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미친놈의 토벌전 (2)
이 세상에는 참 많고도 많은 유형의 사기꾼이 있다. 친절한 얼굴로 사람 등쳐먹는 타입. 교묘한 화법으로 간지러운 곳을 살살 긁으며 통장도 함께 긁어가는 유형. 혹은, 뻔뻔하고 강압적으로 야비한 수를 써대는 인간까지.
하지만 이런 타입은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흑마법사의 통수를 후려쳐야 한다는 거지. 우리가.”
“그래서, 그걸 준비하신 겁니까, 전하?”
“응? 이거?”
수행원단의 핵심 인원이 모인 아침. 흑마법사 토벌 작전을 본격적으로 의논하기 위해 모인 아침이었다. 데미안이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라키엘은 쥐고 있던 물건을 들어 보였다.
“이거 말한 거야?”
“예, 전하.”
“이게 어때서?”
“그거, 좀 이상한 감초 같은데 말입니다.”
“어떤 점이 이상한데?”
“그냥 평범한 감초 위에…… 뭔가를 바르신 겁니까?”
“어? 정답.”
라키엘이 방긋 웃었다.
“보통 감초 겉면에 꼼꼼하게 발랐지. 긴뿌리 감초 조각을 살짝 갈아서 짜낸 액기스. 어때? 향이 좋지 않나?”
“……예. 꼭 진짜 긴뿌리 감초처럼 짙은 향이 납니다.”
“그렇지? 소드마스터 증후군을 앓는 네 날카로운 감각으로도 분명히 그렇게 느껴지지?”
“그렇……습니다만-”
데미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관절 그건 어디에 쓰시려는 겁니까?”
사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데없는 감초라니. 그것도, 긴뿌리 감초 액기스를 좍좍 발라서 코팅을 해놓은 감초라니.
저걸 어디에?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으로 쓰려는 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짐작되는 구석이 없었다. 선뜻 이해도 되지 않았다.
“혹시 요즘 몸이 허해져서 아침 대용으로 드시려는 겁니까?”
“응 아니야.”
“…….”
“이거, 이번 작전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라서.”
“……예?”
이번에 반문한 이는 데미안이 아닌, 근위조장 프란델 경이었다. 그의 반듯한 눈썹이 의문의 쌍곡선 그래프를 그렸다.
“전하, 송구하오나 제가 이해가 느린 것 같습니다. 제 부족한 이해를 조금만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잘 들어봐, 흠흠.”
라키엘이 빙긋 웃으며 목청을 골랐다.
“경이 어젯밤에 제출한 작전계획을 잘 살펴봤어. 정석적이고, 빈틈없는 토벌 계획이더군.”
“감사합니다, 전하.”
“으음, 그래서 문제야. 너무 정석적인 거 같아서.”
“……예?”
“경이 제안한 작전계획은 오직 흑마법사가 소굴을 버리고 도망가기 전인 상황, 혹은 소굴을 비우고 도망친 이후의 추격전만을 가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나름 제3의 방안을 추가했지.”
“제3의 방안이라시면…….”
“흑마법사가 부릴 잔재주를 야바위로 짓뭉개기. 다들 내가 수정한 작전 계획서를 보도록.”
“…….”
모두의 시선이 서류로 향했다. 3초 후, 모두의 눈빛이 혼돈과 혼란의 트월킹을 추기 시작했다.
더 이해가 안 된다.
솔직히 감도 안 잡힌다.
하지만 황태자의 뻔뻔한 말은 잘도 이어졌다.
“자, 내용 숙지했으면 움직이도록. 이제부터는 속도전이다. 가장 빠르고 튼튼한 준마 서른 필과 우루스를 준비시켜.”
“…….”
“저기, 전하?”
작전 계획서를 거듭 읽어보던 프란델 경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손을 들었다.
“외람되오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어. 간단하게.”
“전하께서 수정하신 작전의 개요는…… 파격적입니다. 미처 제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완벽하게 보완하셨습니다. 병력의 이동과 배치, 보완과 지원, 타이밍까지……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다만-”
“다만?”
