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14화 (214/468)

214화. 지키고 싶은 사람들 (1)

“집단 시체 폭발이라.”

흑마법사 카르투. 놈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겠다. 설마하니 이런 수법을 쓰다니. 대량의 질소 기포로 인한 급성 잠수병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그런 짓이 가능하다니. 한편으로는 그 집요함에 감탄이 나왔다.

‘혈전 때문에 분명 뇌경색이 왔었는데. 이게 된다고?’

이건 상식을 뛰어넘은 정신력이다. 실화라면 가히 괴물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조금은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지금은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기도 하다.

“데미안. 놈은? 죽었나?”

“아닙니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흑발의 호위는 대답하며 후회했다. 문득, 자신이 실수를 한 건가 싶었다. 흑마법사의 목을 베고 뛰어왔어야 했나 싶었다.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폭심지 근처에 황태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직후, 만사를 제쳐놓고 황태자의 안위부터 살피러 뛰어왔던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던 걸까.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판단 잘했어. 놈이 죽었으면 일이 더 꼬였을 테니까.”

“……예?”

“그랬다면 놈이 준비하던 명령이 한꺼번에 전달됐겠지. 우선 부축부터. 놈에게 가자.”

“아닙니다, 전하.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안전한 곳은 없어.”

라키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데미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전장에 남겨진 언데드의 숫자가 2천이 넘는 상황이다. 그 숫자가 한꺼번에 폭발하며 증폭되면 위력이 어느 정도일까.”

“그건…….”

“개활지라면 살상 반경만 수 킬로미터에 달하겠지. 크라노스의 성벽은 물론이고 시가지도 절반쯤은 거뜬히 날아갈 테고.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야. 도망치려 아무리 애를 써도, 시간 안에 살상 반경을 벗어날 수 없겠지.”

그것이 정답이다.

솔직히 지금 당장에라도 언데드 군단 전체가 전술핵에 버금가는 위력의 일제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도망?

불가능하다.

어설프게 도망을 치려 든다면, 반드시 죽는다. 크라노스의 시민들은 물론이고 전장에 있는 모든 이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겠지.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

죽고자 사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

라키엘은 문득, 이순신 장군의 명언을 떠올렸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상황임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폭발에서 무사할 방법은 없다. 도망은 반드시 죽는 길이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흑마법사, 그놈의 명령을 취소해야 해. 시간이 없다. 어서.”

“……알겠습니다.”

데미안은 그의 뜻을 깨달았다. 황태자를 업었다. 흑마법사가 있는 장소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그동안 흑발의 호위는 느낄 수 있었다.

‘전하께서는 많이 떨고 계시구나.’

업힌 채 자신의 등에 기댄 황태자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착각? 아니, 확실했다. 너무나 가볍고 메마른 황태자의 몸이 확연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어깨를 잡은 두 손도. 등에 맞닿은 가슴도. 그 속에서 뛰는 심장까지 모두 그랬다.

어째서일까. 아까 폭발을 겪은 후의 충격 때문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마 다른 이들이라면 충분히 그렇겠노라 여기겠다.

하지만 자신은…… 잘 모르겠다.

‘의외로 신체적인 충격은 적게 받으셨어. 특근대원들 덕분이겠지. 황태자 전하께서는 지금 단지…… 두려움에 떨고 계신 건지도.’

사람이 얼마나 무서우면 이렇게 온몸을 떨게 될까. 그렇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태자는 도망 대신 흑마법사에게 달려가는 길을 선택했으니까. 그럼에도 표정 하나, 목소리 한 올조차 흐트러지지 않았으니까.

‘두려움에 몸을 떠는 당신. 표정만큼은 흐트러지지 않는 당신. 어느 쪽이 진짜 당신일까.’

어쩌면 둘 모두인지도.

그렇기에 황태자는 결국,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면서도 특별한 존재인지도.

“…….”

새삼 데미안은 절감했다. 깨달았다. 자신이 그동안 황태자를 오해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그저 기이한 의술과 행동만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나름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평범하니까. 보통 사람이니까. 그래서 더욱 애를 쓰고, 기를 쓰고, 겉으로나마 태연하려 버둥거리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남들처럼 두렵지만. 죽을 뻔한 폭발을 겪으며 충격을 받고선 숨길 수 없이 온몸이 떨리지만. 그럼에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며 흑마법사에게 달려가고 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할 곳에 스스로 뛰어들고 있다.

