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미친놈의 토벌전 (1)
세상에는 모르고 있을 때가 차라리 속이 편해지는, 그런 사실이 있다.
썸 대상에게 차단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를 때가 그나마 행복하다. 달력을 보면서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 계약기간이 6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을 때가 그러하다.
그렇듯, 세상의 많은 진실은 모르고 있을 때가 속이 편한 법!
흑마법사에 대한 진실 또한 그러했다.
“놈은 이곳 지방에 기생하며 이미 엄청난 규모의 좀비를 양성했습니다. 그 숫자는…… 놈이 말하기로는 대략 3천 구를 넘었다고 했지요.”
좀비 툴룬의 말이 모두의 뇌리를 땅, 하고 때렸다. 3천 구의 좀비. 얼핏 생각하면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는 숫자였다.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달랐다.
“잠깐. 그럼, 놈이 이 지방에 기생하며 좀비를 양성했다는 건 설마, 꾸익……?”
“브라쉬 자네의 짐작이 맞네. 풍장으로 황야에 놓아둔 우리의 부모와 형제, 연인과 자식이 대부분 좀비가 되어 있다네.”
툴룬의 목소리가 떨렸다.
“믿기지가 않겠지. 하지만 내가 이미 겪었지 않나. 그래서 이런 모습으로 자네와 모두의 앞에 나타났지 않나. 게다가 나는 그곳 소굴에서 일찌감치 보았다네.”
“아는 얼굴이 있던가, 꾸익?”
“물론.”
좀비 툴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크록쉬를 보았네.”
“……뭐, 꾸익?”
“애꾸눈 크록쉬. 자네의 사촌이자 일족의 가장 용감하고 무모한 전사 중의 하나였지, 아마?”
“물론! 그는 내가 아는 가장 용맹한 오크였다, 꾸익!”
“하지만 그도 좀비가 되어 있다네.”
“…….”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친구여. 나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네. 5년 전에 죽은 크록쉬가, 그때 입은 부상을 그대로 지닌 채로 흑마법사의 꼭두각시 좀비가 되어 있다네.”
“……감히 전사에게 그런 짓을, 꾸익!”
“알아. 자네의 심정을 알겠네. 화가 나겠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들이 단순한 저급 좀비가 아니라는 걸세. 게다가 흑마법사의 목적 또한 심상치가 않고.”
좀비 툴룬의 시선이 이쪽으로 돌아왔다.
“황태자 전하. 그래서 그리는 말씀입니다. 놈은 위험합니다. 그저 좀비를 제법 많이 만들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놈의 목적은 바로…….”
“아마도 새로운 언데드 제국의 건설이겠지. 맞나?”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좀비 툴룬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뭐, 대강 감으로.”
사실은 거짓말이다. 소설 마검황을 읽었기에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라키엘은 시치미를 뚝 떼었다.
“조금만 생각을 해보니 뻔해서 말이지. 자신을 호위할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과도할 정도의 규모로 좀비 군단을 키우는 흑마법사. 그 목적이 뭘까. 설마하니 봉사 활동이나 팬클럽 결성 따위는 아닐 테고. 아마도 체제의 전복을 노리는 듯싶은데.”
“전하의 추측이 정확하십니다. 흑마법사, 그놈이 직접 떠드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놈이? 뭐라고 했지?”
“지금의 불합리한 세상을 모조리 불태우고, 언데드의 노동력으로 유지되는 새로운 낙원을 건설할 거라더군요.”
일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순식간에 싸해진 공기가 감돌았다. 그 사이로 툴룬의 증언이 이어졌다.
“미친 소리로 들리실 겁니다. 하지만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놈은 모든 인간과 유사 인류에게 등급을 매기고, 등급의 기준에 탈락하는 대상을 살처분하는 정치 체계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처분이 되는 대상을…… 좀비로 만들어 노동력으로 부리는 세상을 말입니다.”
툴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게다가 그 등급의 기준이, 너무 끔찍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장애를 지닌 자, 나이가 많거나 병이 생긴 자, 체제에 반감을 품은 자, 남녀불문 후손을 생산하는 능력이 상실된 자, 그 밖의 수많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모조리 좀비가 되어 영원한 강제노동을 치러야 하는 세상이, 믿어지십니까?”
“…….”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모두의 눈동자가 경악과 혐오에 젖었다. 물론 그 와중에 놀라지 않은 사람이 딱 한 명 있기는 했다.
