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끝없는 기침의 질병 (1)
백일해(百日咳, pertussis)는 전염병이다.
현대 세계에서야 예방접종이 널리 보급되어 찾아보기 어려운 질병이 되었지만, 전근대 시대까지만 해도 수많은 목숨을, 특히 어린아이들을 무수히 희생시킨 강력한 전염병이다.
‘특이하게도 바이러스가 아닌, 세균으로 전염되는 병이지. 그람음성균인 보르데텔라 백일해균. 이게 사람의 몸으로 침투하면 약 1~3주의 잠복기를 거쳐 증식하고, 마침내 인체를 숙주로 삼아서 독감과 비슷한 증세를 발현시켜.’
그 뒤로 카타르 기간(catarrhal pahse)과 발작성 기간(paroxysmal phase) 등을 거치며 증세가 강력해진다. 특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격렬한 기침을 연발하게 만든다.
이때 나오는 기침은 그냥 평범한 기침이 아니다. 발작성 기침이다. 목에서 출혈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지독한 호흡곤란과 통증, 각종 합병증을 유발한다.
기관지 폐렴, 폐에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는 무기폐, 기관지 확장증, 폐기종, 중이염은 기본이다. 심하면 두개골 내부에 출혈이 일어나기도 한다. 경련, 속발성 뇌염, 비출혈, 각혈, 경막하 출혈, 뇌출혈이 일어날 수 있으며…….
‘너무 심한 기침 때문에 구토나 탈장, 심지어 탈출성 치핵이 올 수도 있지. 말 그대로 항문에 이어져 있는 대장의 일부가 항문 밖으로 빠져나와서 되돌아가지 못하는 상태까지 되는 거야.’
그만큼 지독한 기침을 동반하는 질환이었다. 끝이 없는 기침의 지옥이라 할 만했다. 그렇기에 조상들은 이 질환에 100일 동안의 끝이 없는 기침이라는 ‘백일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 아이가…….
딩동!
[WARNING!]
[환자에게서 보르데텔라 백일해균(bordetella pertussis)이 감지되었습니다. 전형적인 백일해 환자입니다. 경고! 경고! 즉시 감염 예방책을 마련한 후, 다시 진료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
소름이 좍 돋아났다.
하지만 라키엘은 가까스로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기겁해서 놀라거나, 움찔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자연스럽게 품속의 손수건을 꺼내어 코와 입을 가렸다.
‘내가 놀라는 반응을 보이면 안 돼.’
환자인 아이가 보고 있다.
반쯤 인사불성인 상태라지만, 그럼에도 환자가 자신을 보고 있다. 한데 의료인인 자신이 기겁하며 놀라는 반응을 섣불리 보이면 환자가 더 놀라게 된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상태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품게 된다.
아, 의사마저도 저렇게 놀랄 정도로 내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구나…… 라고.
‘그건 절대로 안 돼.’
진료에 임하는 순간만큼은, 의료인이 환자의 유일한 버팀목이자 기둥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며, 철칙이다. 그것을 저버리는 순간, 환자와의 신뢰 관계는 무너진다. 라키엘은 그 사실을 되새기며 곁의 데미안과 족장 브라쉬를 돌아보았다.
“다들, 각자의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도록.”
“꾸익? 어째서입니까, 인간의 황태자여, 꾸익?”
“이거, 호흡기를 통해서 전염되는 병이니까.”
……마치, 코로나19처럼.
라키엘은 무의식중에 붙이려던 뒷말을 억눌렀다. 그리고 백일해의 전염성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환자가 기침을 하면 침방울이 튀겠지? 그게 공기 중에 퍼져서 날아다니다가 다른 사람의 코와 입으로 들어가면 병이 옮겨지는 거야. 혹시, 여기 다른 사람들은 기침을 심하게 하는 병을 앓지 않았나?”
“나약한 몇몇이 기침을 심하게 하기는 했습니다, 꾸익.”
브라쉬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아이를 간호한 하인들은 거의 다 한 번씩 겪었고, 툴룬 그 친구도 마지막에는 기침을 제법 심하게 했습니다만, 그게 큰 문제입니까, 꾸익?”
“문제지. 당연히.”
큰 문제다.
