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94화 (194/468)

194화. 좀비도 때로는 환자가 된다 (1)

진짜다.

이건 진짜다.

아무리 봐도 그렇다.

그렇기에, 혼란스럽다.

“……자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응, 꾸익?”

복잡해진 머릿속으로 오크 족장 브라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척 당황한 목소리다. 그렇겠지. 이쪽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커다란 당혹감을 느끼고 있겠지.

라키엘은 고개를 들었다.

족장 브라쉬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족장의 눈빛은 이쪽이 아닌, 온몸이 묶여 꿈틀거리는 좀비에게로 향해 있었다.

“말해보게, 툴룬. 내가 인정한 역전의 전사여. 어쩌다가 자네가 이런 꼴을 겪게 된 건가, 꾸익?”

떨리는 브라쉬의 말꼬리.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허망했다.

“……구르륵! 구윽!”

좀비, 아니, 한때 툴룬 상단장이라 불렸던 존재의 입에서 지성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괴성만 흘러나왔다. 눈동자는 아예 없었다. 그저 흐리멍덩한 회백색 흰자위만 번들거리며 본능적인 사나움만 내보일 뿐이었다.

라키엘은 브라쉬를 향해 물었다.

“어떤가. 그대가 아는 툴룬 상단장이 확실한가?”

“맞습니다, 꾸익.”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브라쉬. 역시나. 이쪽의 눈이 틀리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차라리 내 착각이기를 바랐는데.’

라키엘은 쓰려지는 입맛을 다셨다. 혹시나 해서 확인을 위해 좀비를 생포하여 숙소로 데려왔다. 족장 브라쉬와 대면시켰다. 브라쉬는 이쪽의 믿음에 정확하게 부응했다. 바라지 않던 방향으로.

“저도 믿기 싫지만 확실합니다. 툴룬 상단장이 맞습니다. 여길 보십시오. 흉터가 보이십니까, 꾸익?”

브라쉬가 좀비의 오른쪽 눈가를 가리켰다. 과연 그 손길을 따라 살펴보니, 좀비의 눈가에 새겨진 푹 파인 흉터가 보였다.

“이 친구는 욕심이 많았지요. 쇠질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항상 무리해서 무게를 치곤 했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쳤는데 무리하지 말라는 주위의 만류를 무시하고서 평소보다 오히려 무거운 덤벨로 숄더 프레스를 치다가 그만 덤벨을 놓치고 말았지요, 꾸익.”

“그래서 덤벨에 얼굴을 찍힌 건가?”

“아닙니다, 꾸익.”

“그럼?”

“제가 깜짝 놀라서 덤벨을 받아주려고 재빨리 손을 뻗었습니다, 꾸익.”

“설마 그 손에 맞은 거?”

“예, 타격감이 시원하더군요, 꾸익.”

“…….”

추억치곤 참 디테일하게 살벌하구만.

브라쉬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건, 그때 제 손에 얻어맞아서 터진 상처입니다. 이 좀비, 툴룬 그 친구가 확실합니다, 꾸익.”

족장의 목소리는 더없는 착잡함과 충격, 회한에 젖어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자신이 인정하고 교분을 나누었던 친구가, 그러다가 먼저 죽은 친우가 좀비가 되어 나타났으니 정신적 충격에 휩싸일 법도 했다.

충격을 받기는 라키엘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쉬의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충격이기는 했지만.

‘쯧. 이거 난리 났네.’

툴룬 상단장.

최근에 죽었던 이다. 그런 이가 좀비가 되어 도시 내부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흑마법사가 근처에 있다는 소리지.’

그는 문득, 소설 마검황의 내용을 떠올렸다. 소설 속 설정을 따르자면, 좀비는 절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시체로 좀비를 만들어서 인형처럼 부리는 부두술, 강령술, 흑마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즉, 최근에 죽은 툴룬 상단장을 좀비로 만든 놈이 근처에서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소리다.

‘게다가 이거, 평범한 흑마법사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라키엘의 눈이 툴룬 상단장 좀비를 훑어보았다. 면면을 꼼꼼히 살펴볼수록 놀라웠다. 좀비로서의 완성도가 상당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실력이야.’

일찍이 마검황에서 언급된 바 있는, 좀비의 완성 단계들이 떠올랐다. 마검황에서는 좀비의 수준을 상, 중, 하급으로 나누었다.

