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좀비도 때로는 환자가 된다 (3)
톳!
“……으아아악!”
토옷!
“그긔읽잇잉!”
라키엘의 검정색 K맛 가시가 춤을 추었다. 상단장 좀비의 몸 곳곳에 살포시 박혀들었다. 그때마다 상단장 좀비가 따끔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트위스트를 추……려다가 실패했다. 좀비의 온몸을 꽉 붙잡은 데미안과 특근대 프레스(?) 덕분이었다.
“더 꽉 좀 붙잡아. 흔들린다.”
“예엡!”
“으아압!”
라키엘의 명령에 특근대가 더욱 분발했다. 덕분에 온몸의 지방자치 근육을 활성화시키려던 상단장 좀비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제부터가 중요해.’
라키엘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그는 경혈 스캐닝을 통해 상단장 좀비의 경혈 움직임을 세세히 관찰하였다.
검정색 K맛 가시에 자극을 받은 경혈에서 마나가 미약하게 흐르고 있었다. 원래는 죽은 이의 몸이기에, 존재할 수 없는 마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흑마술사가 시신을 좀비로 만드는 과정에서 곳곳에 심어둔 흑마술 덕분이었다.
‘신체 구석구석 흑마술이 새겨져 있어. 이게 마치 생체 배터리처럼 자체적으로 미약한 마나를 생성하고 있고.’
그 마나가 전신을 흐르며 죽은 시체를 움직이게 해주고 있다. 즉, 몸에 새겨진 흑마술이 좀비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 생체 배터리가 되어 주는 셈이었다.
그래서였다.
‘저 마나의 흐름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뒤틀어 보면 어떨까. 예를 들자면…… 좀비의 중추신경이 살아나고 뇌 활동이 재개되는 방향으로.’
할 수 있을 듯했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어쩌면, 좀비가 지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약간이나마 생전과 사후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걸 말해줄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된다.
좀비의 단편적인 기억으로나마 흑마술사의 단서를 얻을 테니까. 흑마술사가 좀비를 제작한 과정, 목적, 어쩌면 소굴의 위치까지도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박이지. 안 그렇습니까?’
그는 상단장 좀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좀비답지 않게(?) 창백해져 있는 얼굴이었다. 심지어 식은땀도 약간씩 흘리고 있었다. 검정색 K맛 가시가 진짜 아프긴 아픈가 보다.
‘하긴. 그 고통은 내가 제일 잘 알지.’
라키엘의 입가에 희미한 쓴웃음이 배어났다. 그놈의 웬수 같은 ‘8282 모드’를 사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검정색 K맛 가시를 셀프로 허벅지에 꽂아넣어야 했던가. 새삼 비분강개의 심정이 쑴펑쑴펑 피어나는 것을 느끼며, 라키엘은 첫 정식 시침 자리를 신중하게 골랐다.
‘오늘의 환자는 좀비. 이성과 지성을 모두 잃은 심신상실 상태. 즉, 이건 일종의 극심한 광증(狂症)으로 보는 것이 옳겠지. 그렇다면…….’
광증을 치료할 때는 어떤 부위에 시침을 하면 좋을까.
‘시침 시뮬레이션.’
딩동!
혹시나 하는 생각에 침술 스킬의 옵션을 불러왔다. 상단장 좀비의 경혈 스캐닝 데이터를 불러왔다.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침술 스킬 전용 옵션 ① : 시침 시뮬레이션의 발동에 실패하였습니다.]
[시침 시뮬레이션은 대상이 살아 있는 ‘생명체’일 때에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안 되는구나.
그럼 어쩔 수가 없겠다.
‘상단장, 당신이 고생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시뮬레이션 없이 상세를 실시간으로 봐가면서 생으로 찌르는 수밖에 없겠다. 상단장 좀비를 바라보는 라키엘의 눈빛에 약간의 미안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공과 사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법.
‘첫 시침 자리는 기해혈(氣海穴).’
라키엘이 지식의 서랍을 뒤적인 끝에 정한 시침의 첫 폭격(?) 지점은 기해혈이었다. 대저, 기해란 임맥의 혈자리 중의 하나이며, 외부의 기를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다는 뜻에서 기해라고 불리기도 하는 자리였다.
‘다른 말로는 흔히 단전(丹田)이라고도 말하지.’
즉, 인체의 기가 호흡과 함께 들고 나는 부위다. 특히 기해를 통하여 인체를 드나드는 기에는 원기(元氣)와 종기(宗氣), 위기(衛氣)와 영기(營氣)가 있는바, 기해는 이러한 모든 기가 어우러지며 인체를 두드리는 대문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무변무제(無邊無際)하게 드넓고, 때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지. 그만큼 많은 기를 담을 수 있는 자리이고, 생명을 가장 먼저 좌우하는 주요 기혈 중의 하나야.’
