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87화 (187/468)

187화. 백일해를 극복하는 법 (2)

[WARNING!]

[당신의 체내에서 대량으로 증식된 보르데텔라 백일해균이 감지되었습니다.]

[백일해 잠복기 종료.]

[당신은 백일해에 감염되었습니다!]

오싹……!

소름이 돋아났다. 이건 무슨 일일까.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덜컥 어깨를 움츠렸다.

‘뭐?’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다. 눈앞을 가득 채운 핏빛 경고 메시지를 거듭 읽어볼 때까지도 그러했다. 한데 곧,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치닫듯 몰려오기 시작했다.

“……크읍, 쿨룩!”

무의식중에 내뱉은 건조한 기침.

그것이 시작이었다.

“커훅, 쿨룩! 콜록! 그읏, 왜…… 쿨룩!”

기침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아귀가 가슴을 통째로 쥐어짜는 듯이 아팠다. 목구멍이 산 채로 찢기는 기분이었다.

오장육부도 난리가 났다.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비상사태에 돌입합니다!]

[심장 :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응? 야 허파? 넌 또 왜 그래?!]

[허파 : 좋은 인생이었…… 흐픕, 흐픗! 흐프쿠헿갸아알갸……!]

[대장 : 핫하! 똥 만드는 알바도 여기까지지 말입니닼ㅋㅋ]

[간장 : 야야 그럼 우리 이제 죽는 거야?]

[위장 : 아직 못 먹어본 간식이 너무 많은데. 원통하구만ㅋ]

[콩팥 : 마지막으로 생전 고인의 지리는 영상 한 번 만들어볼까?]

[심장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하고 싶은 것들 다 해라 다 해ㅋㅋㅋ ㅠㅠ]

[허파 : ……흐픕! 크픕! 허픕! 헢!]

[오장육부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생명 연장을 기원합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생존을 기원하며 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1,300]

“……쿨룩! 콜록!”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기침의 연속.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서야 가까스로 기침을 붙잡아 멈출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금 상황을 파악하려 애를 썼다.

‘내가 백일해에 감염됐다고? 그런데 벌써?’

라키엘은 자신이 이곳에 온 날짜를 헤아렸다.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잠복기가 끝났다니. 너무 빨랐다.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답은 곧이어 떠오르는 또 다른 경고 메시지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딩동!

[당신은 백일해균에 감염된 잠복기 기간 동안 신진대사가 가속되는 ‘8282 모드’에 거듭 진입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진대사 가속에 힘입어, 당신의 체내에 잠복하고 있던 보르데텔라 백일해균의 분열과 성장 및 증식 속도 또한 폭발적으로 가속되었습니다.]

[그 결과, 잠복기가 비정상적으로 단축되었으며, 당신은 급성 백일해에 감염되었습니다.]

“…….”

미친.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짓씹듯 되뇌었다. 그런데 더 미친 파멸적 메시지가 계속 이어졌다.

[보르데텔라 백일해균에 감염된 결과, 당신은 본격적인 ‘중병 상태’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중병 상태 돌입에 따라, 당신이 보유한 보너스 수명 카운팅이 잠정적으로 중단됩니다.]

[보너스 수명은 당신이 외부 변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온건한 상태에서의 예상 수명입니다. 이는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에 의해 언제든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쿵, 쿵!

급속도로 뛰는 심장. 불안하게 흔들리는 마음. 확실히 알겠다. 비상사태가 온 거다.

내가 백일해 환자가 되어 버린 거다. 그 사실을 온전히 깨달은 순간, 라키엘은 크게 심호흡부터 했다.

“후우.”

마음을 다스렸다. 흔들리지 말자고. 공포에 잠식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단속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잠깐 찾아왔던 당황이 서서히 물러났다. 그 빈자리에 냉철함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자연히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유난 떨지 말자. 어차피 새로운 탕약을 개발하던 중이었다. 개발만 하면 돼. 그것만 성공하면, 아이도 살리고 나 자신도 치료할 수 있어.’

결국 답은 그거다.

하던 연구를 마무리하면 된다. 그것만 성공하면 백일해를 치료할 수 있다. 자신도, 아이도 모두 건강해질 수 있다.

‘그러니 새삼 위축될 필요 없어.’

