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90화 (190/468)

190화. 소중한 보상 (2)

‘보상, 보상을 보자!’

밤이 깊었다. 외할아버지를 잃은 아이의 눈물을 달래어주고, 숙소로 돌아오고, 자신을 호위하는 이들마저 잠들거나 문밖으로 물러나는 시간이 왔다.

라키엘은 마침내 혼자가 되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탈압박(?)에 성공하자마자 허겁지겁 시스템 창부터 열었다.

‘보상! 내 보너스 수명!’

간식을 원하며 꼬리 치는 강아지처럼 힘차게 외쳤다. 반응은 곧바로 왔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태세 전환을 매우 비웃습니다.]

[심장 : 아니 아까는 보상 메시지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며?]

[허파 : 허허허…… 파하하하핳…… ㄹㅇㅋㅋ]

[대장 : 형님들? 새삼 느끼는 건데, 이 인간 원래부터 이랬지 말입니다?]

[간장 : 그러게. 아까는 뭐? 아이와 나란히 기대어 추모의 시간? 뭐 이러더니ㅋㅋㅋ 앀ㅋㅋ]

[위장 : 아 요즘은 연기력이 받쳐줘야 보상도 뻥튀기가 되는 거라니까 아ㅋㅋㅋ]

[콩팥 : 인성 지렸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치졸함을 새삼 실감하며 혀를 내두릅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에게 옜다 이거나 먹어라, 라며 1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3,100]

“…….”

뭐,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아이를 달래주는 건 달래주는 거고. 보상은 또 다른 문제 아닌가? 다들 안 그래?’

라키엘은 오히려 뻔뻔하게 받아쳤다. 사실이었다. 인간적인 감동을 보듬는 일과, 실질적인 이득을 챙기는 일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우는 아이 달래는 와중에 보상 메시지 흘끔거리는 것도 이상하잖냐. 어쨌건 보상 메시지!’

우기듯 외쳤다.

그제야 기다리던 보상 메시지가 툭 떠올랐다.

딩동!

[당신은 긴뿌리 감초로 새로이 개발한 탕약, ‘천일해소탕’을 활용하여 환자 : 네일라의 백일해 질환을 성공적으로 진료하였습니다. 그녀는 심각한 병마를 극복하였으며, 향후 적절한 안정을 취할시 무난하게 건강을 되찾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신은 본인의 위급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탕약을 먼저 내어주는 희생과 헌신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당신의 모든 수행원들, 툴룬 상단의 관계자들이 당신을 향한 진심 어린 존경과 갈채,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진료 보상에 ‘찬사 보너스’ 효력이 추가됩니다.]

[진료비 청구 (Lv.2) 스킬의 효과가 1.5배로 적용됩니다.]

‘……이거지!’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찬사 보너스. 솔직히 의도한 건 아니었다. 새로운 탕약을 개발한 직후엔 자신도 기절하기 직전의 상태였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그야말로 본능적으로 아이에게 먼저 탕약을 먹이라고 명령했던 거였으니까.

어쨌건 그런 행동이 모두의 가슴속에 잔잔한 감동의 쓰나미를 일으켰을 것이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여 기대했고, 과연 기대가 들어맞았다.

‘후후, 흐흐흐.’

라키엘은 입꼬리 가득 사악한 미소를 진열하며 이어지는 메시지를 훑어보았다.

[환자 : 네일라는 ‘천일해소탕’ 처방을 통하여 71년 5개월의 기대수명 연장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에 당신은 71년 5개월의 1/1,950에 해당하는 보너스 수명을 정산받습니다.]

[13.18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보상에 찬사 보너스 효력이 추가됩니다.]

[당신에게 주어지는 보너스 수명이 1.5배 증가하였습니다.]

[총 23.732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정산되는 수명의 최소 단위는 1일입니다.]

[정산되는 보너스 수명이 반올림 처리됩니다.]

[총 24일의 보너스 수명이 정산됩니다.]

[당신의 예상 기대수명 : 351일]

‘이게 보상이지. 껄껄껄.’

라키엘의 입꼬리가 귀를 넘어서 아예 관자놀이에 걸렸다. 한 큐에 무려 24일의 수명을 얻어냈다. 기대 이상의 수확이었다. 물론 라키엘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음 날, 그는 눈을 뜨자마자 오크 부족장 브라쉬를 찾아갔다.

