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12화 (212/468)

212화. 타인의 희생 (2)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팔뚝에 돋아난 닭살을 털어냅니다.]

[심장 : 이야 질소 폭탄ㅋㅋ 그걸 이렇게 쓰네ㅋㅋㅋ 맵다 매워ㅋㅋ]

[허파 : 허퍽…… 허퍼퍽…….]

[대장 : 어라? 허파 형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말입니다?]

[간장 : 저쪽 흑마법사네 허파가 질소폭탄 맞는 거 보면서 감정이입한 듯ㅋㅋ]

[위장 : 허파형? 정신 차려. 우린 멀쩡함 ㅇㅋ?]

[콩팥 : ……라지만 위장에도 닭살 돋아 있는데?]

[심장 : 사실은 나도. 우리 몸뚱이는 진짜 어떤 인간인 걸까.]

[허파 : 하픕…….]

[대장 : 저는 괄약근에 경기 일어날 뻔했지 말입니다.]

[간장 : 그럼 우리 몸뚱이 지리는 거 아님?]

[위장 : 황태자는 지려도 돼!]

[콩팥 : 높으신 분이 지릴 수도 있지 뭐ㅋㅋㅋ]

[오장육부가 당신의 피도 눈물도 자비도 에누리도 없는 악랄한 수단에 혀를 내두릅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인생을 건성으로 응원하며 100 HP를 후원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2,900]

“…….”

오장육부는 나를 대체 어떤 인간으로 취급하는 걸까.

라키엘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쓰러져 버둥거리는 사내가 보였다.

흑마법사 카르투. 이곳 변방 도시 크라노스의 수많은 시신을 갈취하여 언데드 군단을 양성한 남자. 이대로 두었으면 7년 후에 국가 단위의 대재앙을 일으켰을 원흉. 또한 오늘은, 도시 하나를 완전히 집어삼키려 흑심을 드러낸 적.

“쯧.”

쓰러진 채 헐떡이는 카르투를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놈이 혐오스러워서? 불쾌해서? 아니었다. 놈을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상황과 선택이 마음에 들지가 않아서였다.

‘난 사람 고치는 사람인데.’

그저 평범한 동네 한의사일 뿐이었다. 평일 아침마다 살짝 투덜거리며 일어나고, 출근 준비를 하고, 한의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맞이하고, 치료를 해드리는, 지극히 평화롭고도 단조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 속에서도 종종 기뻤다.

처음 내원할 때는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아파서 오던 분들이, 침을 맞을 때면 따끔함에 얼굴을 찡그리던 분들이, 그랬던 분들이 차츰 나아가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차츰 펴지는 얼굴이 자신에게는 나름의 큰 기쁨이자 보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대량의 질소를 몸속으로 쏟아부어 버렸고, 그 결과 지독한 급성 잠수병에 의해 전신의 장기에 손상을 입은 사람이 눈앞에서 버둥거리고 있다.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어떤 사람이든 비슷할 것이다.

미안하고.

찜찜하고.

그래서 조금은 상대를 탓하게도 되는, 딱 그런 기분.

‘댁이 먼저 잘못을 한 거잖아. 남의 시신을 갈취하고, 이용하고, 오늘은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을 몰살하려 들었잖아. 그러니까 그 정도 대가는 달게 받아야지.’

수많은 살인마, 범죄자들. 그런 이들이 받는 이해 불가의 솜방망이 처벌에 분개하던 날들도 문득 떠올랐다.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내내 마음이 편치 못할 듯했으니까.

게다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라키엘은 괜스레 떠오르려는 죄책감과 찜찜한 마음을 냉정하게 덮었다. 자신을 원망스럽게 쏘아보는 카르투의 눈빛을 선을 긋듯 무시했다.

“데미안?”

“예, 전하.”

“나는 이만 물러갈 테니, 뒤를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전하. 저자의 처리는 어떻게 할까요.”

데미안이라면 확실하게 카르투를 끝장낼 수 있으리라. 비록 아직은 카르투가 이중으로 펼쳐진 방어마법으로 보호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냥 이대로 두어도 몇 시간 버티지 못하고 촛불이 꺼지듯 죽겠지.

