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말벌 잡는 인간 (1)
취향의 세계는 다양하다.
특히 음식에 대한 취향은 더욱 다양하다. 누군가는 민트초코를 좋아한다. 어떤 이는 피자 위에 파인애플을 올린다. 망설임 없이 소스를 탕수육에 붓는 만행을 저지른다.
또 누군가는 일부러 김을 뺀 콜라를 선호하기도 한다. 아니, 심지어 콜라에 밥을 말아 먹는 사람도 있다!
그렇듯 입맛의 세계는 천차만별의 차원이라 할 수 있다. 비단 인간만이 그런 게 아니다. 사회적 곤충인 벌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이곳에서 날뛰는 베스파로스 무리 또한 그랬다.
……키이악?
일행을 향해 달려들던 베스파로스 떼가 일제히 멈칫했다. 더듬이를 쫑긋 세웠다. 놈들의 후각중추에 강렬한 자극이 가해졌다.
그러니까 이건…… 알코올이다!
……키아아악?
선두의 베스파로스가 몸을 돌렸다. 방금 라키엘이 술병을 던진 방향을 향해서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다른 놈들도 연이어 바삐 몸을 돌렸다. 철컥철컥 뛰기 시작했다. 아예 날갯짓을 하며 뛰는 놈도 생겨났다.
모두가 술병이 떨어진 곳을 향해 달려갔다. 마치, 출근 시간에 닫히기 직전의 전철 문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같았다. 그걸 보며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성공이다.
확신이 들었다.
의도가 딱 들어맞았다.
‘이거, 될까 말까 긴가민가했는데.’
문득, 한국에 있던 때가 생각이 났다.
한의원에 약재를 납품하던 거래처의 대표님. 인심 좋은 어르신이셨다. 나름의 친분이 있어서 가끔 술자리를 겸한 식사도 함께하던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식사 자리에서였던가. 그 대표님이 자랑을 했더랬다.
자신의 취미가 양봉이라고. 주말에만 가는 농막을 강원도에 지어두고 뒷마당에 벌통을 장만했다고. 그런데 말벌이 자꾸 벌통을 건드려서 골치였는데 그걸 해결했노라 하셨던가.
사실 처음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냥 예, 예, 대답만 했다. 그러다가 그 대표님한테서 해결법을 들었던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던 기억이 났다.
‘그 방법, 엄청 심플하면서도 효율적이었지. 바로 알코올에 대한 꿀벌과 말벌의 취향 차이를 이용한 덫이 비결이었으니까.’
꿀벌과 말벌의 취향 차이.
꿀벌은 알코올 냄새를 싫어한단다. 반면에 말벌은? 알코올이라면 환장한단다. 냄새만 맡으면 홀린 듯이 모여든단다.
그런 취향(?)을 이용한 간단한 덫.
그것이 바로…….
‘막걸리 트랩이라고 했지.’
그냥 2리터 페트병에 막걸리를 1/3 정도 채워서 벌통 근처 곳곳에 걸어두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만 해두면?
만사 오케이.
이삼일만 지나면 막걸리에 빠져 죽어서 동동 떠 있는 말벌들의 모습을 직관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거, 여기서도 통할지 확신이 없었는데. 혹시나 했는데…….’
통했다.
성공이다.
지금, 이쪽을 덮치다 말고 술병을 향해 쿠쾅쾅 몰려드는 베스파로스 떼의 모습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나머지 일행들도 대강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은 걸까.
“지금이야!”
“뛰어!”
다들 허겁지겁 뛰었다. 지금만이 도망칠 유일한 기회라 여긴 듯했다. 그러나 라키엘의 생각은 달랐다.
“다들 그만!”
촤아악!
도망치려던 기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길잡이 병사에게 팔을 뻗었다. 이쪽과 부딪칠 뻔한 기사가 다급히 외쳤다.
“무, 무슨 짓입니까!”
“군의관님도 이 틈에 얼른 도망쳐야지요!”
길잡이 병사의 목에도 핏대가 섰다. 하지만 라키엘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빠르게 말했다.
