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44화 (244/468)

244화. 더 무시무시한 치료법 (2)

“간단합니다. 비늘이 너무 튼튼해서 배를 가를 수 없다면, 항문을 통해서 대장 내시경을 밀어 넣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뭐?”

안 된다.

말도 안 된다.

듣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이 인간은 좀 미쳐 있는 거 같다고.

‘죽으려고 발악을 하는 건가?’

이쪽의 x꼬를 의학적으로 유린하겠다는 선언에 드래곤, 포르티스의 눈빛이 몹시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상도 못 해봤다. 감히. 무엄하게도. 누가 누구의 어디를 어떻게 하겠다고?

‘이건 생각을 떠올리는 것조차 민망하기가 그지없군. 그런데 감히, 그따위 발언을 내 면전에서 버젓이 해? 심지어 필멸자 타르디온, 인간 주제에?’

포르티스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느냐면, 화를 낼 타이밍을 왕창 놓쳐 버렸을 정도였다.

덕분에 그가 간신히 꺼낸 반응은 ‘……뭐?’라고 망연자실하게 대꾸한 것이 전부였다.

그 사실이 라키엘의 자신감(?)을 북돋웠다.

“처음 들어보시는 개념이라 조금 당혹스러우실 순 있겠습니다. 하지만 안전합니다.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요. 게다가 드래곤께서는 어마어마한 덩치만큼 항문과 대장 내부의 공간도 충분할 것이니까, 상대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안전하게 시술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아, 혹시나 내시경이 대장 내부에 상처를 내거나 자칫 구멍을 뚫어 버릴까 걱정되시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안심하세요. 위대한 드래곤이시니까, 우리 인간보다 훨씬 두껍고 튼튼한 대장벽을 지니고 계시겠지요?”

“그건 물론이지. 나는 튼튼하니까.”

“역시나. 다행입니다.”

“……앗, 아니, 그게 아니고.”

“예?”

"감히. 지금 이 몸 앞에서 무슨 소리를 지껄인 것이냐."

포르티스는 뒤늦게나마 간신히 화를 낼 타이밍(?)을 움켜잡을 수 있었다. 어느새 저도 모르게 시뻘게진 얼굴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라키엘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라키엘은 이미 완연한 여유를 찾은 상태였다. 눈앞의 상대가 드래곤이건 어떻건, 일단 증상을 함께 상의하고 치료 방법을 설명하는 분위기가 되자 자연히 긴장감이 풀렸다.

환자를 진료하는 시간은 이쪽의 홈그라운드! 십수 년간의 실전 진료 현장에서 단련되고 축적된, 한의사로서의 짬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괜찮습니다. 불안하신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워낙 익숙하지 않은 일이실 테니까요.”드래곤을 향해 건네는, 더없이 부드럽고도 친절한 배려의 서비스 멘트!

사실 환자의 불안감을 달래는 일은 그의 가장 강력한 분야였다. 당연했다. 대한민국의 한의사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침 맞는 게 처음이라 불안해하는 환자. 뜸이 처음이라 주저하는 환자. 낯선 한의원이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이 환자까지.

환자를 달래는 일은 그야말로 일상이었다. 그걸 못하면 한의사로 밥 벌어먹는 일에 심대한 차질이 생길 정도였다.

그런 덕분이었다.

“게다가 저는 믿습니다.”

“……믿는다니, 뭘?”

“위대한 드래곤이시니까요.”

“뭐?”

“저 같은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대한 분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분명 잘 참아내실 겁니다. 아니, 애초에 참아낼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하찮은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

이것은 환자의 특성을 감안한 맞춤형 달래기! 드래곤의 자부심을 콕콕 들쑤시며 거부하지 못하는 분위기로 몰아가기!

그러나 드래곤은 역시나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헛소리. 지금 감히, 알량한 세 치 혓바닥으로 이 위대한 존재의 심리를 이용하려는 것인가? 그따위 일천한 화술 따위로?”

