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41화 (141/468)

141화. 나를 반기는 사람들 (1)

[콩팥 : ……지렸다!]

‘허?’

라키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이 타이밍에 오장육부의 새 멤버가 눈을 뜰 줄은 몰랐다. 그 사이, 알찬 보상 메시지가 시각중추를 야물딱지게 찔러왔다.

[콩팥이 셀프 생일축하 파티를 개최합니다.]

[파티에 참석한 오장육부가 세력 확장(?)을 자축하며 당신에게 1,000 HP를 후원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2,700]

좋다.

일단 보상 세트의 기본인 HP는 챙겼고.

딩동!

[당신은 새로운 오장육부 멤버 : 콩팥(을/를) 획득하였습니다.]

[따라서 향후 진맥 스킬 사용 시, 진맥 대상에 대한 오장육부의 상담형 진단 범위가 확장됩니다.]

[콩팥이 환자의 콩팥과 상담 및 소통하여 질환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이거지!’

라키엘은 내심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새로운 오장육부가 생길 때마다 점점 후원받는 HP의 규모가 늘어났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거기에 이제는 콩팥이 환자의 콩팥과 직접 상담을 할 수 있게 됐다. 정밀한 진료 범위가 확 늘어난 셈이었다.

‘그냥 진맥으로는 종합 소견을 통한 대략적인 병증만 파악할 수 있으니까.’

반면 오장육부가 직접 상담을 하면? 진맥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디테일한 부분까지 진단이 가능하다. 오진 확률이 비약적으로 낮아지는 셈이다.

‘별궁 한의원에 돌아가면 바로 써먹을 수 있겠어.’

황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환자들을 떠올리니 절로 가슴이 바운스 바운스 콩닥거렸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딩동!

또다시 울리는 알림음. 설마 또 다른 보상이 있는 걸까. 그런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와중이었다.

[당신은 콩팥을 일깨움으로써, 오장(五臟)의 수집 완료까지 단 하나의 장기인 비장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오장에 해당하는 장기를 모두 일깨울 시, 그에 걸맞은 수집 퀘스트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육부(六腑)의 장기를 모두 일깨울 시 또한, 수집 특별 퀘스트 보상이 주어집니다.]

[당신의 오장 / 육부 수집 현황]

[오장 (4/5) : 심장(☆), 간장(☆), 폐장(☆), 콩팥(☆), 비장(X)]

[육부 (2/6) : 대장(☆), 위장(☆), 소장(X), 쓸개(X), 방광(X), 삼초(X)]

[수집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그 끝에는 찬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화이팅♡]

“…….”

이건 또 뭐야.

라키엘은 잠시 멍해지는 기분으로 메시지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금방 깨달았다. 이건 바로…….

‘수집 퀘스트?’

한국에서 즐기던 게임에서 봤던 그런 거 같은데. 아무래도 맞는 듯했다.

‘설마 오장과 육부를 다 완성하면 새로운 능력이 생기고 그런 건가.’

제발 그런 거면 좋겠다. 기대감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하지만 아직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차근차근 비장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열심히 할 일을 하는 수밖에.

그렇게 다짐하며 라키엘은 시선을 돌렸다. 보상은 보상이고, 그보다는 당장 눈앞에 골치 아픈 존재가 떡하니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앙부아즈 국왕.’

그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 화려한 차림의 노인이 있었다. 앙부아즈의 국왕이었다. 이쪽을 향해 감사의 예를 표하고서는, 정중한 눈빛으로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탐색의 눈빛이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일단은 무난하게.’

라키엘은 싱긋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야말로 앙부아즈의 합당한 지배자이신 국왕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와 행운 덕분에, 부족한 제가 귀국에 작고도 소소한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어…… 저 또한 무척 기쁜 마음입니다.”

“허허허, 그렇소?”

“물론이지요.”

제발, 제가 지난번에 보낸 편지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 주세요. 장인어른 어쩌고 날려 보냈던 드립 이야기도 언급하지 말아 주십쇼.

라키엘은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이쪽을 보는 앙부아즈 국왕이 더욱 훈훈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쪽의 간절한 바람을 한 큐에 깨부쉈다.

“그나저나, 황태자께서 지난번에 보내셨던 서신 말이오.”

“…….”

으아, 제발.

“그때 황태자께서 서신을 통하여 이쪽을 지칭하시길…….”

“…….”

으아아, 그만.

“장인어…….”

“어흠흠!”

재빨리 헛기침으로 말을 끊었다. 무례를 무릅쓰고 더욱 재빨리 말했다.

“죄송합니다. 당시에는 제가 너무 성급하여 결례를 범하였습니다.”

“…….”

“당시에는 나름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왕녀와 직접 만나고 소통하며, 친분을 위한 사이로만 남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리라는 현명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렇소?”

“예.”