그러니 뒤틀린 흑마술에 의해 움직이는 좀비를 고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해혈부터 다스림이 급선무라고 라키엘은 판단하였다.
‘그만큼 신중하게.’
키이잉-!
라키엘이 눈에 힘을 주었다. 경혈 스캐닝을 통해 보이는 상단장 좀비의 기해혈 부위를 더욱 확대해서 살폈다. 그러자 기해혈에 깃든 흑마술의 조각이 보였다. 작은 구슬 모양의 뒤틀린 마나 덩어리가 울컥, 울컥, 어둡고 음습한 성질의 마나를 배출하고 있었다.
‘진단 완료.’
상단장 좀비의 기해혈에는 오로지 극단적인 음허(陰)의 성질을 지닌 마나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옛말에 따르자면, 인체는 독양불장(獨陽不長)에 고음불생(孤陰不生)하다는 말이 있다. 해석하자면, 사람은 양기만으로는 생장하지 못하고, 음기만으로는 생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일단은 기해혈의 수화음양(水火陰陽), 음기와 양기의 밸런스 패치부터 해볼까.’
라키엘은 검정색 K맛 가시를 들었다. 상단장 좀비의 상의를 훌러덩 깠(?)다. 기해혈, 단전 부위의 생기 없는 피부에 서슴없이 가시를 꽂았다.
역시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으워아앙악!”
가시가 꽂히자마자 새끼 발가락으로 문지방에 싸커킥을 날린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는 상단장 좀비!
그러나 라키엘은 그런 리액션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눈에 더욱 힘을 주었다. 시침한 기해혈의 반응을 관찰했다. 이내 깨달았다.
‘된다!’
아까 검정색 가시를 찌른 다른 경혈처럼, 기해혈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기해혈에 뭉쳐 있던 음습하고 뒤틀린 흑마술의 마나가 풍덩, 바위가 던져진 우물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즉, 빈틈이 생겨났다.
아주 잠깐의 흔들림과 빈틈.
라키엘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시 백회혈과 임맥 세트 메뉴로!’
톳! 토독! 톡! 톳!
아예 3, 3, 7 박수 리듬으로 연달아 파파팍 꽂히는 검정색 K맛 가시의 폭격!
“……끱!”
정수리의 백회혈에 꽂힌 가시가 외부의 정상적인 마나가 들어오는 통로를 열어젖혔다. 앞쪽 목덜미, 턱과 목이 접히며 만나는 지점의 염천혈(廉泉穴)이 정상적인 마나를 미사일 배송하듯 아래로 쭈욱 당겼다.
앞가슴의 단중혈(膻中穴), 옥당혈(玉堂穴), 구미혈(鳩尾穴)에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검정색 K맛 가시의 인도를 받은 정상적인 마나가 명치 어름의 중정혈(中庭穴)을 지나쳐 배꼽 아래의 음교혈(陰交穴)을 무정차로 통과했다.
그리고 바로 아래의 신궐혈(神闕穴)을 하이패스로 뚫어 버리고는 기해혈, 단전에 내리꽂혔다.
……투쾅!
소리 없는 폭발.
사나운 어우러짐.
흑마술의 음습하고 뒤틀린 마나가 잠시 흔들렸던 기해혈에, 라키엘이 백회혈에서부터 끌어당겨 온 정상적인 마나가 수직으로 내리꽂히며 뒤섞였다.
음습하게 뒤틀린 마나.
팔팔하게 올곧은 마나.
두 상반된 기운이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서로를 찌르고, 베고, 찍었다. 그걸 감지한 순간, 라키엘의 손이 또 자비 없이 움직였다.
‘마무리는 관원혈(關元穴)!’
빛의 속도로 공간을 돌파한 검정색 K맛 가시가 기해혈에서 정중앙 아래쪽에 있는 혈자리, 관원혈에 정통으로 꽂혔다.
토옷-!
“……끄아아아아↗ 뿌다아아아알갸아-!”
관원혈은 임맥에 위치해 있으며, 동시에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의 모혈(募穴)이기도 했다. 또한,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과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이 모두 교차하는 교회혈(交會穴)이었다.
즉, 인체를 순환하는 주요 경맥들이 서로 얽히는 일종의 로터리, 교차로라는 뜻이었다.
‘심지어 관원혈은 그냥 평범한 사거리도 아니지. 거의 육망성 교차로 급이거든!’
그만큼 많은 혈에 영향을 미치는 곳이 관원혈이었다. 그런 곳에, 벙커버스터에 버금가는 검정색 K맛 가시가 정통으로 꽂혔다.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앞서 기해혈에서 뒤섞이던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의 마나가 관원혈로 확 당겨지듯 몰려왔다. 교차로에 진입했다.