“아, 그건 아닙니다.”

“아니야?”

“옙.”

“맞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대장 내시경이 뭔지 궁금하진 않으십니까?”

“말 돌리지 말고.”

“궁금하실 듯한데 말입니다.”

“그건 좀 그렇긴 한데. 아니, 그게 아니고…….”

“대장 내시경이란, 항문을 통해서 삽입하여 대장을 비롯한 소화기 내부의 상황을 관찰할 수 있는 기다란 일종의 기구입니다. 여차하면 그 내시경을 활용해서 배를 째…… 아니, 개복을 하지 않고도 간단한 수술을 시행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딱히 궁금하다고 한 적 없다.”

“하지만 귀는 쫑긋거리고 계셨는데.”

“…….”

“제 설명을 도중에 자르지도 않으셨는데.”

“네가 하도 빠르게 쫑알거려서 미처 자를 틈이 없었던 것이다.”

“어쨌건, 설명에는 만족하셨습니까?”

“전혀.”

드래곤 포르티스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아닌 게 아니라, 저 설명을 듣고 나니 더욱 뜨악하는 심정이 되었다. 항문에 그냥 뭔가를 넣는다는 것부터가 거부감이 드는데, 심지어 그걸로 창자 내부를 휘젓듯이 관찰까지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심 혹하기도 했다. 생각을 해볼수록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까닭이었다.

‘……하긴. 내 비늘은 너무 튼튼해서 나 스스로도 아무 상처를 입히지 못할 정도니까. 외부에서는 그 어떤 수단으로도 뱃가죽을 가를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젠장.’

그나마 야들야들한 항문을 공략(?)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리라. 그렇듯 답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동시에, 그 답을 반갑게 여기며 인정하게 되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에 분노가 치밀었다.

‘빌어먹을!’

위대한 일족으로 태어나.

위대한 혈통으로 자라나.

위대한 영혼으로 살았다.

그리고 오늘, 의학적으로 항문을 유린당할 일생일대의 핀치에 내몰렸다.

이 사실이 기도 차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아니, 화를 내는 척했다.

그것만이 자신의 당혹스러움과 수치심을 가려줄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정말로 어쩔 수가 없었다.

“비루한 인간이여, 네가 정녕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하였구나.”

쿠구구구구……!

스산한 분노와 더불어 무시무시한 마나의 기세가 진료실을 가득 채웠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살기였다.

그러나 라키엘은 괜찮았다.

아스라한 심법 덕분에?

아니, 데미안 덕분이었다.

“…….”

어느새 곁에 선 데미안이 기세를 마주 일으켰다. 드래곤 포르티스의 살기에 맞섰다. 그런 호위가 내 뒤에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라키엘은 한결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분노한 드래곤을 대하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저는 환자분께 도움이 될 치료 방향을 제시해드렸을 뿐입니다.”

“그런 핑계로 위대한 이 몸에게 수치심을 안길 셈인가.”

“강요 드린 적은 없습니다. 받아들이기가 어려우실 수도 있겠지요. 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선택은 환자분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하는구나.”

“누차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저는 오직 환자분을 위할 뿐입니다.”

“끝까지 그 말뿐인가.”

“진심이니까요.”

“…….”

드래곤을 마주 보았다. 정말로 진심이었다. 드래곤이 앓고 있는 충수염.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 사연을 모두 들어보니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해답은 내시경이었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하여 정면돌파를 택했다.

환자를 위한 명확한 솔루션과 방향을 제시했다. 이것이 자신의 최선이다. 받아들이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하지만 눈앞의 드래곤은 그걸 선뜻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걸까.

“……오늘 네놈은 운이 좋은 줄 알거라.”

드르륵!

드래곤이 의자를 거칠게 밀어내며 일어섰다. 그러고는 이쪽을 한 차례 서늘하게 쳐다본 후 진료실을 나가 버렸다.

그게 끝이었다.

