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폭발적 성장 (3)
투커엉-!
반응한다. 반사적으로. 막아 낸다. 튕겨 나간다. 세상이 후려치는 듯한 충격을 견뎌 낸다.
“……그읍!”
숨이 턱 막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드마스터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 냈다. 만년설의 냉기 실드가 거의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했지만, 그럼에도 팔꿈치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어깨 관절이 덜렁덜렁해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현기증과 함께 생명력 또한 쑥 떨어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딩동!
[당신은 소드마스터의 공격을 또 한 번 성공적으로 방어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신의 신체에 가해진 물리적/마나적 충격을 아스라한 심법이 효율적으로 흡수하여 해소, 당신의 에너지로 저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니크한 경험이 아스라한 심법의 급진적 성장을 촉진합니다.]
[아스라한 심법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거듭 방어를 성공할 때마다 심장이 쿵, 쿵, 날뛰었다. 단순히 폭발적인 운동량을 소화하고 있어서? 거칠게 풀무질하듯 숨을 몰아쉬고 있어서?
아니었다.
심장 박동이 울릴 때마다 메시지가 울렸다. 그것은 혈투의 북소리이자 성장의 종소리였다. 심법의 진화를 알리는 웅혼한 울림이었다.
[스킬명 : 아스라한 심법]
[단계 : 싱글 써클 Lv.8]
[마나 증폭률 : 230%]
[스킬 전용 옵션 : ① 써클 슬롯 / ② 격침불가 / ③ HP 변환]
[다음 레벨업에 필요한 HP : 3,000]
[현재 보유 중인 HP : 6,000]
쿠웅! 쿠웅!
성장을 알리듯 거듭 날뛰는 심장. 오장육부의 환호성.
[오장육부가 당신의 분투를 응원하며 1,000 HP를 후원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7,000]
아스라한 심법의 성장과 함께 HP 후원이 실시간으로 들어왔다. 가히 쏟아진다고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을 양이었다.
‘감사! 거듭 감사!’
라키엘은 착지하며 안전하게 몸통을 보호했다. 대신 궁둥짝을 희생했다. 신체 중에서 그나마 빵빵한 부위인 궁둥이를 쿠션(?) 삼아 뒤로 굴렀다. 그렇게 오장육부의 쏟아지는 후원에 알찬 리액션으로 보답했다.
동시에 귓가로 쏟아지는 오장육부의 박수 소리. 힘이 났다. 더욱 용기를 얻어 HP를 과감하게 투자했다.
‘HP 변환!’
딩동!
1200 HP를 쏟아부었다.
방금 일격을 막아 내며 쑴펑 깎였던 생명력이 가득 회복되었다. 일순간 흐려졌던 시야가 말끔해졌다. 잠깐 멍해졌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다리에 힘이 돌아왔다. 만년설을 들어 올리는 팔뚝에 활력이 살아났다.
꽈악!
손잡이를 그러쥐었다. 일어났다. 고개를 들었다. 달려오는 쟈빌론이 보였다. 아니, 돌진해 오고 있었다. 쏟아지는 살기.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치솟는 자신감이 소름을 압도했다.
동시에 외쳤다.
목덜미에 혈관이 돋아나도록. 돋아난 혈관 속 적혈구가 날뛰는 감각을 고스란히 담으며.
“들어와!”
쉰 목소리로 포효했다.
쟈빌론이 화답하듯 검을 치켜들었다. 만년설을 마주 치켜들었다. 마나 써클을 거세게 회전시켰다.
키이이이잉-!
혈투를 감당하며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아스라한 심법.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출력으로, 더욱 증폭된 마나를 만년설에 쏟아부었다. 정제된 마나에만 반응하는 냉기의 방패가 화답했다.
이전보다 1.2배 드넓어진 냉기 실드로.
이전과는 비교 불가의 두께로.
프츠즈즛!
“……!”
커지는 쟈빌론의 눈초리.
그 직후 엄습해 오는 격돌!
콰즈걱!
“……긋!”
감당할 만하다. 이젠 날려 가지 않는다. 다리에 힘이 덜 빠진다. 쟈빌론도 그런 이쪽의 성장을 알아차린 걸까. 놈의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다.
라키엘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어때! 이만하면 이제 그 집착, 버릴 때 안 됐나?”
재빨리 입을 놀렸다.
쟈빌론의 연속 공격이 이어지기 전에. 그 사이의 틈을 이용해서. 놈의 정신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다.
물론 쟈빌론은 쉽게 낚이지 않았다. 놈은 이쪽의 외침에도 묵묵부답으로 검을 휘둘러 왔다.