확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서신으로 보냈던 장인어른 드립을 국왕이 언급해 버렸으니, 차라리 정면돌파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러면 의도치 않게 코를 꿰일 수도 있으니까.’

자신도.

왕녀 쪽도.

모두가 오해 속에 코를 꿰이는 수가 있다.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왕녀 아델린에게 아무런 사심이 없다. 그런데 상대의 아버지를 오해와 헛된 기대감의 도가니에 가두어 두는 것은 몹쓸 짓이다. 민폐다.

다른 일도 아니고 혼사를 가지고서 사람을 가지고 노는 셈이 되니까. 그래선 안 된다.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확실하게 선을 긋고 넘어가야 한다.

결심한 라키엘은 비장하게 말했다.

“실로 죄송합니다.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엔 제가 섣부르고 치기 어린 마음에 크나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섣부른 실수였다는 말이오? 나를 장인어른이라 지칭한 것이?”

“예.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면, 내 딸을 황도까지 불렀던 것도 의미 없는 일이 된 셈이겠구려.”

“면목이 없습니다.”

사실은 댁의 따님을 살려 준 거라고. 담석의 위험을 제거해 준 거라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괜한 변명을 구차하게 덧붙이긴 싫었다. 그래서였다. 차라리 쌍욕을 먹고 말자고 다짐하며 나름 각오를 다졌다.

한데 돌아오는 국왕의 반응은…….

“허, 허허허. 허허.”

“…….”

“허허허허허.”

“…….”

혹시 쌍욕을 장전하며 빡쳐서 웃는 걸까. 잠깐 움찔했지만, 아니었다. 이어지는 국왕의 말은 예상과 달리 지극히 온화한 것이었다.

“역시 젊음이란 게 좋구려.”

“……예?”

“나도 그랬소. 쉽게 불타오르고, 쉽게 꺼졌지. 특히 이성을 대할 때면 말이오. 원래 젊음이라는 것이 그런 법이니, 딱히 원망을 하지는 않겠소. 다만-”

국왕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어 왔다.

“황태자, 그대의 쉬운 변심에 내 딸이 결례를 범하였을까 싶어 오히려 염려가 되오.”

“결례를 말입니까?”

“그렇소.”

“예를 드시자면?”

“내 딸의 성정이 워낙 괄괄한 터라, 혹시 남몰래 폭행을 당하진 않으셨소?”

“당했습니다.”

냉큼 말했다.

“딱 500대쯤 맞았습니다.”

정말이었다. 담석을 없애 주기 위해 매일 충격파를 맞아 줘야 했으니까. 한데 국왕은 그걸 농담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허허허, 그렇게나 얻어터지고도 멀쩡하시다니. 황태자께선 소문과 달리 무척 튼튼하신 듯하오.”

“예, 저도 무척 다행인 점으로 생각 중입니다. 그나저나-”

다행히(?) 서신으로 저지른 장인어른 호칭에 대한 일은 그럭저럭 무마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니 이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탈압박(?)을 시전할 때다. 타이밍을 감지한 라키엘은 입술에 침을 촵촵 발랐다.

“혹시, 제가 어찌하여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들으셨습니까?”

“물론.”

국왕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딸아이에게 들었소. 내전 발발 소식을 듣자마자 참전을 결정해 주셨다고?”

“예.”

“그 또한 고맙게 생각하오. 일부러 정체를 감추고서 우리 측 부상병들을 긍휼히 보살펴 준 것을 말이오. 또한, 황도로 귀국하던 중에 쟈빌론, 그자에게 피랍되어 고초를 겪은 일에는 심심한 위로를 드리오.”

“별말씀을. 그럼 쟈빌론, 그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험 재료로 쓰일 예정이오.”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탈압박을 겸한 화제 돌리기를 시전하는 김에 제일 궁금했던 쟈빌론의 근황을 물었는데, 상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자는 반역자외다. 자고로 반역자에게는 용서도, 영광스러운 죽음도 허락할 수 없는 법이 아니겠소? 또한, 그는 귀하디귀한 소드마스터이기도 하오.”

“설마.”

“눈치채셨소?”

“어떻게든 그자에게 불명예스러운 최후를 안겨줌이 대외에 모양새가 좋을 것이지만, 단순히 처형을 하기엔 아까운 존재라는 뜻이시로군요. 맞습니까?”

혹시나 하고 떠오른 가능성을 말했다.

국왕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정확하오. 소드마스터의 강인한 신체와 마나에 대한 감응력은 갖가지 마법 실험에 지극히 유용하게 쓰일 것이오.”

“그렇군요…….”

“어차피 불쌍하게 여길 필요도 없는 자요. 실험 도구로 비참하게 맞이할 최후가 그자에게 어울릴 테니까.”

“…….”

문득, 이쪽에게 매달리듯 집착하던 쟈빌론이 떠올랐다. 국가와 민족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포부를 말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적이었지만 잠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쯧, 하여간 예술학교 입학시험이 문제라니까.’

