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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166화 (166/468)

166화. K-맛 가시의 위력 (2)

[당신의 신진대사가 ‘8282 모드’로 급가속 됩니다.]

후우욱……?

‘헙?’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순간 시야가 울렁거렸다. 마치, 누군가가 눈앞의 세상에 투명한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 듯한 느낌. 그 일렁이는 파문과 번지는 투명한 잉크가 시야 한구석을 미묘하게 일그러뜨리는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쿠쿠! 쿵! 쿵!쿵! 쿵!

‘……어어어억?’

제어할 수가 없었다. 마치 3천 톤만큼 석탄해! 를 외치며 폭주하는 증기기관차가 된 것 같았다. 혈관 또한 마찬가지였다. 급발진을 시전하는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강한 혈류의 파워! 동맥이 터질 듯이 부풀었다. 판막이 바람개비처럼 탭댄스를 추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만이었다면, 여기까지였다면 아 좀 심장이 벌렁벌렁 나대는구나 하고 말았을(?) 것이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심장을 포함한 신체의 모든 장기가 날뛰어댔다!

딩동!

[오장육부가 신진대사 ‘8282 모드’ 급가속 상황에 정신줄을 놓고 있습니다!]

[심장 : 나는…… 달린다! 폭주기관차! 트라하하하!]

[허파 : 허파파파파팦파팦ᄑᆞ파팍!]

[대장 : 융털돌기 한계 가속! 제어 불가! 괄약근 사출을 시도하지 말입니다!]

[간장 : 어머 나 괄약근한테 따귀 맞았어.]

[위장 : 그럼 방금 내가 맞은 건 뭐임?]

[콩팥 : 히히히 결석 발사!]

[오장육부가 처음 경험하는 신진대사 가속에 극흥분 상태로 진입하였습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에게 HP를 후원하려다가…… 말았습니다!]

“…….”

뭘까, 이 상황은. 대체 뭘까, 이 미친 감각은. 진짜로 이건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세상이 느려진 것 같은 기묘한 착각은.

‘미쳤다. 미쳤어!’

혈관이 폭주했다. 뇌세포가 모조리 벌떡 깨어났다. 근육과 신경도 마찬가지였다. 알 수 없는 힘이 불끈불끈. 지금은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완전히 낯선 기분은 또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런 기분…… 대략 십몇 년쯤 전에…….

‘한의대생 시절에, 공부하고 과제 하느라고 밤 지샐 때. 딱 그때…… 고농축 카페인 음료 마셨을 때 이런 기분이었는데?’

딱 그러했다.

물론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었다. 그때 마신 게 정상적인 카페인 음료였다면? 지금은? 핫세븐 100캔에 고농축 에스프레소 액기스를 얍얍촵촵 섞어서 대뇌피질에 다이렉트로 꽂아넣은 기분이었다!

‘무슨…… 이런…….’

급격히 빨라진 신진대사 때문일까. 덕분에 뇌세포도 더욱 활성화된 걸까. 생각의 속도가 경이롭도록 빨라졌다. 감각의 속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우우웅!

어디선가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

라키엘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였다. 그는 허공에 날아다니던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날파리였다.

그런데 날파리의 날갯짓이 이상했다. 펄럭이는 날개가 선명하게, 느릿하게 보였다. 원한다면 날갯짓 횟수를 눈으로 보며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슬로 모션으로 세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럼 이건?’

그는 손을 뻗었다. 손이 경이로운 속도로 움직였다. 날파리 앞을 손바닥으로 가로막았다. 갑작스러운 장애물(?)을 감지한 날파리가 비행 방향을 바꾸었다.

그 앞을 또 막았다. 날파리가 회피를 시도했다. 다시 막았다. 날파리가 급커브를 틀었다. 또 막았다. 자연히 손이 가상의 원을 그리게 되었다. 날파리가 계속 날면서도 원 안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원의 크기가…… 테니스공 정도밖에 안 됐다!

스스스스슷!

‘허허, 허허허.’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자신의 한 손! 그걸 보며 라키엘은 그저 웃고 말았다. 이거, 어쩐지 콱실버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가진 못했다.

딩동.

[K맛 가시의 효과가 떨어졌습니다.]

[신진대사 ‘8282 모드’가 종료됩니다.]

눈앞에 서슴없이 떠오른 메시지.

