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53화 (153/468)

153화. 신개념 디스토마 치료법 (1)

“폐흡충, 폐 디스토마(Paragonimus westermani)입니다.”

겨울이라 하기엔 늦고 봄이라 부르기엔 다소 이른 계절. 서늘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이 공존하는 별궁 정원 한쪽에서 라키엘의 진단이 떨어졌다.

그가 뽀복이의 불꽃 지느러미 디스플레이를 가리켰다. 그곳에 강낭콩처럼 타원형으로 시뻘겋게 생긴, 통통한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보이지요? 이게 바로 폐흡충이라는 기생충입니다. 말 그대로 당신의 허파 속에 자리를 잡고서 온갖 해악을 끼치는 중이지요. 당신을 숙주로 삼아서 말입니다.”

“…….”

엘프, 실비아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의 눈길이 폐흡충을 향했다. 눈길이 닿는 순간 폐흡충이 꿈틀. 그녀 또한 저도 모르게 흠칫.

‘저런 게? 내 몸속에 있다고?’

의문이 피어났다.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환상종이 보여주는 결과물이니, 일단 믿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저런 괴악한 기생충이 자신의 몸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지가 이해가 안 됐다.

“이거, 사실인가?”

“예.”

“어째서?”

“예?”

“나는 사악한 흑마법 따위에 당한 적이 없어. 부두술사 같은 놈들의 저주를 받지도 않았고. 악령이 나타나면 그저 베었지. 한데, 내가 저런 기생충에게 농락당하는 중이라고? 어떻게? 무슨 수로?”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은 일족의 외부 대소사를 처리하는 집행자였다. 말 그대로 일족이 외부와 겪는 갈등, 마찰, 각종 복잡한 이해관계의 일선에서 일을 해결하는 존재였다.

당연히 강력했다.

인간들이 말하는 소드마스터? 능히 겨룰 자신이 있었다. 대마법사? 그들의 마법에 쉽게 당할 정도로 물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기생충이라니. 도무지 알 수가 없군.”

“당연합니다. 알 수 없는 게.”

“……뭐?”

실비아의 한쪽 눈썹이 꿈틀.

라키엘의 태연한 설명이 이어졌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폐흡충의 유생을 섭취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유생?”

“예.”

“그게 뭐지?”

“뭐, 폐흡충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설명을 드리자면…….”

라키엘이 심호흡을 했다. 이윽고 태연한 얼굴로, 전혀 태연하지 않은 내용을 속사포처럼 쏘아냈다.

“우선 폐흡충의 알은 엄청나게 작습니다. 100나노미터, 그러니까 0.1마이크로미터쯤 되지요. 그런 놈들이 섬모유충(miracidium) 상태로 물속을 떠돌다가 1차 숙주인 다슬기 등등의 몸속에 침투합니다. 그 안에서 여차저차, 분열도 하고, 짝짜꿍도 하고, 유미유충이라는 걸로 짜잔, 변신도 하고.”

“무슨…….”

“어쨌건 그 뒤에는 2차 숙주인 민물 게나 가재가 다슬기를 잡아먹으면 또 거기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종 숙주를 기다리지요. 뭐, 가끔은 멧돼지 등등의 동물을 한 번쯤 더 거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잠깐. 그럼 설마?”

“눈치채셨습니까?”

실비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듣다 보니 문득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방금 그쪽이 말한 민물 게, 가재, 멧돼지 등을 잡아먹으면?”

“빙고.”

라키엘이 방긋 웃었다.

“굽거나 찌거나, 어떤 형태로든 뜨겁게 조리해서 먹으면 괜찮습니다. 제아무리 폐흡충이 지독한 놈들이라도 보글보글 끓는 물이나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으니까요. 문제는 당신이 말한 민물 게, 가재, 멧돼지 고기 등을 날것으로 먹을 경우에 생깁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엘프시죠. 식물을 지그으으윽히 사랑하시는. 그래서 야영을 하면서도 불을 피우지 않죠. 불을 피우려면 나무를 태워야 하니까. 심지어 모든 엘프는 화염 마법을 사용할 줄도 모르지요. 그따위 악독한 마법을 배웠다간 자칫 숲이나 덤불을 태우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니까.”

“…….”

