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14화 (114/468)

114화. 마음을 다하여 (1)

“오애애애애액-”

“옳지, 잘한다. 잘한다.”

“오애애애액-”

꿀렁꿀렁!

꾸꾸의 포동포동한 몸이 꿀렁거렸다. 마치 크게 트림이라도 하려는 듯. 혹은 내면의 무언가를 우려내려(?)는 듯. 뽀송뽀송한 몸을 웅크리고서 열심히 기를 모았다.

그리고 다시 구역질을 했다.

“오애애애액-”

하지만 몸짓과 소리만 요란했을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라키엘이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꾸꺄아.”

“으음, 생각처럼 구토가 잘 안 돼?”

“꾸꺄!”

“뭐? 사실은 구토해 보는 게 처음이라고?”

“꾸!”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꺄!”

“…….”

꾸꾸가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키엘은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쯧.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어찌어찌 꾸꾸를 잘 설득한 마당이었다. 구토해 주는 물질을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한방 재료와 섞어서 연고를 만들어 병사들을 치료할 거라고. 내심 야물딱지게 정해둔 이름까지 알려준 터였다.

덕분에 꾸꾸가 선뜻 협조해 주기로 했다. 한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이 생겨 버렸다.

‘설마 구토하는 요령을 모를 줄이야.’

아직 너무 어려서 그런 걸까.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하긴. 아피로스 여왕의 덩치는 거의 2미터가 넘었으니까. 그런데 꾸꾸는? 딱 웰시코기 정도 사이즈밖에 안 되니까. 아직 한참 더 커야 할 아기인 거지.’

너무 어려서 요령이 없는 듯했다.

‘난감하네.’

어떻게 하면 이 쬐끄마한 녀석을 토하게 할 수 있을까.

‘확 명치라도 때려 줘야 하나. 아닌데. 그건 진짜 좀 아니고. 그럼 어떡하지?’

라키엘은 고민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뭔가를 떠올렸다.

“꾸꾸야?”

“꾸우?”

“너, 침 한번 맞아볼래?”

“꺄아?”

“침이 뭐냐면, 하나도 안 아픈 바늘이야. 그걸로 몸 이곳저곳을 아주 살짝만 콕콕 찌를 건데. 어때?”

“……꾸꺄?”

“진짜야. 아픈 거 아냐.”

“꺄꾸?”

“어떻게 믿냐고? 음, 저기 데미안 아저씨 보이지?”

“……저 아저씨 아닙니다.”

“넌 좀 가만히 있고.”

“…….”

“저기 데미안 아저씨 보이지?”

“꾸꺄!”

“피부 좋아 보이지?”

“꾸!”

“저게 다 나한테 침 맞아서 그런 거야.”

“꺄?”

“진짜야. 정말로.”

“꾸우우?”

“게다가 침을 꾸준하게 맞으면 몸이 튼튼해지고, 마음도 건강해지고, 가정이 똑바로 서고, 사회가 무너지지 않게 되고, 온 국민이 행복해지는 나라가 된다, 이 말씀이지.”

“꺄아아?”

“그리고 너도 원하는 만큼 시원하게 구토할 수 있을 거야.”

“꾸꺄?”

“내가 구토 중추를 좀 찔러 줄까 하거든. 그럼 완전 편하게 오애애애액- 오케이?”

“꾸꺄!”

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좋은 거 같다. 그런 생각에 꾸꾸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키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음흉하게 피어났다.

“좋아 좋아.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하자.”

미리 뽑아서 가지고 다니던 꼬슴이표 하얀 가시를 꺼냈다. 경혈 스캐닝 옵션도 켰다.

[진맥 스킬 옵션 ① : 경혈 스캐닝을 발동합니다.]

[경혈 스캐닝 옵션이 Lock-on 대상을 포착하였습니다.]

[대상이 성공적으로 Lock-on 되었습니다.]

키이이잉!

상큼한 알림음과 함께 시야가 변했다. 꾸꾸의 몸 주위로 밝은 외곽선이 생겨났다. 동시에 꾸꾸의 몸속 경혈의 배치가 낱낱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혈이 흐르는 방향. 교차하는 순서. 그 조화가 이루어내는 균형까지.

‘흐음, 이렇구나.’

라키엘은 꾸꾸의 전신을 한참 관찰했다. 한데 그 눈길이 음침(?)했던 걸까.

“꾸우?”

