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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233화 (233/468)

233화. 아프니까 병원이다 (3)

오늘도 별궁 한의원의 힘찬 하루가 밝았다. 어느 VIP 진료실에서도 힘찬(?) 비명이 옴팡지게 울려 퍼졌다.

톳!

“……끱!”

토톳!

“흽……?”

톳!

“그, 그만……!”

“그만요? 벌써?”

“……제발.”

“안 아픈 거 압니다. 엄살 뚝.”

“하, 하지만……”

톳!

“긔입!”

황도 마젠타의 유서 깊은 귀족원, 그곳을 이끄는 귀족원장 에스토크. 무려 공작의 신분이자, 황제의 처남이기도 한 남자. 권세로만 따지면 황실 의전 서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무조건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존재.

하지만 그도 병상 위에서는 한 사람의 초라한 인간일 뿐이었다. 의료인 앞에서는 환자일 뿐이었으며, 난생처음 침술을 맞으면서는 뾰족한 가시가 몸을 찌를 때마다 절로 온몸을 움찔대는 가련한 영혼일 따름이었다.

그는 두려웠다.

‘내가…… 왜 이런 치료를 받아야 하지?’

공작은 망연자실한 눈초리로 자신의 오른발을 쳐다보았다. 빼곡했다. 뭐가? 가시가. 새하얀 가시가 자신의 발가락이며 발등, 발목, 심지어 발바닥에까지 박혀 있었다!

가장 기괴하고도 끔찍한 꿈에서조차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는데. 이게 과연 현실일까. 혹은 내가 지금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하지만 꿈은 확실히 아니었다. 발가락 관절이 여전히 죽여주게 아프니까. 생각 같아선 당장 발목을 잘라내서 반대편 발로 뻥 차 버리면 속이 후련할 것처럼 아프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헛소리를 감히 지껄이는 자가 있다면 당장 멱살을 잡고서 다섯 바퀴쯤 공중에서 돌려준 다음에 땅바닥과 극적이고도 과격한 키스를 시켜주고플 만큼 아팠다.

그러니까 이건 절대로 꿈이 아니었다. 자신의 발에 빼곡하게 꽂힌 의문의 가시도. 심지어 그걸 더 추가하고 있는 황태자의 모습도.

“저기…… 전하?”

“몇 개나 더 꽂을 거냐고요? 3개 남았습니다.”

“…….”

그게 궁금한 게 아닌데.

사실은…….

“이런 걸로 치료가 되느냐는 궁금증을 많이 느끼고 있겠지요. 압니다. 이런 치료법이 생소하다는 거. 불안하겠지요.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라키엘은 웃으며 새로운 가시를 집어들었다. 통증이 전혀 없는 하얀색 무자극 가시를 공작의 엄지발가락 발톱 뿌리 바깥쪽 모서리 어름에 톡, 가뿐하게 꽂아 넣었다.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을 이루며, 흉추 쪽의 긴장을 풀어 줄 수 있는 혈자리인 대돈혈(大敦穴)이었다.

톳!

가시가 꽂히는 순간 공작이 비대한 몸을 가녀리게 떨었다. 아무리 찔려도 저 가시는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라키엘은 그의 반응을 일부러 무심하게 대했다. 자고로 괜찮다고 계속 반복해서 말하면 어쩐지 더 불안해지는 게 사람의 심리니까.

대신 그는 공작의 불안감을 자연스럽게 해소해 줄 화제를 언급했다.

“그나저나, 통풍이 제법 진행이 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정말로 많이 아팠겠습니다.”

“으으, 예, 그랬습니다.”

“몇 년쯤 됐지요?”

“대략 4년이 조금 넘은 듯합니다, 전하.”

“하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참아냈군요?”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허허허.”

“그랬습니까?”

“물론이지요, 전하.”

공작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짐짓 꿋꿋한 척하며 웃었다. 라키엘이 은근슬쩍 분위기를 유도하며 깔아준 멍석(?) 덕분이었다.

“많이 괴로운 순간도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구겠습니까. 제 어깨에 귀족원의 긍지와 앞날이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았지요, 허허.”

물론 구라(?)였다.

