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86화 (186/468)

186화. 백일해를 극복하는 법 (1)

“좀 어떠니?”

뜨겁다.

온몸이 뜨겁고, 목이 갈라질 듯이 아프다. 내쉬는 숨결에 목구멍이 찢기고, 마시는 숨결에 가슴이 통째로 뭉개진다. 그 모든 순간이 모조리 괴롭고 또 아파서, 이젠 더 흘릴 눈물도 남지 않았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저 젊은 의사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

툴룬 상단주의 어린 외손녀, 네일라는 힘겹게 눈을 떴다. 대답을 할 기력은 없었다. 쉼 없이 내뱉어야 했던 기침으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 버렸으니까. 그래도 희미한 눈웃음이나마 지어 보일 수는 있었다.

괜찮아요.

전보다는.

힘겹게 지어 보인 눈웃음의 끝자락에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 침대 옆 탁자 위에 자그마한 아기 코끼리가 있었다. 이름이 코몽이라고 했던가. 저 코끼리가 오고 난 뒤로 숨 쉬는 일이 전보다는 덜 괴로워졌다. 아주 조금은. 덜.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래. 다행이구나. 조금만 더 힘을 내렴.”

라키엘은 애써 밝게 웃어 보였다.

어렵사리 찾아낸 긴뿌리 감초. 그걸 손상 없이 캐는 데에만 장장 이틀이 걸렸다. 채집을 마치자마자 아이부터 살피러 달려왔다. 아이를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서둘러야 해.’

라키엘은 잠시 아이를 달래어 주었다. 그 잠깐 동안에도 끔찍하게 무거운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럴 법도 했다. 채집을 나선 뒤부터 거의 제대로 쉬질 못했으니까. 황야의 채집 현장에서 침낭에 의지해서 쪽잠을 이루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쉴 여유는 없었다.

그는 곧바로 상단 건물의 주방 하나를 차지했다. 거대 구렁이 사체를 술로 담그는 일은 데미안과 오크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자신은 긴뿌리 감초의 성분 분석부터 시작했다.

“뽀복! 뽀보보!”

긴뿌리 감초 끄트머리의 아주 일부를 떼어서 뽀복이에게 먹였다. 역시나 뽀복이는 죽었고, 부활했으며, 일기장을 빙자한 장문의 성분 분석 리포트를 썼다.

“흐음…….”

라키엘은 성분 분석 내용이 적힌 뽀복이의 일기를 살펴보았다.

[오늘의 일기]

[이번에 주인이 준 뿌리 조각은 뭘까. 향긋한 냄새가 났다. 기대가 됐다. 그런데 또 속았다. 특히 뿌리에 잔뜩 들어있던 알파-글리시리진(glycyrrhizin)이 레알 싫었다. 민트초코에 탕수육을 부먹하는 기분이었다.]

‘……알파-글리시리진?’

처음 보는 성분이었다. 그냥 글리시리진은 보통의 감초에 제법 함유되어 있긴 한데, 알파-글리시리진은 금시초문의 물질이었다. 한데 이어지는 일기장에 쓰인 알파-글리시리진의 기능이 의미심장했다.

[알파-글리리시진 그거 진짜 골때렸다. 먹자마자 강력한 항염, 항균 효과가 나는 건 좋은데, 가성 알도스테론 혈증(pseudoaldosteronism)도 빼박 당첨ㅋㅋ 몸속에서 나트륨이랑 칼륨이랑 손에 손잡고 개 같이 멸망의 훌라춤을 췄다. 그만하라고 말리고 싶었는데 말도 안 들었다.]

“…….”

강력한 항염증 성분. 그런데 그만큼 강력한 부작용까지. 라키엘의 눈동자가 한층 바빠졌다.

[멈추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안 돼. 결국 오늘도 또 죽었다. 아마 이건 내가 아니라도 보통 사람이면 전부 예외 없이 삼도천 프리패스권 당첨에 염라대왕이랑 진로상담 면접 자동으로 예약됐을 듯. 그러니까 이걸 그냥 생으로 먹는 건 자살행위다. 아마 제일 튼튼한 오크 정도만 간신히 버텨내고 약효를 볼까 말까 할 정도?]

읽어보니 알겠다.

‘긴뿌리 감초에만 들어있는 알파-글리시리진. 저게 핵심이군.’

강력한 항염 항균 작용으로 병마에 시달리는 인체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이 빡쎄다는 점이 문제로 보였다.

