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01화 (201/468)

201화. 미친놈의 토벌전 (3)

기간토피스.

이곳 황야에서 가장 거대하고 위험한 몬스터. 능히 200년을 버티는 수명과, 그에 걸맞은 거대한 덩치를 지닌 구렁이였다. 또한, 향이 강한 약초 뿌리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쟁탈전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한 몬스터이기도 했다.

그래서였다.

카르투가 이곳 크라노스크 지방에 은신처를 마련할 때, 가장 많이 신경을 쓴 존재도 다름 아닌 기간토피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잘못 건드렸다간 감당이 안 되는 상대였으니까.

‘……그런데 왜? 저놈들이 여기서 나와?’

카르투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탱탱볼보다 더욱 탱탱한 경악으로 차오른 그의 시선이 던져진 곳, 그곳에 거대한 흙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미끄러져 오는 몬스터 무리가 있었다.

기간토피스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대강 세어봐도 스무 마리가 훨씬 넘었다!

‘미친. 미친! 어째서?’

이해가 안 됐다. 믿어지지도 않았다. 자신이 은신처로 삼은 이곳 주위는 기간토피스가 한 마리도 서식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나름 조사한 놈들의 서식지와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 악몽 같은 거대 구렁이가 수십 마리나 난리를 떨어대며 돌진해 오고 있는 광경이라니. 차라리 지독하게 끔찍한 악몽을 꾸는 거라고 현실 왜곡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태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실화였고, 팩트였다. 곧이어 밀어닥친 재난적 광경이 그 사실을 카르투의 시각중추에 스트레이트로 꽂아 넣었다.

시이이이잇-!

선두에서 미끄러져 온 기간토피스가 커다란 머리를 치켜들었다. 괴수 구렁이의 누런 눈동자가 자신의 앞에서 달려가는 존재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곳에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고슴도치가 있었다.

“꼬슴! 꼬스슴!”

열심히 뽈뽈뽈 달려가는 고슴도치. 뾰족뾰족 치솟은 가시 사이로 빼꼼 상체를 드러내고 있는 사람 하나. 은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치켜들고 있었다. 제법 굵직한 약초 뿌리처럼 보였다.

긴뿌리 감초다.

냄새로 미루어 확실하다.

기간토피스의 눈이 탐욕과 집착으로 뒤집혔다.

시이익이잇-!

거대한 머리가 내리꽂혔다. 하지만 그 순간, 고슴도치와 나란히 달리던 미노타우로스가 태클(?)을 걸었다.

“누우우우우-!”

콰앙-!

옆에서 깜빡이도 없이 끼어들며 날린 미노타우로스의 철산고, 아니, 별이 번쩍 어깨빵!

그 충격 때문이었다. 세차게 내리꽂히던 기간토피스의 머리가 옆으로 홱 틀어졌다. 애꿎은 맨땅에 헤딩을 시전했다. 덕분에 맨땅 속에 매복하고 있던 언데드 좀비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구르워어억?”

콰드드득! 콰득!

수 톤에 달하는 기간토피스의 체중, 거기에 전력으로 미끄러져 오던 속도, 머리를 내리꽂던 기세까지 더해진 일격이었다. 그 힘이 고스란히 연말 보도블록 갈아엎듯 지면과 땅속을 갈아 버렸다.

토벌군을 덮치기 위해 땅속에 숨어 있던 언데드 좀비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갈아엎어지는 흙더미와 나란히 사이좋게(?) 함께 갈려 나갔다. 순식간에 배 터지고 3단 분리를 당한 채 대자연의 품에 안겼다.

물론 이 모든 결과는 라키엘이 의도한 것이었다.

“좋아! 계속 달려!”

“꼬슴! 꼬스슴!”

꼬슴이의 등에 탄 라키엘이 환호했다. 작전대로다. 생각했던 의도가 제대로 100% 먹혀들고 있다.

‘역시, 소굴을 비워둔 척해놓고서 근처에 매복하고 있을 줄 알았지!’

라키엘은 꼬슴이의 등에 몸을 바싹 낮추며 시선을 힐끔 던졌다. 방금 기간토피스가 갈아엎어 버린 지면 아래. 매복해 있던 좀비들이 날벼락을 맞고서 버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숫자가 대략 30구는 충분히 될 듯했다.

라키엘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배어났다.

‘저 흑마법사 놈, 소설 마검황에서도 이런 비슷한 전략으로 재미를 봤거든.’

문득, 소설의 내용이 떠올랐다.