“이봐, 족장?”

“……예, 꾸익?”

“나 보니까 뭐 생각나는 거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꾸익?”

“감초 거래!”

“…….”

“설마 기억 안 나?”

“……났습니다, 꾸익!”

“쯧.”

“그러잖아도 낮에 직접 찾아뵐 생각이었습니다. 제 친우의 유일한 혈육인 아이를 살려주셨는데, 제가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꾸익?”

“낮에 찾아오려고 했다고?”

“예, 꾸익.”

“보통 그 정도로 감사하면 아침에 날이 밝자마자 찾아오고, 뭐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꾸익.”

“어째서?”

“아침은 하체 조지는 시간입니다, 꾸익.”

“…….”

“아침 먹고 하체 조지고! 점심 먹고 등가슴 조지고! 저녁 먹고 또 어깨 조지고, 꾸익!”

“…….”

“그렇게 아침 점심 저녁으로 3분할을 조져야 제대로 된 오크의 보람찬 하루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꾸익?”

“그럼 일상생활은 언제 해?”

“방금 말씀드린 게 일상생활인데 말입니다, 꾸익?”

“…….”

됐다. 말을 말자.

뭔 당연한 걸 그렇게 물어보느냐는 오크 족장의 순진무구(?)한 눈빛에 라키엘은 그저 웃고 말았다. 그는 족장을 찾아온 용건을 꺼냈다.

“뭐, 어딜 조지건 말건 그건 잘 알겠고. 어쨌건 나와 약속한 일은 기억하고 있겠지? 툴룬 상단장의 외손녀를 살려주면, 그 아이를 통해서 감초 거래를 재개하겠노라고. 맞지?”

“예. 맞습니다, 꾸익.”

“한데 거기에 한 가지 일을 더 추가하고 싶은데.”

“예에, 꾸익?”

왕방울만 한 눈을 끔벅거리는 족장. 그를 향해 라키엘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전에 족장이 말했지, 아마? 이곳 지방에선 백일해가 드물지 않은 병이라고. 이 지방의 어린아이들은 자라는 과정에서 거의 모두 한 번쯤은 백일해를 앓곤 한다고. 맞나?”

“맞습니다. 그걸 견뎌내야 강인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꾸익!”

“그래서야. 이곳에 임시 의료원을 열고 싶은데.”

“……예, 꾸익?”

“아픈 아이들이 있고, 내겐 그런 아이들을 치료할 방법이 있지. 그러니 임시 의료원을 열고 아이들을 치료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당연……한 일이라구요, 꾸익?”

“어.”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픈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을 치료할 탕약이 있다. 그런데 이걸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린아이들은 인류의 미래이자 보배…… 아니, 보너스 수명의 노다지니까!’

그러하다. 일찌감치 예상은 했지만, 네일라에게서 보너스 수명 보상을 받으며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이들은 남은 인생이 기니까. 이들을 살려주면 당연히 더 많은 보너스 수명이 정산된다. 매우 심플하고도 명확한 계산이었다.

‘그러니까 모조리 살려야지!’

절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땡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땡겨먹을 거다. 그러한 일념으로 라키엘은 혓바닥 가득 풀악셀을 넣었다.

“아픈 아이들이 이곳에 있다. 이곳이 비록 자치령이라 하지만 엄연한 제국의 영토이며, 그 아이들 또한 제국의 백성이고 미래가 아니겠는가.”

“…….”

“그런데 황태자인 내가 그런 아이들의 고통을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어찌 그들을 저버릴 수 있을까. 하여 생각했지. 이대로 갈 수는 없다고. 발길을 돌려선 아니 된다고.”

라키엘의 진중한 목소리가 족장의 고막을 촉촉하게 적셨다. 반응은 금방 돌아왔다.

“인간의 황태자시여, 꾸익?”

“음?”

“당신은 진정한 군주이십니다, 꾸익!”

“……어?”

난데없는 족장의 외침에 라키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닌 게 아니라, 족장 브라쉬가 눈물을 잔뜩 글썽이며 이쪽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저는 감동받았습니다, 꾸익!”

“어, 그, 그래.”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 헌신과 자비, 꾸익!”

“으, 응, 그거 참 좋지.”

“뭐든지 믿고 따르겠습니다, 꾸익!”

“그, 그래, 고맙군.”

