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40화 (240/468)

240화. 만년필의 위력 (3)

“그러니까, 마나의 투입량을 거꾸로 하면 된다는 겁니까?”

“어.”

“마나를 강하게 투입해야 화염이 약하게 나오는 거라구요?”

“그렇대.”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다시 연무장.

정면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다. 이제부터 저 앞쪽으로 화염의 무구, 만년필을 사용할 거니까. 그런데 일부러 저쪽에 자리를 잡고서 바삭바삭 인간 튀김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물론 이번에도 시험 가동에 실패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말이다.

“폐하께서 그러시더라. 생각을 전환하라고. 강하게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강하게 나오란 법이 있겠느냐고.”

“그게 전하께서 얻은 힌트입니까?”

“어.”

“한데 과연, 폐하의 그 말씀이 마나의 투입량과 화염의 분출량이 반비례한다는 뜻인 게…… 확실합니까?”

“뭐, 아직은 모르지.”

당연히 해봐야 안다. 데미안의 불안함 섞인 의문에 라키엘은 어깨만 슬쩍 으쓱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황제를 살포시 원망(?)해보았다.

‘하여간 그 양반!’

솔직하지 못한 점이 문제다. 아울러, 여전히 사람 고생시키길 좋아하는 점도 문제다. 그러니까 기껏 어깨까지 정성껏 주물러줬더니, 황제는 애매모호한 힌트만 꿀팁이랍시고 던져준 것이 아니겠는가.

‘때로는 약함이 강함을 부르는 법이라.’

그게 황제가 건네준 딱 한 마디 조언이었다. 뭐, 듣는 순간 무슨 뜻인지 대략 파악할 수 있긴 했다. 100% 확실한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라서 그렇지.

“어쨌건, 폐하의 말씀대로라면 이 무구는 청개구리 같은 특성을 지닌 거야. 그걸 확인하려면 직접 시험해보는 수밖에.”

“제가 하면 안 되겠습니까?”

“응 안 돼.”

“어째서입니까?”

걱정스레 이쪽을 쳐다보는 데미안을 향해 대꾸를 돌려주었다.

“내 거니까.”

“…….”

“앞으로 내가 계속 사용해야 할 물건인데, 당연히 내가 시험을 해봐야지. 그래야 정확한 사용법에 대한 감이 오지. 안 그런가?”

“하지만…….”

“게다가 넌 아스라한 심법도 없잖냐. 내가 말했지? 만년설과 만년필, 이 무구들은 아스라한 심법 사용자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전하의 뒤에 서서 지켜드리겠습니다.”

“당연하지. 어제처럼 나 반동에 날아가면 쿠션…… 아니, 받아줘야지. 그럼 다른 데 있으려고 그랬냐?”

“…….”

“방향이 조금 비뚤한 거 같은데? 카이엔 경? 설마 여차하면 피하려는 건 아니지? 조금 왼쪽으로.”

“이렇게 말입니까?”

“그래, 좋아. 후우.”

라키엘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주위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수십 명의 인원이 연무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혹여나 생겨날 화재 사태에 대비하여 물동이를 들고 있는 근위대와 특근대원들이었다.

‘뭐, 잘되겠지.’

이미 확신은 서 있다.

남은 일은 확인하는 것뿐.

라키엘은 만년필을 쥐고서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하였다.

‘최대치로!’

키이이이잉-!

마나를 약하게 투입해서 강력한 화염이 나왔으니까, 이제는 대놓고 가장 강한 마나의 출력으로!

투입했다.

만년필을 앞으로 내밀었다.

확신과는 별개로, 무의식중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어젯밤의 엄청난 분출과 폭발, 반동의 묵직한 기억을 몸이 간직한 탓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젯밤과 달랐다.

……보골보골?

폭발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화염이 쏟아져 나오는 일도 없었다. 대신 만년필 끄트머리에서 물 끓는 듯한 소리가 살며시 들려왔다.

‘어?’

찡그린 눈가를 풀었다. 조심스럽게 만년필 끄트머리를 확인해보았다. 덕분에 볼 수 있었다.

‘살짝 끓는 잉크가 흘러나오고 있네?’

그러했다.

반투명한 잉크가 만년필 끝에 몇 방울쯤 맺혀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럼 온도는 얼마쯤 될까. 보통의 물처럼 100℃로 끓고 있는 걸까.

