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신개념 디스토마 치료법 (2)
“그러니까 옻 끙까로 ‘우(牛)루왁 커피’를 달여 드시면 될 거지 말입니다?”
“…….”
라키엘이 빵긋 웃었다.
실비아가 허허 웃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 x끼가?’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쌍욕을 발사할 뻔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쪽은 진지하고 심각했다. 자신의 허파에 끔찍한 기생충들이 똬리를 틀었노라고, 장차 치명적인 병이 줄줄이 생길 거라고 했다.
불안했다. 두려웠다. 허무하게 죽는 건 싫었다. 그래서 저 인간의 제안을 수락하며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치료법을 물었다. 식물을 괴롭히지 않을 거란다.
‘그런데 뭐? 우루왁? 옻똥? 그러니까, 소똥 달인 물을 마시라고?’
생각할수록 기도 차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설마 지금, 날 희롱하는 건가?”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어느새 형형하게 살벌해진 눈길이 라키엘의 전신을 저며낼 듯이 압박했다. 자신은 절박하고 진지했는데, 그 모든 것들이 농락이었다고 생각하니 얼음장처럼 서늘한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이었다.
“제가 장난을 치는 걸로 보입니까, 지금?”
되돌아오는 황태자의 목소리가 잔뜩 굳어 있었다. 덕분에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한쪽 눈썹을 찡그려야 했다.
“……뭐?”
“그러니까, 제가 지금 그쪽을 의미 없이 농락하는 걸로 들리느냐는 말입니다.”
“…….”
당연하지.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한데 어쩐지 그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쪽을 마주 보는 황태자의 눈빛과 표정이 뜻밖에도 매우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거 장난 아닙니다. 우루왁 커피, 정말로 드셔야 합니다.”
“…….”
“저도 당신을 데리고 장난이나 치고 있을 시간 없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을진 모르겠는데, 제가 시간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입니다. 당신에게는 ‘잠시’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짧은 하루라는 시간도, 제게는 엄청나게 크고 소중합니다. 한데 그런 제가, 지금 당신을 희롱이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아니, 그건…….”
“압니다. 소똥을 달여서 마시면 나을 거라니, 믿기지가 않겠지요. 황당하겠지요. 사이비 돌팔이처럼 들렸을 테고. 맞습니까?”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키엘이 다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엄연히 효과가 있는 치료법입니다. 단순한 소똥이 아니니까요. 옻나무를 먹은, 그냥 소가 아닌 미노타우로스의 똥이니까요.”
“…….”
똥…….
실비아는 문득 울고 싶어졌다. 눈물이 고이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저 인간이 오히려 정색하고서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아무튼 더욱 그랬다.
하지만 라키엘은 진지했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우루왁 커피’에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하지. 이건 그냥 짐작으로 때려 박은 처방이 아니니까. 무려 진맥 과정에서 허파가 직접, 저 엘프의 허파에 똬리를 틀고 있는 폐흡충과 상담을 하며 낚시질을 한 끝에 알아낸 고급 정보의 결과물이니까.’
정말이었다.
사실은 예전, 한국에서 폐흡충 환자가 한의원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옻이니, 소똥이니 하는 따위의 처방을 하지 않았다. 당시 자신이 해준 처방은 간단했다.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세요.’였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폐흡충을 치료하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한의원이 아닌, 병원에 가는 거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진단을 받고, 약국에 가면 된다.
‘그러면 폐흡충 치료약을 주거든. 프라지콴텔(Praziquantel)이라고, 그런 성분이 담긴 약들이 있으니까.’
그냥 의사와 약사의 처방에 따라 그 약을 먹으면 된다. 뭔가를 더 할 필요도 없다. 그것만 먹으면 정말로 끝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한테는 묘한 종특이 있단 말이지. 특히 어르신들 말이야. 몸 어딘가가 아프거나 불편해지면? 일단 먹는 걸 찾아. 장염에 좋은 음식이라든가, 관절에 좋은 음식이라든가 등등. 자꾸 뭔가를 먹어서 치료하려고 들거든.’
