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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206화 (206/468)

206화. 크라노스 공방전 (3)

“……커어어어억!”

검정색 K맛 가시의 매운맛(?)에 버둥거리는 카르투. 이쪽이 투명화 마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흑마법사. 놈의 흡떠진 눈이 보였다.

사나운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 지금 투명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비결이 떠올랐다.

‘인위적으로 기세를 바꾼 덕분이지.’

기세.

모든 존재에게는 기세가 있다. 자연적으로 발산하는 미약한 기의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특정한 분위기, 혹은 영향력, 그것이 바로 기세의 정체이다.

예를 들자면?

내 폭망한 성적표를 본 엄마의 기세는 무섭고 흉흉하다. 첫 출근날 지각한 나, 혹은 동물병원에 예방접종 맞으러 간 멍멍이의 기세는 위축되어 있다. 부처님과 예수님의 기세는 성스러운 후광이다.

그렇듯, 우리 모두는 크게든 미미하게든 기세라는 것을 항상 달고 산다.

그래서 미처 몰랐다.

마법 또한 그러한 기세를 변화시키는 술법의 일종에 불과한 것임을.

‘그러니까 아까, 가짜 카르투의 투명화 마법을 경혈 스캐닝으로 관측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투명화 마법을 살펴보니, 뭔가 낯설지가 않았다. 제법 익숙했다. 잠깐 기억을 더듬었던가. 덕분에 곧 떠올렸더랬다.

‘변장 마법.’

앙부아즈 내전에서 사용했던 변장 마법이 문득 떠올랐다. 제법 긴 시간 사용을 하며 익숙해졌던 그 마법의 마나 패턴도 함께 떠올랐다.

그런데 아까 보니?

투명화 마법의 마나 패턴이 변장 마법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디테일만 달랐어. 예를 들자면 마나의 배열과 흐름의 순서, 패턴이 소소하게 다른 정도였달까. 하지만 더 깊은 본질을 살펴보면 결국엔 비슷했지. 특히, 근본적인 원리가.’

익숙한 변장 마법.

새로 관측한 투명화 마법.

둘의 공통적인 근본적 원리.

그것은 바로, ‘마법을 적용받는 대상이 발산하는 기세를 바꾸어, 주위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변화를 준다’라는 것이었다.

결국엔 그 원리였다.

‘인위적으로 기세를 바꾸는 것.’

기세란 곧 마나의 발산이며, 마나의 흐름이다. 그런데 마나는 결국 경혈을 통해 흐르고 발산된다. 즉, 경혈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면…… 변장이나 투명화 마법을 어느 정도는 흉내낼 수도 있으리란 뜻이었다!

‘……라는 가능성이 보였지.’

남의 몸에는 불가능할지라도, 최소한 자신의 몸에 셀프로 시술(?)을 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누가 들으면 미친 소리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시도했다.

그것이 5분 전의 일이었다.

“커허윽! 그으크읏! 이, 이게…… 무슨!‘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손을 휘젓는 카르투. 놈의 몸짓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여전히 이쪽이 보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5분 전의 데미안도, 거의 비슷한 표정으로 당황했던 것 같다.

“어째서 지금 가시를…… 팔뚝에 꽂으시는 겁니까?”

5분 전이었다.

언데드 군단에 대한 후방 급습이 한창 진행되던 와중이었다. 데미안 녀석이 황당한 눈초리로 물어왔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이쪽이 난데없이 가시를 빼들었으니까. 팔뚝에 셀프 시침을 시작했으니까. 다른 곳도 아닌,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뜬금없이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던가.

“어. 곧 우리 쪽 돌격이 저지될 거라서.”

“……예?”

“우루스도, 브라쉬도, 모두 뛰어난 전사이고 강력한 존재들이지만 말이다. 저 흑마법사 놈의 방비가 만만치가 않을 거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공중 강습도 못 해. 아까 성벽 위는 비어 있어서 오크 전사들을 날려보낼 수 있었지만, 지금 흑마법사 주위는 철통처럼 방어가 되고 있으니까. 기껏 이쪽 전사를 날려보내 봤자 착지의 충격을 회복하기도 전에 다굴…… 아니, 집중공격을 받겠지. 그래서야. 흑마법사 놈의 방비를 뚫고서 직접 타격을 가할 의외의 방법을 준비해야 하는 거.”

“전하?”

