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좀비도 때로는 환자가 된다 (2)
“……아얏!”
이곳은 크라노스크 지방과 멀리 떨어진 황도 마젠타. 2황자궁 연무장에서 누군가의 놀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내 따라오는 타박도 함께였다.
“이게 아픈가?”
“아, 으읏, 네.”
“쓰읍. 이 정도로 아프면 안 되는데.”
“…….”
“원래 인간이라는 족속은 이렇게 나약한 건가?”
“…….”
마젠타노 황실의 2황자, 테오도르는 진심으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방금 태연하게 인류를 디스(?)한 엘프 여인을 향해 열심히 항변했다.
“하지만 실비아님? 이건 인간이 아니라 누구라도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너 같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애나 그런 거겠지.”
“저, 성인입니다.”
“나한텐 핏덩이인데?”
“…….”
“알겠으니까 다시 손 내밀어봐.”
테오도르는 뭐라고 더 대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뿐. 항변의 멘트들은 끝끝내 입속에서만 소리 없는 웅얼거림으로 스러지고 말았다. 대신 그는 엘프 여인의 말에 따라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말입니까?”
“그래. 일단 자세는 안정적이군.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기본기가 제법 탄탄하단 말이지.”
“가, 감사합니다.”
“칭찬 아닌데. 기본기 빼고는 아무것도 볼 것 없이 형편없다는 뜻인데.”
“……그 정도입니까?”
“당연하지. 이렇게.”
“……!”
타닷!
느긋하게 대꾸하던 실비아의 모습이 일순간 흐릿해졌다. 테오도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엘프 여인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자신의 품속을 파고들었음을. 자신이 내밀고 있던 팔을 붙잡아 낚아채고 있음을.
“크읏!”
넋 놓고 있다가는 당한다. 그의 눈동자에 위기감이 서렸다. 또 아까처럼 형편없이 업어치기에 당해서 나가떨어질 수는 없다.
‘그럼…… 나는 이렇게!’
다른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가슴 쪽으로 확 달라붙어 오는 엘프 여인의 어깨를 밀었다. 반 뼘. 그녀와 자신 사이에 반 뼘의 공간만 만들어두면 된다. 그러면 그녀가 반동이나 탄력을 이용해서 자신을 업어칠 수 없을 테니까!
……라는 생각은 그만의 판타지 속 망상이 되고야 말았다.
터억!
“어?”
두 발이 공중으로 붕 떴다.
몸이 허공에서 거꾸로 뒤집혔다.
이윽고 다가오는 추락의 순간.
머리가 땅에 부딪히기 직전.
터턱!
엘프 여인의 손길이 다가와 뒷목을 받쳐주었다. 덕분에 허겁지겁 낙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뒤이어 둔탁한 충격이 어깨와 등판을 때려왔다.
쿠웅!
“……그읏!”
낙법을 썼음에도 모래밭에 메다꽂히는 순간은 아프다. 숨이 턱 막힌다. 게다가 이번에는…….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형편없이 당한 주제에.”
“……!”
이쪽을 넘어뜨린 엘프 여인이 가슴 위로 올라타 왔다. 어깨에 관절기를 걸어왔다. 그녀의 부드러운 체중과 체취가 확 끼쳐왔다.
테오도르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자, 잠깐만…….”
“실전엔 잠깐이 없는 법이란다, 애송이.”
꽈득!
“……걱!”
어깨가 반쯤 돌아가려다가 말았다. 그제야 테오도르는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들지를 못했다.
“뭐야. 왜 그래. 많이 아팠어?”
“…….”
“고개 좀 들어보지?”
“그, 으음, 그게…….”
“그게 뭐?”
“아닙니다.”
테오도르의 고개가 더욱 깊이 숙여졌다. 차마 얼굴을 들지를 못하겠다. 한데 스스로도 이유를 모르겠다.
‘왜 얼굴이 계속 화끈거리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오로지 얼굴에만 화끈화끈 열이 올랐다. 한편으로는 방금 겪은 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자신의 품속으로 파고들던 실비아의 얼굴. 그 순간 볼을 스치던 그녀의 머릿결. 짧은 틈새에 벌어진 포지션 공방전. 몸에 와 닿던 감촉들.
‘……이건 패배 때문에 부끄러워서 이러는 거야. 분명 그런 거다.’
그러니 더 성장해야 한다.
더 실력을 키워야 한다.
기본적인 맨몸을 쓰는 법에서부터 보법, 다음에는 검술까지. 조금이라도 형님과 황실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럴 역량을 키워야 한다.
“죄송합니다. 잠시 집중력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부탁드립니다.”
테오도르는 각오를 다지듯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런 그의 전신은 온통 흙투성이 땀투성이였다. 이내 그의 눈빛 속에 배어 있던 잡념이 사라져 갔다. 실비아의 눈동자에도 사납고도 흐뭇한 기세가 피어났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 줘야 나도 덜 심심하지.”
“그읏!”
2황자궁의 연무장에서 젊은 2황자와 노련한 엘프 집행자가 다시금 어우러졌다. 그런 둘을 향해, 머나먼 서북방에서부터 출발한 황태자의 전서구가 날아들고 있었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2황자의 곡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
“……아야!”
이곳은 황도 마젠타와 멀리 떨어진 크라노스크 지방. 툴룬 상단본부 건물 한쪽에서 누군가의 기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내 따라오는 놀란 외침도 함께였다.
“헛? 정말…… 아파하는 건가?”
“그아악!”
“쓰읍. 이거 진짜 같은데.”
“거억!”
“원래 좀비라는 게, 아파서 엄살을 부릴 수도 있는 건가?”
“……긔이입!”