라키엘은 테이블을 짚고 일어섰다. 순간 현기증과 함께 또다시 기침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때였다.

주방 문밖에서 데미안의 물음이 날아왔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이쪽이 넘어지는 소릴 들은 걸까. 아마도 그렇겠지.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고서 태연한 척 대답했다.

“어. 괜찮아.”

“하지만 전하? 방금 기침하시는 듯한 소리를 들었는데…….”

“괜찮으니까 그만.”

“……제가 안 도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걱정해 주는 걸로 이미 됐어.”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데미안이 들어와서 뭘 해준다 한들 딱히 도움이 되진 않는다.

녀석은 검을 쓰는 데에는 천재적이지만, 약재를 배합하고 달이는 일에는 젬병이니까. 오히려 괜히 안에 들어왔다가 이쪽에게서 백일해가 옮으면 더 큰일이겠지.

그런 이쪽의 생각이 통한 걸까.

혹은 명령에 수긍한 걸까.

“알겠습니다. 다만-”

어느새 데미안 녀석의 목소리가 부쩍 가까워져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앞에까지 다가와 있는 듯했다.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 정말로 힘드실 때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그래.”

“그동안 여기 있겠습니다.”

“그건 호위니까 당연한 거고.”

“이번에는 특별 수당을 달라는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거 눈물 나게 고맙구만.”

말은 저렇게 해도 무척 걱정하고 있다는 마음은 알겠다.

라키엘은 기침이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숨을 골랐다. 이젠 진짜로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다.

‘시간이 얼마 없어.’

테이블 위에 놓인 수많은 종류의 약재들. 그걸 보자 조금 막막해졌다.

이제는 8282 모드를 쓸 수 없게 됐다. 그랬다간 백일해균이 순식간에 더 증식할 테니까.

‘내 신진대사가 빨라지는 만큼, 병세의 진행도 함께 가속되겠지. 그랬다간 손 쓸 틈도 없이 위독해질 수도 있어.’

운이 나쁘면 정말로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그것만큼은 사양이다. 라키엘은 검정색 K-맛 가시를 내려놓았다.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억누르며, 가빠지는 호흡을 느끼며 생각의 실마리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8282 모드는 사용 불가. 그럼 남은 방법은…… 직접 달여서 실험하는 수밖에 없겠군.’

탕약 조제 스킬의 옵션인 ‘약재 배합 미리보기’는 8282 모드가 없으면 로딩이 너무 느리다.

얼마나 느리냐면, 직접 약재를 달이는 것보다도 결과가 늦게 뜰 정도다. 그러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후우.”

점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백일해균이 호흡기를 침범하고, 그걸 감지한 신체가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피로가 잔뜩 누적된 상태라 예후가 더욱 좋지 못했다.

그렇기에 느낄 수 있었다.

남은 기회가 얼마 없을 것임을.

‘아마도 새로운 배합을 실험해볼 기회는…… 최대한 많이 잡으면 세 번 정도.’

라키엘은 냉정한 예상을 꺼냈다.

현재 자신의 컨디션, 백일해가 진행되며 나빠질 예후, 그리고 탕약 한 번을 달이는 데에 소모되는 시간과 체력까지. 그 모든 요소를 고려했을 때, 남은 실험 기회는 최대 3번 정도가 될 듯했다.

‘어쩌면…… 한 번일 수도 있고.’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짙어졌다.

모든 병이 자신의 예상대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예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나빠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세 번의 기회가 남았다고 안도하기보다는, 지금의 시도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야 한다.

“…….”

꿀꺽.

저도 모르게 목울대가 출렁였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과연 배합에 성공할 수 있을까. 긴뿌리 감초의 지나치게 강력한 약성이 불러오는 부작용을 억누르고, 약효만을 효과적으로 신체에 전달할 수 있을까.

이미 150여 회에 걸쳐 실험했음에도 실패한 그걸, 지금, 단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실패하면 끝이겠지.’

라키엘은 신중한 손길로 약재를 골라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분량을 조절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평소와 달리 약재를 잡는 손이 자꾸만 미끄러지거나 약재를 놓치곤 했다. 손끝이 계속해서 미세하게 떨려서였다.

“…….”

점점 오르는 열 때문인지.

문득 치닫는 현기증 때문인지.

