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11화 (211/468)

211화. 타인의 희생 (1)

두쿵!

“……!”

카르투는 두 눈을 부릅떴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뭔가가 몸속에 들어왔는데. 분명 황태자에게서 흡수를 하긴 했는데. 목표로 했던 생명력이 아닌 것 같다.

제대로 생명력을 흡수했다면, 이렇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이 내부를 때리진 않을 테니까. 온몸의 혈관을 불로 지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질 리가 없으니까.

‘커억!’

카르투의 떡 벌어진 입에서 소리 없는 고통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걸 본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작전 성공.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됐다.

아까의 상황이 문득 떠올랐다. 흑마법사의 소굴을 토벌하려 했다. 기만과 함정을 깨달았다. 소굴을 지키던 흑마법사 자체가 가짜였다. 언데드 군단의 주력이 크라노스를 치고 있음을 뒤늦게 간파했다.

그때부터였다. 크라노스로 급속 회군을 하는 사이에, 즉석에서 새로운 작전을 짰다. 모두를 속인 흑마법사 카르투를 때려잡을 작전이자, 큰 그림이며, 전략이었다.

크라노스로 돌아오자마자 오크 전사들을 날려 보냈다. 성벽 방어를 하며 시간을 벌었고, 언데드 군단의 후방을 급습했다. 돌파를 시도했다.

투명화 마법을 시도했다. K맛 가시로 카르투의 멘탈을 흔들어서 언데드 군단과의 지휘 연결을 끊어 버렸다.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오크 전사들로 카르투를 몰아쳤다. 카르투가 대응하며 사용할 마법을 정확히 예측했다. 적절한 대응으로 놈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과연 예상대로 놈은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그것이 바로 생명력 흡수 마법이었다.

‘소설 마검황에서도 그랬지. 언제나 궁지에 몰리면 놈은 생명력 흡수를 사용했어.’

마검황에 등장하던 카르투에게는 대표적인 두 가지의 주력 마법이 있었다. 하나는 앞서 오크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광역기, 망령유희였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생명력 흡수였다. 손이 닿는 단일 대상의 생명력을 무자비하게 강탈했다. 적을 무력화하고, 자신의 생명력은 가득 채우며 절망을 선사하는 악랄한 마법이었다.

‘망령유희가 막히고 오크들의 집단 공격에 내몰리게 되면, 반드시 생명력 흡수를 발동하리라 여겼지.’

과연 예상대로였다. 놈이 보인 다음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노릴 것이라 보았다. 토벌군의 실질적인 최고 지휘관이 자신이니까. 당연한 추측이었고, 놈은 그 추측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였다.

놈의 습격을 받아주며 저항하는 척을 했다.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며 맞서 싸우는 척을 했다. 놈이 사용하는 다른 마법을 모조리 피하고, 생명력 흡수를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일부러 잡혀 주었다.

이 모든 판을 짜며 계획했던 피날레. 최후의 결정타를 치명타로 먹이기 위해서였다.

‘2황자 녀석과 대결했던 그날처럼. 네놈이 발휘하는 생명력 흡수의 기세를 내 아스라한 심법으로 역이용해서.’

2황자의 흡수 능력에 알코올 폭탄을 실어서 보냈듯이. 카르투의 흡수 능력에 질소 폭탄을 담아서 보냈다.

원리는 간단했다.

호흡을 응용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공기를 첫 번째 써클 슬롯에 저장했다. 그 후에 공기 속의 질소만 따로 분리했다. 쉬웠다. 공기의 약 78%가 질소니까. 따로 분리한 질소를 두 번째 써클 슬롯에 꽉꽉 담았다. 한 큐에 카르투에게 보냈다.

그렇듯 몇 단계에 걸쳐서 그려낸 큰 그림. 그걸 차곡차곡 실행하고 성공한 결과가 바로, 지금 눈앞의 상황이었다.

“……커억!”

카르투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당혹감과 고통에 잠긴 시선으로 황태자를 쳐다보았다.

‘왜?’

어째서?

내 몸이 갑자기 이런 거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황태자에게서 흡수한 것이 무엇이길래. 갑자기 온몸의 혈관에서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전신으로 번져가는 기이한 고통도. 그런 자신을 향한 황태자의 올라간 입꼬리도.

‘빌어……먹을! 무슨 짓을!’

카르투의 전신이 경련했다. 그가 라키엘에게서 덜컥 흡수해 버린 대량의 질소가 온몸에 확 번졌다. 비정상적인 속도와 양이었다. 그게 문제를 일으켰다.