‘보통 가성 알데스테론 혈증이 일어나려면…… 감초를 진짜 무식하게 많이 섭취해야 하는 건데.’

방금 뽀복이에게 먹인 긴뿌리 감초는? 뿌리 끄트머리의 1밀리미터 분량밖에 되지 않았다. 정말로 눈곱만큼만 떼서 먹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정도만으로도 강력한 부작용이 날 정도라면, 그대로 약으로 쓰기엔 심각하다고 볼 수 있었다.

‘쓰읍. 역시 쉽게 가질 못하는구나.’

라키엘은 혀를 찼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자고로 한방에서는 약성과 독성을 종잇장 하나 차이로 본다. 강한 약성은 독이요, 강한 독성 또한 약으로 쓰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긴뿌리 감초를 찾고자 결심했던 때부터, 이 정도의 독성은 이미 예상하고 각오한 바였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독성을 누그러뜨리고 다른 약재와 조화시켜 새로운 탕약을 개발하는 거겠지.’

오직 그것이 아이를 살릴 길이리라. 확신을 품고서 연구를 시작했다.

톳!

“……흡!”

검은색 K-맛 가시로 허벅지를 셀프로 찔렀다. 영혼을 마실 밖 은하계 나선팔 너머로 출타시키는 극한의 통증이 대뇌피질을 연타로 때렸다.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그 후에 고통의 결실이자, 신진대사가 급가속되는 ‘8282 모드’가 찾아왔다.

딩동!

[당신의 신진대사가 ‘8282 모드’로 급가속됩니다.]

후욱-!

각성하듯 깨어나는 심장.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호흡량. 뇌혈류가 급류타기를 하듯 넘실거렸다. 뇌세포 뉴런이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생각의 속도가 12기통 슈퍼차저 바이터보 엔진을 장착한 메카닉 치타처럼 내달렸다.

그 상태에서 탕약 조제 스킬의 옵션, ‘약재 배합 미리보기’ 옵션을 발동했다. 준비한 약재는 새로운 맥문동탕의 재료로 삼을 맥문동, 반하, 찹쌀, 대추, 인삼, 그리고 긴뿌리 감초였다.

딩동!

[정리되어 조제 준비를 마친 약재가 포착되었습니다. 해당 약재의 배합으로 옵션 <② : 약재 배합 미리보기>를 실행하시겠습니까?]

[YES / NO]

‘당연히 예스!’

응답이 곧바로 왔다.

[탕약 조제 옵션 ② : 약재 배합 미리보기를 실행합니다.]

[포착된 약재를 조합하여 만들어질 탕약의 효능과 부작용을 계산합니다.]

[로딩 중.]

[8282 모드의 영향으로 급가속된 로딩창이 찢어집니다!]

딩동! 딩동! 딩딩동!

[22%…… 39.5%…… 78.1%……!]

[……100%!]

[로딩 완료]

딩동!

순식간에 결과가 떴다.

라키엘의 눈동자도 섬광처럼 움직였다.

[약재 배합 미리보기]

[샘플 번호 A001]

[예상되는 효능 : 강력한 항염 및 항생 · 항진균 작용, 마른기침의 해소 등]

[예상되는 부작용 : 장내 유익균 전멸, 급속한 가성 알도스테론 혈증으로 인한 사망 등등]

“…….”

역시 그냥 맥문동탕의 레시피에 긴뿌리 감초를 섞으면 사약이 만들어지는구나. 라키엘은 결과창을 보며 반성했다. 자신이 너무 안일했구나 싶었다.

‘긴뿌리 감초의 성분이 너무 심하게 강력한 점이 문제야.’

본디 한방에 쓰이는 감초는 다른 약재의 독성을 중화하고, 여러 약재를 두루두루 조화시키는 역할로 쓰이곤 했다.

한데 긴뿌리 감초는 성격이 너무나 달랐다. 주위를 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타고난 강력함으로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었다. 한데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예를 들자면?

‘리그 오브 라잔드를 하는데 서포터가 혼자 다 해먹는 거지. 초반부터 서포터가 설치면서 CS고 킬이고 다 줏어먹는 바람에 정작 커야 할 원딜이 폭망해 버리는 상황.’

혹은, 결혼식장에 블링블링 에메랄드빛 반짝이가 온몸에 붙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는 하객과 비슷한 상황이라 볼 수 있으리라.

한마디로 혼자 너무 튀어서 민폐가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이 약성을 누그러뜨리고 조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해.’