라키엘이었다.
‘역시나. 소설 그대로구만.’
그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툴룬을 통해서 들어보니 과연, 마검황에서 언급된 부분과 똑같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말이다.
세상엔 싸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제법 있다지만, 그중에 제일 무섭고 잔혹한 이는 따로 있다. 바로 자신이 절대적으로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놈이다.
그런 놈이 최고위급 흑마법사의 경지에 오르면 탄생하는 괴물. 그게 흑마법사 카르투였다.
툴룬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건 전하, 그놈은 위험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시간이 없다, 라. 혹시 그놈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려 하는 건가?”
“예. 그놈과 마법적인 연결이 끊기기 직전에 그놈의 생각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걸렸다. 즉시, 최대한 빨리 소굴을 옮기자, 라는 생각을 떠올리더군요.”
“그 직후에 마법적 연결이 끊어졌고, 그대가 우리에게 사로잡힌 것이로군. 맞나?”
“예. 바로 그러합니다, 전하.”
“흐음.”
라키엘은 미간을 살포시 찡그렸다. 생각보다 일이 까다롭게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쯧. 원래는 황도에 연락을 넣어서 토벌군을 요청하려고 했는데.’
그게 가장 안전빵인 길이었다. 이쪽과 모두가 안전해지는 길이기도 했다.
‘당연하지. 그냥저냥한 범죄자를 검거하는 것도 아니고, 무려 언데드 군단을 양성하고 있는 흑마법사를 때려잡아야 하는 일이니까. 이런 일이면 당연히 군사 전문가가 토벌군을 이끄는 게 제일이니까.’
전문직이 괜히 전문직이 아니다. 진단은 의사와 한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결혼식날 펌은 원장님에게, 길 잃은 상대방 서폿은 페x커에게 맡기면 일이 무난하게 처리되는 법이 아니겠는가.
전투와 토벌도 똑같다.
‘황도에 연락을 넣어서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면 황제가 토벌을 명했겠지. 그러면 귀족원의 추천과 조언을 통해 사령관이 임명되고 토벌군이 편성됐을 거야. 그러면 나는 편하게 일이 처리되는 걸 구경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이제는 그 과정을 기다렸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게 생겼다.
‘그러기엔 시간이 없어.’
황제에게 연락을 넣고 토벌군이 편성되고를 다 마치려면? 최소 1개월은 걸릴 거다. 게다가 토벌군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곳까지 원정을 오는 데에만 또 1개월은 걸릴 것이다.
총 2개월의 시간.
그때쯤에야 토벌군이 도착하면?
‘아마 흑마법사 놈은 진즉에 새집으로 이사 마치고 기념으로 짜장면까지 몇 그릇은 시켜 먹은 후겠지. 아예 그냥 대청소에 집들이까지 다 마쳤겠네, 아주.’
말 그대로 꼬리는커녕 놈의 흔적조차 못 찾게 될 것이다. 너무 늦는 셈이다.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다.
‘토벌군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지금 바로 쳐야 해.’
이제는 시간 싸움이 됐다. 흑마법사가 튀기 전에 잡아야 한다. 그래서 난감했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듯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별궁 근위대를 이끄는 근위조장, 프란델 경이 그러했다.
“전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송구하오나…… 아무래도 사안이 시급하고 심각하여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할 듯합니다.”
“즉각적인 조치?”
“그렇습니다, 전하.”
프란델 경이 사뭇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이곳에는 우리에게 협조적인 현지의 오크 부족과 전사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근위대의 일부 인원을 가세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면 일개 흑마법사가 이끄는 언데드 무리를 꺾어놓기에 부족하지 않은 전력이라고 사료됩니다, 전하.”
“…….”
맞는 말이다.
그래서 문제다.
사실 프란델 경의 말대로 전력이야 충분하다. 족장 브라쉬가 동원할 수 있는 정예 오크 전사는 물경 1천에 달할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인간의 군대로 치면 3~4천의 병력과 맞먹는 전력이 된다.
하지만…….
‘흑마법사 카르투. 그놈이 프란델 경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일개 흑마법사 따위’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야.’
바로 그게 문제다.
이대로 현지에서 토벌군을 편성하면, 토벌 작전은 가장 전문가인 프란델 경이 짜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망한다.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예상이 됐다.