“커! 커큭!”

원래 인간의 신체는 체내로 흡수된 질소를 충분히 배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양이 급격하게 많아지면? 몸속의 곳곳에서 질소 기포가 만들어진다. 마치, 힘차게 흔든 직후에 부주의하게 뚜껑을 열어 버린 탄산음료처럼.

“……카윽! 아으으악!”

지독할 정도의 급성 잠수병, 감압 질환이었다.

대량으로 생성된 질소 기포가 전신의 세포 조직 자체를 내부에서부터 파괴했다. 극한의 고통이 카르투의 모든 신경을 지배했다.

아까 맛보았던 검정색 가시? 비교도 되지 않았다. 가시는 단순히 그냥 아플 뿐이었으니까. 반면 지금은 달랐다. 실제로 체내의 조직이 대량으로 파괴되며 녹아내리는 고통이 엄습해왔다.

“……흐극! 그거흐히익? 커!”

가장 먼저 고통을 가한 원인은 1형 감압병이었다.

카르투의 모든 피부와 근육, 뼈에 대량의 기포가 생성되었다. 관절과 물렁뼈에 가해진 지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전신의 피부를 칼로 찢어내는 듯한 통증과 극한의 간지러움이 동시에 일어났다.

불운하게도, 증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생명과 관련이 없는 외부 조직에 타격이 가해지는 1형 감압병에 이어서, 질소 기포가 중요 장기를 침범하는 2형 감압병의 격류가 카르투를 몰아쳤다.

두쿵!

대량의 미세한 질소 기포가 심장 근육 세포를 침범했다. 근육이 경련하며 심장 박동이 순식간에 불규칙해졌다. 극악의 흉통이 폐부를 옥죄었다. 급성 호흡곤란에 기관지가 경련했다.

이압성 척수염이 신경을 흔들었다. 하체와 발목 아래 피부에 기이한 감각이 침범했다. 배뇨장애가 생기며 속옷이 젖었고, 두 다리의 온도 감각이 제멋대로 뒤틀리며 한쪽은 불에 타는 느낌을, 다른 다리는 꽁꽁 얼어붙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더욱 불운하게도,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그우읍!’

증상이 뇌를 침범하는 최악의 3형 감압병이 진행되었다. 카르투의 안구에 멍(racoon eye sign)이 생겨났다. 질소 기포가 생성한 대량의 혈전이 뇌경색 증세를 일으켰다. 어지러움과 안구진탕, 두통과 함께 구토감이 몰려왔다.

즉, 카르투의 신체 모든 부분이 착실하게, 확실하게 파괴되었다. 내부에서부터의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뒤덮었다.

하지만 카르투 또한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뭐라도…… 해야……!’

혼미해지는 정신.

치솟는 위기감.

그 속에서 카르투는 본능적으로 대응했다. 수없이 연습하고 연마한 기초 마법을 반사적으로 사용했다. 응급 시에 가장 유용한, 기초 회복 마법이었다.

……츠파팟!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어렵사리 성공……할 뻔했지만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별안간 뻗어온 손아귀에 팔을 붙잡힌 까닭이었다.

터턱!

“……!”

철렁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비로소 보였다. 황태자가 손을 뻗어 자신의 팔뚝을 붙잡고 있었다. 덕분에…… 간신히 맺어 가던 회복 마법의 수인이 깨졌다!

‘아, 안 돼! 이 악마 같은!’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마음으로 쏘아낸 욕설에 화답하여 날아온 것은 황태자의 주먹질이었다.

뻐억!

“……컥!”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런데 아무 느낌이 없다. 고맙게도 여전히 방어 마법은 깨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리라. 어느새 자신을 완전히 포위한 일당(?)의 모습을 바라보며, 카르투는 확실한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누우우! 푸르륵!”

거대한 미노타우로스의 그림자가 전신을 뒤덮어 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가족과 친우들을 좀비로 만들어 부리던 대가를 치를 준비는 되었나, 꾸익?”

족장으로 보이는 오크 전사가 전신의 근육을 불끈거리며 다가왔다. 그 옆에선 황태자의 흑발 호위가 말없이 두 눈을 번득이며 검자루를 쥐고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워우우우!”

어디선가 달려오는 웨어울프의 살기 가득한 하울링. 수많은 오크 전사들이 포효 같은 함성으로 화답하며 달려왔다.