“어.”

“전하께서 말씀하신 의외의 방법과, 지금 스스로 시행하시는 침술 사이에 뭔가 관련이 있는 겁니까?”

“어. 이렇게.”

톳!

또 하나의 하얀 가시를 찔렀다.

적절한 보사법으로 찌른 가시가 왼쪽 쇄골(clavicle) 아래,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의 기호혈(氣戶穴)을 파고들었다. 기호혈을 따라 흐르던 기맥의 흐름에 작은 파문이 생겨났다.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했다. 심법으로 파문의 방향을 조절했다.

‘아래로!’

아까 보았던 투명화 마법의 마나 패턴과 순서. 그걸 다시금 되시기며 기맥 드리블(?)을 시작했다. 다음 가시로 겨눈 곳은 가슴의 젖꼭지, 유두에 위치한 유중혈(乳中穴)이었다.

때마침 이쪽의 도전적인 시도를 알아차린 오장육부가 적극적으로 호응을 해주었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시도에 굉장한 흥미를 느낍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도전을 적극 지원합니다.]

[심장 : 야야, 우리 몸뚱이 또 이상한 거 시도함ㅋㅋ]

[허파 : 허업……? 프하하핰ㅋㅋㅋ]

[대장 : 아무래도 우리가 기맥 드리블 좀 도와줘야 할 거 같지 말입니다?]

[간장 : 이런 일엔 정확한 관측과 제보가 중요하지. 실시간 현지 특파원 나와 주세요.]

[위장 : 여기는 젖꼭지 유중혈에 나와 있는 특파원, 위장입니다. 저는 이제 곧 역사적인 젖꼭지 시침이 이루어질 현장에 나와 있는데요. 젖꼭지 가시 착륙을 관장하는 관제탑의 긴장감 서린 모습을 연결하겠습니다.]

[콩팥 : 아아 여기는 관꼭지탑 관꼭지탑. 도킹을 허가한다 이상.]

[심장 : 도킹ㅋㅋㅋㅋㅋㅋㅋ 시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허파 : 허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장 : 돌았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장 : 이러다 시침 삑사리 나면ㅋㅋㅋㅋㅋ]

[위장 : 사망의 불시착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장육부가 당신의 시침을 응원하며 기맥의 흐름을 제보합니다.]

[지금 잘 찌르고 있노라며 응원의 100 HP를 후원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3,400]

톳!

오장육부 놈들의 어이없는 응원을 귓가로 흘려보내며 가시를 찔렀다. 유중혈을 파고든 가시가 기맥의 파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된다.

생각대로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잘 된다.

자신감이 피어났다. 손을 멈추지 않았다.

톳! 토돗. 톳!

윗배, 배꼽의 중심에서 위로 3촌, 다시 왼쪽으로 2촌 지점에 있는 관문혈(關門穴)을 찔렀다. 거기서 기맥의 방향을 배꼽 위 3촌 지점의 임맥(任脈) 건리혈(建里穴)로 환승(?)을 시켰다. 그대로 기맥의 방향을 위쪽으로 틀었다.

상완혈(上脘穴), 거궐혈(巨闕穴), 단중혈(膻中穴)을 순식간에 거쳤다. 마침내 기맥의 흐름이 앞가슴뼈 중앙의 옥당혈(玉堂穴)에 이르렀을 때, 심장이 크게 뛰었다.

두쿵-!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유형의 심장 박동이었다. 박동이 마나 써클을 자극했다. 써클의 회전이 일순간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흐름이 전신으로 퍼졌다. 몸에서 자연스럽게 발산되던 기의 흐름이 왜곡되었다.

그리고…… 온몸이 투명해졌다.

“……헛?”

데미안 녀석이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 그걸 듣자마자 성공을 직감했다. 손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손이 보이지가 않았다. 완벽하다. 성공이었다.

‘됐다!’

내심 환호했다.

체험을 통해 기억하고 있던 변장 마법의 원리, 아까 관찰한 투명화 마법의 마나 패턴, 마나의 흐름을 인지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아스라한 심법, 거기에 침술까지. 그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투명화 마법을 어찌어찌 흉내 내긴 했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최대로 잡아도 10분 이내.’

느낌이 왔다.

그 안에 끝내야 한다.

“데미안!”

당황한 기색의 녀석에게 당부했다.

