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42화 (242/468)

242화. 무시무시한 환자 (2)

미치겠다.

이건 진짜 미친놈이 확실하다.

가르딘 경은 16비트 자진모리장단으로 지끈거리는 뒷골을 부여잡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혼신의 인내심을 발휘하였다.

“후우, 그러니까 환자분?”

“포르티스다.”

“그게 이름이신가요?”

“그러하다. 등갑룡 포르티스 님이라 부르도록.”

“…….”

아 x발 진짜.

가르딘 경은 그답지 않게 하마터면 욕설을 내뱉을 뻔했다. 솔직히 험한 말이 혀끝을 박차고 아름다운 810도 배치기 다이빙을 선보일 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역시나 참아냈다.

진료실은 신성한 곳.

환자를 돌보는 뜻깊은 곳.

이런 곳에서 욕설이라니 말도 안 된다.

“흠흠! 커흠! 어, 그럼, 포르티스 환자분? 어디가 아파서 오신 건지 말씀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화가 날수록 더욱 정중하게.

상대는 아파서 온 사람이니까.

가능한 한 부드럽고 친절하게.

혼신의 힘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물었다. 그러나 환자는 그의 마음을 좀처럼 알아주질 않았다.

“너 따위와는 나눌 이야기가 없다.”

“…….”

“아까부터 이 위대한 몸께서 누누이 이야기했을 터인데. 황태자를 불러오라고.”

“저기, 환자분? 저도 누차 말씀드리는 거지만, 정말로 위급하거나 중한 병을 앓는 분들만 황태자 전하를 뵐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저에게 증상을 말씀하시고 진찰부터 받은 후에, 정말로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자연스럽게 황태자 전하께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고요.”

“고작 비루한 필멸자 타르디온(Tardion) 주제에. 이 위대한 몸에게 훈계를 늘어놓으려는 것인가? 혹은 알량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의 규칙을 내게 들이밀려는 것인가?”

“…….”

울고 싶다.

누가 이 미친놈을 좀 데려가 줘.

‘전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가르딘 경은 참으로 크나큰 난감함을 만끽했다. 이건 도무지 말이 씨알도 먹히지가 않았다. 아까부터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건지. 황태자 전하를 바로 만날 수는 없는 법이라고 누차 얘기했는데도 이 미친놈은 알아먹을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저 말도 안 되는 태도라니.

‘드래곤? 본인이? 진짜 미친 거 같은데.’

가르딘 경은 거의 확신했다.

솔직히 정말로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누가 별궁에서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겠는가. 다른 이도 아닌 황족, 그것도 황태자가 기거하는 별궁에서 말이다.

덕분에 별궁 한의원이 개원한 이래로 지금까지, 진상을 부린 환자는 거의 없었다. 실제로 다쳐서 실려 온 불량배도 이러지는 못했다. 제아무리 거칠고 막 나가는 폭력배라도 별궁 한의원에 실려 오면 갓 입양된 토끼처럼 얌전해졌다.

곳곳에 근위병과 기사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 이곳 별궁이었다. 심지어 간호사마저 모두가 웨어울프였다. 그런데 누가 감히 이곳에서 진상을 부리겠는가.

가르딘 경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후우. 이 환자, 아무래도 정신병이 있는 게 맞는 듯하군. 안색이나 목소리, 행동으로 미루어 기력은 넘치도록 충분해 보이고. 딱히 열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호흡도 안정적이야. 그러니 이건…… 정신병이다. 확실해. 그것도 심각한 수준의 정신병.’

아까부터 본인을 등갑룡이니 뭐니 하고 떠드는 것도 그랬다. 쥐뿔도 없어 보이는데 황태자를 오라 가라 하는 태도 또한 그러했다.

‘과대망상증인가. 쯧쯧쯧, 참 안됐구나.’

진상(?) 환자, 포르티스를 향한 가르딘 경의 눈길에 애잔한 안쓰러움이 스몄다. 젊고 허우대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어쩌다가 이런 고약한 지경에 처하였을까.

자연 포르티스를 대하는 가르딘 경의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환자분? 혹시 머리가 아프시진 않나요?”

“머리?”

“예.”

“감히 필멸자 주제에 내 증세를 짐작하려 드는 것인가? 당장 업화의 불길에 재가 되고 싶은 것이로군, 그래.”

“…….”

“뭣하는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면 당장 꿇어 엎드려 사죄하지 않고.”