라키엘은 내심 생각하고 있던 마무리 방식을 명했다.

“놈의 숨이 끊어지면 목은 베어서 보관하고, 시신은 불태우도록.”

시신은 확실하게 제거. 목은 황제에게 보고할 목적으로 보존. 마젠타노 황가의 반란군 처리 방식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데미안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슬며시 눈길을 들어 황태자를 살폈다. 방금 분명, 명령을 내리던 황태자의 말끝이 희미하게 떨렸던 것 같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그는 잠깐 망설인 끝에 황태자에게 물었다.

“한데 전하, 괜찮으십니까?”

“뭐가?”

“그냥…… 조금 염려가 되어서 말입니다.”

“염려라니. 무슨 염려?”

“……아닙니다.”

이럴 때면 참으로 아쉽습니다. 제게 조금 그럴듯한 말재주가 있었다면, 보다 자연스럽게 당신의 심정을 위로하였을 텐데.

데미안은 못내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 당신은 지금 말꼬리뿐만이 아니라 손도 잘게 떨고 있노라고. 입술 끝도 희미하게 떨리는 게 보인다고. 그런데도 애써 괜찮은 것처럼 비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조차도 다 보인다고.

‘적어도 제게는 말입니다.’

황태자의 곁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래 지킨 이가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황태자는 어쩐지 울음 비슷한 것을 참고 있는 듯하다고. 까닭 모를 죄책감을 남몰래 삭이고 있는 듯하다고. 그럼에도 끝끝내 괜찮은 척, 태연하고 냉철한 척을 하고 있노라고.

“…….”

매번 괴상한 짓을 하는 황태자. 때로는 악랄하고 교활한 짓도 서슴지 않는 듯한 황태자.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끝끝내 타인을 위한 행동을 선택하는 황태자. 그렇기에…….

‘어쩌면 저는, 당신을 존경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아니었는데.

요즘은 부정하질 못하겠다.

한때는 더 많은 수당과 보수를 약속받지 못하면 미련 없이 떠나리라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마음만큼은 이미 달라졌음을 이제는 부정하지 못하겠다.

존경스럽다.

저 모습이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더욱 충실히 지켜주고 싶다.

“분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저만의 방식으로, 당신의 가장 날카로운 검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데미안은 다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복잡한 표정을 숨기고서 몸을 돌린 황태자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쓰러져 있는 흑마법사를 향해 겨누었다.

스르릉!

“각오는 됐겠지.”

“……그흐.”

역시 대답할 의식도 거의 없는 건가. 데미안의 눈길이 날카로워졌다. 검자루를 쥔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자비 없는 검격이 흑마법사의 방어 마법 위로 떨어졌다.

터커엉-!

날카로운 충격이 방어 마법을 내리쳤다. 마법 일부가 쪼개지며 충격력이 전달되었다. 바닥에 웅크린 카르투의 등을 강하게 자극했다. 거의 의식을 잃어가던 카르투의 전신이 크게 움찔, 경련했다.

흑마법사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제 나는…….’

끝났구나.

확신이 들었다. 흐려질 대로 흐려진 의식 속에서도 그 사실만큼은 또렷한 절망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는 죽음. 최후. 그 앞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할 것 같다. 더는 남은 방법이 없다.

‘나는…….’

훗날을 도모할 수 없게 되었구나. 내가 꾸었던 원대한 꿈, 이상, 이룩하고 싶던 세상, 그 모든 계획이 한낱 물거품으로 스러지게 된 것 같구나.

절망스러웠다.

주먹을 까득 쥐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게 되지가 않았다. 전신이 너무나 무력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너무나 어지러웠다. 속은 당장 뒤집힐 것 같고, 눈앞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도 힘겨웠다. 즉, 자신은 차근차근 확실한 죽음의 영토로 발길을 들이는 중이었다.

‘억울하다.’

원통했다.

화가 났다.

이런 식의 비참한 최후를 바란 적은 결코 없었다. 적어도 세상의 한 자락이나마 자신의 이상대로 바꾸어보고 싶었다. 우매하기 짝이 없는 절대다수의 인간들에게 더욱 나은 세상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죽을 테니까.