처음 흑마법사가 언데드 군단의 진군을 시작했던 시점이었던가. 난데없는 재앙의 첫 철퇴를 맞은 왕국이 안일한 토벌을 시도하다가 딱 이 계략에 당했다.

흑마법사를 토벌하겠답시고 소굴에 쳐들어갔다. 소굴 안쪽의 마법 함정을 뚫으며 진군했다. 진군의 마지막에 가서야 소굴이 텅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토벌군은 그 순간에 방심했다. 흑마법사가 자신들을 두려워해서 소굴을 버리고 도망쳤노라 여기며 승리를 자축했다.

덕분에 그들은 몰살당했다. 소굴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언데드 군단에게 포위당해서. 소굴에 역으로 갇혀 버린 채로. 보급이 끊겨서 굶주림과 목마름에 허덕이다가. 말단 병사 한 사람조차 살아남지 못하고서, 모조리 죽어서 언데드 군단에 흡수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도 비슷한 계략을 쓸 것 같았지. 읏차!’

라키엘은 재빨리 몸을 낮추었다.

그 직후, 머리 위쪽에서 거대한 덩어리가 공간을 거칠게 훑으며 지나갔다.

시이이잇-!

이쪽을 노리는 또 다른 기간토피스의 머리였다. 하지만 라키엘은 겁먹지 않았다. 솔직히 다리가 살짝 후들거리긴 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외쳤다.

“우루스!”

그러자 외침에 화답하는 거대한 누렁이!

“누우우우우-!”

콰아앙-!

우루스의 박치기가 패트리어트처럼 날아가 두 번째 기간토피스의 머리를 밀어냈다. 거대한 구렁이의 벌어진 아가리가 목표물을 놓치고서 지면에 꽂혔다. 갈았다. 지면 아래의 애꿎은(?) 언데드 좀비들을 서슴없이 분쇄했다.

시아아아앗-!

나머지 수십 마리의 기간토피스가 두 눈을 활활 빛내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때마다 갈라진 혓바닥을 통해 약간의 공기가 놈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입속의 야콥슨 기관에 냄새를 전달했다. 그러자 느껴졌다. 긴뿌리 감초 냄새였다.

마침 때맞추어 라키엘도 가짜 감초를 대놓고 열렬히 흔들었다!

파닥파닥파닥!

가짜 감초 뿌리가 오늘 개업한 주유소 앞 풍선인형처럼 맹렬한 트월킹을 추었다. 그때마다 기간토피스 일동의 가슴도 웅장하게 파르르 설레었다. 거대 구렁이들의 집착이 더욱 열광적으로 뜨거워졌다.

‘이거지!’

역시나 예상대로다. 일전에 긴뿌리 감초를 캐낼 때 사냥했던 기간토피스. 그놈처럼 이곳 황야의 다른 기간토피스도 긴뿌리 감초 냄새만 맡으면 아주 환장을 하는 거다.

‘게다가 이놈들은…… 전에 잡힌 그놈 때문에 눈치만 살피며 지냈을 테니까.’

기간토피스 사냥과 긴뿌리 감초 채집을 성공적으로 마친 직후에 오크 족장 브라쉬가 말했던가. 오늘 잡은 이놈이 황야 전체의 우두머리 기간토피스였을 거라고. 가장 크고, 강한, 그래서 긴뿌리 감초를 독차지하고 있던 놈이었으리라고.

지금 보니 과연 그 말이 사실이었다.

‘나머지 기간토피스들은 전부 우두머리의 눈치를 봤던 거지. 긴뿌리 감초가 탐이 나긴 하는데, 우두머리가 훨씬 크고 강력하니까 감히 욕심을 드러내지 못했던 거야. 한데 그러던 중에 우두머리가 사냥을 당했어. 덕분에 놈들은 저마다 희망회로를 따끈하게 불태웠겠지. 우두머리가 죽었으니, 이젠 긴뿌리 감초를 차지할 차례가 자신에게 왔다고.’

그런데 정작 그 긴뿌리 감초를 인간들이 가져가 버렸다. 덕분에 잠깐이나마 희망을 품었던 기간토피스들은 더욱 애가 탄 상태였을 것이다.

그 심리를 이용했다. 냄새만 맡아도 눈이 뒤집힐 거라고 보았다. 그 예상이 적중했고, 낚시질이 제대로 통했으며, 덕분에…….

“이기는 놈이 이거 먹어라!”

