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43화 (243/468)

243화. 더 무시무시한 치료법 (1)

충수염(appendicitis).

흔히 ‘맹장염’이라고 말하는 질환.

이건 아프다. 진짜 진짜 아프다. 오직 걸려본 사람만이 아는 극악의 헬게이트 롤러코스터 고통이다.

게다가 은근슬쩍 흔하기까지 하다. 보통의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지닌 사람이라면, 주변인들 중에 서너 다리쯤 건너면 충수염 수술을 했던 사람을 거의 반드시 찾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동시에 충수염은 위험하다.

제법 흔하고 어려운 수술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만만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치명적인 질환이다. 어느 정도로 치명적이냐 하면, 걸렸는데 수술을 받지 못하면 사망률이 100%에 수렴할 정도다.

‘실제로도 인류의 평균수명을 가장 극적으로 확 끌어올린 의료 기술이 바로 충수염 수술이지. 페니실린? 항생제? 그거보다 충수염이 평균수명을 더 올려줬을 거야. 예전엔 충수염은 걸리면 그냥 무조건 죽는, 아니, 죽어야 하는 질환이었으니까.’

정말로 그랬다.

오랜 과거로 갈 필요도 없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충수염은 걸리면 무조건 죽는 병이었다.

수술을 받지 못하면 맹장 끝의 충수돌기가 염증으로 붓다가 터지고, 썩는다. 대장 일부까지 썩는다.

그런데도 수술을 못 받으면?

장에 구멍이 뻥 뚫린다. 장 내부의 물질들이 복강으로 쏟아져 나온다. 즉, 소화되다가 만 분변들이 복강으로 흘러든다. 100% 확률로 복막염에 걸린다. 100% 확률로 패혈증이 진행된다. 100% 확률로 죽는다.

‘그냥 아주 저승 진학률 100% 찍는 거지, 뭐.’

그만큼 의외로 무서운 질환이 충수염이다. 이게 은근히 골때리는 점이, 수술 외에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는 거다. 오죽하면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던 러시아 잠수함 승무원마저도 충수염 때문에 미군에게 긴급 도움을 받아서 수술까지 했을까.

그런데…….

“맹장, 충수염 말입니까? 환자분…… 아니, 드래곤께서?”

“그렇다.”

자신을 등갑룡이라고 밝힌 드래곤, 포르티스가 특유의 오만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왜? 이상한가?”

“…….”

예. x나게 이상합니다.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목구멍까지 올라온 솔직한 대답을 간신히 삼켰다. 무리도 아니었다. 드래곤이 충수염이라니. 이건 불사조가 감기 걸려서 뒈졌다는 소리만큼이나 괴상했다.

‘뭐지. 진짜 뭐지. 이거 드래곤 맞아?’

그는 새삼스러운 의혹의 시선으로 포르티스를 째릿 쳐다보았다.

물론 경혈 스캐닝으로 보이는 결과는 ‘드래곤이 맞다’였다. 인간이라면 저런 거대한 마나의 흐름을 몸속에 지닐 수는 없을 테니까. 설령 드래곤이 아니라 해도, 최소한 그에 필적하는 존재임은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드래곤씩이나 되는 존재가 고작 충수염 때문에 별궁 한의원까지 찾아와서 난리를 부리는 걸까. 어째서 ‘황태자 나와’를 시전하며 진상까지 부려댄 걸까.

라키엘은 머릿속 가득 백만 송이씩 피어나는 의문의 꽃다발을 촵촵 털어내었다. 대신 화사한 영업용 미소를 활짝 내걸고서 물었다.

“아, 이상하다기보다는 말입니다. 조금 의아한 구석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의아하다니?”

“제가 듣기로는 드래곤은 그 자체로 완벽하고 무결한 존재라 하였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포르티스의 표정에 자부심이 슬쩍 드러났다.

라키엘은 계속 물었다.

“한데 어째서, 위대하고 완벽무결한 존재께서 본인의 맹장, 충수염을 스스로 치료하지 않으신 건지…… 제 부족한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조금 힘이 듭니다.”

“그러니 가르침을 달라?”

“예, 그렇습니다.”

“쯧! 멍청한 인간 같으니. 이 위대한 몸께서 아까 친히 이유를 밝혀 주었건만. 그걸 듣고도 그새 잊어버렸단 말인가?”

“그럼…….”

“말했지 않나. 내 비늘이 너무 단단해서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

“한번은 소드마스터라는 인간을 납치하기도 했지. 마침 내 서식지 근처에서 은거하며 홀로 수련하던 놈이 있어서.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어. 소드마스터라는 족속이 그토록 자랑하는 오러? 별것 아니더군. 내 비늘엔 생채기도 낼 수 없었으니까.”