콰텅!
“……!”
여전히 엄청난 일격이었다. 만년설이 더욱 튼튼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막을 때마다 0.1초 정도는 영혼이 가출했다가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그의 공격이 점점 다채로워지고 있었다. 이쪽에게 반격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 걸까. 아예 대놓고 수십 가지 패턴을 연계하며 공격을 쏟아부어 왔다.
‘이래서는 당해.’
아무리 아스라한 심법으로 기민하게 반응해도, 경혈 스캐닝으로 공격 의도를 예측해도, 그럼에도 결국엔 한계가 찾아오리라.
상대는 소드마스터였다. 그런 쟈빌론의 공격을 오로지 방어로만 버틴다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래서였다.
‘내가 방어로만 버티는 데에 한계가 오는 거라면…… 쏟아지는 공격을 단순하게 만들어야겠지!’
라키엘은 그러한 일념으로 입을 멈추지 않았다. 쟈빌론의 검이 매서워질수록 그의 도발적 외침도 더욱 매서워졌다.
“그런데 그쪽! 왜 그런 거짓말을 하며 지냈지? 응?”
콰쾅-!
“으큽!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다는 날 말이야! 그때 그쪽이 내질렀다는 찌르기!”
“…….”
콰작-!
“그읏, 그거! 사실은 단순한 실수였던 거 아닌가!”
“……!”
콰아앙-!
“……컥!”
이번엔 좀 셌다. 하마터면 만년설이 깨질 뻔했다. 라키엘은 재빨리 HP 변환을 사용하며 생명력을 채웠다. 고개를 들었다. 폭풍처럼 공세를 취하던 쟈빌론이 검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
그 시선을 마주 보았다.
다시 한 번 푹.
찌르듯 물었다.
“사실은 단순한 실수였잖아. 댁이 아버지를 원망한 건 사실이었지만, 미술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기에 증오했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잖아. 안 그래?”
“……그게, 무슨 소리지?”
“진실을 들추는 소리.”
“…….”
쟈빌론의 입이 다물렸다. 그만큼 눈빛은 더욱 흔들렸다. 라키엘은 소리 없이 새하얗게 웃었다. 언젠가 소설 마검황에서 보았던 쟈빌론의 회상. 후회. 실수로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스스로 짊어졌던 거짓의 멍에.
그걸 떠올렸다.
입에 담았다.
“당신은 아버지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어. 그저 처음으로 잡아 보는 검이 어색했을 뿐이지. 또한, 자신의 재능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그래서 자신의 엉성한 찌르기가 얼마나 날카로울지를 몰랐던 거야. 당신도, 당신의 아버지조차도, 모두 그랬지.”
“…….”
“그래서 일어난 단순한 사고였어. 찌른 당신은 자신의 동작이 그렇게 깔끔하고 재빠를 줄 몰랐고, 당신의 아버지는 아들이 생전 처음 잡아 본 검으로 그런 위력의 찌르기를 구사할 줄은 예상조차 못 했고.”
“…….”
“결국 타이밍이 어긋났지. 안 그래? 아들이 엉성하게 찌르면 그걸 막아 내는 시범을 보이려던 아버지가, 사고로 가슴을 찔려 버린 거야. 그것도 너무 깊이.”
“……그대가 그걸, 어떻게 알아?”
쟈빌론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경악했겠지.
소름이 돋았겠지.
혼자만의 비밀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라키엘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그를 이쪽으로 붙잡아 두어야 하니까. 그래야 데미안이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오직 데미안만이 쟈빌론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을 테니까. 그것만이 오늘 쟈빌론을 잡을 유일한 가능성이니까. 또한…….
‘데미안이 각성하지 않을 방법이기도 하니까.’
오로지 이쪽이 쟈빌론의 공격을 감당해야 한다. 가장 큰 위험을 짊어져야 한다. 그래야 한다. 데미안이 집중공격에 노출되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지 않게 하려면, 그 위기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각성해 버리는 것을 예방하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조금 미안하지만.’
적이라지만 어린 시절의 끔찍했던 사고, 트라우마, 상처, 그걸 언급하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이쪽이 죽을 판이다. 자칫 데미안이 각성하여 세상이 불구덩이에 씹어 먹힐 판이다.
라키엘은 독한 마음을 다졌다.
입을 열었다.
“모종의 경로를 통해 알았지. 당신이 자신의 그 실수를 일부러 고의였던 것처럼 말한 사실도. 그렇게 스스로의 죄책감을 덜어 내려 했고, 그걸 수단으로 삼아 주위에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심어 왔다는 사실 또한.”