가장 먼저 하급은, 좀비를 만들기는 하되, 움직임이 매우 부자연스럽다고 했다. 관절이 거의 뻣뻣하게 굳어서 절뚝절뚝 느릿느릿 기는 속도로 걷는 것이 전부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중급은, 걷거나 움직이는 몸의 동작이 자연스러워진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표정을 지을 수 없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상급은?

‘움직임이 자연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얼굴의 표정마저도 다양해지면서 생동감이 생겨난다고 했지. 뭐, 대체로 흉포한 표정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라키엘의 시선이 툴룬 상단장 좀비를 향했다. 브라쉬를 향해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게다가 아까 처음 정체를 들켰을 때는 어떠했던가. 나름 놀라서 당황한 표정을 일순간 내보이기도 했다.

그 뜻은 명확하다.

‘상급의 좀비를 만들 정도의 실력 있는 흑마법사라는 거지. 그리고 마검황의 세계에서 지금 시기에 상급 좀비를 만들 수 있는 흑마법사는…… 카르투, 그놈밖에 없어.’

소설 속 내용이 기억의 서랍에서 연달아 흘러나왔다.

카르투.

당대 최강, 최악의 흑마법사.

동시에 희대의 사이코패스.

놈은 좀비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것이 합리적인 세상이라 여기며 언데드 군단을 양성했다. 끝끝내 미드가르트 지방에서 재난을 일으켰다. 무려 도시 3개를 집어삼키며 맹위를 떨쳤다.

그것이 약 7년 후의 미래에 펼쳐질 일이다.

‘쯧. 그래서 몇 년쯤 지난 뒤부터 미드가르트 지방에 신경을 쓰려고 했는데. 그런데 어째서, 그놈이 미드가르트와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여기서 설치고 있는 걸까.’

그래서 처음엔 다른 놈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었다. 상급 좀비 제조술은 오직 카르투, 그놈만이 지닌 독보적인 흑마술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놈이 몰래 힘을 키운 장소가 이곳 크라노스크 지방이었다는 뜻인가.’

라키엘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하긴. 소설에서도 그놈이 언데드 군단을 양성한 방법이나 시기, 장소는 특별히 언급된 적이 없었으니까.’

역시 소설에 나오지 않은 부분들도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던 거구나. 라키엘은 새삼 이곳 세상이 마검황의 세계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한편으로는, 소설을 읽은 자신이라도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는 점을 인정했다.

‘어쨌건 그렇다면 막아야지. 이건 기회니까.’

훗날의 재앙을 미리 예방할 기회다. 게다가 자신이 기대를 걸고 있는 긴뿌리 감초 농장의 평화(?)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긴뿌리 감초가 원활하게 공급되어야 별궁 한의원이 더욱 발전할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라키엘이 말했다.

“어쨌건 알겠다. 이 좀비가 툴룬 상단장이 확실하다면, 근처에 토벌해야 할 흑마법사가 존재한다는 뜻이겠군.”

“예. 전사들을 준비시킬까요, 꾸익?”

족장 브라쉬는 이미 대흉근을 불끈거리며 거친 콧김을 풍풍 뿜어내고 있었다. 자신의 친우를 좀비로 만들어 모욕한 흑마법사의 모가지를 당장에라도 뽑아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말고.”

“예, 꾸익?”

“일단은 그 흑마법사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부터 찾아내야겠지. 놈의 흔적과 단서를 캐는 것이 우선이다. 전사들과 별개로 황도에 기별도 넣어둘 것이고.”

“기별이라시면, 꾸익?”

“토벌군 요청.”

라키엘이 칼로 자르듯 말했다.

“그대의 전사들이 용맹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황실에서 파견된 토벌군이 가세한다면 더욱 확실하게 흑마법사 놈의 뚝배…… 아니, 머리통을 쪼개 버릴 수 있겠지. 안 그런가?”

“역시! 현명하십니다! 그럼 당장 전사들을 준비시킬까요, 꾸익?”

“응? 아니, 지금은 말고. 정보 수집이 먼저라니까.”

“예, 그럼 정보 수집을 위해 당장 전사들을 집합시킬까요, 꾸익!”

“…….”

“저희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꾸익!”

“……어, 그래.”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브라쉬의 의욕은 알겠는데, 전사들을 동원해서 황야를 헤집는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간 위험을 감지한 흑마법사 놈이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릴 테니까.

‘게다가 놈도 자신이 들켰다는 걸 이미 알았겠지.’