많이 아픈 날은 체면이고 긍지고 뭐고 없이 이불을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거의 울었다. 주치의가 주는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진통제 효력이 영 별로인 것 같다며,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주치의를 닦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에게 편리하도록 망각을 하는 존재인 법. 공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지난 몇 년을 꽉 채운 고통의 기억을 스스로 각색했다. 고통에 쩔쩔맸던 기억은 최대한 축소시켰고, 아주 가끔 잘 참아낸 순간들만 한껏 부풀렸다.

“아픔이요? 참을 수 있습니다. 귀족으로서의 본보기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고통이 주는 불편함도 물론입니다. 황실의 친척으로서 지켜야 할 권위가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얼마든지…… 띕!”

톳!

“……차, 참아낼 수 있습니다.”

“역시. 훌륭하군요. 자아, 다 끝났습니다.”

공작이 스스로에게 잠깐 심취해서 떠드는 사이에 시침이 무사히 끝났다. 덕분에 공작은 의아함을 느껴야 하였다.

“저기, 그런데 전하?”

“예?”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대단히 송구하오나…….”

“가시를 이렇게 많이 꽂았는데도 통증이 여전히 똑같은 것 같다고요?”

“……예.”

사실이었다.

발가락이 전과 똑같이 아팠다. 혹시나 변화가 천천히 오나 싶어서 기다려 보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팠다. 달라진 점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덜컥 의심이 들었다. 혹시 황태자의 의술은 겉보기로만 요란하고 특이한, 그러나 실상은 내실이 전혀 없는 빈 깡통 같은 야바위가 아닌지.

“원래 그런 겁니다.”

“……예에?”

“통풍 발작이 주는 통증이 그토록 쉽게, 단순한 시침만으로 곧바로 가라앉지는 않는 법이니까요. 이건 앞으로의 치료를 위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지금 시침 때문에 발가락이 조금 더 아파질 수도 있고 말입니다.”

“……예에에?”

경악감에 물들며 휘둥그레지는 공작의 두 눈.

라키엘은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방금 시침으로 하지의 혈행을 개선했습니다. 아마 혈류량이 증가하면서 염증 반응이 약간 더 격해질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럼…….”

“잠시 후에 소염 진통 효과가 있는 약침이라는 걸 환부에 놓을 겁니다. 그럼 조금 나아지겠지요.”

그때부터였다.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첫 과정은 요산 침착으로 인한 관절 부위의 염증을 누그러뜨려 줄 약침 시술이었다. 그 시술에는 아피로스 여왕 애벌레 꾸꾸의 도움이 힘을 발휘하였다.

“그러니까 꾸꾸야?”

“꾸꺄?”

“여기, 가시 끝에 침 좀 발라 줄래?”

“꾸?”

“알잖아. 네 침에 약간의 소염 진통 성분이 있는 거. 지금 그게 필요하거든.”

“꺄?”

“네가 침을 발라 주면 여기 공작님이 덜 아파질 거야.”

“꾸꾸?”

“응, 정말로.”

“꺄!”

“그래, 그래. 응, 그렇지. 가시에 안 찔리게 조심조심…… 잘했다. 고마워?”

“꾸꺄!”

꾸꾸의 도움 덕분이었다. 약침 시술이 무난하게 치러졌고, 새벽부터 내내 고통에 절어 찡그려져 있었던 공작의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걸로 급한 불을 끈 다음의 단계는 약물 치료였다.

‘공작은 체내의 요산이 과다한 게 원인이니까 한국의 병원에 갔다면 아마도 요산을 배출해 주는 약을 처방받았겠지. 예를 들자면 알x푸리놀 같은 거라든가. 하지만 여기선 당연히 그런 걸 처방해 줄 수 없으니까…….’

대신 탕약을 미리 개발했다.

언제?

연회를 준비하던 며칠 사이에. 연회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꼭 필요해질 것이라 예상하고, 연구했으며,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안티-통풍탕’이었다.

‘안티-통풍탕의 주요 역할은 신체의 수액 대사를 조절하는 이수(利水)의 이치로.’

주 약재는 총 14가지였다.

