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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167화 (167/468)

167화. 길랭-바레 증후군 치료술 (1)

“느어어어어…….”

“…….”

“느우어어…….”

“…….”

마젠타 의료대학의 졸업예정자, 예비의사 켈로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황당함을 억누른 눈길로 황태자를 쳐다보았다.

황태자가 퀭한 얼굴로 화답(?)했다.

“느워러어어…….”

“…….”

황태자가 푹 쉬겠다며 자리를 비운 게 어제였는데. 그 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길래 정말로 제대로 쉬는 줄 알았는데. 황태자는 하룻밤 사이에 무슨 짓을 벌였기에 이토록 만신창이가 됐을까.

“저기, 전하?”

“느어어?”

“…….”

황태자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특유의 은발 머리칼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당장 까치가 두어 마리쯤 날아와서 알 낳고 알콩달콩 신혼집으로 삼아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얼굴은 더했다. 피부는 온통 푸석푸석. 눈가는 퀭하니 움푹 들어가 있었다. 다크써클은 아예 턱까지 내려올 기세였다.

그러니까, 황태자의 모습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후으, 깜짝이야. 좀비가 출몰한 줄 알았잖아.’

켈로드는 남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 전이었던가. 한창 다른 생각에 잠겨 있던 도중이었다. 뒤에서 슬며시 기척이 들려왔다. 무심결에 돌아보았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진짜로 때아닌 좀비라도 출몰한 건가 싶어서, 하마터면 얼결에 옆에 놓인 꽃병으로 머리를 후려칠 뻔했다.

“…….”

만약 그 충동을 행동으로 옮겼다면, 지금쯤 자신은 황족 시해 미수의 죄명을 덮어쓰고 황실 지하 0층 감옥 특실로 모셔졌겠지.

그는 슬며시 팔뚝에 피어오르는 소름을 털어내곤 황태자를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괜찮으십니까?”

“……느어어, 후욱, 그럭저럭?”

“대체,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을 겪으신 겁니까?”

“딱히 큰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후욱, 훅.”

“그럼……?”

“고민을 좀 했어.”

“…….”

아니, 사람이 고민을 얼마나 맹렬하게 하면 하룻밤 사이에 그런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겁니까. 켈로드는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라키엘은 그저 힘없이 웃었다.

“고민이 좀 치열한 편이었거든.”

사실이었다.

문득, 지난밤의 일이 떠올랐다.

우연히 발견한 꼬슴이표 검은색 K맛 가시의 효과. 신진대사 8282 모드. 실로 엄청났다. 신체의 모든 기능을 급가속시켰다. 두뇌 또한 마찬가지였다. 생각과 사고처리의 속도마저도 급발진이 가능했다.

그래서 자신은?

신진대사 8282 모드를 발동한 채, 침술 스킬의 옵션, ‘시침 시뮬레이션’을 사용했다.

‘그거, 시너지가 상상 이상이었지.’

예상은 했다. 그래서 조합을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시너지가 났다.

‘거의…… 밤새도록 32배속으로 영화 수십 편을 본 느낌?’

정말로 그랬다.

초고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수십, 수백 번을 돌려볼 수 있었다. 온갖 시도를 다 해봤다. 개중에는 말도 안 되는, 실로 변태적(?)인 시도마저 있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K맛 가시의 약빨이 생각보다 짧았기 때문이었다.

“…….”

덕분에 검은색 가시를 얼마나 많이 푹푹 찔러대야 했던가. 약빨이 떨어지면 찌르고. 영혼을 출타시키는 고통을 이 악물고서 참아내고. 그 보상으로 신진대사 8282 모드로 진입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그 과정의 무한 반복이었다.

정신과 몸이 다 함께 피폐해지는 건 필연이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기왕 시작한 거,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원래 이런 일이 그런 거거든. 한번 흐름을 탔을 때 쭈욱 밀어붙여야지.’

계속 강행했다.

덕분에?

마침내 찾아냈다.

‘미구엘 씨, 완치시킬 수 있어.’

수백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찾아낸, 길랭-바레 증후군의 마비를 극복할 수 있을 시침법. 그걸 떠올리며 라키엘은 보람차게 씨익 웃었다.

“그래서 환자는?”

“아, 예. 어제부터 계속 잠들어 있습니다. 호흡은…… 많이 안정되었고요.”

대답한 켈로드가 잠깐 망설이더니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내가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예.”

“괜찮아. 안 죽어.”

라키엘의 미소가 쓰리게 변했다. 사실은 별로 안 괜찮다. 당장 쓰러질 것 같다. 어제도 피곤했는데, 그래서 쉬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론 하나도 못 쉬었다. 오히려 핫세븐 100캔을 퍼마시듯이 날밤을 지새어 버렸다.