어째서?

왜?

‘황태자이기 때문에?’

신분이 주는 책임감이 이 사람의 등을 떠미는 것일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질문을 할 수도, 대답을 들을 수도 없었다.

어느새 흑마법사가 널브러진 곳에 도착한 까닭이었다.

“……그읏.”

라키엘은 다짜고짜 데미안의 등에서 내렸다. 순간, 폭발의 충격이 남은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벼운 교통사고, 후방추돌을 당해도 몸살이 나곤 하는 게 사람의 몸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사소한 근육통 따위에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다.

‘죽기 싫어.’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한낱 음습한 흑마법사 놈의 물귀신 수작질에 말려들어서 죽자고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게 아니다. 그딴 식으로 죽으면 너무나 억울하다. 반드시 살아남을 거다. 그래서 초 럭셔리 프리미엄 만수르 황족 라이프를 평생 즐기고 말 테다.

‘그러니까!’

흑마법사 놈에게 달려갔다. 놈의 상태부터 살폈다. 눈에 초점이 없었다. 마치 배를 까뒤집고 폐사한 물고기처럼 축 늘어진 모양새였다. 딱 봐도 그리 행복한 상태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당장 죽지만 않으면 돼.’

……콰아앙-!

전장 어떤 곳에서 한 무리의 좀비들이 또 폭발을 일으켰다. 제법 먼 거리에서의 폭발임에도 충격파가 훅 몰려와서 머리칼과 옷자락을 서슴없이 헤집었다. 아까의 죽을 뻔했던 경험 때문일까.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 떨렸다.

새삼스럽게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흑마법사 카르투.

이놈이 지금 당장 죽으면 안 된다.

놈이 죽는 순간, 놈이 준비하고 있는 자폭 명령이 전장의 모든 언데드에게 일제히 전송될 거다. 그럼 결과는 위력을 가늠할 수 없을 끔찍한 일제 폭발이겠지.

“…….”

집중하자. 소름 따위는 털어내고 집중부터 하자.

‘경혈 스캐닝.’

키이이잉-!

경혈 스캐닝부터 발동했다. 카르투의 신체 내부를 살폈다. 평소와 같은 건강 진단을 위한 스캔은 물론 아니었다. 찾는 것이 따로 있었다.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았다. 놈이 응축하고 있는 흑마술의 마나.’

눈썹 사이.

미간에 응축된 검고 작은 덩어리의 마나가 보였다. 신체의 경혈에 깃든 정상적인 형태의 마나가 아니었다. 전에 본 적이 있었다. 툴룬 상단장 좀비의 이성을 되찾아 주는 시술을 할 때 흑마법사가 좀비의 신체에 심어두었던 마나와 같은 형태.

흑마술의 구체였다.

라키엘은 구체가 지금 하는 역할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게 일종의 신호 발신 장치인 거구나.’

인터넷 공유기가 와이파이 신호를 뿌리듯이, 놈의 미간에 생성된 흑마술의 구체가 좀비들에게 자폭 명령을 뿌리고 있는 거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츠즛……!

카르투의 미간에 응축된 검은 구체가 미세하게 요동쳤다. 작은 마나의 줄기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 직후…….

투콰아학-!

“……!”

전장 한쪽에서 또 일어난 집단 폭발. 뒤이어 그쪽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아우성.

동시에 라키엘은 깨달았다.

‘내 추측이 맞았다. 할 수 있겠어.’

그는 손을 뻗었다. 카르투의 미간을 짚었다. 아까 데미안에게 여기로 오자고 했던 때부터 떠올렸던 가능성. 어쩌면 이 상황을 해결할 유일한 해법.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하였다.

키이이이잉-!

두 갈래의 마나 써클이 거센 역회전을 감행했다. 특유의 흡인력으로 외부의 마나를 끌어당겼다. 목표 대상은 카르투의 미간에 응축된 흑마술의 구체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흑마술의 구체 또한 마나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압수.’

간단하다.

놈이 응축한 흑마술의 구체를 빼앗으면 된다. 이쪽이 날름 집어삼켜 버리면 된다. 그 후에 소화를 하듯이 조각조각 찢어서 몸속의 마나에 보태면 된다. 갈래갈래 흩어진 마나 조각들은 더 이상 예전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테니까.

‘신중하게…….’

키이잉-!