그것만 합격했어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텐데. 이쪽 세상이나 지구나 입시 시험이 문제다. 그런 생각에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요.”

“허허. 어차피 슬슬 일어나려던 마당이외다.”

……이로써 탈압박 마무리까지 성공.

앙부아즈 국왕이 흔쾌히 물러난 후, 라키엘은 침대에 누웠다. 멍하니 화려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황도를 떠나온 이후 몇 개월 만에 구경하는, 텐트 아닌 제대로 된 건축물 실내의 천장이었다.

비로소 조금씩 실감이 났다.

‘내전, 진짜로 끝났구나.’

정말로 황도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절로 가슴이 뛰었다.

황도로의 귀환 준비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 출발하고 싶었지만, 앙부아즈의 국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제국의 황태자, 게다가 내전의 승부를 결정짓는 전투에서 가장 큰 공훈을 세운 영웅을 허술하게 보낼 수 없다는 주장을 한 까닭이었다.

덕분에 사흘의 준비를 거친 후.

퍼펑! 펑! 퍼퍼펑!

황도를 향해 출발하는 날, 성대한 폭죽이 왕국의 왕도 앙부즈의 하늘을 수놓았다. 수천수만에 달하는 인파가 환호성을 보내고, 색색의 종이 가루를 뿌렸다. 수백 다발의 꽃송이가 날아왔다. 도합 500기의 정예 기사단이 호위로 붙었다.

“……덕분에 황태자께선 무척 부담스러우시겠군요.”

“저를 잘 아시네요.”

“아무렴요.”

어깨를 으쓱거리며 싱긋 웃는 왕녀 아델린. 마차 탑승을 앞둔 라키엘은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당부했다.

“어쨌거나, 제가 써드린 처방전대로 탕약 복용을 꼬박꼬박 하셔야 합니다. 하루도 빼먹지 말고 말입니다.”

“아무리 쓰고 맛이 없더라도 말이겠죠?”

“물론이지요. 그래야 담석이 다시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대신…….”

“복용 후에 사탕 하나까지는 허락. 맞죠?”

“역시 잘 아시네요.”

“아무렴요.”

더욱 싱긋 웃는 왕녀 아델린.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묘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황태자께는 항상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 그렇습니까?”

“네에.”

“…….”

뭔가 수상하다. 왜 이렇게 갑자기 친절하게 사근사근하지? 왕녀가 저럴 사람이 아닌데. 묘하게 쌔한 느낌이 왔다. 역시나(?)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듣자 하니, 황태자께서 제 아바마마께 참으로 참신한 변명을 하셨더라구요?”

“…….”

“당시에 황태자께서 섣부르고 치기 어린 마음에 크나큰 실수를 하셨다고요? 당시에는 나름 진심으로 제 아바마마를 감히 장인어른이라 불러보았는데, 저와 직접 만나고 소통하여 보니 친분을 위한 사이로만 남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라는 현명한 결론을 얻었다구요?”

“…….”

“어머나 어머나, 이런? 그럼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냥 가만히만 있었을 뿐인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차여 버린 거네요?”

“…….”

“게다가, 뭐요? 내가 성질을 내면서 폭행을 했다고요? 그것도 500대씩이나?”

“…….”

위험하다. 날 보는 눈동자에 서린 저 미묘한 기색은…… 살기다!

라키엘은 잽싸게 반응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함께하며 보람찼습니다! 귀국의 앞날에 영광과 번영이 있기를! 그럼 전 이만!”

빛의 속도로 마차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뻗어온 왕녀의 손아귀에 옆구리 옷깃을 붙잡혀 버렸다.

“어딜 냅다 도망치시려고.”

“걹?”

당황스러웠다. 이쪽보다 키도 크고, 완력 또한 우월한 왕녀였다. 강건한 손아귀를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녀의 폭탄선언도 막을 길이 없었다.

“다음에는 저한테도 기회 좀 주시고요.”

“……예에?

기회?

다음에는?

이건 무슨 뜻일까.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왕녀는 그저 뜻 모를 미소만을 입꼬리에 매단 채로 이쪽을 놓아 주었다. 송별 인파 속으로 자연스럽게 섞여 멀어졌다.

“…….”

그렇게 마차에 올랐다. 성대한 인파의 함성 속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질서정연한 정예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왕도를 출발했다. 귀환의 여정에 올랐다.

여정은 편안했다. 마차는 넓고, 조금의 덜컹거림도 없을 정도로 쾌적했다.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비행기 1등석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왕녀가 남긴 싱숭생숭한 뜻 모를 말에도, 쾌적하기 짝이 없는 안락한 마차의 승차감에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신경 쓰이고 걱정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데미안.”

여정 첫째 날의 저녁.

라키엘은 데미안을 불러들였다.

이제는, 녀석의 리베르사 심법 각성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할, 두근두근 살 떨리는 순간이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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