그거 참 안 좋은 습관이었다. 특히, 그런 분들을 노리는 사이비 돌팔이들에겐 너무나 먹음직스러운 습관이었다.
‘쯧.’
그때 자신을 찾아온 폐흡충 감염 환자도 그랬다. 다른 용하다는 사람한테 가서 기혈 치료니, 혈관 속을 깨끗하게 해줘서 벌레를 죽이는 자연치유법이니, 기운을 북돋니 마니, 그런 근본 없는 처방만 받다가 치료 시기를 많이 놓친 분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
명심해야 한다.
폐흡충, 간흡충, 그러니까 디스토마 류를 기 치료니 체질 치료니 하는 걸로 해결해 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기꾼이다. 그런 사람들이 꺼내는 유혹은 가뿐히 뿌리치고 큰 병원으로 뛰어가야 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해야 한다.
‘어쨌건, 방금 내가 말한 옻나무 우루왁 커피도 뭐, 한국에서였다면 절대로 생각도 안 했을 치료법이긴 한데.’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한국에서 누가 자신에게 저런 치료법을 제시했다면? 그 자리에서 정수리에 장침을 꽂아 버렸을 것이다. 아니, 경찰부터 불렀을지도 모른다. 여기 사기꾼이 있다고. 당장 수갑 채워서 잡아가라고.
그런데 지금, 자신이 이런 처방을 내려주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젯밤, 진맥 스킬의 결과가 알려주는 정답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그는 자신의 내면을 향해 물었다.
응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허파의 공적을 칭송합니다.]
[심장 : 이야아 진짜. 우리 허파한테 이런 재주가 있었네?]
[허파 : 허어…… 파핳……ㅋ]
[대장 : 설마 허파 형님이 거기서 폐흡충을 낚을 줄은 몰랐지 말입니다.]
[간장 : 아니 진짜. 어떻게 폐흡충이랑 상담을 할 생각을 했지?]
[위장 : 난 폐흡충이 그런 취향일 거라고는 진심 생각도 못 했음ㅋㅋ]
[콩팥 : 누가 그걸 예상이나 했겠냐고 아ㅋㅋㅋ]
[모두의 감탄을 받은 허파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뿌듯해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비보이로 만들고 싶을 때면 알보칠 말고 칭찬을 잔뜩 발라봅시다.]
“…….”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문득, 어젯밤 실비아를 진맥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허파가 뜻밖의 맹활약을 했다.
우선 허파는 실비아의 허파와 면담을 시도했다. 거기까지는 진맥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으레 거치던 과정이었다. 한데 그다음부터였던가.
‘허파 녀석, 갑자기…… 완전 뜬금없이 구애의 춤을 추기 시작했지.’
기관지를 요염하게 묶었다.
허파꽈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뭘 하려는 건지 몰라서 일단 두었다. 그런데…… 어이가 없게도 그 구애의 춤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했다!
‘저 엘프의 허파에 도사리고 있던 폐흡충의 눈에 콩깍지가 씌었지. 허파의 구애의 춤 덕분에. 완전 반해서.’
그때부터였다.
허파가 폐흡충과 상담(?)을 시작했다.
이미 허파에게 대한 호감도 최고점을 찍은 폐흡충이었다. 알아서 척척 상담에 열심히 임해 주었다.
덕분에 폐흡충이 좋아하는 색깔, 별자리, 선호하는 장르, 장래희망은 물론이고 MBTI와 사주팔자까지 스스로 다 불게 만들었다. 그런 정보 중에는? 폐흡충이 가장 극혐하는 것도 있었다.
‘옻나무 냄새, 특히 옻에 많이 들어 있는 주성분인 우루시올(urushiol)을 제일 싫어한다고 했지.’
세상에서 제일 싫단다. 특히, 강력한 소화기관을 지닌 초식동물이 섭취하고 분해한 우루시올이 제일 극혐이란다. 차라리 연쇄살인마가 더 좋을 지경이라나. 그런 방식으로 정제된 우루시올 냄새를 맡으면서 살 바엔 차라리 차가운 바깥세상으로 가출해서 콱 죽고 말 거라고도 했다.