“곧 전개될 작전의 핵심이 지금 그…… 전하께서 쥐고 계신 감초인 듯한데 말입니다.”
“으음. 정확하게 봤군. 그런데 이 감초가 어때서?”
“긴뿌리 감초의 향이 가장 핵심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작전인데…… 어째서 진짜 긴뿌리 감초가 아닌 가짜 감초를 사용하시는 겁니까?”
프란델 경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흑마법사를 토벌하는 중요한 작전이었다. 그런데 작전의 최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이는 긴뿌리 감초를 가짜를 사용하다니.
‘혹시 내가 감히 짐작하지 못하는 심오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았다.
프란델 경은 두근거리는 기대감으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아 이거.”
황태자가 별거 아니라는 듯 생긋 웃었다.
“진짜는 비싸잖아.”
“…….”
“까짓거 냄새만 대충 비슷하면 됐지 뭘 또 아깝게시리.”
“…….”
“자자. 시작하자. 가즈아.”
“…….”
천재인가 미치광이인가 야바위꾼인가. 진짜로 잘 모르겠다고 프란델 경은 생각했다. 그렇게, 흑마법사 토벌 작전이 시작되었다.
♣
“후후…… 나의 계획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지.”
한편, 이곳은 크라노스크 외곽의 황무지 평원. 삭풍이 던져 오는 황량한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흑마법사 카르투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 황무지 한쪽에 살짝 솟은 모래 둔덕을 쳐다보았다.
둔덕 아래 오목한 곳에 암굴이 있었다.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다면 절대 출입구가 보이지 않을 교묘한 각도였다.
그곳이 지난 몇 년간 자신이 사용했던 소굴의 출입구였다. 포근했고, 아늑했으며, 유용했다. 황태자 일행에게 꼬리를 밟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이곳이 네놈들의 포근하고 아늑한 무덤이자 새로운 집이 되겠지.’
흑마법사 카르투의 미소가 짙어졌다.
곧 황태자가 토벌군을 이끌고 이곳에 당도할 것이다. 소굴을 포위하고, 진입하여 일망타진을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모조리 죽어나갈 것이다.
‘결국엔 내 좀비가 되겠지. 모조리, 전부 다.’
탐색을 내보낸 또 다른 좀비를 통해 이미 황태자 측의 움직임을 살펴본 그였다. 토벌군의 편성과 출발까지, 모든 과정을 염탐했다.
덕분에 대응할 작전을 짜낼 수 있었다.
소굴을 텅텅 비웠다.
비워둔 소굴에 갖가지 마법 함정을 파놓았다. 황태자의 토벌군은 소굴에 진입하는 즉시, 갖가지 함정과 맞닥뜨리며 제법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 후에야 뒤늦게 소굴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겠지.
‘분개할 테지, 분명히.’
그럴 것이다.
자신들이 막대한 희생 끝에 진입에 성공했는데, 정작 그 소굴이 일찌감치 비워져 있었다는 걸 깨달으면 얼마나 분통이 터질까.
동시에, 안심할까.
‘소굴이 비어 있다는 것. 그래서 허탕을 쳤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상황이 끝났노라 긴장을 풀고, 방심하겠지.’
그것이 바로 그가 노리는 바였다. 황태자의 토벌군이 비어 있는 소굴을 보며 허탕을 쳤노라 분노하고, 방심하는 순간…….
‘내 진짜 주력이 너희를 소굴에 가두어놓고 포위 섬멸전을 벌이게 될 것이야.’
카르투의 시선이 움직였다.
소굴의 출입구가 놓인 모래 둔덕. 그 주위로 평범한 황야의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지형이 카르투의 시선에는 다르게 보였다.
수많은 좀비들.
자신의 피조물들.
대규모의 죽음의 군단이 곳곳에 매복해 있다. 황태자의 토벌군이 소굴에 진입한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게, 토벌군을 오히려 소굴에 가두어 버리리라. 가둔 채로 봉쇄해 버리리라. 뚫고 나오려는 모든 시도를 좌절시키리라.
며칠이든.
한 달이든.
끝까지 가두어 두리라.