꾸꾸가 불안한 눈빛을 보내어 왔다. 라키엘은 열심히 꾸꾸를 달래야 했다.

“괜찮아, 꾸꾸야. 해치지 않아요.”

“꺄아?”

“어딜 찔러야 안 아플지 살펴보는 거야.”

“…….”

꾸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식도를 거쳐 위장이 출렁였다. 덕분에 구토중추의 위치를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사람이랑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네.’

가시를 들었다.

꾸꾸의 옆구리를 겨누었다.

사람으로 치면 외릉혈(外陵穴)에 대응하는 자리를 콕, 찔렀다. 다만 그냥 찌르진 않았다. 구토를 유발하는 치료법인 용토법(涌吐法)의 원리를 응용했다.

쿡, 꾹꾹!

혈을 찌르며 반대되는 부위의 혈자리를 손으로 지그시 꾹 눌러주었다. 주혈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자극을, 반대되는 혈에는 둔하고도 은근한 자극을. 상반되는 자극이 꾸꾸의 구토중추를 제대로 건드렸다.

“꾸꾸야? 속이 좀 어때?”

“……꾸우? 꺄아?”

“이상해?”

“꾸꺄!”

“안 참아도 돼.”

“오애애애액-”

꿀렁!

꾸꾸가 몸을 확 웅크렸다. 라키엘은 재빨리 그릇을 밑에 받쳐 주었다. 그 직후, 꾸꾸가 뭔가를 토해냈다.

“……꾸꺅!”

딸그랑!

뜻밖에도 액체가 아닌, 둥근 덩어리가 그릇에 떨어졌다. 당구공보다 조금 작은 구슬이었다. 한데 구슬에서 어쩐지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

‘……민트초코 향이 왜 여기서 나와?’

덕분에 잠깐 떠오른 한국에서의 기억. 소개팅 자리에서 민트초코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그녀.

‘그래, 소개팅이 파투난 건 그 여자분 입맛 때문이야. 다른 건 몰라도 민트초코는 용서가 안 되지. 아암, 그렇고말고.’

그렇다.

소개팅이 망한 건 오로지 민트초코 때문이다. 결코, 절대로, 진짜로, 자신이 카페에서 일어나다가 정확한 딕션으로 3단 방귀를 ‘뿌뿌뿌잉↗’ 하고 뀌어 버려서는 아니다. 심지어 그 방귀가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재즈에 정확한 비트를 맞춰 버린 탓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까 민트초코가 나쁜 놈이다.

확실하다.

‘…….’

라키엘은 불현듯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한편으로는 그토록 원하던 항생물질을 마침내 얻었음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어쨌건 해냈다……!’

아피로스 둥지를 찾기 위한 탐사. 베스파로스 무리의 습격. 예상치 못했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벌였던 일들까지. 며칠 내내 겪었던 개고생을 생각하자니 보람찬 감정이 쑴펑쑴펑 솟구쳤다.

하지만 라키엘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옛말에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삼겹살도 구워야 비로소 의미를 얻는 법이다.

그는 곧바로 연고 제조를 시작했다. 재료는 충분했다. 왕녀 아델린이 보내준 보급품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중에는 여러 가지 한약재도 있었다. 자근(紫根)과 당귀(當歸)도 물론이었다.

‘둘 다 지금 꼭 필요한 약재지.’

자근은 지치라는 다년생 식물의 뿌리다. 예로부터 화상이나 동상 등을 치료하는 연고의 재료로 쓰여왔다.

당귀는 차고 습기가 있는 곳에서 싹을 틔우는 식물이다. 특히 동의보감에 나오는 수많은 약재 중에서, 무려 500회 정도나 언급될 정도로 한약 조제에 빠져서는 섭섭할 귀한 약초다.

하여 라키엘은 일찌감치 왕녀에게 두 약재의 보급에 특별히 신경 써 달라고 신신당부를 해 두었던 터였다. 애초부터 이렇게 사용할 계획이었으니까. 연고를 활용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럼 시작하자.’

밀랍을 끓였다.

끓는 밀랍에 당귀를 넣었다.

당귀의 색이 검게 탈 정도로 아궁이의 화력을 올렸다. 거기에 자근을 넣고 3분가량을 더 끓였다. 밀랍과 당귀, 자근이 섞인 용액이 걸쭉해졌다.