“……그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어. 자신을 원망까지 할 필요가 없었어. 고의가 아니었으니까. 사고일 뿐이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야. 당신, 아직 늦지 않았어.”
“거기까지!”
“……!”
투콰앙-!
무지막지한 검격이 날아왔다. 간신히 막아 냈다. 그러나 치켜든 만년설 뒤에서 라키엘은 시리게 웃었다.
‘됐다.’
쟈빌론이 흥분했음이 느껴졌다. 검격이 강력해졌지만, 그만큼 단순해졌다.
그러니 됐다.
‘이젠 데미안, 너만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서두르라고, 좀.’
자신이 방어를 전담하고, 데미안이 반격을 담당하는 것. 그것이 오늘의 유일한 승리 공식이리라. 라키엘은 그러한 희망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
그곳에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데미안이 있었다.
♣
아프다.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쓰러져 있던 데미안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해 있던 상황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잠시 기절했던 건가.
그러고 보니 떠올랐다. 정신을 잃기 직전, 황태자를 모시고 함께 탈출을 시도했더랬다. 왕녀 아델린과 왕국 근위대 기병을 향해 마주 달려가고 있었더랬다.
그때 뒤에서 섬뜩한 기세가 느껴졌던가.
‘쟈빌론.’
그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급격히 쇄도해 왔다. 황태자를 노리고 있었다. 하여 자신이 먼저 반응했다. 순간적으로 뒤돌아서며 그를 막아섰다. 충격을 흘려낼 겨를조차 없었다. 결국, 한 번의 검격을 정면으로 막아서는 것을 대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눈을 떴다.
참으로 꼴사납게도.
“하.”
웃음이 나왔다.
흘러나온 웃음의 무게만큼 무력감이 엄습해 왔다. 그 무게를 가까스로 치워 내듯 시선을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저만치 떨어진 곳. 그곳에 황태자가 있었다. 쟈빌론도 있었다.
“…….”
황태자를 연이어 후려치는 쟈빌론. 그 사나운 공세를 겨우겨우 막아 내며 버티는 황태자. 신기했다. 기이했다. 소드마스터의 공세를 연거푸 막아 내는 황태자라니. 상상한 적 없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지극히 흉흉하고 위태로운 광경이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황태자의 기적 같은 방어가 연달아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데미안에게는 아니었다.
‘쟈빌론, 저자의 오러가…… 조금씩 살아나려 하고 있어.’
느껴졌다.
까닭 모를 이유로 오러가 사라졌던 쟈빌론의 검. 그 속에 차츰 희미한 광휘가 깃들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오러 특유의 살기가 엄습해 오고 있었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간신히 흔적만 느껴질 따름이지만.
아주 천천히,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 둔다면 불과 1, 2분 이내로 오러가 완벽히 되살아날 듯했다.
그러면 황태자는 끝장이다.
만년설이 아무리 튼튼해도. 황태자가 아무리 기적 같은 방어술을 선보여도. 소드마스터의 오러는 애초에 방어가 불가능하니까. 오직 같은 오러로만 맞서고, 막아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움직여야 해.’
데미안은 떨리는 무릎을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서 황태자를 도와야 한다.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새삼스러운 결의가 가슴을 채웠다.
그만큼 의문 또한 떠올랐다.
‘어떻게?’
황태자를 도울 것인가. 어떻게 저 소드마스터와 대적할 것인가. 물론 답은 알고 있었다.
‘그걸, 해야 할까.’
숨을 몰아쉬었다. 크레모에서 미노타우로스에게 당하며 무력감을 맛보았던 뒤로 자신은 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남몰래 뼈를 깎는 시간을 쌓았다. 그동안 얻어낸 깨달음 또한 있었다. 비약적인 강력함을 발휘할 새로운 마나 운용 기법이었다.
“…….”
하지만 그건 위험하다. 솔직히 망설여진다. 그러나 지금은 망설일 때가 아니다. 해내지 못하면 황태자를 지켜 내지 못할 테니까. 이대로 모두가 끝장이 날 테니까.
그러니까…… 하자.
까드득!
데미안의 어금니가 굳게 다물렸다.
뼈를 깎는 각오로, 마나하트를 불태우는 결의로 데미안이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 흐르던 마나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차츰 더 난폭하게, 정상적인 것과 반대인 역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크그그그그……!
라키엘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그래서 끝까지 잠재워 두고 싶었던 소설 마검황 최강 최흉의 기법. 역혈의 신공 ‘리베르사 심법’이 데미안 카이엔의 가슴 속에서 탄생의 포효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