그와 함께 예고도, 얄짤도 없이 온몸에서 힘이 쭈욱 빠졌다. 급속도로 가속되어 있던 신진대사가 확 느려졌다. 아니, 원래의 정상적인 속도로 돌아왔다.

……후우욱.

‘컷?’

시속 500km/h로 달리고 있다가 풀브레이킹을 꽉 밟는 기분! 오장육부도 덩달아 또 난리가 났다.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8282 모드’ 종료의 후폭풍에 또 정신을 못 차립니다.]

[심장 : 기야아아아아아악.]

[허파 : 허퍄아아아아아악.]

[대장 : ……끄응!]

[간장 : ……차아!]

[위장 : 님들 뭐하심?]

[콩팥 : 아 눈치 좀ㅋㅋ 리액션 찰져야 밥값 하는 거라고ㅋㅋㅋ]

[오장육부가 경이로웠던 경험에 감탄하며 현타를 체감합니다.]

[오장육부가 ‘8282 모드’ 그거 참 좋았는데, 라는 은근슬쩍한 눈빛을 당신에게 보내며, 1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당신이 보유 중인 HP : 500]

“……허억, 훅, 헉.”

라키엘은 숨을 몰아쉬었다. 아찔했다. 심장이 터지는 게 아닌가 싶었던 풀가속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니, 현기증이 전두엽과 후두엽을 16비트 자진모리장단으로 후려쳐 왔다.

한마디로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와 씨.’

이건 대체 뭐였지.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현기증을 억지로 털어냈다. 손을 뻗어 아까 태충혈에 잘못 꽂았던 검은색 가시를 뾱 뽑아냈다. 한편으로는 방금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검정색 가시의 효능, K맛에 대해 생각했다.

‘이거, 전에는 그냥 짐작으로 엄청 아플 거라고만 여겼는데.’

겪어보니 단순히 아픈 게 아니었다.

체감해보니 알겠다.

‘엄청난 고통 뒤에, 그걸 참아내면 더 엄청난 효력이 있는 거였어.’

신경 가속.

신진대사 급발진.

설마 그런 효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누군가가 말로만 해줬으면 절대 안 믿었을 것이었다. 한데 자신은 그걸 직접 체험까지 해버렸다.

‘어이, 다들 무사하냐?’

혹시 신체적으로 문제나 후유증이 찾아오진 않을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신진대사 폭주였기에, 절로 걱정이 되었다. 오장육부를 향해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반응이라는 게…….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을 그윽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어이 라씨, 한 대 더? 츄라이, 츄라이.]

“…….”

이놈들, 미쳤구만.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일단 오장육부의 반응을 보아하니 딱히 큰 부작용은 없는 듯했다. 만일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다면 제일 먼저 그것부터 알릴 녀석들이니까. 이 몸의 건강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진심인 녀석들이니까.

‘그럼 부작용은 걱정 안 해도 될 거고.’

라키엘은 미간을 찡그리며 검정색 가시를 집어들었다. 아까의 그 엄청났던 체험? 또 해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엄청 아팠으니까.’

진짜로 아팠다.

생각만 해도 또 아팠다.

진심으로 영혼이 출타해서 마실 한 바퀴 찍으며 동네방네 막걸리 한 잔씩 걸치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딱 그만큼 아팠다.

“…….”

생각하지 말자.

시도하지도 말자.

‘누구랑 싸울 때나 좀 써먹어 볼 수 있겠구만.’

예를 들자면, 쟈빌론 같은 엄청난 굇수급의 적이라든가. 그런 놈들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신진대사 풀가속으로 위기를 모면하기엔 나름 괜찮을 듯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당연히 사양이다.

‘내가 무슨 고통을 사서 즐기는 변태도 아니고.’

라키엘은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흔들리게 되었다. 예고도 없이 눈앞에 주르륵 떠오른 메시지 내용 때문이었다.

딩동!

[당신의 침술 경험치가 임계점을 돌파하였습니다.]

‘……어?’

이건 또 뭘까.

난데없이 떠오른 메시지를 빼꼼 쳐다보았다. 후속 메시지가 손에 손잡고 세트메뉴로 좔좔좔 떠올랐다.

[당신은 그동안 수많은 환자를 돌보며, 그 과정에서 수천 대가 넘는 침을 놓았습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모두 당신에게 피와 살 같은 경험으로 축적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조금 전의 당신은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가시를 자신의 몸에 꽂음으로써 경험의 지평을 폭발적으로 넓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경험이 술잔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술 한 방울이 되었습니다.]

