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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155화 (155/468)

155화. 신개념 디스토마 치료법 (3)

실비아.

너는 대자연의 하나로서, 일족의 아이로서, 아름다운 것을 취하며, 먹고, 누릴 것이니라. 자연이 너에게 허락하는 최후의 숨결까지. 그 모든 순간에.

“…….”

엘프족의 집행자, 실비아는 감았던 눈을 떴다. 자신의 앞에 놓인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새하얀 그릇이 있었다. 그릇에 담긴 고동색 액체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냈다. 어쩐지 심각하게 구리구리 구수한(?) 향기와 함께였다.

‘후우,’

그녀는 메슥거리려는 속을 억눌렀다. 한편으로 내심 투덜거렸다. 어머니, 저 아름다운 것만 먹고 취하고 누릴 거라면서요. 대자연의 일부라면서요. 그런데 혹시, 그 아름다운 대자연에 이런 것도 포함되는 거였나요.

‘인생 진짜.’

설마 자신이 이런 걸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미노타우로스가 질겅질겅 씹어 삼킨 옻나무 끙까를, 말리고 볶아서 달여낸 물 같은 걸 마시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뭐 합니까?”

“…….”

테이블 건너편에서 은근한 재촉이 날아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빙글빙글 웃는 인간이 보였다. 숲을 불태운 죄인, 황태자였다.

“식으면 약효 떨어집니다. 지금 바로 드셔야지요.”

“그, 그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요?”

“…….”

“쓰읍. 우리 집행자님, 그렇게 안 봤는데.”

“…….”

“아프지 마시라고 내가 진짜 정성껏 채취해서 가공한 건데.”

“…….”

“진짠데.”

라키엘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정말로 진짜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우루스의 끙까였다. 그걸 채취하고 가공하는 일은 진심 장난이 아니었다. 일단 끙까 사이즈만 해도 사람만큼 컸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랬다!

그걸 채취해서 적당한 크기의 경단으로 빚었다. 그늘에 말리고, 아궁이에 구웠다. 적당히 구워진 끙까를 곱게 갈았다. 아니, 로스팅(?)했다.

본격 폐흡충 치료 포션, ‘우루왁 커피’의 첫 완성이었다.

‘뭐, 이건 루왁 커피처럼 동물 학대도 아니니까.’

사실 한국에 있을 땐 루왁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없는 자신이었다. 그걸 좋아하는 사람에겐 취향이니 간섭할 생각은 없었지만, 굳이 동물 끙까를 달여서 마시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 학대받는 동물이 조금 불쌍하기도 했고.

그는 잠깐 떠오르는 상념을 털어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마시겠다면서요. 협조하신다며. 덕분에 기껏 고생고생해 가면서 이걸 달여왔는데, 이제 와서 못 드시겠다?”

“아니, 그건 아니고…….”

“아 괜찮다니깐. 일단 잡숴 봐. 응? 츄라이, 츄라이.”

“…….”

실비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여기까지 온 마당이었다. 돌아갈 길은 없다. 각오를 다진 그녀는 그릇을 들었다. 사약 마시듯 꿀꺽, 삼켰다.

“……붑!”

뿜을 뻔했다. 뿜고 싶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이런 반응을 미리 예상한 건지, 황태자가 잽싸게 손을 뻗어 입을 틀어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어요! 삼켜!”

“……급! 븝!”

“옳지, 잘한다! 꿀꺽!”

“뀕……!”

해냈다. 삼켰다! 어머니, 저 해냈습니다!

실비아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대신 라키엘의 손을 치우자마자 격한 기침을 했다. 억지로 약을 삼키면서 사레가 들린 까닭이었다.

“……컥! 쿨룩! 케욱! 쿡!”

격한 기침이 연달아 나왔다. 사레가 심하게 들린 탓일까. 그런데 점점 이상했다. 보통은 사레가 들리면 처음에만 기침이 나오다가 곧 멎는 법인데, 이번엔 어쩐지 달랐다. 기침이 멎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격해졌다?

“콜록! 쿨룩! 커허으윽…… 쿨룩! 컥!”

기침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괴로웠다. 뭔가가 가슴속을 쥐어짜는 듯한 느낌마저 났다. 아팠다. 답답했다. 숨을 쉬기가 힘겨워졌다. 이건 정말로, 확실히, 이상했다!

‘설마…… 독?’

실비아는 가슴이 철렁하는 섬뜩함을 느꼈다. 자꾸만 더욱 격해지는 기침의 고통 속에서 서늘한 직감이 발동했다.

숲을 불태운 황태자. 그에게 보상을 요구하러 온 자신. 그러니 황태자에게 자신은 그저 성가신 상대였을 텐데. 차라리 없어지면 좋을 존재였을 텐데.