마침내 용액이 확연한 자적색으로 물들었을 무렵, 꾸꾸가 토해 준 항생 구슬을 걸쭉해진 용액에 넣었다. 큰 국자로 힘껏 다섯 차례 눌렀다. 용액 속에서 구슬이 으깨지는 느낌이 국자를 타고 전해져 왔다.

용액에서 민트초코 향이 솔솔 올라왔다. 그 순간, 라키엘이 데미안에게 신호를 보냈다.

“지금!”

두꺼운 장갑을 낀 데미안이 솥을 불에서 내렸다.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이 국자를 잡았다. 걸쭉해진 용액을 천천히, 부지런히 휘저었다.

‘용액의 층이 분리되면 안 돼.’

한껏 달여진 약액이었다. 그렇기에 식는 과정에서 열심히 저어 주지 않으면 성분이 층을 이루며 분리될 가능성이 있었다. 혹은 바닥에 눌어붙을 가능성도 있었다.

카레를 끓일 때 국자로 열심히 휘저어 줘야 하듯이. 그런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맛있는 카레를 얻을 수 있듯이.

조금의 아쉬움도 없도록. 최고의 결과를 위하여 솥을 지켰다. 정확한 간격으로 꾸준히 저었다. 밤이 깊어 갔다. 달이 중천에 떠올랐다. 어깨가 점점 저려 왔다. 팔뚝도 뻐근해졌다. 하지만 남에게 국자를 넘기지 않았다.

‘이건 무조건 내가 해야 해.’

꾸꾸의 말이 떠올랐다.

항생 구슬은 한 달에 한 번만 토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이번에 연고 제조에 실패하면 속수무책으로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그동안 부상병들 다 죽겠지. 각종 감염 때문에.’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결과였다.

게다가 이건 자신의 환자들에게 쓸 연고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러니 직접 해야 했다.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다짐하며 지친 육신을 독려했다. 피로감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그동안 솥이 식어 갔다.

용액도 식었다.

천천히 굳었다.

이른 새벽의 첫 동이 틀 무렵, 마침내 민트초코의 묘한 색감을 지닌 연고가 만들어졌다. 라키엘이 만든 외상치료 전문 연고, 라데카솔의 탄생이었다.

‘됐다!’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정신을 상큼하게 일깨우는 알림음은 덤이었다.

딩동!

[당신은 로라시아 대륙 역사 최초의 항생 연고, ‘라데카솔’ 제조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러한 당신의 연고 라데카솔은 전례 없던 신개념적인 항생 치료의 보급과 대중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은 이러한 업적을 통하여 ‘항생제 치료의 아버지’로 의학의 역사서에 길이 남겨질 것입니다.]

[후세의 의학도 꿈나무들이 팍팍 늘어난 시험 범위에 탄식하며 당신을 원망하게 됩니다.]

[앞으로 라데카솔을 통하여 당신의 명망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업적에 기뻐하며, 동시에 불평을 터뜨립니다.]

[심장 : 아. 또 업적이네. 그래, 업적 세우는 건 좋다 이거야. 근데 또 밤샜네? 우린 대체 언제 쉬냐?]

[허파 : 허어…… 파하악…… ㅠㅠ]

[대장 : 요즘 수면이 불규칙해져서 변비도 생길 것 같지 말입니다.]

[간장 : 나도 요즘 미치겠음. 이 인간 이거 확 기절이라도 시킬 방법 없을까?]

[위장 : ……식도를 리본 모양으로 묶어 보자!]

[오장육부가 당신의 무리한 강행군에 염려의 기색을 드러냅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건강을 갈아 넣은 업적에 떨떠름한 기쁨의 격려를 보내며 8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당신이 보유한 HP : 7,300]

‘……후아.’

확실히 피곤하긴 했다. 날밤을 지새며 국자를 저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피로감보다 훨씬 큰 보람을 느꼈다. 마침내 완성한 외상치료 전문 항생제 연고, 이걸로 살려낼 수많은 부상병, 알차게 챙길 빵빵한 보너스 수명까지.

‘흐흐흐!’

절로 샘솟는 흐뭇한 웃음 속에서 라키엘은 곧바로 움직였다. 부상병들의 치료에 항생제 연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마침내 완성한 항생제 연고 라데카솔. 이걸로 그냥 보너스 수명만 챙길 줄로 알았다.

자신의 라데카솔이, 부상병들을 향한 치료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쟁의 방향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며 역사에 남을 초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줄은, 정말로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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