“이해합니다. 야영을 하면서 불도 못 피워, 화염 마법도 못 써. 휴대하고 다니는 식량이 간당간당 바닥을 드러낼 때도 있겠지요? 그럴 때면 뭐, 멧돼지 한 마리쯤 잡아서 육회 슥삭. 쐬주가 없으셨던 게 안타깝군요.”

“쐬주가 뭐지?”

“그런 게 있습니다. 어쨌건.”

라키엘이 입가에서 미소를 지웠다.

“야영하며 드셨을 날것들이 문제가 된 겁니다. 덕분에 폐흡충의 유충이 당신 몸속으로 들어갔고, 허파에 자리를 잡은 거지요.”

“그런데, 이게 그렇게 호들갑이나 떨 정도로 큰 문제라도 되는 건가?”

실비아가 반문했다.

라키엘이 여유롭게 반박했다.

“어젯밤 처음 만났을 때 말입니다. 그때부터 숨에서 희미한 냄새가 나더군요.”

“……뭐?”

“기관지, 허파 조직 곳곳에 염증이 생겨나 있을 겁니다. 그런 염증을 지닌 사람 특유의 숨 냄새가 있습니다. 게다가 숨소리도 조금 이상했습니다. 어딘가 공기가 살짝 새는 듯한 거슬리는 소리? 그거, 기흉의 전조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었다.

덕분에 만나자마자 이 엘프 여자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단박에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눈치를 보며 기회를 살폈다. 마침 자신의 목에 단검을 겨누던 그녀의 손목이 이쪽의 쇄골 어름에 살짝 닿았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진맥 스킬을 사용했다. 그녀의 병변을 낱낱이 판별할 수 있었다. 병증의 원인을 찾아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그녀의 몸에서 생겨날 일들을 예측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일단, 지금 현재 폐흡충은 당신의 기관지와 소기관지 어름에 완전히 정착해서 염증세포 침윤을 유발하는 중입니다. 제법 기세가 맹렬하지요. 덕분에 당신의 허파 속에서 감염이 지속되었고, 결국엔 섬유조직으로 발전된 충낭(worm capsule)이 생성되어 버렸습니다.”

“충……낭?”

“말 그대로 벌레 주머니죠.”

“…….”

“허파 속에 생겨난 충낭, 그 안에 폐흡충 두 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일종의 커플이랄까요. 화나죠? 짜증 나죠? 우리도 커플 되기가 쉽지 않은 인생인데. 빌어먹을 벌레 x끼들.”

“…….”

“크흠, 흠!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라데이션으로 흥분해서 그만. 어쨌건, 충낭 안에는 폐흡충뿐만이 아니라 고름, 숙주세포, 괴사된 찌꺼기, 충란까지 갖가지 잡것들이 버라이어티하게 담겨 있습니다. 가히 효율적인 인체 파괴 패키지죠.”

“그럼, 그게 많이 나쁜…… 건가?”

“예.”

“얼마나?”

“일단 오한과 미열 증상이 반복될 겁니다. 심한 기침과 객혈을 하며 피로감을 느끼고, 전신쇠약 증세까지 따라오게 되지요.”

“그거…….”

“이미 겪으셨죠?”

“어느 정도는.”

실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이 인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겠다. 실제로 최근 그녀는 전에 없던 심한 피로감을 느끼던 중이었다. 아침마다 열과 오한이 났고, 가끔은 기침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가끔은…… 기침에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난 그저, 최근 너무 쉼 없이 활동을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자신이 너무 무리를 했노라고. 너무 오래 쉬질 못했다고. 이번 일까지 마치면 당분간 휴식을 취해야겠노라고. 그러면 자연스레 나을 거라고.

안일하게 여겼더랬다.

한데 오산이었다.

그냥 피로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거 그냥 놔두면 더 심각해질 겁니다. 갖가지 합병증 풀세트 당첨이 거의 확실하니까 말이지요.”

“합병증?”

“예. 기관지염, 늑막염, 기흉, 녹흉 등등. 허파와 관련된 온갖 질환들이 다 생길 겁니다. 그렇게 염증이 생기고 회복되고를 반복하다가 마지막 최종 테크트리로는 폐암이 완성될 테고 말입니다.”