“데미안, 수건 좀.”

“예?”

“수건이든 손수건이든 아무거나. 빨리.”

“아, 예.”

녀석이 주섬주섬 내미는 손수건을 받았다. 손수건에 끓는 잉크를 슥슥 발랐다. 유성매직으로 낙서를 하듯이. 그렇게 끓는 잉크를 묻힌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톡톡, 터치해보았다.

‘오?’

별로 뜨겁지가 않았다. 비교를 하자면 제일 뜨거울 때의 손난로 정도? 내친김에 아예 주먹으로 쥐었다. 그래도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됐다!’

예상대로였다.

이 만년필이라는 무구, 투입하는 마나의 강도와 화염의 출력이 거꾸로인 거다. 언뜻 생각하기엔 비효율적일 수도 있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니었다.

‘이거, 나름의 안전장치인 거야. 아스라한 심법은 애초부터 마나의 증폭이 특징이니까. 아예 그게 기본 성질이니까.’

그렇기에 별생각 없이 심법을 발동하면? 마나가 몇 배로 뻥튀기가 되어 강력해지기 일쑤였다. 오하려 마나를 약하게 만드는 게 훨씬 어려웠다.

‘그러니까 마나의 투입과 화염의 출력을 반비례로 만든 거겠지. 그럼 아무 생각 없이 마나를 뻥튀기해서 사용해도 강한 화염이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야 주위에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히거나, 사용자 본인이 다치지 않는다. 최소한 부주의한 사고는 줄어들 수 있으리라.

‘딱 그거지. 강한 화염을 쓰기가 어렵도록 세팅을 한 거야.’

아마도 이 무구를 제작한 ‘플로레스’라는 해츨링의 의도가 그런 듯했다.

‘그럼 시험을 더 해볼까.’

다시금 만년필을 잡았다.

극도로 증폭하던 마나를 살짝 줄여 보았다. 그랬더니 역시나, 곧바로 반응이 왔다.

부화악?

귀엽게 보글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만년필 끄트머리에서 불길이 슬금슬금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럼 다시 마나 투입을 강하게!’

……보글보글.

이제 제대로 알겠다.

‘그럼…….’

완전한 확신을 얻은 라키엘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냥감(?)을 물색했다. 마침 적당한 대상이 포착되었다.

“세르지오?”

“예! 전하!”

특근대의 최연장자 세르지오가 용맹하게 답하며 달려왔다. 언제 봐도 든든한 사내다. 라키엘은 흐뭇하고 인자하게 웃으며 세르지오에게 물었다.

“요즘도 등이 쑤신다고 그랬지?”

“예? 아, 예, 그렇습니다.”

“역시. 크라노스에서 입은 근육 부상이 제법 오래 가는 것 같은데. 지금 좀 봐줄까?”

“예?”

“잠깐 돌아서서 상의 걷어봐.”

“…….”

전하께서는 뭘 하시려는 걸까. 세르지오는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지시에 따랐다. 그리고 곧 기겁해야 했다. 황태자가 돌연, 엄청난 화염을 뿜어낼 수도 있는 마법의 무구 끄트머리를 자신의 등에 갖다대었기 때문이었다.

촵?

“……전하?”

저도 모르게 움찔.

세르지오가 놀라는 순간.

“괜찮아, 괜찮아. 흐읍!”

라키엘이 기합과 함께 최대 출력의 마나를 만년필에 투입했다. 보글보글, 특유의 발동음(?)과 함께 만년필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잉크가 흘러나왔다. 세르지오가 뭐라 반응하거나 빼기도 전에 잉크를 허리춤의 척추기립근 가득 촵촵 발라주었다.

마치 유성매직으로 낙서를 하듯이.

혹은 물파스를 발라 주듯이.

그 직후.

“어…… 엇?”

세르지오는 더욱 놀랐다. 따끈했다. 아니, 후끈했다. 황태자가 자신의 허리에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마치 딱 좋게 데운 모래주머니를 근육에 붙여준 것만 같았다.

“오, 오옷…….”

기분이 좋았다.

때아닌 느낌에 긴장이 절로 풀렸다.

라키엘의 입꼬리도 귀에 걸렸다.

“어때?”

“이게…… 대체 뭡니까, 전하?”