언데드 군단의 매복 중심지에 진입한 순간, 라키엘이 지금껏 흔들던 가짜 긴뿌리 감초를 하늘 높이 휙 던졌다. 수십 마리 기간토피스의 시선이 홀린 듯이 위를 향했다.

라키엘이 꼬슴이의 가시를 꽉 붙들었다.

“꼬슴아, 달려!”

“꼬슴!”

이제부터는 빤쓰ㄹ…… 아니, 본격 도주!

꼬슴이가 도도도도 풀가속을 시전했다. 하지만 그 어떤 기간토피스도 이쪽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놈들의 시선은 오로지 드높이 던져진 가짜 긴뿌리 감초만을 향했다.

시이이이잇-!

수십 마리 기간토피스가 한 지점으로 몰려들었다. 거대한 몸뚱이로 서로를 밀어내며 감초 낙하 지점을 독차지하려 리바운드 포지션, 아니, 몸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마침내 감초가 팽그르르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시아아아악-!

샤아앗-!

수십 마리 기간토피스의 피 튀기는 혈전이 시작되었다. 그 일대에 몸을 숨기고 있던 언데드 군단은? 그야말로 버로우를 하다가 날벼락, 아니, 핵을 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흑마법사, 카르투의 멘탈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 어어……?”

카르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언데드 군단을 미처 탈출시키지도 못했는데. 거대 구렁이 수십 마리가 뒤엉키고 싸우며 땅이 뒤집혔다. 갈렸다. 그 속의 언데드 군단도 함께 갈려 나갔다.

‘아, 안 돼!’

지금껏 수년에 걸쳐 정성껏 키워온 언데드 군단이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느라 그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던가. 그럼에도 오직 꿈을 이루겠노라는 열망 하나만으로 버텨왔다. 위대한 목적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다.

한데, 그런데…….

‘그 노력이…… 내 성과가!’

모조리 갈려 나가고 있다. 손을 쓸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아니,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절망스럽고 암담했다. 다리에서 힘이 주욱 빠졌다.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한층 더 절망스러운 광경이 보였다.

철컥! 철컥! 철컥!

사방에서 거대한 흙먼지가 피어났다. 석양 아래 일사불란하게 달려왔다. 녹색 근육 덩어리의 전사들. 오크들의 대열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시야를 잠식해 왔다.

전원이 최소 3대 1톤의 미친 피지컬로만 구성된, 정예 오크 군단이었다.

“우리는 오늘! 싸운다, 꾸익!”

“우리는 오늘! 부순다, 꾸익!”

“우리는 오늘! 사귄다, 꾸익!”

“……여기 배신자가 있다, 꾸이익!”

족장 브라쉬가 이끄는 녹색 근육의 장벽이 주홍빛 석양 아래 철통같이 진군해 오고 있었다.

흑마법사 카르투의 숨통이 콱 막혔다. 이건 못 이긴다. 끝났다. 자신의 주력 군단은 기간토피스의 고래 싸움에 등이 터져나가고 있고, 사방에서는 오크 군단이 달려오는 중이다.

‘……도망치자.’

그래서 후일을 도모하자.

그는 빠른 판단을 내렸다. 자신만 무사하면 된다. 그러면 언제고 다시 언데드 군단을 양성할 수 있다. 오늘의 치욕을 갚을 수 있다. 언젠가는 저 빌어먹을 황태자 놈을 죽지도, 살지도 못할 꼴로 만들어 복수할 수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까드득!

카르투는 피가 나도록 이를 갈며 마법을 시전했다. 그의 주위로 마나의 배열이 교묘하게 비틀렸다. 그의 모습이 서서히 투명해졌다. 본격적인 도주를 위한 투명화 마법이었다.

마법이 완성되는 순간, 그는 비로소 안심했다.

‘후우, 내 투명화 마법을 파악할 놈은 이곳에 없겠지.’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의 마법사가 아니면 이쪽의 투명화 마법을 절대로 간파하거나 포착하지 못한다. 마젠타노 제국의 가장 강력한 황실 마법사가 와야 간신히 가능할 일이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전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였다.

물론 그는 까맣게 몰랐다.

이러한 자신의 도주 또한 라키엘이 모조리 짐작하고 있음을.

‘응, 경혈 스캐닝.’

키이이잉-!

투명하건 말건, 대상의 내부 경혈 흐름을 예외도 열외도 얄짤도 없이 관측해 버리는 경혈 스캐닝이 라키엘의 두 눈을 통해 발동되며 일대를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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