“……크흠! 흠! 어흠! 죄송합니다, 좀 놀라서. 흐음, 그럼 과를 배정해드리겠습니다.”

다시 릴렉스. 또 릴렉스. 상대는 정신이 아픈 환자니까. 화내지 말고 릴렉스.

가르딘 경은 존경스러운 황태자 전하가 평소에 환자들을 어떻게 대하였는지를 새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더욱 친절하게 말했다.

“포르티스 환자분께서는, 으음, 말레나 선생님을 찾아가시면 되겠습니다. 아마 저보다는 환자분을 한결 능숙하게 진단하여 적절한 치료 방향을 잡아주실 겁니다.”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황태자가 의료대학에서 잡아온(?) 의사 말레나는 정신질환을 지닌 환자를 대하는 데에 능숙하니까. 특히 그녀의 사려 깊고 친절한 상담술 앞에서는 그 어떤 정신질환 환자라도 거짓말처럼 차분해지곤 하니까.

‘그 선생님이 근육이 좀 많이…… 빵빵하거든.’

그러했다.

별궁 한의원의 유일한 정신과 전문의 말레나.

그녀는 엄청난 근육과 떡대의 소유자였다. 멧돼지를 꿀밤 한 방으로 침묵시켰다는 소문이 있었다. 항간에 들리는 풍문으로는 변신 상태의 웨어울프 간호사와의 팔씨름에서도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놀라운 일화마저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진료실에 들어가는 정신질환 환자들은 그녀의 시커먼 눈썹과 강인한 턱, 빵빵하게 단추가 터질 것 같은 불끈불끈 흰 가운을 보자마자 지극히 공손해진다 하였던가.

아마 이 환자도 그러할 것이다.

가르딘 경은 나름의 확신을 담아서 말했다.

“그러니 간호사님? 이분을 말레나 선생님께 안내해드리도록 하세요. 다음 환자분 불러주시고요.”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를 불렀다. 웨어울프 간호사가 평소처럼 환자를 안내하기 위해 나섰다. 그런데 이 미친 환자가 또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지금 무슨 짓거리지?”

“예? 아, 방금 안내를 드렸다시피 환자분께 더 적절한 치료를 위해…….”

“그래서 지금, 이 냄새 나는 털복숭이 똥개로 하여금 이 위대한 몸을 안내하도록 조치하겠다고?”

“……예에?”

가르딘 경은 쩌적 굳었다. 그리고 슬쩍 간호사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털복숭이 똥개’라는 때아닌 폭언을 들은 간호사의 표정이 살벌하게 굳어 있었다.

환자의 어깨를 짚는 간호사의 손길 또한 그러했다.

“환자분, 가시죠.”

뼈 부러뜨리기 전에.

……라는 말이 왜 환청처럼 들려오는 걸까.

꽈득!

환자, 포르티스의 어깨를 짚은 웨어울프 간호사가 손아귀에 은근한 힘을 주었다. 난동을 부리려는 환자? 평소에도 이 정도면 충분히 신속하게 공손해졌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보았다.

한데 아니었다.

“감히. 똥개 주제에 이 위대한 몸의 어깨에 손을 얹어? 게다가 아까부터 황태자를 불러오라는 이 몸의 말을 계속해서 무시하기까지 해? 도저히 말로는 안 되겠군. 역시 비루한 필멸자 타르디온들이란.”

포르티스의 안색이 싸늘해졌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마나의 기파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주위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가르딘 경과 웨어울프 간호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엇?”

“크릉!”

순식간에 몰아치는 마나의 소용돌이! 가르딘 경의 두 발이 허공에 떴다. 웨어울프 간호사가 다급히 변신했지만 마찬가지로 허공에 둥둥 떴다. 아예 거꾸로 매달렸다. 힘껏 버둥거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으, 으아악! 이게 무슨 짓입니까!”

놀란 가르딘 경이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소리쳤다. 그 외침이 새어나간 덕분일까. 마침 복도를 지나던 근위병들이 진료실로 뛰쳐 들어왔다. 안쪽의 참상(?)을 목격했다. 그리고 근위병들도 가르딘 경과 똑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으, 으어엇?”

“으억!”

똑같이 허공에 거꾸로 대롱대롱.

그들을 보는 포르티스의 눈동자가 청금색으로 물들었다.

“이 몸께서 누차 말하였지. 황태자를 데려오라. 오직 그만이 나를 진료할 수 있음이니.”

