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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231화 (231/468)

231화. 아프니까 병원이다 (1)

통풍(痛風, gout).

과도한 요산이 체내에 축적되어 생기는 질환. 주로 관절, 특히 엄지발가락에 날카로운 요산 결정이 침착되어 생기는 지옥의 증상이 통풍이다.

통풍은 아프다.

정말로 아프다.

아파본 사람만 안다.

주로 밤이나 새벽에 자다가 발작이 시작되곤 한다. 악몽을 꾼다. 맹수나 공룡이나 괴물 따위가 발가락을 송곳니로 씹어대서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리는 등등의 꿈이다.

그럴 때면 꿈을 꾸면서도 너무나 아파서 끙끙댄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깨어난다. 비로소 아팠던 순간이 단순한 꿈이었음을 깨닫고는 안도하려다가…… 그 고통이 현실에도 고스란히 이어짐을 자각하고는 기겁한다.

동시에 처절한 2차 깨달음을 얻는다. 꿈에서 느낀 고통은 그저 샘플용 맛보기, 튜토리얼에 불과했구나, 라는 아득한 절망감을 말이다.

그만큼 통풍은 아프다. 심지어 한번 발작이 시작되면 좀처럼 끝나지도 않는다. 심할 땐 정말로 일주일 이상도 간다. 평소에 건강하든 근육빵빵맨이든 지구 최강 궁극의 병기이든 뭐든 상관없다. 다 큰 성인도 엉엉 울고 싶을 정도로 아프니까.

물론, 이곳 별궁 연회장에 모인 수많은 귀족 남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은 이들 과반수가 이미 통풍을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남들 몰래 끙끙대며 눈물로 이불을 적시는 밤을 보낸 경험 또한 풍부(?)했다.

원인은 간단했다.

‘다들 너무 잘 먹고 잘 살아서지.’

라키엘은 힐끗 눈길을 던졌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주위의 귀족들. 대부분의 얼굴이 통통하며 맨들맨들 윤기가 풍부했다. 몸매도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관리가 된 사람도 최소 과체중. 거의 대부분은 전형적인 경도 비만의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마도 매일 기름지고 풍성한 식단을 즐겨왔을 것이다. 식후에는 향긋한 술과 함께 달달한 디저트를 제한 없이 탐닉했겠지.

거기에 운동은 안 봐도 뻔했다.

‘승마나 사냥 정도가 다겠지. 나름 격렬해 봤자 취미 수준의 검술 정도? 본격적인 근력 운동이나 유산소는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야. 땀을 뻘뻘 흘리는 운동은 천박한 것이라 여길 테니까.’

즉, 이곳에 모인 귀족 대부분은 성인병에 당첨되기 딱 좋은 식습관과 라이프 스타일을 지니고 있었다. 당장 눈으로 보이는 몸매가 그 증거였다.

경혈 스캐닝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과반수의 인원에게서 엄지발가락 관절의 이상과 변형의 조짐이 보였다. 요산 결정이 침착된 결과 또한 흐트러진 기혈의 흐름으로 포착되었다.

‘전형적인 통풍 그 자체로구만.’

눈앞의 귀족원장 또한 그러했다. 하여 귀족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척하면서 통풍 증상을 줄줄이 진단해 주었다.

그랬더니?

과연 귀족원장의 동공이 훌라춤을 추며 흔들렸다. 동시에 의문의 기색 또한 내비치는 게 보였다.

‘내가 어떻게 자신의 증상을 알고 있는지 의아한 거겠지.’

이쪽을 바라보는 다른 귀족들의 기색도 비슷했다. 다들 은근슬쩍 동요하고 있다. 이목을 끌어모으는 데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니 이제는?

저들이 별궁 한의원을 방문할 수 있도록 더욱 매혹적인 떡밥을 살랑살랑 살포해 줘야겠지.

“에스토크 공작님? 그게 바로 통풍이라는 병입니다.”

“……예?”

귀족원장이 흠칫했다.

라키엘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다른 말로는 풍요로운 자들만 걸리는 ‘제왕병’이라고도 하고, 머나먼 어느 지방에서는 ‘역절풍(歷節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요. 어쨌건 그거, 제법 고약한 질병입니다. 원인도 제법 다양하고. 무엇보다도 죽여주게 아프기도 하고.”

“그게 무슨…….”

“요약을 하자면 요산(uric acid)이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그 요산이라는 놈이 과다하게 생성되거나, 배출에 장애가 생기거나, 간혹 혈중 요산 농도가 급격하게 변화하거나 해서 요산이 결정의 형태로 관절에 축적이 되고, 그 자리에 염증이 생겨나면서 통증이 엄습하는 원리랄까요.”

“…….”