“내가 먼저 가서 길을 뚫어둘 테니, 놈들의 대열이 흐트러지면 곧바로 달려오도록.”

대답은 기다리지 않았다. 똑똑한 놈이니, 이 정도만 말해줘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테니까.

그대로 녀석을 놔두고 혼자 달렸다. 전장을 돌파했다.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아무도 이쪽을 못 보는 덕분이었다. 이쪽은 경혈 스캐닝으로 주위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흑마법사 카르투에게 접근했다. 처음엔 단검으로 푹, 찔러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놈이 두르고 있는 방어 마법 때문이었다.

물론 방어 마법에도 틈은 있었다.

바늘 하나 크기의 틈새. 놈이 호흡을 위해 만들어둔 작은 구멍들이 방어 마법 배리어 곳곳에 열려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단검은 들어가지 않아도, 검정색 K맛 가시 정도는 프리패스였다.

“……그어억! 거흐억!”

흑마법사 카르투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뭔가에 등을 찔린 것 같다. 바늘, 가시?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너무나 아팠다. 찔린 상처가 딱히 깊지도 않은 듯한데, 그저 피부만 살짝 찔린 것 같은데, 어쩌면 이렇게 아플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극독? 독침을 쓴 건가?’

가슴이 철렁했다.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왔다.

‘투명화 마법이라니. 황태자가? 말도 안 돼!’

황태자의 소문은 일찌감치 들어본 적이 있었다. 병원 놀이라는 특이한 취미를 지녔다던가. 하지만 그 소문 어디에도, 마법을 구사한다는 따위의 이야기는 없었다. 특히 투명화 마법은 더더욱!

“그으……! 그으윽!”

하지만 당황하고만 있을 틈은 없다. 넋 놓고 있다간 당한다. 카르투는 필사의 심정으로 이를 갈며 고통을 참아냈다. 재빨리 옆으로 다섯 걸음 물러나며 망토를 휘둘렀다. 나름의 저항이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몸짓이기도 했다.

톳?

망토를 휘두른 직후, 이번엔 어깨에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

설마 또?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가 역시로 변하는 데에는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와아아아아아악-!”

삽시간에 엄습해 오는 영혼 출타의 고통! 심지어 고통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톳! 토도돗, 톳!

“컥, 끅! 그흐으읍!”

목덜미와 팔뚝, 허리춤을 연달아 찔렸다. 중첩된 고통에 눈앞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카르투의 심장도 다급하게 쿵덕쿵덕 뛰었다.

‘이, 이대로는 안 된다!’

자신이 정신을 잃으면 망한다. 지휘자를 잃은 언데드 군단이 자중지란에 빠질 것이다. 친위대가 무너지고, 적의 급습에 뚫리고 말리라. 그러면 끝이다. 절대로 안 된다.

‘감히!’

까드득!

카르투의 어금니가 섬뜩한 잇소리를 냈다. 그의 두 손에 마나가 집중되었다. 뒤틀린 마나의 배열이 파괴적인 기세를 실었다. 그대로 지면을 향해 휘둘렀다. 그만의 독창적인 파괴 마법, 암흑의 구체가 발밑으로 발사되었다.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다면, 이 폭발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는 확신했다.

자신은 방어 마법을 두르고 있다. 반면 황태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삽시간에 일어난 파괴적인 폭풍이 주변을 휩쓸고, 날파리처럼 알짱대던 황태자를 갈가리 찢어놓겠지. 잔혹한 확신 속에 사나운 미소가 배어났다.

폭발은 삽시간이었다.

……투콱!

검은 마력의 물결이 지면을 터뜨리며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가히 대전차 지뢰에 버금가는 위력으로, 반경 20미터 이내의 모든 대상을 갈가리 찢고 헤집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단 하나의 대상만은 예외였다.

“……후우. 제법 아프네.”

걷히는 흙먼지 너머.

어느새 냉기의 방패 만년설을 전력으로 전개한 황태자 라키엘이, 폭발에 입은 충격을 ‘HP 변환’으로 순식간에 회복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사납게 웃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는…….

“전하. 저들의 대열이 흐트러질 거라던 거, 이런 뜻이셨습니까?”

흑발의 호위, 데미안이 황태자의 곁에 나란히 서며 서슬 퍼런 검을 뽑아들었다.

꿀꺽.

카르투의 목젖이 당혹감의 탭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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