그런데 대체 나는 뭘 믿고…… 저 인간을 신뢰했던 걸까.

‘머, 멍청한…… 내가…… 속았어.’

섬뜩한 직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독이다.

확실하다.

황태자가 숲을 불태운 책임을 회피하고, 성가신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독살을 시도하는 거다. 폐흡충이니 뭐니 하는 걸로 자신을 속인 거다. 그런 거다. 이 모든 게, 지독하게 사악한 계략이었던 거다!

‘……감히!’

실비아의 눈이 번득였다.

확신이 분노로 바뀌었다.

그녀가 이를 갈았다. 더욱 격해지는 기침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리춤의 단검을 뽑았다. 황태자의 목을 단번에 긋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계까지 격해진 기침 끝에, 그녀가 저도 모르게 피 한 덩이를 왈칵 토해냈기 때문이었다.

“……커읍?”

울컥!

한 모금이나 되는 핏덩이가 어찌할 틈도 없이 목구멍으로 치고 올라왔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토했다.

“컥!”

시커먼 핏물이 병실 바닥을 적셨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확신을 굳혔다. 마시자마자 시커먼 핏물을 토하게 하는 액체라면, 독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죽인다!’

그녀의 눈에 살기가 빗발쳤다. 동시에 라키엘의 입가에는 싱글벙글 미소가 내걸렸다.

“왔드아!”

그가 잽싸게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 실비아가 방금 토해냈던 시커먼 핏덩이가 있었다. 라키엘이 주먹을 불끈 쥐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보세요. 이거 보입니까? 이야 이거, 제대로 나왔는데?”

“…….”

마침 라키엘을 향해 달려들려던 실비아였다. 한데 어쩌다 보니 타이밍(?)을 빼앗기고 말았다. 덕분에 그녀는 덜컥,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추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의문도 느꼈다.

‘나왔다니? 제대로? 뭐가?’

저 인간,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지금의 저 행동 또한 계략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실비아는 경계심을 더욱 끌어올리며 되물었다.

“무슨 수작이지?”

“수작은 개뿔. 인상 펴고 여기부터 좀 보시라니깐?”

“…….”

“여기, 이거 안 보여요?”

“…….”

실비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라키엘이 가리키는 핏물덩이 속을 주시했다. 그러자 뭔가, 꿈틀거리는 작은 덩어리가 보였다?

“따란. 당신의 허파 속에서 무단거주를 감행하던 야생의 폐흡충이 나타났습니다?”

“……뭐?”

“기왕 이렇게 안면까지 튼 거, 인사라도 하시죠?”

“…….”

정말?

처음엔 얼떨떨했다. 하지만 계속 보니 진짜였다. 그녀는 뛰어난 시력으로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크기는 약 1센티 정도. 통통한 타원형의 벌레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폐흡충이었다.

‘진짜였던 거야? 독살 시도도…… 아니었고?’

그러고 보니 피를 토한 뒤부터 기침이 완전히 멎어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비로소 실비아는 전신에 깃들었던 긴장감을 풀었다. 끌어올렸던 살기를 누그러뜨리느라 살짝 뻘쭘함(?)을 느끼며 물었다.

“저기, 그럼 난 이제 완치된 건가?”

그런 거면 좋겠다. 피를 토했는데 그 속에 폐흡충이 섞여서 나왔으니까. 이제 자신의 허파는 깨끗해진 것이 아닐까. 하면 저 끔찍한 우루왁 커핀지 뭔지도 이제 안 마셔도 되지 않을까.

새록새록 피어나던 그녀의 희망은 돌아온 라키엘의 태연한 대꾸에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아뇨? 아직 전혀?”

“…….”

“완치된 거면 저도 좋겠습니다. 소똥 만지는 거 저도 기쁘진 않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은 완치가 아니네요?”

“…….”

“에이 너무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은 하지 마시고요.”

“…….”

“앗차차, 진짜로 똥 드셨지.”

“…….”

“뭐 어쨌건, 일단은 우루왁 커피가 효능이 있다는 건 입증이 됐으니 다행입니다. 첫 복용을 하자마자 이렇게 폐흡충이 나왔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고 말입니다.”

“설마 그럼, 난 앞으로도?”

“예.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루 2회, 폐흡충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이걸 마셔야겠죠.”

“…….”

“안 죽어요, 안 죽어.”

“……흐흑!”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눈물샘을 왈칵 전면개방하고 말았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이미 시작한 치료였다.

그녀는 라키엘의 지시대로 매일 꾸준히 2회씩, 아침저녁마다 우루왁 커피를 복용했다. 그때마다 격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핏물 덩어리 속에 폐흡충이 한두 마리씩 섞여 나왔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엿새째가 되는 날이었다.

