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92화 (192/468)

192화. 망자의 속사정 (1)

“왜? 어째서? 요즘 크라노스에서 기침병으로 죽는 사람이 확 줄어든 거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

이곳은 변방 도시 크라노스의 외곽. 드넓은 황무지 으슥한 구석에 자리한 동굴 안쪽. 그곳에서 네크로맨서, 카르투는 당혹감에 젖어 중얼거렸다.

“어째서지? 갑자기 이럴 수가 있나?”

펄럭!

그는 신경질적으로 방풍의를 벗어던졌다. 오늘도 허탕이다. 벌써 열흘째다. 온 황야를 뒤졌지만, 풍장을 위해 놓인 시체를 한 구도 건지지 못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그렇지 않나?”

그가 이를 갈며 물었다. 물론 그의 물음에 대답할 사람은 이곳 동굴에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사람은, 없었다.

“……구르륵!”

언젠가는 사람이었던 좀비들이 대답 비슷한 소리를 냈다. 배가 고픈 걸까. 혹은 지성이 사라진 채 본능적으로 반응하기만 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대화를 나눌 방법이 없으니까. 카르투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큰일이야. 큰일. 이대로는 안 돼. 벌써 열흘째 이러면 곤란해진다고. 알아?”

“……구륵!”

말을 걸 때마다 철장 속에서 반응하는 좀비들. 철장 하나마다 약 100구의 좀비가 닭장 속의 닭처럼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그런 철장이 30개는 되었다. 물경 3천 구에 달하는 좀비의 군단. 모두가 그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카르투는 내심 고개를 가로저었다. 3천 구? 이걸로는 부족하다. 턱도 없다. 최소한 6천 구는 모아야 한다. 그래야 대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제국의 토벌군과 겨루어볼 수 있을 테니까.’

카르투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불현듯, 십수 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당시 받았던 습격. 제국 황실의 토벌군. 그것이 자신이 흑마법사로서 경험한 첫 박해였다.

그때부터였다. 스승을 잃고, 함께 배우던 동문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악착같이 신분을 숨기고서 떠돌며 살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독학으로 실력을 키웠다. 가슴속에 품은 야심도 함께 키웠다.

흑마법사가 박해받지 않는, 흑마법사에 의한, 흑마법사를 위한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사람 시체 좀 쓰는 게 어때서? 어차피 죽은 고깃덩이 아닌가? 그걸 유용하게 재활용하는 것이 흑마법의 본질인데, 그게 왜 박해를 받아야 하는 거지?’

카르투는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체는 말 그대로 시체일 뿐이다. 한때 살아서 사랑하며 웃었다 한들, 죽고 나서는 그저 한 덩어리의 썩어가는 고깃덩이가 될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였다.

그는 시체를 활용하는 흑마법에 매력을 느꼈다. 흑마법이야말로 합리적인 마법이라 여겼다. 이를 잘만 활용하면, 인간 사회에 만연한 비합리적이고도 고질적인 문제점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체를 활용하면 된다.

모든 경작지와 일터. 심지어 전쟁터까지. 살아 있는 사람 대신에 시체를 활용하면 된다. 그러면 살아 있는 사람이 고생하며 피와 땀을 흘릴 필요가 없어진다.

시체가 해주는 일을 통해 생산되는 식량과 자원을 공평하게 배급받으면 된다. 갖가지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이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갈 필요도 없게 된다. 전쟁 또한 시체가 대신 수행할 테니까.

즉, 그가 세우고 싶은 제국은 시체의 노동력으로 굴러가는 이상적인 평등 국가였다. 그 국가의 시민이 되려면? 죽은 후에 자신의 시신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서약만 하면 된다. 그러면 살아 있는 모두가 낙원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멍청한 인간들은 기분 탓을 하며 그 합리적인 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지.‘

생각할수록 비웃음이 나왔다.

당장 눈앞에 낙원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는데.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있는데.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감정적인 이유로 그걸 거부하며 살아가는 우매하고 덜떨어진 인간들 같으니라고.

카르투는 그런 인간들에게 깨우침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자신이 독학으로 연마한 지식과 기술을 활용했다. 3천 구에 달하는 좀비 군단을 양성했다.