“뭐, 대략 이러한 질병의 징후가 공작님을 보자마자 느껴지긴 하는데 말입니다. 혹시 공작님의 주치의가 이런 이야기를 평소에 해 주지 않았던가요?”

“아, 예. 물론 주의하라는 충고를 몇 차례 듣기는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전하.”

귀족원장, 에스토크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주치의에게 저런 충고?

사실은 한 번도 못 들어 봤다.

이불만 스쳐도 눈물이 줄줄 나오는 그 통증의 원인이 요산인지 뭔지라는 이야기도 처음 들어봤다. 그러니까, 자신의 주치의는 통증의 원인을 한 번도 짚어낸 적이 없었다! 그저 통증이 엄습할 때마다 진통제 비슷한 약만 먹였을 뿐!

‘그런데…… 황태자가 내 증상의 원인을 알아본다고? 진찰도 안 하고서? 인사만 나누었을 뿐인데?’

조금 소름이 돋았다.

이상했다. 제대로 진찰을 맡긴 적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본 걸까. 기이하다 못해 이해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황태자가 말한 증상이 자신의 것과 너무나 똑같다는 점이 문제였다. 마치, 고통에 시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훤히 내다본 사람처럼 말이다.

‘그게…… 가능한가.’

귀족원장은 번민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지금 당장 황태자의 진단에 놀라는 티를 내어 버리면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가 골치 아파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뻔하지. 황태자의 저 말에 말려들면 안 되지. 아암. 곤란해지고말고.’

저 말을 수긍하는 순간, 자신은 황태자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별궁 한의원에 방문해야 할 것이다. 한데 그 방문이 한 번으로 끝날까? 아니. 절대로 아닐 터.

‘별궁 한의원에서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으면…… 그때부터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성립하는 거지. 계속 진찰을 받으러 별궁을 들락거려야 할 테고. 그러면? 과연 다른 이들이 내 별궁 방문을 순수하게 보아 줄까?’

아니.

절대로 아니다.

모든 귀족들이 자신의 별궁 방문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귀족원장이 황태자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라고. 대놓고 줄을 선 것이라고.

‘지금 시점에서…… 그건 곤란하지.’

귀족원장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물론 황태자의 입지가 전보다 탄탄해지기는 했다. 2황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했고,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공적도 제법 세웠다.

그러나 아직은 확실하지가 않았다. 과연 황태자가 끝끝내 황위를 얻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여전히 확신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황태자는 지난 20년 내내 병상을 전전했으니까. 최근에는 제법 건강을 찾으셨다고는 하지만, 예전의 지병이 언제 다시 도질지 모르는 일이니까.’

다시 병을 얻어서 덜컥 쓰러질 수도 있다. 황위를 얻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한데 만약, 그 시점의 자신이 황태자에게 대놓고 줄을 서 있는 상태라면?

끝난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도 끝장이 난다. 권력의 변방으로 밀려날 것이다. 정적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황태자에게 줄을 서기보다는 적당한 거리에서의 관망을 선택할 때겠지.’

계산을 마친 귀족원장, 에스토크 공작은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의 감사한 당부와, 부족한 저를 향한 염려에 실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오나 전하께서 알려주신 사항은 이미 평소 주치의로부터 여러 차례 주의를 들어 관리에 힘을 쓰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전하. 한데 이렇듯 전하께서 제 건강을 염려해 주시고,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워 주시니, 실로 감사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렇군요. 유능한 주치의를 두셔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하면 저는 이만…….”

귀족원장은 자연스럽게 예를 표하며 물러남으로써 탈압박(?)에 성공했다. 다른 귀족들도 내심 애쓰며 시치미를 떼었다.

그때부터였다.

언제 라키엘의 진단과 발언이 있었느냐는 듯,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연회가 흘러갔다. 결과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무반응이었다.

그러나 라키엘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겼다.

‘역시나.’

이럴 줄 예상했다. 권력 냄새 맡기. 줄타기. 그것이야말로 귀족들의 필수 스킬(?)이니까. 방금 뿌린 정도의 떡밥에 순진하게 반응할 귀족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과연, 통풍 발작이 와도 그대로 무반응일 수 있을까?’

절대로 아닐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지금 와인을 홀짝거리고 있는 귀족원장이 그렇다. 그 옆에서 최고급 새우를 먹고 있는 어느 귀족 남성이 그러하다. 경혈 스캐닝을 통해서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저들 중에 몇몇은 며칠 내로 통풍 발작에 시달릴 거라고.

‘통풍 발작의 고통이야 예전에도 겪어 봤던 거겠지. 하지만…… 주치의도 짚어내지 못하던 자신의 증상 원인을 이미 나한테서 들어 버렸는데…… 과연 예전처럼 잘 듣지도 않는 진통제에만 의지하며 참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라키엘은 확신하며 잔을 들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를 가장하고 있는 귀족들을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태자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다들, 오늘 밤을 즐기시길.”