“내가 보증하지. 지금 도망치면 다 죽어.”
“……!”
“잠깐 틈이 생겼다고 뛰어서 도망을 쳐? 그 잠깐의 틈이 얼마나 될까. 단순하게 무지성으로 뛴다 한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그, 그게 무슨!”
“사실이야. 지금 저놈들, 내가 던진 수통의 술 냄새에 이끌려서 저러는 거니까. 하지만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은 공기 중으로 금방 기화되어서 사라지지. 술의 양이 적을수록 그건 더 빠를 거고.”
“…….”
“고작 수통에 들어 있는 술이야. 저렇게 커다란 놈들이 핥아대면? 공기에 노출돼서 기화되면? 술 냄새가 얼마나 유지될까. 그게 유지되는 동안에 안전한 곳까지 도망칠 자신들이 있나?”
“…….”
모두는 깨달았다.
없다.
아무리 빨리 뛰어도 날개가 달린 저놈들의 추격을 뿌리칠 정도로 멀리까지 도망칠 수는 없다. 금방 따라잡힐 거다. 그리고 몰살당하겠지.
소름이 쫙 돋았다.
“그럼, 이 틈에 숨으면 되는 겁니까?”
기사 하나가 물었다.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 몸에 꽃가루를 발라둬서 불가능해. 금방 발각될 거야.”
“그러면 대체 어떻게…….”
“불을 지르자.”
“……예에?”
“다들 준비한 횃대 있지? 꺼내.”
어물쩡거릴 시간이 없다. 그런 의도를 제일 먼저 깨달은 이는 데미안인 듯했다.
“알겠습니다.”
데미안이 군말 없이 횃대를 꺼내 들었다. 그가 먼저 움직이자, 기사들이 동조했다. 길잡이 병사도 울상이 된 채로 마지못해 횃대를 꺼냈다.
불을 붙였다.
횃불이 활활.
“던져!”
8가닥의 불길이 숲 곳곳으로 떨어졌다. 처음엔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탄내가 솔솔. 이윽고…….
화르르륵!
불이 붙었다.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나무를 휘감고, 덤불을 집어삼켰다. 숲이 붉게 물들어 갔다. 그제야 알코올 냄새에 몰려들었던 베스파로스 떼가 반응했다.
키이악?
하지만 늦었다. 잠깐 알코올에 정신이 팔린 대가는 컸다.
후우우욱!
……!
순식간에 몰아닥치는 열풍!
그 열기에 베스파로스 떼가 혼란에 빠졌다. 더듬이의 후각 중추를 탄내가 점령했다. 적외선 감지기관이 온통 끔찍한 열기에 폭주했다. 베스파로스 떼는 본능적인 공포심을 느꼈다.
콰아아아아아-!
앞다투어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빠르게 번지는 숲의 화재가 예상보다 훨씬 끔찍한 열기를 상공으로 밀어 올렸다. 그 열기에 얇은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눌어붙었다. 불길에 그슬린 비닐처럼. 타고, 쪼그라들었다.
그 결과는 추락이었다.
키아아아악-!
베스파로스 떼가 비명을 질렀다.
더욱 힘껏 날갯짓을 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열기에 노출되어 쪼그라드는 날개로는 더 솟아오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떨어졌다. 어느새 반토막이 난 날개를 헛되이 퍼덕이며. 추락했다.
쿠콰앙-! 콰앙!
곳곳에서 굉음이 울렸다.
운이 나쁜 베스파로스는 이글거리는 불구덩이에 고스란히 떨어졌다. 불길 속에서 발악을 하며 버둥거리다가 그대로 전신이 익어 버렸다. 어떤 놈은 반쯤 남은 뾰족한 그루터기에 떨어져 머리가 꿰뚫렸다.
나머지는 맨바닥에 떨어졌다.
물론 무사하지는 못했다.
키이이! 키이악!
워낙 큰 덩치와 육중한 체중을 자랑하던 놈들이었다. 그런 덩치로 추락을 당했다. 최소 한두 군데씩은 부러지거나 으깨졌다.