그때부터였다.

톳!

“……그읍!”

고통을 참으며 8282 모드로 진입했다. 탕약 조제 스킬의 옵션을 발동했다. 급가속된 신진대사를 활용해서 초고속으로 수많은 레시피를 연구하고, 실험하고,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결과가 좋지 못했다.

딩동!

[샘플 번호 A016]

[예상되는 효능 : 강력한 항염 및 항생 작용, 혈압 강하, 간 보호 및 기능 개선 등등]

[예상되는 부작용 : 급격한 혈압 강하에 따른 쇼크 및 사망]

“…….”

다시 더.

토옷!

“……긥!”

딩동!

[샘플 번호 A029]

[예상되는 효능 : 강력한 항염 및 항생 작용, 장 연동운동 활성화 등등]

[예상되는 부작용 : 지나친 장 운동 활성화에 따르는 설사 및 급격한 수분 소실에 의한 쇼크와 사망]

“…….”

어째 매번 부작용에 사망이 꼭꼭 들어가냐.

라키엘은 울고 싶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거듭 8282 모드로 진입했다. 실험을 할 때마다 매기는 샘플 번호가 계속해서 증가했다. 30, 40, 50대를 넘어서 90에 이어 100번을 돌파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매번 강력한 효능을 얻는 대신에, 부작용에는 ‘사망’이라는 붉은 글씨가 무조건 들어갔다.

‘이거, 사실은 청산가리 뺨치는 독이 아닐까.’

점점 회의감이 들었다.

온몸이 무거워졌다.

미열도 났다.

삽시간에 스멀스멀 기어오듯 전신을 점령해 오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후우…… 힘들구나.’

마침내 샘플 번호가 거의 150번에 육박했을 무렵, 라키엘은 깊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피곤했다.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속이 메슥거렸다. 그럴 법도 했다.

‘요즘 계속 쉬질 못했으니까.’

별궁 한의원을 출발한 이후부터 내내 그랬다. 이곳 지방까지 여정을 재촉했다. 도착한 직후부터 긴뿌리 감초를 찾으려 황야를 바삐 다녔다. 감초 뿌리 발굴에 신경을 썼고, 그걸 마치자마자 이렇듯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이 정도의 하드코어한 일정이면 몸살쯤은 보상(?)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네.’

쓴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당장에라도 이불 펴고 한숨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아이가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오늘이라도 위독해질 수 있다. 안심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더 서둘러 새로운 탕약을 개발해야 할 판국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라키엘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몰려오는 졸음을 털어냈다. 피로감을 애써 잊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오장육부의 진심 어린 걱정을 애써 외면하며 검정색 가시를 들었다.

“후우…….”

이미 수십 번은 찔렀지만, 그럼에도 검정색 가시의 통증은 영 적응이 안 된다. 다가올 통증을 각오하며 심호흡을 했다. 가시를 겨누었다.

한데 그때였다.

……핑.

귓속에 울리는 갑작스러운 이명.

몰려오는 메스꺼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세상.

‘어?’

눈을 부릅떴다. 눈앞의 세상이 훅 멀어지는 듯한 어지러움이 아득하게 몰려왔다. 비로소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가 쓰러지고 있구나, 라고.

둔부의 둔탁한 충격은 깨달음 직후에 몰려왔다.

콰당탕!

“……읏.”

다리가 풀려서 형편없이 넘어지고 말았다. 의자가 밀려나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바닥에 부딪힌 팔뚝이 지끈거리며 아팠다. 쓴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이고 미치겠네.’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이 없다. 정작 병에 걸려서 죽어가는 아이는 얌전하게 누워 있는데, 아이를 살리자고 애쓰는 이쪽이 이런 꼬락서니라니.

‘이래선 안 되지.’

아직은 이럴 때가 아니다. 엄살을 부릴 때도 아니다. 이쪽의 성과만을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 한데 이쪽이 먼저 무너져선 안 된다. 환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런 일은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다.

각오하며 바닥을 짚었다. 짐짓 기운을 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딩동……!

평소보다 훨씬 낮은 음의 묵직한 알림음이 울렸다.

[WARNING!]

[당신의 체내에서 대량으로 증식된 보르데텔라 백일해균이 감지되었습니다.]

[백일해 잠복기 종료.]

[당신은 백일해에 감염되었습니다!]

삽시간에 떠오르는 핏빛 메시지.

문득, 소름이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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