그렇듯, 허파가 물어다 준 고급 정보 덕분이었다. 실비아의 허파에 똬리를 튼 폐흡충을 몰아낼 치료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우루시올이 가장 많이 함유된 식물은…… 뭐니 뭐니 해도 참옻나무지. 그리고 강력한 소화기관을 지닌 초식동물이라면…… 우루스만큼 제격인 녀석이 있을까.’
라키엘의 시선이 옆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뒹굴거리는 우루스가 있었다. 녀석은 배를 하늘로 보인 채 우물우물,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침에 잔뜩 먹인 옻나무를 소화시키고 있는 거겠지.
“어쨌건, 저 녀석이 생산해 주는 끙까를 달여서 마시면 될 겁니다. 물론 행복한 맛은 아니겠지만 뭐,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쓴 법 아니겠습니까?”
“…….”
라키엘은 싱긋 웃었다. 반면 실비아의 구겨진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소똥이라니. 심지어 미노타우로스 똥이라니. 그걸 달여서 마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끔찍했다. 절벽에 매달려 애원하는 심정으로 그녀는 물었다.
“저기, 그쪽이 말하는 폐흡충, 그걸 치료할 방법을 다 믿기는 하겠는데…….”
“하겠는데요?”
“혹시 말이야. 다른 방법은 없을까?”
“예?”
“소똥……을 달여서 마시는 것 말고 다른 방법 말이지.”
“아, 차마 소똥 달인 물은 못 마시겠다는 말씀?”
“어.”
실비아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키엘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인자하게 웃었다.
“그러시겠지요. 저 같아도 소똥 달인 물을 선뜻 마시진 못할 테니까. 끔찍할 테니까. 그래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말입니다.”
“뭘?”
“너무 놀라실까 봐 조금 전에는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던, 폐흡충의 다른 위험성이 있거든요.”
“다른…… 위험성?”
“예. 혹시 이소 폐흡충증(ectopic paragonimiasis)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들어봤을 리가.
실비아는 희미한 불안감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라키엘의 미소가 한결 인자해졌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말은 결코 인자하지 못했다.
“이소 폐흡충증이라는 건, 원래 허파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 흡충이 전혀 엉뚱한, 신체의 다른 부위에 자리를 잡아 버리는 걸 뜻합니다. 예를 들자면, 여기.”
라키엘의 손이 실비아의 배를 가리켰다.
“복부 폐흡충증(abdominal paragonimiasis)은 흡충이 복강에 있는 장기에 랜덤으로 침투하는 걸 말합니다. 창자 안을 엉망으로 만든다거나, 간에 달라붙어서 충낭 구멍을 뚫어 대고 간에 고름덩어리를 차곡차곡 쌓아 준다거나. 그런데 가끔은 말입니다. 흡충이 배가 아니라 또 다른 곳에도 들어가곤 하거든요?”
“……그게, 어딘데?”
“머리.”
“……!”
움찔!
라키엘의 손가락이 실비아의 미간을 가리켰다. 실비아의 어깨가 흠칫했다.
“최악은 뇌 폐흡충증(cerebral paragonimiasis)입니다. 말 그대로 머리 안에 흡충이 들어가 버려요. 그런데 머리 안에 뭐가 있죠? 뇌가 있겠죠. 한데 뇌 속에서 벌레가 탭댄스를 추면 사람이 어떻게 되죠?”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는 뭐가 어떻겝니까. 그냥 엿 되는 거지.”
“…….”
“전간발작, 두통, 이런 건 연습게임 정도인 거고. 더 심각하게는 반신불수, 편마비, 시각장애, 뇌막염이 생기지요. 그런데 거기서 더 최악은 뭔지 아십니까?”
“또…… 있어?”
“뇌에서부터 시신경을 타고 눈알에 들어가는 겁니다. 폐흡충이.”
“…….”
꺄아아아앙아악.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비명을 꽤액 질러 버렸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치료든지 열심히 받겠다고. 협력하겠다고.
덕분에 그날 저녁, 그녀는 로라시아 대륙의 도도하고도 장구한 역사 속에서, 최초로 미노타우로스 끙까를 후루룩 달여 마신 기록적인(?) 엘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