분명히 그럴 것이다. 조종하던 좀비가 생포됐으니까. 아마 지금쯤 이미 꼬리를 자르고서 은신처를 옮기지 않았을까.

‘그러니 무작정 황야를 수색하거나, 시체를 미끼 삼아 던져놓는 방식의 단순한 방법은 안 통할 거고.’

그럼 어떻게 놈의 정보를 캐낼 수 있을까. 놈의 은신처를 알아낼 수 있을까. 라키엘의 미간에 고민의 깊이만큼 선명한 주름이 파였다.

‘차라리 저 좀비한테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구만.’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저 상단장 좀비가 자신이 어디서 제조(?)되었는지를 스스로 술술 불어주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머금던 참이었다.

마치 이쪽의 생각에 화답이라도 하듯, 상단장 좀비가 격하게 몸을 뒤흔들었다.

“구워어어어억-!”

묶인 채 괴성을 지르는 좀비. 동시에 희미하고도 기이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아까 처음 좀비를 발견하던 때에도 감지했던 예의 그 마나였다.

그런데…….

“…….”

잠깐만.

라키엘은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득이는 것을 느꼈다. 아주 잠깐,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이 뇌리를 스쳤다. 경혈 스캐닝을 켰다. 상단장 좀비의 몸을 살폈다.

그 순간.

“……궈어어억!”

상단장 좀비가 재차 괴성을 질렀다. 동시에 또다시 감지되는 뒤틀린 마나의 흐름. 이번에는 경혈 스캐닝 덕분에 보다 상세하게 보였다.

‘좀비의 신체 곳곳에…… 뭔가가 새겨져 있는데?’

아주 작은 마법진?

혹은 주술의 흔적?

호박씨 크기의 마나 알맹이들이 상단장 좀비의 신체 곳곳에 박혀 있었다. 그것들이 뒤틀린 마나를 발산하고, 상단장의 죽은 육신을 강제로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마나의 흐름이 마치…….

‘경혈의 흐름 같잖아.’

너무나 흡사했다.

인위적으로 만든 경혈의 흐름. 저게 시체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죽은 이의 시신에도 조건만 맞으면 경혈의 흐름이 생겨날 수 있는 거다.

그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꼬슴아, 가시 좀.”

새로운 가능성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생각 같지만. 미친 발상 같지만. 한편으로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품으며 꼬슴이표 하얀 가시를 들었다. 상단장 좀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서슴없이.

톳!

꿈틀대는 상단장 좀비의 목덜미를 찔렀다. 목덜미 옆쪽, 목빗근(sternocleidomastoid muscle) 뒤편의 오목한 자리.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의 천유혈(天牖穴)이었다.

“……그욱!”

시침을 하고서 경혈 스캐닝으로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가시를 찌른 천유혈에서는 어떠한 마나의 흐름도 생겨나지 않았다.

하지만 라키엘은 가능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꼬슴아, 이번엔 갈색.”

“꼬슴!”

갈색 가시를 받아들었다. 또 한 번.

툿!

이번에는 귓바퀴 꼭대기 바로 위쪽의 각손혈(角孫穴)을 찔렀다. 경혈 스캐닝으로 살폈다. 역시나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인간의 황태자시여? 무얼 하시는 겁니까, 꾸익?”

브라쉬가 의아한 얼굴로 물어왔다. 이쪽이 난데없이 살아 있는 사람도 아닌 좀비에게 시침을 시작했으니 뜨악할 법도 했다.

하지만 라키엘은 대답 대신 다음 가시를 꺼냈다.

“꼬슴아, 검정색.”

K맛 가시를 받아들었다. 상단장 좀비를 겨누는 라키엘의 눈빛이 번득 빛났다.

‘갈색으로도 자극이 약했다면, 이건 어떨까.’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죽었음에도 경혈이 자극에 반응해 주기만 한다면. 그렇게 인위적으로 경혈의 흐름을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뇌 조직에 저장된 기억의 일부를, 좀비가 된 동안에 겪은 기억의 일부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흑마법사의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너무나 허황한 일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다. 희미한 가능성이나마 확인 정도는 해보아야겠다.

톳-!

검정색 K맛 가시로 상단장 좀비의 정수리 꼭대기, 백회혈(百會穴)을 정문일침하였다.

그 순간.

“……아야!”

상단장 좀비에게서 무지성의 구웍거림이 아닌, 모처럼의 인간다운(?) 반응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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