그리고 며칠 내로 진료실에서 또 봅시다.

자신감.

혹은 확연한 예감.

물론 그의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심지어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끄흠?”

연회가 끝난 밤이었다.

아직 새벽 어스름이 물들지도 않은 새벽, 귀족원장은 적당한 취기에 젖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모처럼의 연회도 마음에 들었다. 음식은 취향에 맞았고, 술은 향긋했다. 황태자의 미묘한 술수가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 정도 심리전은 이 바닥에선 일상이나 다름없기에 개의치 않았다.

덕분에 기분 좋은 꿈도 꾸었다. 온 세상이 파스텔 색감으로 물들었다. 연보랏빛 아름다운 하늘을 훨훨 날았다. 아이 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행복했다. 느닷없는 통증이 발을 물어뜯기 전까지는.

……콰작!

“긋?”

갑작스러운 격통이었다. 놀라서 아래를 보았다. 상어가 보였다. 송곳 같은 이빨로 자신의 오른발을 물어뜯고 있었다. 아니, 씹어대고 있었다. 이미 걸레짝이 되어 버린 발. 너덜거리는 살점과 드러난 뼈마디.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선혈.

상어가 온몸을 흔들었다. 생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뜯겼다. 추락했다. 아래로. 더 아래로. 파스텔 아름다운 하늘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아래에서 자신을 삼키려 드는 핏빛 바다만 끝없이 넘실거릴 뿐.

풍덩!

“……으아아아악!”

핏물 흥건하여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포의 바다. 시뻘건 파도가 자신을 덮치는 순간, 귀족원장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흥건했다.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이불을 걷어냈다. 자신의 오른발부터 살폈다.

멀쩡했다.

꿈이었구나.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이었다.

“읍?”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격통이 오른발을 후려쳤다. 아니, 생살을 찢듯이 잡아 뜯었다. 척추가 절로 오그라들 정도의 무시무시한 고통이었다.

“그, 그으으읏?”

귀족원장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 고통이다. 이미 몇 차례 겪어 본 적이 있는 지옥 같은 통증이다. 그럼에도 주치의조차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 그 격통이다.

‘무슨…… 이런……!’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버석거리며 이불이 발에 닿는 순간도 아팠다. 칼에 베이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내쉬는 숨결이 피부에 닿는 것마저도 아팠다! 저절로 눈물과 신음이 번갈아 흘러나왔다. 번데기처럼 온몸을 말고서 끙끙 앓았다.

그 서슬에 아내가 잠에서 깼다.

“여보? 여보!”

공작부인은 기겁했다. 동시에 깨달았다. 몇 차례인가 본 남편의 모습이었다. 이럴 때면 전엔 어떻게 했더라.

그녀는 머리맡의 줄을 잡아당겼다. 맑은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침실 문이 열렸다. 야간 담당으로 대기 중이던 집사가 황급히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치의를 부를까요?”

공작부인은 그러라고 말하려 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아니!”

끙끙 앓던 에스토크 공작이 외치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고는 뜻밖의 명을 내렸다.

”마차…… 마차를…… 준비하라.”

“예?”

집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차를?

이 시간에?

저토록 식은땀에 절어서?

“마차라니요? 이 야심한 시간에 어디를 방문하시려고…….”

“별궁, 별궁…… 한의원으로. 전하를 뵈러 갈 것이니, 어서!”

에스토크 공작이 식은땀을 흘리며 외쳤다.

차라리 발을 자르고 싶어지는 고통. 원인조차 모르는 이 고통. 그런데 주치의를 부른다고 해서…… 이게 해결될까?

‘아니.’

아닐 것이다.

자신의 주치의는 평소처럼 진통에 효험이 있다는 약초를 짓이긴 괴상한 물약만 먹이겠지. 그러면 자신은 평소처럼 여전히 끙끙 앓으며,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그 진통제에만 의지해야겠지.

그건 싫었다.

겪어 봤기에 더 싫었다.

아주 그냥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아까 연회장에서, 황태자는 어떠했던가.

‘내 증상을…… 들여다본 것처럼 상세하게 짚어냈지. 심지어 그 원인까지도.’

증상을 짚어내고.

원인을 유추하고.

그게 가능하다면, 치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최소한 자신을 이 지옥 같은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해방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토록 야심한 시간이니…… 차라리 잘 되었어. 내 별궁 출입이 누군가의 눈에 띌 일은 없겠지!’

없어야 한다.

없으면 좋겠다.

아니, 있어도 상관없다.

별궁에 가면 안 아플 수 있을 듯하니까. 정치적 계산? 줄타기? 당장 아파서 죽을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귀족원장 에스토크는 통풍 발작이 주는 어마어마한 아픔에 굴복(?)하여 전격적인 별궁행을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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