백일해는 특히 전염력이 강력한 질병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질병의 감염 능력을 표기하는 ‘기초감염재생산수(R0)’의 수치가 무려 12~18에 달한다. 간단히 말해서 일반적인 독감(R0, 1.4~1.6)의 10배 이상이다. 코로나 델타 변이(R0, 5~9)마저도 가볍게 압살한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방역이나 마스크 같은 건 하지도 않고 있다!
‘난리 났네.’
절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불안감과 공포심도 살짝 밀려왔다.
‘이건 나도 위험하겠는데.’
보통의 건강한 성인이야 백일해에 걸려도 고생은 할지언정 쉽게 죽지는 않는다. 어지간하면 그렇다. 그러나 이 병약한 몸뚱이는? 자신이 없었다. 자칫 백일해에 걸렸다간 손도 못 쓰고 심각한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라키엘은 그 사실을 염두에 두며 말했다.
“방금 말했듯이, 이건 전염력이 강력한 질병이야. 이름은 백일해. 기침을 통해 나오는 미세한 침방울을 통해 병이 번지지. 그러니 지금부터 당장,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다녀야 해.”
“꾸익?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꾸익?”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의아해하는 사이, 족장 브라쉬가 말했다.
“인간의 황태자께서는 이곳 지방이 처음이라 잘 모르시나 본데, 이곳에서 이 기침병은 제법 흔합니다, 꾸익.”
“흔하다고?”
“예, 누구나 어릴 때나 자라나는 사이에 한 번쯤은 겪습니다, 꾸익. 이걸 이겨내야 진짜 어른으로 대우를 받지요. 물론 이 아이도…… 그 시험대에 오른 것일 테고 말입니다, 꾸익.”
“…….”
백일해가 아예 풍토병이라는 건가. 그럼 이곳 사람들은 다들 어느 정도 백일해에 저항력을 갖추고 있겠구나. 그 와중에 이 아이는…… 저항 능력이 좀 떨어지는 편일 테고. 아마도 그런 사실이 생전의 툴룬 상단장을 절망하게 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응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라키엘의 말투가 단호해졌다.
“그래도 안 돼. 무조건 실행해.”
“정말입니까, 꾸익?”
“당연하지.”
그래야 내가 산다. 다들 마스크 대용품인 수건이라도 잘 감고 다녀야 비말을 덜 튀길 테니까. 이쪽 일행이 백일해에 걸릴 확률이 내려갈 테니까.
“그리고 데미안? 너도 지금 당장 나가서 수행원단 전부에게 내 지시를 전달해. 다들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음식과 물을 섭취하도록. 당장.”
“알겠습니다.”
그렇게 데미안과 족장 브라쉬를 밖으로 내보냈다. 잠깐 코로나19의 광풍에 휩쓸리던, 한국의 부경한의원 시절이 떠올라서 PTSD가 도질 것 같았지만…… 그럭저럭 억눌렀다. 과거의 악몽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눈앞의 환자에게 집중했다.
“후우.”
여전히 반쯤 인사불성인 아이. 그 와중에도 연신 격한 기침을 토해내며 괴로워하는 아이. 살펴볼수록 예후가 좋지 않았다.
아이를 살펴보는 라키엘의 눈빛도 무거워졌다.
♣
‘안일한 치료법으로는 안 돼.’
그날 저녁, 라키엘은 고민에 잠겨 찌푸려진 미간을 펴지 못했다. 거듭되는 고민을 끝낼 수가 없는 까닭이었다.
‘내가 저 아이를 살릴 수 있을까?’
이번에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아까 살펴본 바로는 아이의 예후가 너무나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일해에 시달린 지 벌써 제법 됐어. 그 사이에 체력이 너무 소진됐고. 체내에서 증식하고 있는 백일해균을 스스로 몰아내거나 극복할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미 아이 스스로는 그걸 해낼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적절한 치료제의 조력이 절실하다.
‘원래 백일해에 걸리면…… 잠복기, 혹은 발병 14일 이내에 에리스로마이신(Erythromycin)을 쓰는 게 제일 적절하지. 그러면 임상 경과를 완화하거나 감염 전파를 예방할 수 있으니까. 혹은 클라리스로마이신(Clarithromycin)이나 아지스로마이신(Azithromycin)을 쓰기도 하고.’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곳에는 그런 현대적인 치료제가 없다.
그럼 한방 치료법으로는?
‘맥문동탕(麥門冬湯).’