마나의 힘을 실은 목소리가 조용하게, 동시에 웅혼한 기세로 별궁 전체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물론 라키엘과 데미안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부터 이미 마나의 기세를 감지하고 있었다.

“……뭐냐, 이건.”

전신을 송두리째 들쑤시는 섬뜩한 감각.

마침 환자의 등에 시침을 하던 라키엘은 하마터면 삑사리(?) 사고를 낼 뻔했다. 그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엄청난 마나의 기세에 화들짝 놀라며 곁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데미안이 있었다.

녀석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닙니다. 제 안의…… 그것도 아니고요.”

“어. 아니겠지. 너야 내 옆에 있고. 이게 느껴지는 방향은…….”

“저쪽. 가르딘 경의 진료실인 것 같습니다.”

“가보자.”

“하지만 전하? 마나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은데…….”

“내 별궁에서 내가 도망을 치면 어떡하냐. 가자.”

지체할 틈이 없었다.

시침 중이던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냅다 달려갔다. 도착은 금방이었다. 이미 난리가 난 것을 모두가 감지한 덕분일까. 가르딘 경의 진료실 앞 복도는 긴장한 근위기사와 근위병, 특근대원들로 북적북적했다.

“전하? 위험하십니다!”

만류하는 근위대 지휘관 테오도르 경의 만류를 뿌리쳤다. 길을 트게 하였다. 진료실 입구로 들어갔다. 안쪽의 광경은 장난이 아니었다.

“……흡.”

온통 어질러진 진료실도.

허공에 휘날리는 서류와 집기도.

거꾸로 매달린 가르딘 경 등도.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진료실 중앙에 도사리듯 앉아 있는 군청색 머리칼의 남자. 그를 보자마자 시선이 고정되었다. 다른 어떤 곳에도 눈길을 줄 수가 없게 되었다.

압도적인 존재감.

더욱 압도적인 마나의 기세 때문이었다.

‘무슨 저런.’

반사적으로 경혈 스캐닝을 켰다.

스캔 결과는 더욱 경악 그 자체였다.

라키엘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이…… 이게 가능한가.’

도도한 강물?

아니.

아예 거대한 바다가 경혈을 따라 흐르는 느낌이었다. 보통 사람의 경혈에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과는 차원 자체가 달랐다. 규모도 달랐다. 소드마스터였던 쟈빌론? 저 남자가 지닌 마나에 비하면 병아리 수준도 안 될 듯했다.

자연히 결론이 나왔다.

사람이 아니다.

“여기는…… 어떻게 찾아오신 겁니까.”

라키엘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드래곤, 포르티스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황태자?”

“예, 맞습니다만. 여기는 환자를 진료하는 곳입니다. 한데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건지.”

“그대에게 진료를 받으러 왔지.”

“제게요?”

“그래.”

포르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위대한 드래곤, 등갑룡 포르티스. 최근 그대에 대한 신묘한 소문을 들었지. 손만 대면 환자의 아픈 곳을 낫게 하는 기적을 발휘한다지?”

“……그런데요?”

“그래서 그대를 찾아왔지.”

“드래곤인…… 당신이 말입니까?”

쓰읍.

이거 쌔한데.

라키엘은 어깨를 움츠렸다.

무려 드래곤이 찾아와 버렸다.

그런데 드래곤씩이나 되는 존재가 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자신을 찾아온 걸까. 감도 잡히지 않았다. 부담스러웠다. 드래곤도 스스로 치료하지 못해서 난감한 병이라면, 자신이 어떻게 그걸 치료해주나 싶었다.

‘설마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깽판 부리는 거 아냐? 그럼 감당 안 될 거 같은데.’

제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물었다.

“하면 드래곤 환자분께서는…… 대체 어디가 아파서 저를 찾아오신 건지?”

“호오. 날 진료해주겠다는 건가?”

“여긴 제 한의원이니까요.”

“좋군. 내가 아픈 곳은…….”

……꿀꺽.

어디일까.

어디가 아픈 걸까.

제발 내가 치료해 줄 수 있는 곳이길.

진심으로 조마조마하게 바라는 사이.

등갑룡 포르티스의 입이 열렸다.

“맹장, 충수염이다.”

“……예?”

고작?

그걸로?

드래곤이?

의아함이 느껴지는 순간, 포르티스의 안색이 살포시 우울해졌다.

“그런데 내 다이아몬드 비늘이 너무 단단해서 말이다. 소드 마스터의 오러로도 흠집조차 나질 않아서 수술을 할 수가…….”

“…….”

뭐 이런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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