우선, 벌채한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균핵 덩어리인 복령(茯苓), 그리고 방기(防己), 일명 쇠태나물이라 불리는 식물의 뿌리인 택사(澤瀉) 등은 테트라드린(tetrandrine), 시노메닌(sinomenine), 트릴로빈(trilobine) 등의 성분으로 이뇨 작용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조직 내의 노폐물을 제거하여 통증과 염증을 완화하는 역할은 아트락티놀(atractylol), 히네솔(hinesol) 등을 함유한 창출(蒼朮), 그리고 말린 귤껍질인 진피(陳皮)에게 맡겨 관절의 동통 개선을 꾀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황금(黃芩), 사상자(蛇床子), 고삼(苦蔘), 몰약(沒藥), 오가피(五加皮), 유향(乳香), 우슬(牛膝), 천궁(川芎), 당귀(當歸)를 적절히 배합하였다.

그로써 바이칼린(baicalin), 마트린(matrin), 트리테르페노이드 사포닌(triterpenoid saponin), 세사민(sesamin), 페롤리라인(perlolyrine) 등의 주요 성분을 통한 염증 제거, 혈행 순환을 꾀하는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사뭇 파괴적이었다. 특히, 공작의 미각을 파괴하는 데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였다.

“……거으어억. 쿨룩! 우, 으웨엑?”

시커먼 탕약의 첫 모금을 들이킨 공작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전형적인 속이 뒤집혀 구토를 하려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 반응쯤은 이미 예상하던 라키엘이었다.

그는 공작이 미처 헛구역질을 끝내기도 전에 재빨리 손을 뻗었다. 그리고 헛구역질을 하느라 벌어진 공작의 입속으로 동그랗고 달달한 사탕을 쏙 집어넣었다.

“자두맛입니다.”

“……읍, 급?”

“어떻습니까. 단맛을 보니까 조금 괜찮아지지요?”

“어, 예, 전하. 우읍, 여전히 좀…… 속이 이상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군요. 처음 마셔보는 탕약이라서 제법 쓰지요?”

“예, 전하. 굳이 표현을 하자면-”

“표현 안 하셔도 되는데.”

“소똥 밟은 불곰 발바닥을 핥는 맛이랄까요.”

“꼭 경험해 보신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뜻이었습니다, 전하.”

“어째 악담처럼 들리는데요.”

“허허. 그럴 리가요.”

“그렇습니까?”

“예, 전하.”

“하면 마저 드시지요.”

“……예?”

공작이 흠칫했다. 그의 떨리는 동공이 라키엘을 향해 애원의 감정을 아련하게 흩뿌렸다. 그러나 라키엘은 단호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그가 철벽을 치듯이 딱 잘라서 말했다.

“약은 전부 드셔야지요. 겨우 한 모금만 드셨지 않습니까. 아직 많이 남았는데 말입니다.”

“저기, 전하? 맛을 봤으니 이쯤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전혀요. 택도 없습니다. 이 그릇에 담긴 전체 분량이 1회 복용량입니다.”

“하, 하지만 벌써부터 약효가 느껴지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착각입니다.”

“사탕도 먹었는데.”

“그건 잠깐 뱉었다가 탕약 마신 뒤에 다시 드시면 되잖습니까.”

“그, 그래도…….”

“자아. 츄라이 츄라이. 입 벌리시고. 코 막으시고. 쭉쭉. 어으 잘 들어간다. 원샷.”

“……거윽, 커걱? 그웍, 걱.”

결국, 공작은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안티-통풍탕을 전부 마셨다. 그런 일이 입원 기간 내내 삼시 세끼 반복되었다. 덕분에 공작은 유린당하고 짓밟힌 미각의 회한을 곱씹으며 매일 밤 남몰래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아, 내가 이러자고 별궁 한의원에 입원을 하였나.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맛을 보면서까지 살아야 하나. 하루에 세 번 미각이 파괴당하는 것보단 차라리 발이 좀 아픈 게 낫지 않을까.

뒤늦은 후회(?)가 쑴펑쑴펑 피어났다.

그러나 약효만큼은 진짜였다.

전격적인 별궁 한의원 입원을 감행한 지 나흘째 아침. 공작은 처음으로 안티-통풍탕의 약효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발가락 각질에서부터 십이지장 융털돌기를 거쳐 정수리의 듬성듬성해진 모공 뿌리까지, 신체의 모든 부분이 디테일하게 상큼해지는 뜻밖의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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