“…….”

“하아. 이래서 문제야. 내가 너무나 완벽해서. 내 비늘이 지나치게 무결해서. 오러로도 흠집을 낼 수 없으니 배를 가를 수가 없고, 염증이 생겨나는 충수를 잘라낼 수가 없게 됐어. 이건…… 그래, 이를테면 완벽무결함이 불러온 비극이랄까.”

“…….”

x신.

라키엘은 본능적으로 입에 머금어지던 욕설을 황급히 꿀꺽 삼켰다.

“그, 그럼…… 회복 마법을 사용해보진 않으셨는지요?”

그 부분이 제일 의아했다.

드래곤이라면 당연히 마법의 마스터일 텐데. 한데 충수염이 회복마법으로 해결이 안 된 걸까.

그 이유는 곧 돌아온 드래곤의 투덜거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회복마법? 하. 비루한 인간이여. 너는 회복 마법이 만능이라고 믿는 건가? 역시 열등한 족속다운 순진한 망상이로군.”

“…….”

“회복마법은 간단히 말하자면 세포 단위에서의 신진대사를 극적으로 끌어올려 신체의 자가복구 능력을 가속하는 기법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남용하면 암세포가 발현될 확률도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것이고. 어쨌건-”

이쪽을 보는 드래곤, 포르티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회복마법으로 충수돌기의 염증 자체를 없애는 건 불가능했다. 그저 충수가 터지면 그 상처를 메꾸는 데에만 쓸 수 있었지.”

“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이 드래곤은, 충수가 터질 때마다 회복마법으로 땜질만 하면서 버텼던 거다. 그렇게 장 내의 물질이나 분변이 복강으로 흘러나오는 것만 막아냈던 거다.

“터질 때마다 회복마법으로 막고…… 이후에 염증이 재차 진행되다가 터지면 또 막고…… 그렇게 버텼던 겁니까?”

“그렇지.”

“얼마나 그렇게 계셨습니까?”

“100년쯤?”

“…….”

라키엘은 말문이 턱 막혔다.

100년 내내 충수염의 고통을 버텨냈다니. 새삼 여러(?) 의미로 드래곤이 대단하긴 하구나 싶었다.

동시에 또다른 의문들도 떠올랐다.

“하면, 인간이 발현하는 오러가 아닌 드래곤 당신께서 직접 시전하는 마법으로도 뱃가죽을 절개할 수가 없었던 겁니까?”

“물론. 이 몸은 완벽하게 단단하니까. 특히 내 비늘은 육각 벌집 결정 다층 구조의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용왕 베르키스 님이라면 모를까, 이 지상에서 그 외의 존재가 내게 외상을 입힐 방법은 없다. 일부러 떨어지는 운석에 직격당해 보았음에도 상처가 나지 않았으니까. 오죽하면 내 별칭이 등갑룡일까.”

“그럼 용왕 베르키스 님이라는 분이 도와주시면 수술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랬겠지. 하지만…….”

“하지만요?”

“그분께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포르티스의 안색이 변했다. 뒤이어진 그의 발언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분은 낮잠을 너무 사랑하셔서 말이다. 찾아갔음에도 문전박대만 당했지. 오히려 죽을 뻔했다. 진심으로.”

“…….”

드래곤이 잠깐이나마 공포의 감정을 내비칠 수 있다니. 아니, 그 전에, 용왕이라는 작자는 얼마나 낮잠을 사랑하면 자신을 찾아왔다는 이유로 살인, 아니, 살룡을 감행하려 든 걸까.

‘뭔…… 드래곤이란 족속은 정상인이 없나?’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쨌건 지금 중요한 점은 그게 아니었다. 라키엘은 내심 상황을 정리하며 난감함을 느꼈다.

“그러면 말입니다. 등갑룡 님?”

“포르티스 님이라고 불러도 된다.”

“아 예, 포르티스 님? 제가 여쭙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묻도록.”

“예, 감사합니다. 제가 묻건대, 그럼 포르티스 님께서는 제게 어떤 진료를 받길 원하셔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입니까?”

“당연히 충수염 치료지.”

“어떤 수단으로도 배를 쨀…… 아니, 절개할 수가 없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제게 진료를 맡기시려고요?”

“방법이 있겠지.”

“……예?”

“너 말이다. 제국의 황태자. 소문이 아주 자자하더군. 손만 대면 죽어가던 사람도 벌떡 일으킨다고 했던가. 아니, 아예 좀비를 살렸다는 소문도 있던데. 맞나?”