“그래도 해야지.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예?”

켈로드가 의아한 시선을 보내어 왔다. 라키엘은 다시금 쓴웃음을 머금었다.

“사람의 몸은 시시각각 변하니까.”

그렇다.

어제의 몸과 오늘의 몸은 또 다르다. 길랭-바레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 미구엘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시뮬레이션에 사용한 스캔 데이터는 어제의 것이었다. 당연히 지금 시점과는 완벽하게 일치하진 않는다. 컨디션이 미세하게 변했을 테니까. 덕분에 아주 미세한 오차가 생겨나 있을 테고.

‘물론 아직은 그 오차가 크지 않아. 즉, 밤새도록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찾아낸 시침법을 적용할 수 있어. 적어도 아직은.’

아직은 가능하다.

오차가 크지 않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 내일, 혹은 모레가 되면?

‘어젯밤에 찾아낸 시침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게 되겠지. 그걸 무시하고서 강행했다간? 난리가 날 거고.’

분명 그럴 것이다.

하니 시뮬레이션 자체를 다시 돌려야 할 거다. 어젯밤 장딴지를 푹푹 찔러가며 기울인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였다.

“지금 해야 해.”

조금이라도 일찍 해야 한다. 그래야 오차가 적어질 것이다. 라키엘은 외투를 벗고 몸을 풀었다. 켈로드와 조원들은 모두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을 다물었다.

“…….”

저러다가 당장 쓰러질 거 같은데. 정말로 괜찮은 걸까. 그런데 황태자는 어째서 저토록 애를 쓰는 걸까.

‘우리처럼…… 의술에 인생을 건 사람이 아닐 텐데.’

그런 줄 알았다.

황족이니까.

장차 황제가 될 사람이니까.

별궁 한의원인지 뭔지를 운영하는 것도, 그곳에서 무허가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도, 전부 좀 특이한 유희나 취미생활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할 거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지금 황태자의 모습을 보면…….

‘취미생활을 저렇게…… 목숨 걸듯이 하는 사람이 있나?’

없다.

그런 사람은 못 봤다. 다소 위험한 취미를 즐기는 사람은 있더라도, 저토록 절박하게 모든 것을 걸듯이 매달리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대체 왜, 우리보다 더 절박한 걸까.’

켈로드와 조원들은 반성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 사이, 라키엘이 심호흡을 마쳤다.

“좋아. 꼬슴아?”

“꼬슴!”

꼬슴이가 뒤로 돌아섰다. 통통한 궁디를 내밀며 뿌르르 힘을 주었다.

“꼬스슴!”

표표푝!

흰색 가시 10가닥이 준비되었다.

라키엘의 시선이 인공호흡을 유지하고 있는 아기 코끼리, 코몽이를 향했다.

“시침하는 동안 호흡량이나 컨디션이 변할 수 있을 거야. 놓치지 말고 잘 체크해줘.”

“코몽!”

이렇게 인공호흡 유지도 OK.

“시작하자. 다들, 이제부터는 내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니까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로 말을 걸거나 내 시침에 간섭하지 말고.”

라키엘은 조원들에게 신신당부하고는 환자의 상의를 벗겼다. 가시를 집어들었다. 스킬 옵션을 발동했다.

‘경혈 스캐닝.’

츠즈즈즈……!

경혈 스캐닝이 발동되며 환자 미구엘 씨의 전신 기혈이 맵핵을 띄운 것처럼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다. 체내에 흐르는 기혈의 움직임, 조화, 그 결과까지 모두가 실시간으로 관측되었다.

라키엘의 손이 움직였다.

스윽.

그가 겨누는 첫 번째 경혈은…….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의 청회혈(聽會穴).’

일명, 후관(後關)이라고 불리는, 담족소양지맥(膽足少陽之脈)의 혈자리. 위치는 귓구멍 앞쪽, 입을 크게 벌리면 오목하게 들어가는 지점.

한 손으로 환자의 입을 조심스럽게 벌렸다. 청회혈이 오목해졌다. 그곳을 취(取)하듯 가시를 찌르고 뽑았다.

정확한 보사법으로. 환자의 들숨이 들어가는 순간에 맞추어. 살짝 비틀듯이 3푼.

톳!

그 순간, 라키엘의 눈이 빛났다.

‘보인다.’

시침한 청회혈을 중심으로, 살짝 변화된 기의 흐름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 시뮬레이션으로 수없이 실험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기억을 되살렸다. 거듭 실험하며 암기한 시침 순서를 그대로 재현했다.

톳!

