피해 달리며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머리를 굴렸다. 궁리를 짜냈다. 목숨을 건 고민을 거듭했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그리고 마침내.
머릿속에 섬광 한 줄기가 떠올랐다.
‘……그거다!’
번쩍 떠오르는 기억. 한의원에 약재를 납품하던 거래처의 대표님. 몇 번인가 술자리도 함께했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그분 취미가 양봉이라고 했다.
한데 매일 말벌 피해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셨다고 했던가. 그러다가 어느 날, 단순한데 기막히는 덫을 개발했다며 자랑했던가.
‘그거, 어쩌면 통할지도.’
통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배낭!”
라키엘은 자신의 배낭을 다급히 뒤적였다. 찾던 물건이 잡혔다. 꺼냈다. 수통이었다. 한데 수통엔 물이 담겨 있지 않았다. 술이 담겨 있었다. 임시 소독용으로 쓰려고 가져온 독한 술이었다.
수통 뚜껑을 열었다.
“니들도 말벌이면! 술 좋아할 거다! 아니, 제발 좋아해 주라!”
소망을 한껏 담아 수통을 내던졌다. 수통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나무 그루터기에 맞았다.
바닥에 떨어지며 술이 콸콸 흘러나왔다. 냄새가 퍼졌다. 그 순간이었다.
……키이악?
일행을 향해 달려들던 베스파로스 떼가 일제히 동작을 멈추며 더듬이를 쫑긋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