때마침 이곳, 크라노스는 좀비 군단 양성에 너무나 최적인 환경이었다. 변경 지역이기에 숨어서 세력을 키우기에 적합했다. 풍토병으로 나도는 기침병이 항상 일정량 이상의 사망자를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이 지방 특유의 ‘풍장 풍습’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덕분에 시체를 훔치기에도 너무나 편했지.’

이곳 지방의 사람들은 시신을 화장하거나 땅에 묻지 않았다. 대신 성대한 장례식이 끝나면 시신을 황야로 가져왔다. 황야의 이름 모를 벌판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바람과 새와 자연에게 시신을 돌려주는 풍장, 그것이 이곳의 전통적인 장례문화였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황야에 내려놓은 시신을 절대로 돌아보거나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유족이 시신을 보러 오면, 망자가 이승에 미련이 남는다고 여겼다. 그렇게 미련이 남은 망자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상을 떠도는 망령이 된다고도 믿었다.

그런 덕분이었다.

시체를 훔치기가 너무나 편했다. 아무도 시체를 다시 확인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마치, 자신의 좀비 군단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풍습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싶었지. 그런데…… 며칠 전부터 도통 시체가 보이질 않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온종일 황야를 돌아다녀도 시체를 찾을 수가 없게 됐다. 결국, 열흘 동안 건진 것이라곤 늙어서 죽은 시체 서너 구가 다였다.

처음엔 의아했다.

그냥 우연이겠거니 하고 여겼다.

한데 곱씹을수록 아닌 듯했다. 이건 뭔가 이유가 있다. 그러지 않고는 열흘이나 기침병으로 죽은 시체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됐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

“…….”

카르투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결론은 쉽게 나왔다.

“……거기, 너.”

그가 좀비 철장을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 가장 최근에 만들어서 비교적 싱싱한(?) 좀비가 있었다.

그가 좀비를 철장 밖으로 꺼냈다. 커다란 거적과 낡은 모자를 좀비에게 씌웠다. 그러자 좀비의 몰골이 그럭저럭 집 없이 떠도는 걸인, 혹은 부랑자의 것과 비슷하게 되었다.

“네가 나 대신 도시로 가서 눈과 귀가 되어줘야겠구나.”

“……구르륵?”

카르투의 눈에 기이한 녹색의 빛이 서리는 순간, 좀비가 그의 꼭두각시로 화하였다.

“전하, 저는 안전한 상자 속에 모셔지는 꼭두각시나 장난감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데미안이 대뜸 대담한 소리를 꺼낸 것은, 긴뿌리 감초 농장의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니던 도중이었다.

“그게 뭔 소리야.”

라키엘은 마차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데미안 녀석의 이쪽을 보는 표정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이 작심한 듯 말했다.

“말씀 그대로입니다. 전하. 저는 검을 다루는 사람입니다. 그 검을 전하를 지켜드리기 위해 쓰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 전하의 곁에 있는 것입니다. 한데 어째서, 요즘 전하께서는 저로 하여금 전하를 지켜드릴 수 없는 곳에 놓아두려 하십니까?”

“…….”

데미안의 눈길은 더없이 부리부리했다. 제대로 작정했구나 싶었다.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쯧. 놈이 눈치를 챘구만.’

라키엘은 내심 혀를 찼다. 녀석을 안전한 곳에 보관(?)하려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야 녀석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 테니까. 녀석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끔찍한 존재가 눈을 뜨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 멸망의 위험을 맞이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녀석을 온실의 화초로 놓아두려 했다. 애초부터 녀석을 호위로 삼은 목적도 그것이었다. 황태자의 곁은 험난한 바깥세상보다 비교적 안전할 테니까 말이다.

한데 녀석이 벌써 그런 이쪽의 의도를 눈치챘다니. 이래선 곤란하다. 자칫 녀석이 불만을 품고서 사표를 던지고 휙,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

묘한 위기감을 느낀 라키엘은 재빨리 대꾸했다.