그 순간, 라키엘이 데미안에게 외쳤다.
“발바닥 보이게 다리 들어!”
“……!”
데미안이 상단장 좀비의 왼쪽 다리를 확 들어 올렸다. 발을 감싸고 있는 넝마에 가까운 양말을 벗겼다. 야들야들한 좀비 발바닥이 드러났다. 하지만 라키엘의 검정색 K맛 가시는 사냥감(?)의 상태를 가리지 않았다.
토오옷-!
인체의 360개 혈자리 중에서 유일하게 발바닥에 자리한 경혈, 용천혈(湧泉穴). 상단장 좀비의 여리디여린 발바닥 중앙에 검정색 K맛 가시가 깊숙이 꽂혔다.
사실 그냥 평범한 가시로 찔러도 아픈 곳이었다. 심지어 고양이 털이 꽂혀도 아픈 곳이었다. 그런 곳에 동양의학의 정수(?)를 담은 전술핵을 피도, 눈물도, 자비도, 망설임도 없이 크리티컬로 찔렀다.
이번엔 상단장 좀비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본디 비명이라는 것도 적당히 아파야 나오는 것이 세상의 진리. 상단장 좀비 또한 그러한 사람의 법도에서 예외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웃었다.
“……끄으아학학핳ㅎㅎ핳핫학!”
사람이 너무 아파서 정신이 나가면 오히려 광소를 터뜨리고는 한다. 지금 상단장 좀비가 그러했다. 동시에 검정색 K맛 가시가 꽂힌 용천혈이, 자신의 잠재력(?)을 풀코스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인체 경혈의 커다란 교차로인 관원혈에 모여든 뒤섞인 마나가 신체 가장 아래쪽의 용천혈로 확 내려갔다.
흔히 의사들이 말하기를 발바닥에 달린 2번째 심장이라는 부위! 그곳 발바닥에 마나가 확 몰리자마자 라키엘이 검정색 K맛 가시를 쑥 뽑았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풀스윙 싸대기를 날렸다.
“기야 팍팍! 돌아라!”
철썩-! 철써덕!
자고로 고장난 가전제품은 때려야 고쳐지는 법. 좀비도 마찬가지였다. 발바닥의 용천혈에 응축된 마나가 라키엘의 타격에 의해 제2의 심장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즉, 저장한 마나를 전신으로 퍼 나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마침내…….
“……그, 그만! 그마안!”
상단장 좀비가 빌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눈물을 흘렸다. 희뿌연 흰자위만 가득하던 눈에 서서히, 까만 눈동자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딩동!
불현듯 울리는 맑은 알림음.
이윽고, 뜻밖의 메시지가 눈앞 가득 떠올랐다.
[당신은 풍부한 지식과 현장 경험, 번득이는 판단력과 직감을 통하여 좀비에게 시침 시술을 성공하는 전무후무한 미친 업적을 이루어냈습니다.]
[당신의 시침 덕분에 좀비 : 툴룬의 신체에 새겨져 있던 흑마술의 기능이 변화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좀비 : 툴룬은 잠시나마 흑마술사의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 좀비의 신체를 지니고서 이성과 지성을 발휘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흑마법사가 좀비 : 툴론에게 새겨둔 흑마술의 힘이 강대하여, 좀비 : 툴룬이 이성과 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짧을 것입니다.]
[좀비 : 툴룬에게 남은 지성 발현 시간 - 5초]
“…….”
5초?
장난해?
라키엘이 잃어버린 어처구니를 찾으려 투덜거리려던 때였다.
딩동!
또다시 울리는 알림음.
그리고…….
[그러나 당신에게는 좀비 : 툴룬의 지성 발현 시간을 비약적으로 늘릴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은 좀비에게 시침 시술을 성공시키는 미친 종류의 업적을 이룩하였으며, 이에 따라 침술 스킬의 새로운 옵션을 개방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침술 스킬 전용 옵션 ② : 정신이 번쩍 - 당신은 특정한 조건을 갖춘 좀비에게 시침을 하여, 좀비의 신체에 새겨진 흑마술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시술을 받는 좀비는 생전과 사후의 기억을 모두 보존한 채로 영구히 이성과 지성을 발휘하는 존재로 거듭날 것입니다.]
[옵션 발동 조건 1. 흑마술사에 의해 제조된 좀비일 것. / 2. 사망 시점으로부터 49일이 지나지 않은 좀비일 것.]
[주의사항 : 이 옵션은 하늘의 섭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술이므로, 시전자의 예상 기대수명 100일을 바치는 대가를 필요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