다행히 드래곤은 더는 난동을 부리거나 별궁을 부수지 않았다. 그저 쿨하게 떠나주었을 뿐.

다만 아주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후욱?

“어엇?”

그동안 내내 허공에 매달려 있던 가르딘 경과 웨어울프 간호사, 근위병이 마침내 해방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웨어울프 간호사와 근위병들은 뛰어난 운동신경을 발휘하며 그림 같은 착지를 선보였다.

하지만 가르딘 경은 예외였다.

콰당탕!

“아윽!”

등짝으로 착지한 가르딘 경이 허리를 부여잡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허리 건강보다 황태자의 안위부터 걱정하는 충정을 발휘하였다.

“저, 전하? 으윽,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나? 경의 허리보다는 괜찮을 거 같은데.”

“…….”

“분노한 드래곤의 대응을 걱정하는 거라면 뭐, 별 탈 없을 거야. 말은 저래도 이미 이성으로는 내가 제시한 치료 방향을 받아들인 듯하니까.”

“그, 그렇습니까?”

“어.”

라키엘은 빙긋 웃었다.

확실하다.

드래곤 포르티스가 마지막에 화를 내며 떠나던 순간의 눈빛을 보았다. 그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성은 받아들였는데, 감정이 아직 허락을 못 한 것이라고.

‘가끔 저런 분들 봤지.’

한국에서도 그랬다.

침술이나 뜸에 선천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환자가 간혹 있었다. 그럴 때면 딱 저런 반응을 보이며 진료실에서 휙 나가 버리곤 했다. 물론 당시엔 이쪽도 당황했다. 그런데 계속 보니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 저런 분들한텐 시간이 필요해.”

“시간이요?”

“어. 지금 당장은 저래도 며칠 있으면 십중팔구 돌아오거든.”

“그, 그렇습니까?”

“으음.”

라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딘 경은 의아함을 느꼈다.

‘대체 전하께서는…….’

어떻게 그걸 확신하는 것일까. 그리고 전하께서는 어째서 가끔, 이토록 진료에 능숙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하는 걸까.

‘마치, 10년이 넘도록 매일 환자를 진료한 사람 같이.’

혹은 자신보다 더 진료 경험이 많은 사람 같이.

이상했다.

그저 신비로운 고대의 의술을 익혀서? 그걸 어디서? 어떻게? 전하의 말처럼 꿈을 통해서? 그건 더 이상한데. 하지만 아니라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고. 차라리…….

‘완전히 다른 사람이 전하의 몸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발휘하고 있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더 신빙성이 있을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하던 가르딘 경은 내심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된다. 자신이 어쩌면 이토록 불충한 생각을 떠올린 걸까. 다시는 이런 생각을 하지도 말자.

그는 다짐하며, 한편으로는 드래곤의 실물을 영접(?)한 황망함을 애써 가다듬으며 허리를 주물렀다. 그리고 황태자의 말이 사실이기를 빌었다.

꿈을 통해서 신비로운 의술을 익혔다는 말이 사실이길. 드래곤이 며칠 내로 화를 풀고 돌아오길.

전부 그러하기를.

하여 평화롭기를.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과연 라키엘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저기, 환자분? 여기 접수증에 써주신 내용 때문에 그러는데요. 성함이랑 연령, 아프신 곳 등등을 솔직하게 써넣어 주셔야 접수가 되는데 말이죠. 혹여 잘못 작성한 부분들 확인이 가능하실까요?”

“확인? 접수증 내용 말인가?”

“네.”

“그거라면 정확히 적었다만.”

“성함은 포르티스. 증상은 충수염. 그런데 연령을…… 3,610세로 작성하셨는데 이게 정확한 내용이라고요?”

“대략 그렇다.”

드래곤 포르티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을 미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보는 접수창구 간호사의 시선을 받으며 슬쩍 웃어 보였다.

“내가 그것보단 좀 어려 보이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