숲 곳곳이 추락의 충격으로 다친 베스파로스 떼의 비명과 버둥거림에 뒤덮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불길이 더욱 넓게 번졌다. 산불의 규모로 발전했다. 숲을 집어삼켰다. 숲에 떨어져 버둥거리던 베스파로스 떼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도망치는 라키엘 일행도 포함해서였다.
“뛰어! 얼른!”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헉! 허억, 쿨룩! 콜록, 컥!”
일행은 뛰었다.
열기를 피해서 달렸다.
데미안이 외쳤다.
“도련님. 이쪽으로! 어서!”
“헉, 허억…… 콜록! 쿨룩!”
“제 손을 잡으십시오!”
“훅, 후욱!”
라키엘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불을 지른 것까진 좋았는데. 작전이 대성공을 거두며 베스파로스 떼를 박살 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젠 내 기관지가 박살 나게 생겼네?’
라키엘은 숨을 헐떡였다.
불이 생각보다 너무 크게 번져 버렸다. 결코 이 정도를 예상했던 게 아니었다. 사실 그저 약간만 불이 나고 연기만 피어나도 충분하리라 여겼다. 그 정도라도 베스파로스의 감각을 혼동시킬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불길이 지나치게 맹렬해졌다. 연기가 엄청났다. 주위가 온통 공기 반, 연기 반일 지경이었다.
한데 그 와중에 뛰려니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았다. 정말이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격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목이 매캐한 건 둘째치고, 현기증이 실시간으로 뒤통수를 훅훅 때려왔다.
오장육부도 난리를 떨어댔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호흡 상태에 기겁하고 있습니다.]
[심장 : 야? 이거 무슨 일이냐? 응? 허파 왜 이래? ]
[허파 : 허…… 파흐…… 흐…… 흐ㅇ응으…… tlqkf…….]
[대장 : 형님들 우리 몸뚱이가 숨 막혀 뒈지기 직전이지 말입니다?]
[간장 : 그럼 오늘 엔딩각 뜨는 거임?]
[위장 : 훈제 일산화탄소 먹방 엔딩ㅋㅋ 엌ㅋ]
[오장육부가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을 격려하며 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당신이 보유한 HP : 6,000]
“……쿨룩! 콜록! 씨익! 쌔액!”
메시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숨을 쉬기가 너무나 괴로웠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구멍의 피리 소리. 전형적인 천식 증상이었다.
‘산소가 모자라…….’
시야가 흔들렸다.
땅과 하늘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어지러웠다. 만약, 때맞춰 데미안이 손을 뻗어 주지 않았다면, 든든하게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쓰러졌을 것이었다.
터텁!
“정신 차리십시오!”
철썩!
뺨이 화끈해졌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여전히 멍했다. 데미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
‘설마 나 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이었다.
“업겠습니다.”
녀석이 재빨리 돌아섰다. 등을 보이며 몸을 숙였다. 뒤로 팔을 뻗으며 이쪽을 끌어당겼다. 녀석의 등을 향해 몸이 기울어졌다. 아니, 넘어졌다.
푹.
단단한 등이 온몸을 떠받쳐 주었다. 그 즉시 전신이 두둥실 떠올랐다. 아니, 나는 데미안에게 업힌 걸까.
“꼭 붙잡으십시오.”
녀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콰아-!
“……!”
세상이 빨라졌다. 데미안이 질주하고 있었다. 불길에 타오르는 숲이 옆으로 휙휙, 열기 가득한 바람이 볼을 긁으며 지나갔다.
뜨거웠다.
데미안의 등도 그러했다.
문득, 멍한 의식 속에서 녀석의 정체가 떠올랐다. 그거, 위험한데.
‘이대로…… 데미안이 더 위험해지면 안 되는데.’
그러면 정말로 큰일이 난다.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일단은 이곳을 무사히 벗어나야…….’
다행히 일행 중에 낙오자는 없는 듯했다. 왕녀가 붙여 준 기사들, 길잡이 병사까지. 모두가 헉헉 숨을 몰아쉬며 잘도 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됐다.