저놈들에게 당했으니까.

“…….”

황태자.

그놈만 아니었어도.

‘이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놈 때문이다.

너무나 억울하다. 화가 난다. 이대로 끝나긴 싫다. 적어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채로 눈을 감는 것은 더욱 싫다.

그러니까 나는…….

‘……나만 죽을 수는 없어.’

번득.

빛이 꺼져가던 카르투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때였다. 또다시 흑발 호위의 검이 떨어져 내려왔다.

터컹!

“……!”

선명하게 전해져 오는 충격과 고통. 한층 확실해진 방어마법의 균열. 카르투는 깨달았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생각난 것을 해야 한다.

까드득!

‘네놈들도 죽음의 나락으로 함께 데려가 주마.’

카르투는 결심했다. 최후의 힘과 정신력을 끌어모았다. 티끌처럼 흩어져 있던 마나의 조각을 미간으로 끌어당겼다. 언데드 군단과의 정신연결을 시도했다.

지휘를 위해서?

아니었다.

그건 이미 불가능했다. 지휘를 위한 정신연결은 아까 끊어졌다. 복구를 하려면 최소 열흘 밤낮은 걸릴 것이다. 수없이 다양한 행동을 명령할 수 있는, 복잡한 종류의 정신연결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지금 그가 시도하는 정신연결은 달랐다. 복잡한 명령? 없었다. 다양한 행동?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

전장에 남겨진 약 2,500구의 언데드. 놈들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 행동.

그건 바로…….

‘터져라, 모조리, 다.’

카르투의 부릅뜬 눈알에 실핏줄이 투둑투둑 불거졌다. 연거푸 내리쳐 오는 흑발 호위의 검격. 그 아래에서 벌레처럼 신음하며, 필사적으로 염원했다. 정신연결을 시도했다. 간절히 명령했다.

‘제발!’

목덜미에 일어서는 핏줄. 연달아 쏟아지는 검격. 거의 다 부서진 방어마법. 그만큼 절박하게 외치는 명령. 전달하는 명령의 종류가 하나 밖에 없기에, 그만큼 단순하기에, 정신연결 또한 그만큼 빨랐다.

그리고 마침내.

“……구륵?”

흑마법사와의 정신연결이 끊긴 채 전장을 목적 없이 배회하던 어느 좀비에게 카르투의 명령이 닿았다. 좀비가 흠칫 온몸을 떨었다. 어깨를 움츠렸다. 부패한 혈관 속을 끈적하게 흐르던 진액과 혈액이 역방향으로 거칠게 회전했다.

“구르륵, 구극!”

거칠게 포효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이지를 상실한 채 배회하는 좀비의 평범하고도 의미 없는 외침이라 여겼다. 그것은 마침 근처를 지나치던 라키엘과, 그를 호위하는 특근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흑마법사의 방어마법을 깨부수려 검을 휘두르던 데미안 또한 그러하였다.

‘한 번만 더.’

이제 거의 다 깨졌다.

데미안은 아래쪽을 노려보았다. 벌레처럼 웅크린 흑마법사. 놈을 둘러싸고 있는 방어마법의 균열이 뚜렷해졌다. 이제 한 번이면 된다. 한 번의 검격이면 놈의 목을 벨 수 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

최후의 일격을 위해 검을 치켜들던 데미안은 문득 보고야 말았다. 흑마법사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묘한 광기에 젖은 눈동자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는 이를 절로 섬뜩하게 만드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뭘까.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 곧 끝장날 놈이니까.

쉬이익!

데미안이 망설임 없이 검을 내리그었다. 하지만 그는 검을 끝까지 내리치지 못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투콰하학!

별안간, 한쪽 방향의 좀비들이 기습적인 집단 시체 폭발을 일으켰다. 반경 100미터 이상의 범위를 아우르는 살인적인 폭염과 충격파가 일대를 초토화하며 전장을 휩쓸었다.

“……!”

데미안의 눈이 경악으로 흡뜨였다.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황태자, 라키엘이 이동하던 지점에서 일어난 폭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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