[모든 경험은 임계점을 넘는 순간, 현실의 벽을 초월하는 재능으로 발현되며, 마침내 적절한 스킬로 개방될 수 있습니다.]

[농염하게 농축된 침술 경험이 ‘침술 스킬’로 개방됩니다.]

‘뭐어?’

라키엘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침술 스킬?’

언젠가는 개방하리라 마음먹고 있던 스킬이었다. 한데 지금 이게 딱 맞춰서 스킬로 열리다니.

‘설마, 방금 검은색 가시를 꽂으면서 느꼈던 극한체험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라키엘의 눈이 바쁘게 움직이며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를 훑었다.

딩동!

[스킬명 : 침술 Lv. 3]

[대상의 몸에 가느다란 바늘을 꽂아넣어 기혈의 흐름을 조절하고 각종 효과를 일으킵니다. 이는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 좋은 목적으로도, 악독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현재 레벨에서 제공하는 침술 효과의 증가량 : 15%]

[스킬 전용 옵션 ① : 시침 시뮬레이션]

[다음 레벨업에 필요한 HP : 500]

[현재 보유 중인 HP : 500]

“…….”

이건 진짜다. 착각도, 환각도 아니다. 명백한 실화이며, 현실이다.

라키엘은 눈두덩을 거칠게 부비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기쁨의 트월킹을 덩실덩실 추려는 이성을 꽉 붙들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며 스킬의 효과와 옵션 내용에 주목했다.

‘침술 효과 15퍼센트 증가.’

꿀꺽.

얼핏 보기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을, 15퍼센트라는 수치.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점은 따로 있었다.

‘HP를 투자해서 스킬 레벨을 올리면, 저 스킬 효과 퍼센티지도 같이 올라가겠지.’

그게 중요한 점이다.

투자하기에 따라서 스킬 효과가 100%, 200%, 혹은 그 이상까지도 증가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후우, 이러다가 침 한 방 꽂았는데 불로장생, 뭐 이러는 거 아닌지 몰라.’

라키엘은 불끈불끈 피어나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푸른 바다 저 멀리 날려보냈다. 대신 옵션의 내용에 집중했다.

‘시침 시뮬레이션?’

가늘어진 눈매로 옵션을 주시했다. 옵션의 내용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딩동!

[침술 스킬 전용 옵션 ① : 시침 시뮬레이션 - 당신이 기존에 지닌 진맥 스킬의 ‘경혈 스캐닝 옵션’과 연계됩니다. 경혈 스캐닝으로 확보한 환자의 데이터를 시뮬레이션 모드로 불러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를 통하여 환자의 몸에 가해질 영향과 생겨날 변화를 관찰하고, 실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담 없이 푹푹 찔러보세요?]

“…….”

오늘 무슨 날인가.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안 그러면 환호성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겠어. 길랭-바레 증후군 완전 극복.’

침술 스킬의 내용을 보면서, 옵션인 시침 시뮬레이션의 내용을 보자마자 떠올릴 수 있었다. 큰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다. 길랭-바레 증후군에 시달리는 환자의 치료법을 ‘가장 효율적으로’ 찾아낼 묘수가 머릿속을 환하게 밝혔다.

그것은 바로…….

‘시침 시뮬레이션.’

나직하게 되뇌었다. 반응은 곧바로 왔다.

파츠즈즈즛!

시야가 검게 물들며 시뮬레이션 공간이 떠올랐다. 그 속에 아까 스캔했던 길랭-바레 증후군 환자, 미구엘 씨의 경혈 데이터를 불러왔다.

그 직후, 라키엘의 손이 움직였다.

척.

검은색 K맛 가시를 쥐었다. 자신의 장딴지를 조준했다. 그는 단순히 시뮬레이션 옵션만 활용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그건 비효율적이니까. 같은 시간 내에 훨씬 빠르게, 효율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할 방법이 있으니까.

바로, 검정색 K맛 가시와 시뮬레이션 옵션을 연계 조합하면 될 테니까.

‘지극히 효율적인 방법이 있고 그걸 아는데, 그걸 안 쓰면 내가 한국인이 아니지.’

그는 각오를 다졌다.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얘들아, 준비 됐냐?’

딩동!

[오장육부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냅니다!]

머릿속에 힘차게 울리는 오장육부의 화답.

그걸 들으며, 라키엘은 자신의 종아리 외구혈(外丘穴)에 검정색 K맛 가시를 야물딱지게 꽂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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