“폐암……?”

“불치병입니다. 죽을 겁니다.”

“…….”

“자. 그러니 어떻습니까. 제가 어젯밤에 드렸던 제안 말입니다. 넉넉한 금전과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해서 불탄 숲을 복구해 드리는 거. 그걸 받아들이시면 어떨까요?”

“거부한다면?”

“폐흡충 치료도 안 해드리는 거고.”

“…….”

실비아는 할 말을 잃었다. 비로소 깨달았다. 이 인간, 자신의 병을 볼모로 삼아 협상 카드로 쓰고 있는 거다!

‘무슨 이런…….’

지독한 인간이 다 있을까. 그 수단과 의도의 교활함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동시에 또 깨달았다. 이미 자신이 거미줄에 걸렸다는 것을. 저 제안을 거부할 수 없으리란 사실 또한.

‘……장로님께 혼날 텐데.’

아마 일족의 장로는 저 인간의 보상 방법에 불만을 표하실 것이다. 정성이 없노라고. 사죄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분명 그런 반응을 보이시겠지.

하지만 실비아는 이번만큼은 저 인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죽기 싫어.’

환상종 덕분에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된 저 인간의 진단. 저 말이 사실이라면 끔찍한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다.

그건 싫었다. 기껏 200년을 공부하고 훈련하고 노력해서 집행자가 되었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도 전에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자신은…… 아직 솔로가 아닌가 말이다!

‘아직 제대로 이성을 만나 보지도 못했어. 매일 훈련에 매진하느라고. 부모님께선 항상 말씀하셨지. 연애는 나중에 집행자가 되고 나서 해도 된다고. 그때 실컷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집행자가 되고 나니 오히려 이성과 교제할 시간이 더 없어졌다. 매일 일족의 분쟁과 마찰을 해결하러 현장을 뛰어다녀야 했다. 그런 와중에 연애는 사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또 말씀하셨다. 지금이 취업 초기라서 바쁜 거라고.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연애는 나중에 상급 집행자가 되고 나서 해도 된다고. 그때 실컷 할 수 있을 거라고.

“…….”

엄마.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그러다간 나 할머니 장로 될 때까지도 연애 한 번 못해보겠어.

까득.

실비아는 굳게 이를 갈며 다짐했다. 나중에 장로님께 혼나더라도 이번만큼은 저 인간의 제안을 따르자고. 그렇게 분쟁을 해결하고, 자신의 건강도 되찾자고.

그래서였다.

“그럼…… 내가 그쪽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말이야.”

“네. 궁금한 게 있으신지?”

“으음. 혹시 어떤 방법으로 폐흡충을 치료할 거지?”

궁금했다.

불안하기도 했다.

황태자라는 이 인간, 온몸에서 온갖 약초 냄새가 가득 났다. 모두가 소중하고도 안타까운 식물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걱정이 되었다.

“설마…… 소중한 식물들을 뽑고, 자르고, 말리고, 끓이거나 해서 만드는 물약 따위를 내게 먹이려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보통 인간의 의사라고 불리는 자들이 흔히 쓰는 치료 방식을 떠올렸다. 그건 싫었다. 끔찍했다. 아무리 건강을 위해서라지만 식물을 희생시켜야 한다니. 그런 악독한 일을 감수하는 건 꺼려졌다. 그렇기에 치료를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을 하고 싶었다.

물론 라키엘은 그녀의 염려를 진즉부터 캐치하고 있었다.

“아. 혹시 제가 식물을 괴롭힐까 봐 그러시는 거지요? 그 문제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해줄 처방에는 식물이 하나도 안 들어갈 겁니다. 적어도 직접 섭취하는 처방에는 말이지요.”

“그런가? 정말?”

“예.”

라키엘이 희미하게 웃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는 듯이.

참으로 좋지 않겠느냐는 듯이.

정원 한쪽에서 뒹굴거리며 질겅질겅 되새김질을 하던 미노타우로스, 우루스를 가리켰다.

“저 친구가 옻나무 먹고 만들어 주는 옻똥, 그러니까 옻 끙까로 ‘우(牛)루왁 커피’를 달여 드시면 될 거지 말입니다?”

그의 미소가 더욱 화사하게 빵긋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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