마젠타노 황실의 황태자, 라키엘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방금 애절하게 고통을 표현한 상단장 좀비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진짜로 아파하는 거 같은데?’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느꼈던 자신이었다. 애초부터 흑마법사의 흑마술에 의해 움직이는 상단장 좀비였다. 덕분에 뒤틀린 종류의 마나가 상단장 좀비의 전신에 미약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혹시나 싶었다.
흑마술에 의해 흐르는 마나도 결국엔 경혈을 흐르는 마나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였다. 침술을 활용해서 저 흑마술 마나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면 어떨까 싶었다.
가시로 찔러보았다.
처음엔 하얀 가시. 다음엔 따끔한 갈색 가시.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너무 순한(?) 맛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하여 작정하고 검정색 K맛 가시를 정수리에 찔러본 건데…….
“……으아악! 그와악!”
좀비가 온몸을 뒤틀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온몸을 꽁꽁 묶은 밧줄을 모조리 풀어내고 이쪽에게 항의하며 싸다구라도 날릴 기세였다.
즉, 좀비는 진짜로 ‘아파하고’ 있다.
라키엘은 그 원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K맛 가시가 죽을 정도로 아파서, 죽은 좀비까지도 아파하고 있는 거구만!’
바로 그러했다.
따로 복잡한 이유가 없었다.
진짜로 죽을 만큼 아파서. 죽도록 아파서. 죽은 사람마저도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게 만드는 K맛 가시의 위용!
하지만 라키엘은 섣불리 단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른다. 다른 원인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확인해보자.’
그는 새로운 검정색 가시를 들었다. 겨누었다. 상단장 좀비의 위팔 앞쪽의 천천혈(天泉穴)을 향해 가시를 겨누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묘하게도, 아직 가시를 찌르지도 않았는데도 상단장 좀비가 반응을 보였다.
움찔!
다가올 거대하고 파멸적인 죽빵(?)을 예감한 듯, 검정색 가시를 보자마자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어깨를 움츠리며 엄살을 부리는 좀비!
하지만 라키엘에겐 피도 눈물도 자비도 없었다.
톳!
좀비의 팔뚝을 야물딱지게 파고든 K맛 가시!
역시나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으아아악! 젠자앙-!”
혹시 좀비한테 쌍욕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비로소 라키엘은 확신했다.
‘이거 실화네.’
진짜다.
아무리 좀비라고 해도 검정색 K맛 가시에는 반응을 한다. 고통이라는 감각을 느끼고, 본능적인 것이라 할지언정 리액션을 보인다.
체내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경혈 스캐닝을 통해 훤히 보였다.
가시를 찌르자마자 찔린 부위를 중심으로 경혈이 크게 요동쳤다. 마치 물을 담은 대야에 커다란 돌을 던진 듯, 경혈 속의 마나가 출렁거렸다. 출렁이던 마나 일부가 대야 밖으로 넘치듯 흘러나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나의 흐름이 주위로 살짝 번지다가 사라졌다.
경맥이 움직이고 기혈이 흐른 것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처럼!
‘미친. 이게 되네.’
라키엘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기혈이 움직였다는 말은? 조금만 더 섬세하게, 정확하게 침술을 구사하면 좀비의 몸속 기혈 전체를 의도적으로 흐르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역시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데미안? 이 사람…… 아니, 좀비 좀 꽉 붙잡아.”
“예?”
라키엘이 명령했다.
데미안이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은 그렇지 않아도 눈앞에서 벌어지던 상황에 내심 뜨악하던 데미안이었다. 황태자가 난데없이 좀비에게 시침을 하다니. 그런데 좀비가……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대다니.
‘이게 가능한 건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그렇다.
애초에 좀비는 죽은 사람이니까. 말 그대로 시체니까. 어떠한 감각도, 감정의 조각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좀비가 아닌가 말이다.
사실 그것이 좀비의 가장 두렵고도 강력한 점이기도 했다. 제아무리 치고 때려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대. 설령 머리가 부서져도 스멀스멀 다가오는 상대. 실제로 그런 상대와 싸운다는 상상을 해보면…… 절로 소름이 돋지 않겠는가.
상단장 좀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마찬가지여야 했다. 그런데 아니다. 황태자가 가시를 꽂자마자 아파서 엉엉 울 듯이 비명을 질러댄다.
‘좀비가…… 맞나?’
싶을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데 이제는 더 나아가 황태자가 아예 팔뚝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 심지어 좀비를 꽉 붙잡으란다.
“설마 시침을 하시려는 겁니까? 환자에게 하듯이요?”
“어. 정답.”
라키엘의 얼굴 가득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는 데미안에게 대견하다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이야 우리 데미안. 날 제법 따라다니더니 이제는 치료 절차도 좌악 꿰게 됐네? 매우 좋아. 긍정적이고 훌륭한 방향으로의 발전이야.”
“…….”
이게 긍정적인 발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황태자 당신이 뭘 하려는 건지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데미안은 스멀스멀 피어나는 의문에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황태자의 명령은 명령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는 상단장 좀비가 몸부림치지 못하도록 꽉 붙잡았다. 눈치를 살피던 특근대원 서넛이 더 나섰다. 그러한 특근대 프레스(?) 덕분에 상단장 좀비는 안면근육 빼고는 온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좋아. 아주 좋아.”
라키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 피어났다. 제대로 작정한 그는 꼬슴이에게서 검정색 K맛 가시를 아예 수십 줄기나 받아냈다.
“그럼 이제부터, 좀비의 지성을 잠깐이나마 되살려서 흑마법사의 소굴을 알아내보자고.”
톳!
그렇게, 악독한 흑마법사마저도 진심을 담아 엄마 없냐고 외칠 법한, 라키엘의 잔혹무도(?)한 흑마술 뒤틀기 시침 시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