“별궁 한의원 최초의 본격적인 온열 찜질 물리치료?”

“찜질…… 물리치료 말입니까?”

세르지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태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몸으로는 이미 알 것 같았다. 따끈하니 참 좋았으니까.

그 후로 이틀이 더 지났다.

그동안 라키엘은 특근대원들을 상대로 만년필의 다양한 사용 실험을 했다. 더불어 만년필로 출력하는 잉크의 온도 조절도 더욱 섬세하게 연습했다.

환자를 상대로 실수가 생기면 안 되니까.

자칫 의료사고가 날 테니까.

더욱 심혈을 기울여 연습했다.

덕분에 찜질에 적당한 온도 모드(?)를 5단계로 조절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아울러 온기가 유지되는 시간 또한 3단계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부터였다.

별궁 한의원에 새로운 클리닉이 개설되었다. 만년필을 활용한 온찜질, 만년설을 이용한 냉찜질, 거기에 내 손은 약손 스킬을 적극 도입한 ‘통증 클리닉’이었다.

‘이게 환자의 수명을 늘려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것 때문에 찾아오는 환자가 더 늘겠지!’

그러면 된다.

별궁 한의원이 흥할수록.

입소문이 널리 퍼질수록.

진짜로 아픈 환자들이 찾아올 확률 또한 올라간다. 그럼 자신의 보너스 수명 확보도 더 쉬워질 것이다.

‘아주 천년만년 부유하게 탱자탱자 살아 주마!’

그렇듯 야물딱진 야망과 함께 오픈한 통증 클리닉 덕분이었다. 과연 라키엘의 예상대로 순식간에 새로운 소문이 퍼졌다.

앞서 귀족들의 통풍을 치료한 성과.

거기에 새로 오픈한 통증 클리닉까지.

“여보, 혹시 들었어요? 황태자 전하께서 손만 대면 아프던 사람의 통증이 싹 가신다고 해요.”

“정말이오? 그럼…….”

“네, 아버님 댁에 황태자 전하 놔드려야겠어요.”

“하하.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게 말여요.”

“그럼…… 이럴 때가 아니군.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황도로 가봐야겠어.”

……라는 식으로 황도의 별궁 한의원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소문이 퍼진 곳은 비단 황도 마젠타 인근이나, 제국 영토 안쪽만이 아니었다. 풍문이라는 이름의 발 없는 말은 순식간에 국경마저 넘었다. 이웃한 왕국의 도시, 주점, 심지어 산자락에 위치한 깡촌에까지도 용하다는 황태자의 소문이 퍼져 나갔다.

덕분에 어느 소도시의 뒷골목.

그곳을 방황하던 어느 몰락한 거한의 귓가에도 황태자의 소문이 닿았다.

“내 손은 약손~ 내 손은 약손~ 에헤이야~”

“……그 요상망측한 노래는 대체 뭔가?”

“어허. 자네는 아직도 이걸 못 들어봤나?”

“그게 뭔데.”

“제국의 황태자 말일세. 글쎄, 그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환자를 어루만지면 아픈 곳이 씻은 듯이 낫는다더구만.”

“허허? 허? 무슨 그런 헛소리가 다 있나?”

“헛소리라니? 진짜라니깐?”

“에잉, 쯧쯧! 이 친구 취했구만, 취했어.”

“취한 건 자네겠지!”

“아 됐고. 어서 오기나 하게. 이러다간 늦겠어.”

“에잉, 쯧. 집에 좀 늦게 들어가면 어디 인생이 끝나나?”

“당연하지! 우리 마누라가 얼마나 무서운데.”

“어휴, 쯧쯧!”

두 술주정뱅이가 걸음을 재촉하며 멀어졌다. 그들은 몰랐다. 자신들이 생각 없이 나눈 이야기가 골목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어느 거한의 귀에 닿았음을.

“내 손은…… 약손……?”

거한이 움찔했다.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였다.

반복된 정신계 마법 실험의 후유증 때문에 뒤엉켜 버린 이성의 실타래 속에서도, 저 요상한 노랫가락만큼은 어쩐지 강렬하고도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리한…… 군의관…….”

한때 앙부아즈의 권력을 거의 움켜쥘 뻔하였던 반란자. 동시에 극강의 소드마스터였던 사내. 몰락한 거한, 쟈빌론의 눈빛에 갈망의 열기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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