라키엘은 멋쩍게 웃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브라쉬의 감동받은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가식으로 감격한 게 아니구나.’

고마워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어째서 저토록 감동받은 건지도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이곳 지방의 풍토병인 백일해. 그것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목숨이 안타깝게 사라졌을까. 족장도 그걸 이겨내야 훌륭한 어른이 된다고는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건 열악한 상황을 포장하는 말에 불과했던 거지. 내심 절망스럽고 개탄스러웠던 거겠지. 매년, 매달마다 아이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현실이.’

아마도 그랬으리라.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저 감내하고 있던 것이리라.

“그래. 족장이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다면 나도 고맙겠군.”

도움이라면 언제든 대환영이다.

라키엘은 족장의 오해(?)를 그대로 두었다. 이쪽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면 무조건 이득이니까. 덕분에 임시 의료원이 툴룬 상단 본부에 순식간에 세워졌다. 진료를 위한 천막을 두르고, 도시 구석구석 소식을 알렸다.

제국의 황태자께서 아이들을 직접 보살피러 오셨노라고. 툴룬 상단장의 외손녀가 황태자께 진료를 받고서 병마를 훌륭히 이겨내었노라고.

소문이 퍼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임시 의료원이 순식간에 북적북적해졌다. 라키엘도 덩달아 바빠졌다.

“백일해? 음, 맞군. 처방 받아가서 설명 그대로 복용하도록. 다음!”

환자의 대부분이 백일해를 앓는 어린이였다. 덕분에 진맥과 진단도 초스피드로 진행되었다. 처방 또한 대부분 동일했다. 긴뿌리 감초를 베이스로 하여 미리 대량으로 달여둔 ‘천일해소탕’을 지급했다.

다행히 천일해소탕에 들어가는 긴뿌리 감초의 양은 매우매우 적었다. 워낙 약성이 강력한 재료인 터라, 조금만 양이 많아도 오히려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많은 아이들이 천일해소탕을 받아갔지만, 긴뿌리 감초의 소모량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거기에 라키엘은 아이들에게 복용시키는 탕약의 종류도 세심하게 조절했다. 천일해소탕은 성분이 너무 강력해서, 매일 복용하면 오히려 탈이 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첫날만 천일해소탕을, 그걸로 백일해의 증상이 누그러지는 이틀째부터는 일반적인 맥문동탕으로.’

병세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열흘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진료를 받은 아이들의 숫자가 150명이 넘었다.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매우 척박한 황무지 변경 도시의 인구를 생각하면 현재진행형으로 증상을 앓고 있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왔다고 보아야 할 숫자였다.

그다음부터는? 보너스 수명 보상 쇼타임(?)이 알차게 펼쳐졌다.

딩동! 딩동동! 딩동!

밥을 먹다가도, 탕약을 달이다가도, 심지어 잠을 자는 도중에도 쉼 없이 메시지가 와르르 떠올랐다. 누구누구네 아이가 백일해에서 완치되었다는 둥, 어디어디네 아이가 건강을 찾았다는 등등의 내용이었다.

‘……이거, 보상이 쏟아지는 건 좋긴 한데, 좀 심하구만!’

너무 수시로 보상 메시지가 울리는 통에 잠을 설쳐야 했다. 스팸문자,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에게 전화번호가 털리면 이런 일이 생길까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라키엘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당연했다.

실로 입이 쩍 벌어지는 보너스 수명을 연달아 퍼 받은 덕분이었다.

딩동! 딩동동!

[당신의 예상 기대수명 : 1,282일]

무려 900일이 넘는 수명이 증가했다. 덕분에 기대수명이 3년 반을 돌파하게 됐다.

‘이거, 실화냐.’

보고 또 봐도 믿기지가 않아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물론 남들에게는 3년가량이라고 해봤자 인생을 통틀어보면 크게 길지는 않은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금덩이처럼 느껴졌다.

‘감개무량해지는구만.’

처음 이 몸에 들어왔던 때를 떠올려보면 더욱 그랬다. 당시엔 100일도 못 사는 몸뚱이였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더 긴 인생을 이어나갈 희망을 다져두게 됐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봐, 족장? 혹시 말이야. 꿀 빠는 농장 비즈니스 하나쯤 맡아볼 생각 없어?”

그것은 라키엘이 내심 염두에 두고 있던 다음 계획, 본격 긴뿌리 감초 농장 사업 플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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