‘소설 마검황에서 처음 카르투가 언데드 군단으로 난리를 치기 시작했을 때, 당시에 토벌군을 편성하던 지휘관들이 딱 저런 태도였으니까.’
새록새록 떠오르는 소설 속 내용과 전개들. 지금으로부터 약 7년 뒤, 카르투가 일으키는 언데드 군단의 물결.
그건 마젠타노 제국과 앙부아즈 모두가 무너진, 난세의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시점에 재앙의 첫 물결을 맞이한 왕국의 지휘관들이 딱 프란델 경과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다.
일개 흑마법사가 이끄는 언데드 무리.
그 정도로만 안일한 생각을 품었다. 거기에 맞추어 안일한 준비를 했다. 덕분에 결과는 개 같이 멸망. 토벌군이 오히려 잡아먹혔고, 더 많은 언데드의 재료가 되어 버렸던가.
‘그래선 안 돼. 프란델 경에겐 미안하지만, 이대로 믿고 작전을 맡겼다간 이곳의 오크 전사들이 역으로 당해서 언데드가 되어 버릴 거야.’
그건 최악의 결과다.
그걸 막으려면?
이쪽이 작전을 짜야 한다.
그런데 그게…… 더 큰일이다!
‘내가 군사 작전을 어떻게 짜냐고.’
라키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이 접해본 전략 전술이라고는 고작, 삼x지나 스x크래프트 같은 게임이 전부였다. 한데 현지에서 편성될 토벌군의 폭망 사태를 막기 위해 직접 작전 수립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니.
‘……아, 그냥 다 때려치우고 황도로 돌아가고 싶다.’
책임이고 뭐고 다 회피하고 싶어졌다. 너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긴뿌리 감초 농장을 지켜내려면 할 수밖에 없겠다.
결국, 라키엘은 눈물샘을 뾰록 비집고 나오려는 비애감을 애써 밀어 넣으며 말했다.
“좋아. 프란델 경? 그대의 의견대로 현지에서 즉각 토벌군을 편성하도록 하지. 단, 토벌 작전은 그대와 내가 함께 입안하는 걸로. 어떤가?”
“전하께서…… 말입니까?”
과연 프란델 경이 살짝 뜨악하는 기색을 애써 감추며 반문해 왔다. 무리도 아니었다. 원래의 황태자 라키엘도 전문 군사 교육을 받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라키엘은 얼굴 가득 뻔뻔하게 철판을 깔았다.
“물론 경이 전체적인 작전을 수립하면, 나는 거기에 양념만 살짝 칠 생각이야. 어떤가. 내게 그 정도 권한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무, 물론입니다, 전하.”
“좋아. 그럼 경에게 토벌군의 전체적인 편성을 맡기도록 하지. 기본 작전이 수립되면 계획서를 내게 가져오도록. 오늘 밤까지.”
“오늘 밤까지 말입니까?”
“으음. 무리인가?”
“물론 아닙니다.”
“그럼 서두르도록. 시간이 많지 않으니.”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명을 받은 프란델 경이 황급히 물러났다. 과연 그는 자정이 되기 전에 다크써클이 생겨난 얼굴로 돌아왔고, 오후 내내 골머리를 짜낸 작전 계획서를 제출했다.
라키엘은 작전 계획서를 꼼꼼히 분석했다.
“흐음.”
과연 전문가다운 솜씨다. 그런데 역시나 이대로면 곤란하겠다.
‘안일하게 진군하다가 쌈싸먹히기 딱 좋네.’
슥슥, 삭삭!
그는 소설 마검황에서 나왔던 흑마법사 카르투의 주특기와 전략들을 떠올렸다. 자연히 그 전략을 엿 먹일 방법도 떠올랐다.
‘이게 잘 통하면 좋겠는데.’
아마추어인 자신의 작전이 어디까지 통할까. 솔직히 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맞서야 할 때다. 스스로를 격려하며 머리를 짜냈다. 프란델 경이 입안한 작전의 세부 내용을 몇 군데 수정했다.
덕분에 다음 날 아침.
충성스러운 근위조장 프란델 경과 오크 족장 브라쉬, 데미안 등은 라키엘이 수정한 토벌 작전의 새로운 버전을 보며 똑같은 생각을 품게 되었다.
우리가 모시는 황태자 전하.
이 사람, 어쩌면…….
‘천재이거나, 아니며 미치광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아니, 어쩌면 둘 다인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