“쓰읍. 내가 너를 일부러 별 볼 일 없는 곳에 박아두려 군다, 뭐 그런 불평을 하는 건가 설마?”

“불평이 아닌 항의이고, 요청입니다.”

“너를 더 귀한 곳에 중요하게 써달라?”

“예, 전하.”

“흐음. 착각이 좀 지나친 거 아닌가?”

“……예?”

흠칫하는 데미안. 녀석을 향해 준비한 대사를 뻔뻔하게 읊어주었다.

“네 임무가 뭐냐. 날 호위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너만 날 지키나?”

“그건…….”

“아니지?”

“…….”

“근위대가 있고, 특근대도 있어. 넌 그런 특근대원 중의 한 명이고. 맞지?”

“맞……습니다.”

“그런데 왜 너만 혼자 다 하려고 그러냐?”

“저만 혼자 하려는 게 아니라…….”

“뭐가 아니야. 맞는데.”

“…….”

“나라고 내가 덜 안전해지고 싶을까? 내가 변태야?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그러니까 나는 근위대와 특근대 전체 인원의 가장 효율적인 배치와 활용을 추구하는 거야. 그 와중에 네가 잠깐 나와 떨어져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렇지? 맞지?”

“……예. 저기, 하지만.”

“하지만 뭐?”

“얼마 전에 말입니다. 긴뿌리 감초를 채집하시다가 거대 구렁이의 습격을 받으셨을 때, 제가 전하가 계신 곳을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더 큰 위험에 처하셨을 텐데요.”

“아, 그건 인정. 내가 실수했던 거 맞아.”

“…….”

“그래서 네가 저지른 명령불복종의 책임을 묻지 않았잖아?”

“하지만!”

“또 뭐.”

“이따금씩 제가, 온실 속의 화초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말입니다.”

“…….”

어, 정답.

라키엘은 음흉한 본심을 꼭꼭 숨기며 빙긋 웃었다.

“야 부럽다. 나도 온실 속의 화초 해보고 싶은데.”

“전하. 저는 진지합니다.”

“알아. 나도 진지해.”

라키엘은 마차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맞은편 자리 데미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네가 호위 임무에서 배제될 때마다 느끼는 불만과 소외감, 잘 알겠다. 앞으로 참고하지. 그리고 하나 약속하지.”

“약속이라니요?”

“내가 먼저 너를 저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

조금은 놀란 걸까.

아주 잠깐 녀석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이내 평소의 침착함을 되찾았지만, 그 잠깐의 당황만큼은 숨기지 못했다.

그거면 됐다.

최소한 당분간은 괜찮겠지. 또 불만을 품지는 않겠지. 그러니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앞으로도 녀석이 종종 불만을 품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녀석을 위험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을 방법을 생각 좀 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던 무렵이었다.

‘어?’

무심결에 마차 창밖을 보던 라키엘은 흠칫했다. 이상한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을 본 순간, 보여선 안 될 비정상적인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말했다.

“정지. 마차 세워.”

마차를 세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데미안 녀석의 물음에 긴장감이 서렸다. 대답 대신 마차에서 내렸다. 방금 본 길가의 사람을 향해 몇 걸음 다가갔다.

그곳에 걸인이 있었다.

전형적인 부랑자의 모습이었다. 길가 구석진 곳에 널브러지듯 앉아 있었다. 몸에는 거적을 덮어썼고, 푹 눌러쓴 낡은 모자 틈새로 떡진 머리칼이 삐져나왔다. 그런 걸인의 앞에는 동전 두어 닢이 담긴 찌그러진 깡통도 놓였다.

걸인의 정석(?)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라키엘은 걸인의 겉모습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걸인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하나 묻지. 내가 마나의 흐름을 느끼는 특이한 심법을 지니고 있어서 감지하기 싫어도 감지해 버린 건데 말이야, 그쪽…….”

“…….”

여전히 움츠리고 있는 걸인.

그런 걸인을 향해 라키엘은 거의 확신이 담긴 족집게 눈빛을 던졌다.

“그쪽,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

“딱 걸렸네?”

“…….”

움찔!

걸인, 아니, 좀비의 어깨가 당혹감의 바운스를 찰지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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