라키엘은 기억 속의 이름을 떠올렸다. 맥문동탕은 가래가 끈끈해서 끊어지지 않는 기침, 기관지염, 기관지천식, 심한 기침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점상출혈, 기침에 피가 묻어나오는 질환에 주로 사용하는 처방이었다.
‘맥문동(麥門冬)과 반하(半夏), 찹쌀과 대추, 인삼과 감초가 주로 쓰이지. 특히 맥문동은 점막을 자윤하고 영양을 보급하며 체액의 보충을 도와. 진해, 거담, 소염의 역할까지 해주지. 거기에 인삼과 감초가 신진대사를 증진하고, 반하는 점막의 자극의 줄여주어 기침을 멎게 해주면서 오심과 구토도 치료하지.’
그밖에 함께 곁들여지는 대추와 찹쌀이 기본적인 영양을 보급함으로써, 여섯 가지 약재가 조화를 이루어 자음익기(滋陰益氣), 보익폐위(補益肺胃)의 작용으로 들뜬 기를 달래어 폐의 양허증을 치료하는 원리였다.
하지만…….
‘그걸로는 약해. 사실 한방 치료의 탕약은 현대적 치료제와 성능을 견주기에는 개념부터가 완전히 다르니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한방 약재가 좋다고 해도 현대적 치료제를 이길 수는 없다. 한방의 탕약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평범한 증기기관차가 자기부상열차보다 빠르다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애초에 분야와 방식부터가 달라.’
현대적 치료제는 말 그대로 특정한 질환을 표적으로 삼아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약품이다. 반면 한방의 탕약은?
‘전문 치료가 아닌, 자양강장(滋養强壯)의 개념이지.’
환자의 체질을 강성하게 북돋고, 스스로 병마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 환자가 스스로 기력을 되찾을 수 있게 등을 살짝 밀어주는 역할. 그것이 라키엘이 냉정하게 바라보는 한방 탕약의 개념이었다.
‘즉, 환자의 면역력 증진을 북돋아 주는, 회복 가능성 부스터인 셈이야.’
그래서였다.
‘그 아이, 이름이 네일라라고 했지.’
네일라를 살리기 위한 이번의 치료에는 일반적인 한방 탕약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과가 이미 너무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한약을 안일하게 먹이며 안심하다간…… 시기를 놓칠 거야. 맥문동탕? 아무리 먹여도 그걸로는 아이가 스스로 병마와 싸울 만큼의 기력을 일으킬 수가 없어.’
자연스럽게 결론이 나왔다.
그 결론이 라키엘을 더욱 괴롭게 하였다.
‘쉽지가 않구나.’
그만큼 상황이 좋지가 않다.
이걸 극복하려면? 아이가 절망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백일해를 이겨내게 하려면?
현대적 치료제의 효과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묘수를 떠올리거나, 혹은 기존의 탕약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 정도는 해야 지금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아직은 모르겠다.
괴로웠다. 머리를 쥐어짰다. 모든 기억의 서랍과 발상의 근원을 채찍질했다.
그렇게 얼마나 밤이 깊도록 생각에 잠겼을까. 덕분에 그는, 누군가가 느닷없이 자신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야 했다.
쾅쾅쾅-!
……노크 맞나.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라키엘은 생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 사이, 데미안이 문 앞으로 다가갔다.
“누구지?”
“나요, 꾸익!”
……목소리만 들어봐도 알겠다. 오크 족장 브라쉬였다. 이내 열린 문틈으로 브라쉬의 거대한 얼굴이 불쑥 내밀어졌다.
“죄송합니다, 인간의 황태자시여. 사실은 방금 자다가…… 아까 낮에 깜빡 빠뜨린 이야기가 뒤늦게 떠올라서, 꾸익…….”
“깜빡 빠뜨린 이야기?”
라키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를 깜빡하면 자다가 기겁하며 깨어나서 일국의 황태자가 기거하는 방문을 쾅쾅 두드리게 되는 걸까. 일단 들어나 보자는 생각부터 들었다.
“무엇을 깜빡했길래?”
“그게, 네일라를 치료하는 데에 도움이 될 이야기입니다, 꾸익.”
“도움? 좀 더 자세히.”
라키엘은 앉은 자세를 고쳤다. 족장 브라쉬가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져왔다.
“혹시 인간의 황태자께서는, 이 지방에서만 지극히 희귀하게 발견되는 긴뿌리 감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꾸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