“…….”

“그러니까 지금도 뭔가 방법이 있겠지. 그러니까 내가 널 찾아온 것이고.”

“…….”

알겠다.

나는 모르겠고, 네가 의사니까 어떻게든 해봐라, 라는 마인드라는 거지, 지금?

‘하아. 미치겠네.’

라키엘은 한숨을 삼켰다.

난감했다.

‘저 배를 어떻게 째지?’

다시금 말하지만, 충수염은 오직 수술만이 해결법이다. 항생제 투여? 그런 걸로 가라앉힐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노벨 의학상부터 받아야 한다.

답은 쨀(?)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런데 저 단단한 드래곤의 배를 째는 건 용왕이 아니면 불가능하단다.

하니 결론은 간단했다.

‘용왕을 불러오든가. 다른 뭔 수를 찾든가. 그런데 그 수를 찾아야 할 사람이 나야. 이건 진료 거부도 못 해. 상대가 드래곤이니까. 무슨 깽판을 부릴지 모르니까. 돌겠네, 진짜.’

생각만 해도 부담감이 턱턱 밀려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라키엘은 다년간 한의원을 운영하며 쌓인 짬을 바탕으로 프로의식을 발휘하였다. 즉, 당황한 티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태연한 대응을 선보였다.

의료인이 흔들리면 환자가 불안해하니까.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침착하게.

지금 또한 그러한 태도로.

환자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포르티스 님?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제 부탁을 좀 들어줄 수 있으실까요?”

“부탁? 무슨 부탁?”

“제 사람들을 좀…… 원위치로 내려놓아 주실 수는 없을까 해서 말입니다.”

라키엘은 침착하게 웃으며 슬쩍 눈짓을 보냈다. 그의 눈짓이 향한 곳. 그곳의 허공에 가르딘 경과 웨어울프 간호사, 근위병들이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까부터 줄곧, 쭈욱 말이다.

“앞으로 제가 포르티스 님을 진료하고 치료해드리는 동안 함께 힘을 보탤 이들입니다. 조금만 관대함을 베풀어 주시지요.”

“……흐음. 싫다면?”

“저도 포르티스 님을 진료해드릴 수 없을 겁니다.”

“뭐라?”

이쪽을 보는 드래곤의 눈길이 살짝 살벌해졌다. 절로 소름이 오싹 돋았다. 하지만 라키엘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저 기세에 밀리면 안 된다고.

‘당연하지. 지금 밀리면 끝이야, 끝.’

그러니까 이건 기싸움이다.

환자와의 기싸움이다.

여기서 밀리면 곤란해진다.

진료의 주도권을 환자가 쥐게 되고, 의료인이 거기에 질질 끌려다니게 되면 치료 과정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게 된다. 특히, 환자가 여러 의미로 큰 영향력을 지닌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내가 말이야. 건물주 아저씨가 왔을 때도 진료 주도권을 빼앗기진 않았다고!’

딱 한 번, 한의원이 있던 빌딩의 건물주 아저씨가 침을 맞으러 온 적이 있었다. 심지어 임대료가 살짝 밀리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덕분에 그땐 솔직히 좀 떨렸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다른 환자들을 대하듯이 똑같이 시침을 해드렸다.

라키엘은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힘껏 침착함을 붙잡았다. 실시간으로 오싹해지는 드래곤의 냉랭한 눈길을 받아냈다. 버텨냈다. 동시에 절대로 배를 쨀 수 없는 대상의 충수염을 수술할 방법을 궁리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포르티스가 냉랭한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로 물어왔다.

“이토록 건방진 필멸자를 마주하게 될 줄이야. 감히 내게 부탁을? 그 전에 하나 묻지. 너는 과연 어떻게, 내 충수염을 치료할 생각이지? 대륙 곳곳에 퍼져가는 막대한 명성에 걸맞은 치료법이 있는가?”

마치 자격을 시험하는 듯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흔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더욱 담대하게 받아쳤다.

“있습니다.”

마침 고민 끝에 떠오르는 답이 있었다. 그거면 된다. 환자가 거대하고 튼튼한 드래곤이기에, 오히려 한결 편하고 안전하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있다고? 그게 무엇인가.”

의구심을 드러내는 드래곤의 눈빛.

그걸 똑바로 마주 보며 대답해 주었다.

“간단합니다. 비늘 때문에 배를 가를 수 없다면, 항문을 통해 대장 내시경을 밀어 넣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뭐?”

당신의 x꼬를 의학적으로 유린하겠다는 선언에 위대한 종족, 드래곤의 눈빛이 처음으로 몹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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