……왈칵!

토해낸 핏물 덩어리 속에 폐흡충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동시에 라키엘의 귓가에 반가운 알림음이 힘차게 울렸다.

딩동!

[당신은 맹렬한 헛구역질을 참아내며 직접 조제한 우루왁 커피를 환자 : 실비아에게 복용시켰습니다.]

[스킬 : 탕약조제 (Lv.5)의 효과로 약효가 14% 증가하였습니다.]

[환자 : 실비아는 오랜 생식 습관으로 인하여 전형적인 폐흡충 감염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적절한 치료가 없을 경우 3년 이내에 각종 합병증으로 사망할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조제한 강력한 우루왁 커피의 효능 덕분에, 그녀의 신체에 증식하던 폐흡충이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진료비 청구 (Lv. 2) 스킬이 발동됩니다.]

[환자 : 실비아는 당신의 우루왁 커피 복용을 통해 총 732년 6개월의 기대수명 연장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에 당신은 732년 6개월의 1/1950에 해당하는 보너스 수명을 정산받습니다.]

[환자 : 실비아가 인간이 아닌 관계로, 이종족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정산받는 보너스 수명이 50% 삭감됩니다.]

[67.61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정산되는 수명의 최소 단위는 1일입니다.]

[정산되는 보너스 수명이 반올림 처리됩니다.]

[총 68일의 보너스 수명이 정산됩니다.]

[당신의 예상 기대수명 : 376일]

‘……허, 나이스!’

라키엘은 눈을 번쩍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치료 한 번에 무려 68일의 수명이라니. 이건 신기록이었다. 게다가 덕분에 처음으로, 예상 기대수명이 1년 이상으로 쌓였다!

‘역시 엘프! 믿고 있었다고!’

가히 천 년을 사는 종족이 엘프라고 하였던가. 그러면 앞으로 이들을 치료해 주면? 보너스 수명 걱정을 할 필요 없이 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보너스 수명을 지나치게 많이 쌓아 버릴 수도 있겠다.

‘그럼 나도 십장생 신규 멤버(?) 되는 거지!’

그는 새록새록 부풀어 오르는 꿈을 촵촵 핥으며 고개를 들었다.

“축하합니다. 완치되셨습니다.”

“……정말로?”

“예. 이제 우루왁 커피 안 드셔도 됩니다?”

“그, 그런…… 흐흐흑!”

드디어 해방이라는 깨달음에 감격해서 눈물을 글썽이는 실비아! 그런 그녀를 보는 라키엘의 눈빛이 꿀단지 바라보듯 그윽하게 변했다.

“저기,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가족이나 이웃, 동료 중에 비슷한 증상 있는 분 없으십니까?”

“……폐흡충?”

“예.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어디 아픈 분 없으십니까?”

“모르겠는데.”

“어째서요?”

“어째서긴. 고향이 가본지가 30년이 넘었으니까.”

“……혹시 가출하셨습니까?”

“그건 아니고.”

실비아가 피식 웃었다.

“나는 외부의 일을 처리하는 집행자니까.”

“하지만 임무나 지령을 받을 때는 마을에 돌아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응 아니야. 임무는 민들레 홑씨로 받아.”

“……예?”

“대장로님께서 의지를 담고서 민들레 씨를 불어 날리시지. 그럼 그 의지에 따라 흩어진 민들레 씨가 나한테까지 날아와. 그 안에 다음 임무의 내용을 담고서.”

“무슨 그런…….”

라키엘의 어깨가 추욱 늘어졌다. 엘프 대가족을 치료하며 수십 년쯤 보너스 수명을 팍팍 땡겨 받으려던 달달한 꿈이 한 큐에 짜게 식었다.

하지만 그는 금방 멘탈을 회복했다. 그런 건 나중에 기회를 노리면 된다. 언젠가는 엘프 마을에 가볼 날도 있을 것이다.

하니 지금은? 당장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득을 추가로 노려야 할 터.

‘……그럼 슬슬 양념 좀 쳐볼까.’

폐흡충증이 완치되었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엘프 실비아. 그녀를 바라보는 라키엘의 머릿속에 최근 그려오던 다음 계획이 회전초밥처럼 착착 떠올랐다. 그걸 위해 던질 밑밥도 준비했다.

‘챙길 건 듬뿍 챙겨야지. 골수까지 뽑아내서라도 빡쎄게, 잔뜩!’

확고한 일념으로 그는 입맛을 다셨다. 실비아를 향해 자본주의적 미소를 듬뿍 머금고서,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이제 진료비를 주셔야죠?”

“……어?”

뜻밖의 소리에 실비아가 쩌저적,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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