혹은 가슴 한쪽을 물들이듯 집어삼키는 긴장과 불안감 때문인지.

‘멍청아, 정신 차려.’

짝! 짜악!

양손으로 볼을 때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근거리는 가슴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어느샌가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배어나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과연,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두렵고, 불안했다.

자신이 지금 시도하려는 배합이, 약재의 비율이 과연 좋은 결과를 끌어낼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자꾸만 이 약재, 저 약재를 매만지게 됐다. 이걸 골랐다가 고개를 저으며 내려놓고, 저걸 집었다가 망설이며 또 내려놓고.

그때마다 150번 넘게 실패한 실험을 이번 한 번에 성공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행운일 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 게 누구에게나 가능한 거였다면, 기적이라는 단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겠지.

그때였다.

“전하?”

문밖에서 다시금 데미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라키엘은 생각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왜 또.”

초조했던 터라 조금 짜증이 났다. 목소리에도 그러한 감정이 어쩔 수 없이 배어났다.

한데 문밖의 데미안 녀석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태연했다. 이쪽의 감정을 느꼈을 텐데도, 그러했다.

“제가 들으면서 감히 추측하기로는, 뭔가를 굉장히 불안하게 망설이고 계신 듯해서 말입니다.”

“…….”

맞는데. 그게 뭐.

“지금 개발 중이신 탕약 말입니다. 처음 접해보는 종류의 약재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걸 개발하는 일이니까, 막막하고 불안한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지요.”

“…….”

“그러니 무엇이 정답일지 계속 불안하고 망설여지신다면, 전하께서 처음 환자를 치료하실 때 느끼셨을 막막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하고…… 잠깐 생각이 들었습니다.”

“…….”

“죄송합니다. 계속 한숨을 많이 내쉬셔서. 괴로워하시는 게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주제넘게 나서고 말았습니다. 그럼, 다시 침묵하겠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데미안 녀석은 정말로 입을 꾹 다물었다. 녀석의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살짝 올라왔던 짜증이 어느샌가 가라앉은 것은. 대신 녀석의 말대로 문득, 아주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은.

“…….”

한국에서 처음 부경 한의원을 개원했던 날 오전이었던가. 그때 찾아오셨던 첫 환자를 진료했던 기억이 불현듯 뇌리에 사무쳤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관호.

그때 진료했던 환자분의 이름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똑같은 이름, 동명이인이었다. 하필이면 연배도 아버지와 비슷하셨다.

내가 고3 때 50대 중반의 나이로 돌아가셨던 아버지. 당신께서 살아계셨다면 딱 저 정도 연배가 되셨을 테니까. 하얗게 서리가 내린 머리칼로 허허 웃으셨을 테니까.

하지만 그 환자분이 날 더욱 당황시킨 점은 따로 있었다. 두 다리가 없으셨다.

베트남전에서 다리를 잃었노라 하셨다. 그런데 환자분의 질환을 다스리기 위해 침을 놓아야 할 자리가…… 다리였다.

당혹스러웠다. 개원 첫 환자를 잘 진료해야 한다는 긴장감, 거기에 아버지와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당황까지.

그런데 정작 침을 놓아야 하는 다리가 없으시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당시에 몇 초 정도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버지와 똑같은 이름을 지닌 환자분의 허허 너털웃음에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던 것도 같다.

그때 환자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던가.

다리가 없으면 다른 곳에 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괜찮다고. 책에서 배운 대로만 말고, 배웠던 것만 바라보지 말고, 지금은 자신을 보고 판단해보시라고. 그러면 없어 보이는 길도 보이지 않겠느냐고.

격려하는 듯한 말씀에 비로소 긴장이 풀렸던가. 당혹감에 휩싸여 굳었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던가.

그때를 떠올리니 문득,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야.’

고개를 들었다. 테이블 위의 무수한 약재를 바라보았다. 불현듯,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어쩌면 내 생각이 편협했던 것일지도.’

그렇기에 지금껏 배운 대로만 긴뿌리 감초를 다루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지식과 경험으로 만들어낸 규격에 새로운 약재를 강요하듯 끼워 맞추던 건 아닐까.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를 놓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 깨달음의 끝자락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딩동!

뜻밖의 알림음이 울렸다.

뒤이어, 전혀 예상치 못한, 약재들이 건네는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