라키엘은 보다 정신을 집중하였다. 폭탄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펄펄 끓는 매생이죽을 떠먹을 때처럼 신중하게. 흑마술의 구체에 접근했다. 끌어당겼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구체가 금방 반응했다.

츠츳……! 츳츠!

‘된다!’

역시나.

라키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뒤부터는 쉬웠다. 의외로 구체는 별다른 저항 없이 아스라한 심법의 인도에 이끌려 카르투의 미간을 벗어났다. 이쪽의 손가락을 타고 들어왔다. 손목과 팔뚝, 어깨를 거쳐 역회전 중인 써클에 실렸다.

동시에 써클에 실린 흑마술의 구체가 어떤 구조와 배열을 이루고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한 배열, 딱 한 가지의 명령문을 담고 있는 마나의 덩어리였다.

한데 그 간단한 명령문의 내용이…….

- 폭발하라.

……였다.

‘쯧.’

라키엘은 혀를 찼다. 이렇게 간단하니까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마법의 발현에 어찌어찌 성공을 한 것이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은 별 탈 없이 삼키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니 이제는, 소화를 해서 완전히 녹여 없앨 차례다.

키이이이잉-!

라키엘은 두 갈래 써클의 회전을 엇갈리게 하였다. 하나는 정방향으로, 하나는 역방향으로. 엇갈린 두 써클의 회전 속에 흑마술의 구체를 밀어 넣었다. 세차게 돌아가는 분쇄기에 낡은 캐비닛을 던져 넣는 기분으로.

콰콰콰콰콰-!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두 써클의 엇갈리는 세찬 회전 속에 흑마술의 구체가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구체가 곧바로 탈출을 시도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어?’

라키엘은 흠칫했다.

두 써클 사이에서 갈리나 싶었던 흑마술의 구체가, 곧바로 날뛰기 시작했다. 써클의 통제와 흐름을 벗어났다.

“……으읏!”

붙잡아두려 했지만 늦었다. 구체가 순식간에 혈류를 타고 움직였다. 써클을 벗어나 어깨로, 팔뚝을 거쳐 손목으로.

그 뜻은 명확했다.

‘카르투에게 돌아가려 하고 있어.’

깨닫자마자 다시 두 써클을 역회전시켰다. 아까처럼 흡인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구체의 탈출 속도가 흡인력을 능가했다. 소름과 함께 깨달았다. 붙잡아둘 수가 없다. 놓친다. 실패다.

‘미친.’

마음이 급해졌다.

이대로 구체가 카르투에게 돌아가면, 그땐 자폭 진행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다 죽는다. 그건 싫다. 그러니 뭐라도 해야 한다.

자각과 대응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구체가 자신의 손바닥을 지나 손가락으로 향하는 찰나의 틈새. 그 순간 라키엘은 반사적으로 기민하게 반응했다. 아스라한 심법의 흡인력을 거두었다. 대신 심법의 기세를 날카롭게 벼렸다. 바늘처럼. 구체를 찔렀다.

……콰작!

아까 이중 써클 분쇄기 속에서 잠깐이나마 갈렸던 덕분일까. 약해진 구체 겉면에 균열이 생겨났다. 그 속으로 이쪽의 마나를 극소량 밀어 넣었다. 무엇을 위하여? 구체에 담긴 자폭 명령을 어떻게든 바꾸기 위해서였다.

‘제발. 랜덤의 신이시여.’

그런 신이 있다면 지금 내 소원을 들어주소서.

라키엘은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구체를 놓쳤다. 구체가 검지로 흘러갔다. 손가락 끝마디를 벗어났다. 카르투에게 쏘아졌다. 놈의 미간에 박혔다. 동시에 카르투의 눈이 새하얗게 까뒤집어졌다.

“……끄흐으.”

입에 거품을 물며 부들부들 떠는 카르투. 생명의 마지막 불꽃이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 발악처럼 돌연, 놈의 미간에 박힌 구체가 섬뜩한 빛을 토해냈다.

파핫!

수천 줄기의 명령이 일제히 전송되었다. 전장의 모든 좀비에게 뿌려졌다.

“구륵?”

“……구워억?”

도합 2,500구에 달하는 좀비가 똑같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저마다 방금 받은 명령을 받들었다. 그들이 받은 명령. 라키엘이 필사적으로 변질시킨 명령문. 그렇게 뒤바뀐 내용은 바로…….

- ‘내게로 와서’ 자폭하라.

“구륵!”

2,500구의 좀비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놈들의 시선이 카르투에게 꽂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