상황을 깨달은 카르투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 하하…….”

이젠 살길이 남지 않았구나.

방어 마법으로 아무리 버텨보았자 몇 분을 넘기지 못할 테지. 아니, 그 전에 이 알 수 없는 증상과 고통 앞에 허물어질 것 같다.

반쯤 자포자기한 카르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다리가 풀렸다.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삽시간에 몰려오는 복시 증상 때문에 사물이 2개로 겹쳐 보이는 어지러움. 그 속에서 가까스로 황태자를 향해 눈길을 던졌다.

“나한테…… 무슨…… 짓을……한 거지?”

호흡곤란과 흉통으로 헐떡이며, 쉰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다. 황태자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선물을 줬지. 다행이군. 그쪽이 흡수 마법을 남발해 줘서.”

“남발……?”

“설명까지 해줄 생각은 없고.”

“……빌어먹을.”

카르투는 치를 떨었다. 원통했다. 자신의 꿈이, 원대한 이상이 이곳에서 중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열등하고…… 우매한 것들……. 감히…… 내 숭고한 뜻도 모르고…….”

“숭고한 뜻? 혹시 언데드의 노동력으로 굴러가는 이상적인 사회를 말하려는 건가.”

“……!”

그걸 어떻게 알았지?

카르투는 깜짝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직 아무에게도 밝힌 적 없으니까. 그런데 황태자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물론 라키엘은 시시콜콜 설명해줄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자신이 소설 마검황을 읽어서 그걸 안다는 말을 해줘봤자 뭐하겠는가.

대신 그는 흑마법사를 비웃었다.

“그래. 알겠어. 망자의 시신이 제공하는 노동력으로 돌아가는 사회. 살아 있는 사람은 그만큼 편리해지겠지. 힘들고 거추장스러운 노동에서 해방되겠지. 그런데 말이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그렇게나 합리적으로만 돌아가는 걸까, 과연?”

“무슨……?”

“얼핏 들으면 끌려. 굉장히 합리적으로 느껴져.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시신이 내 부모라면? 형제, 배우자, 먼저 안타깝게 눈을 감은 자식이라면? 그걸 선뜻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어리광 같은 기분탓 따위나 읊어대니까…… 너희가…….”

“우매하다고? 맞아.”

힘겹게 이를 갈며 대꾸하려는 카르투. 라키엘은 흑마법사의 말허리를 단호하게 잘랐다.

“네놈 말대로 어리광이나 투정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어떡하냐. 난 그게 마음에 안 드는데.”

“뭐……?”

“마음에 안 든다고.”

“어째서…… 합당한 이유가…….”

“있냐고? 당연히 있지.”

라키엘은 어깨를 으쓱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사회가 건설되려면, 우선 내 밥그릇이 깨져야 할 테니까.”

“…….”

“마젠타노 황실과 제국이 무너져야 네놈이 바라는 그런 사회가 이룩될 건데, 내가 그걸 왜 허락하지?”

당연하다. 정말로 당연한 소리다. 아무리 이상적인 사회니 뭐니 해봤자, 그게 내 밥그릇보다 소중하지는 않으니까.

더 이상의 거창하거나 현학적인 이유 따위는 없었다. 옳고 그름? 아무 상관도 없다. 그렇듯 라키엘은 직설적이고도 철저한 이기주의적(?) 마인드로 일침했다.

“그러니 이만 포기해라.”

“……!”

더 해줄 말은 없었다. 이쪽을 힘겹게 올려다보는 카르투의 흔들리는 눈빛. 그걸 뒤로하고 냉정하게 일어섰다. 몸을 돌렸다. 일행에게 놈의 처리를 맡겼다.

“누우우우우-!”

우루스가 맹렬하게 포효했다. 데미안이 검을 뽑았다. 브라쉬가 근육을 불끈거렸고, 웨어울프 아니스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 앞에서 카르투는 허물어져 갔다. 마침내 차근차근 진행된 뇌경색 속에서 의식을 잃어 갔다. 동시에 온몸으로 절감했다.

‘이제 나는…….’

끝났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됐구나.

원통했다. 억울했다. 화가 났다. 그래서였다. 위험한 생각이 슬며시 떠오른 것은.

‘나만 혼자…… 죽기는 싫다.’

어차피 죽는 거. 여기 있는 놈들도 모조리 다 함께 죽으면 어떨까.

……까드득!

흐려져 가던 카르투의 눈동자에 위험한 종류의 빛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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