‘그러면 돼. 결국엔 안에 갇힌 채로 식량도, 식수마저도 고갈된 채 지쳐 죽어가겠지. 혹은 내분이 일어나서 자기들끼리 찌르고 베며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만들겠지. 크흐흣, 흐흣!’
반면 이쪽은?
모두가 언데드다. 한 달이건 두 달이건 포위전을 수행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도 없다. 너무나 간편하게 토벌군을 말려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는 토벌군의 시체까지 모조리 나의 군단으로 편입될 것이고.’
물경 일천에 달하는 정예 오크 전사 좀비. 거기에 극한의 단련을 거친 근위대 기사 좀비까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환희의 소름과 닭살이 오소소 돋아났다.
‘그러니 와라, 어서!’
이건 된다. 그 어떤 잔머리가 발달한 인간이라 해도 무조건 걸려들 수밖에 없는 이중의 함정이다.
카르투는 자신하고, 확신하며 웃었다. 은신 마법으로 황야의 한구석에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다가오는 먹잇감을 기다리는 독거미의 심정을 품었다.
그렇게 기다렸다.
반나절.
하루.
다시 다음 날.
마침내 반가운 먼지구름이 지평선 너머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왔구나!’
카르투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잔뜩 피어났다. 그의 눈이 핏빛 환희를 담고서 지평선을 향했다.
커다랗게 피어나는 먼지구름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저 거친 삭풍이 불러일으킨 먼지? 당연히 아니었다. 규모와 모양새부터가 달랐다. 저건 확실하게…….
‘군대다. 엄청난 규모의 군대가 몰려오면서 내는 흙먼지야!’
볼수록 확실했다.
반가웠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큰 규모의 흙먼지라서 더더욱 반가웠다. 적의 숫자는 상관이 없으니까. 어차피 소굴에 갇혀서 죽을 놈들이니까. 오히려 많을수록 이득이니까.
‘어서 와라, 이 예쁜 것들아.’
그리고 어서 죽어라.
죽어서 나의 종이 되어라.
카르투는 짜릿한 환희를 애써 억누르며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그 사이, 토벌군이 만들어내는 먼지구름이 지평선을 확실하게 넘어왔다. 거침없이 다가왔다. 가까워졌다. 점점 지축마저 울리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
장엄한 거인의 발걸음이 대지를 북 삼아 두드리는 듯했다. 그 서슬에 카르투의 가슴도 쿵쿵 뛰었다. 여전히 흙먼지에 가려져 토벌군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땅울림이라면 분명 기대 이상의 규모일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후우웅-!
돌연, 우연처럼 거친 삭풍이 불어왔다. 등 뒤에서부터 불어닥친 삭풍이 황야 일대를 일제히 휩쓸듯 질주했다. 달려오던 토벌군을 향해 불어닥쳤다. 토벌군의 모습을 가려주던 흙먼지를 말끔하게 싹 쓸어냈다.
덕분에 토벌군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데 그 실체가…….
쿠쿠쿵! 콰드드드드드쿠쿵-!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비정상적인 사이즈의 거대한 미노타우로스였다. 한 마리 미노타우로스가 미친 소처럼 황야를 내달려 오는 중이었다. 한데 그 옆에는 미노타우로스만큼이나 커다란 고슴도치가 나란히 질주하고 있었다.
‘무슨?’
저건 또 뭔가.
카르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보였다. 고슴도치의 등에 사람이 하나 타고 있었다. 뭔가를 들고서 휘두르는 모습. 약초 비슷한 걸 쥐고 있는 듯했다.
한데 질주해 오는 미노타우로스와 사람 태운 거대 고슴도치 뒤편으로는…….
후우욱-!
불어간 돌풍이 그 뒤쪽의 흙먼지마저 걷어냈다. 비로소, 지금껏 막대한 규모의 흙먼지와 땅울림을 일으키던 토벌군(?)의 본모습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건 바로…….
가짜 긴뿌리 감초 냄새에 낚여서 눈이 뒤집힌 수십 마리의 거대 구렁이, 황야 전체에서 몰려온 기간토피스의 물결이었다.
“……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