두 번째 가시로 찌른 자리는 특정한 혈자리가 아니었다. 청회혈에서 번져 나온 여러 기맥 중의 하나를 포착해서, 실시간으로 기맥의 허리를 찔렀다.

그러자 기맥이 꿈틀거렸다.

자극에 반발하듯 구슬처럼 뭉쳤다.

‘됐다.’

시뮬레이션했던 그대로다. 그럼 이제부터…….

톳! 토돗. 톳!

라키엘의 손이 바빠졌다. 뭉친 기맥을 한쪽으로 몰아가듯 연달아 시침했다. 기맥이 자극에 꿈틀거리며 이동했다.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

혹은,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버전의 지뢰찾기 게임을 하듯.

‘이거, 아무리 봐도 지뢰찾기랑 핑퐁을 합친 거 같단 말이지.’

잠깐 배어나는 쓴웃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더욱 집중력을 높였다. 살아 숨 쉬듯 활발하게 뭉쳐서 움직이는 기맥의 흐름을 드리블하듯, 한결 신들린 시침을 선보였다.

토톡! 톡! 톳!

눈꼬리의 동자료혈(瞳子髎穴)을 지나, 관자놀이 어름의 현리혈(懸釐穴)을 짚고, 귓바퀴 위쪽의 천충혈(天衝穴) 어름을 통과했다.

둥글게 뭉친 기맥이 핑퐁처럼 튀며 계속 이동했다. 라키엘의 가시도 표적을 추격하듯 계속해서 신들린 움직임을 보였다.

이윽고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의 목덜미 천정혈(天鼎穴)과 부돌혈(扶突穴)을 지나쳤다. 넷째 갈비뼈 어름에 있는,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의 천지혈(天池穴)을 두드렸다.

토톳! 톳!

이마에 진땀이 온통 배어났다. 꼬슴이가 계속해서 제공하는 가시를 재빠르게 받아서 찌르고, 또 찔렀다.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엇나가면 안 돼.’

이런 침술은 라키엘도 처음이었다. 이런 조합도 처음이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절대로 시도하지 않았을 위험한 조합의 시침 위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믿었다.

경혈 스캐닝을 믿고,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믿었다. 더욱 집중력을 끌어올려 갔다. 잘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한층 스스로를 격려했다.

한데 그때였다.

덜컹!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창백해진 학장이 병실로 들어왔다.

“이건…… 지금 무얼 하고 계신 겁니까, 전하?”

학장의 경악한 시선이 환자와 라키엘에게 꽂혔다. 그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맙소사.’

환자의 얼굴이며 목덜미, 가슴에 적어도 스무 개는 넘는 가시가 꽂혀 있었다. 아니, 지금도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가시가 꽂히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 짓을 하는 사람이…… 바로 황태자였다.

‘소문으로는 저런 식으로 사람을 치료한다고는 들었지만.’

설마하니, 의료대학에서 저런 근본 없는 사이비 치료법을 버젓이 쓸 줄은 몰랐다. 모욕감이 느껴졌다. 신성한 의술을 닦는 의료대학에 대한 기만과 조롱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저런 근거 없는 치료법이라니. 환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리라.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군.’

최대한 부드럽고 정중한 말투와 태도로, 그러나 선을 긋는 마음가짐으로, 황태자에게 지금 시행하고 있는 치료법의 부적절함을 말씀을 드려야겠다. 의료대학의 설립 이념에 어울리는 정상적인 치료법의 필요성을 강조해야겠다.

학장은 각오를 다졌다.

자칫 권력자에게 대드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의료인으로서, 학자로서 물러날 수 없는 의무감을 품고서, 입을 열었다.

아니, 열기 직전이었다.

텁!

갑자기, 난데없이, 누군가의 손이 불쑥 내밀어져 왔다.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읍?”

놀란 학장이 눈길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사람을 확인하고는 더욱 놀라야 했다.

‘켈로드?’

이번 졸업 예정자 중에 가장 우수한 인재. 최근 10년간 자신이 본 가장 촉망받는 예비의사. 자신의 수제자나 다름없는 켈로드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단호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쉿. 정숙함을 유지해 주십시오, 학장님.”

“……읍, 으읍?”

켈로드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눈빛으로 물었다. 켈로드가 낮게 속삭이며 환자와 황태자를 가리켰다.

“저길 보십시오. 치료가 잘 진행되는 중입니다.”

“…….”

치료? 저렇게 환자의 몸을 가시로 찔러대고 있는데? 그게 치료라고? 학장은 잔뜩 찌푸린 눈길을 환자에게 던졌다.

그때였다.

톳!

황태자의 가시가 환자의 골반 어름을 찌르는 순간.

……움찔!

환자의 엄지발가락이 미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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