다들 이대로만 달려 준다면.
이렇게만 도망친다면.
‘모두가 안전해지겠지.’
그래.
그거면 된 거다.
일단은 그 정도로 만족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돌연 하늘이 시끄러워졌다. 멍한 의식 속에서도 고막이 아플 정도였다.
……뭘까.
설마.
그 순간이었다.
“어쩌면 우리, 여기까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데미안 녀석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그 말꼬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왜?
어째서?
녀석이 이토록 긴장한 걸까.
이유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쿠우우웅-!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 데미안의 등을 타고 움찔거리듯 전해져 오는 긴장감. 이윽고 데미안의 어깨 너머로 뭔가가 보였다. 이글거리는 불길과 열기 사이에 군림하듯 도사린 실루엣. 그것은 베스파로스의 실루엣이었다.
한데 거대했다. 아까 본 베스파로스보다 훨씬 거대했다. 보통의 베스파로스가 코뿔소 덩치였다면? 지금 저놈은 최소 코끼리 이상으로 보였다.
“…….”
멍해진 의식 때문에 보이는 착각일까. 아니었다. 뒤이어지는 놈의 포효가, 그런 희망을 확실하게 분쇄해 주었다.
쿠와아아아아악-!
“……!”
소리에 맞아서 온몸이 아픈 기분은 처음이었다. 나머지 일행들도 비슷한 공포심에 젖은 걸까.
“히, 히이익…… 여, 여왕 베스파로스!”
길잡이 병사가 중얼거리며 주저앉았다. 기사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뒷걸음질쳤다. 데미안의 전신 근육도 긴장감으로 꽉 굳었다.
녀석에게 업혀 있기에, 긴장하는 근육의 경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동시에 위기감이 뒷골을 잡았다.
‘이래선 안 돼.’
멍하던 의식이 확 깨어났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보유 주식이 고점에 물려서 좌악 미끄러져도 충동적인 패닉셀, 손절만 하지 않으면 존버의 각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은 공포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일행 모두가 그렇다. 데미안이 특히나 더 그렇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데미안마저 긴장하고 위축되면…… 절대로 안 돼.’
데미안이 일행의 가장 든든한 칼이다. 일행의 가장 튼튼한 방패이다. 그런데 녀석이 위축되면? 모든 게 끝장이다. 그러니 녀석의 긴장부터 풀어야 한다.
그걸 깨달은 순간.
‘경혈 스캐닝!’
데미안의 기혈 움직임을 파악하리라. 가장 효율적인 최소한의 간결한 침술로 녀석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경혈을 찌르리라. 다짐하며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딩동!
[진맥 스킬 전용 옵션 ① : 경혈 스캐닝이 발동됩니다.]
[Lock-on 대상을 탐색합니다.]
[Lock-on 대상 탐색이 완료되었습니다.]
지이잉-!
시야 한쪽에 이라는 문자가 떠올랐다. 그 아래로 초록색 화살표도 떠올랐다. 그런데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상이…….
‘여왕 베스파로스?’
라키엘은 눈을 부릅떴다.
이쪽은 데미안을 스캐닝하려고 옵션을 켠 건데. 그런데 뜬금없이 베스파로스 여왕이 Lock-on 대상으로 잡혀 있었다. 그는 이내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데미안에게 업혀 있어서…… 시야 정면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대상이 저놈이라서?’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하여 더욱 놀라웠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벌레한테도 경혈이 있는 거였나?’
생각해 보니 지극히 당연한 소리였다. 엄연히 살아 숨 쉬는 생물이니까. 하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이거, 어쩌면…….’
온통 어두운 절망 속에서 섬광처럼 비치는 일말의 가능성.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베스파로스 여왕의 기혈 흐름이 다 보인다면. 데미안이 이쪽의 뜻대로 움직여준다면.
그게 실현만 된다면.
‘생존이 문제가 아니라…… 잘하면 오늘 베스파로스 여왕으로 말벌주 담그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