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45화 (245/468)

245화. 본체 현신 (1)

‘엄마, 전 왜 태어났어요?’

‘위대한 종족의 일원으로 존재하기 위해 태어났단다.’

‘아니, 그런 거 말구요.’

‘그럼?’

‘제가 태어난 궁극적인 목적 같은 거요.’

‘그런 건 없단다.’

‘어? 왜요?’

‘넌 태어난 순간부터 완벽했고, 마지막까지 그러할 테니까. 존재 그 자체로 말이다.’

‘왜요?’

‘우린 원래 그런 종족이란다.’

‘드래곤은 다 그런 거예요?’

‘그렇단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정신의 가장 구석진 부분까지도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홀로 완벽무결한 종족이 우리란다.’

‘그럼…… 실수를 하는 건요?’

‘그 실수조차도 완벽의 일부란다.’

‘안 완벽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럼?’

‘그렇단다. 그것이 우리가 지닌 축복이자 저주의 정체이지.’

……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랬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어머니? 저, 완벽하다면서요?’

그런데 어째서 염증을 일으켜서 터지는 것만이 유일한 기능인 장기 따위가 제 몸뚱이에 달려 있는 걸까요. 어째서 그 맹장인지 충수 쪼가리인지 하는 것 때문에 제가 한낱 미물 같은 인간들에게 궁둥짝을 까 보여야 하는 신세가 된 걸까요.

‘설마, 이것도 제가 완벽하기 때문인 겁니까!’

드래곤, 등갑룡 포르티스는 내심 온몸으로 절규했다. 기억 속 어머니를 향해. 물론 돌아가시진 않았지만, 어쨌건 어린 시절의 인자했던 어머니를 향해 진심으로 따졌다.

울고 싶었다.

충수염이라니.

고작 그것 때문에 대장 내시경인지 뭔지를 받아야 한다니. 이런 신세가 된 것을…… 감내해야 한다니.

‘용생 진짜.’

하드코어한 시궁창 속으로 처박히는 기분이 이런 것인가. 그는 드래곤 하트 가득 쑴펑쑴펑 피어오르는 자괴감을 애써 씹어 삼켰다. 그리고 겉으로나마 한껏 침착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눈앞의 상대를 쳐다보았다.

그곳에 인간의 황태자가 있었다.

“정말로 잘 생각하셨습니다, 포르티스 님.”

“…….”

“많이 어려운 결정이셨을 겁니다. 부담도 많이 되셨을 테고요. 그러니 여기로 돌아오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셨겠지요. 내시경이라는 거, 그게 원래 처음이 정말 어렵고 거부감이 심한 거라서 말입니다.”

“…….”

“그러니 그토록 학을 떼셨던 거, 유달리 특별한 반응은 아니셨습니다. 다들 그러시니까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거나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따로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정말로 중요한 것?”

“예.”

“그게 뭐지?”

“환자분, 포르티스 님의 건강해지는 모습입니다.”

“…….”

방긋방긋 웃으며 잘도 말하는 황태자.

그 모습에 포르티스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사실 별궁 한의원으로 돌아오는 건 정말로 쉽지가 않았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충수염을 제거하려면 대장 내시경이 최선이라는 이성적인 계산과, 시시때때로 확 몰려오는 수치심이라는 감정 사이에서 얼마나 번민했는지.

미물에 불과한 인간 따위는 결코 모를 것이다. 이해할 수도 없겠지.

하지만 포르티스는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미 시술을 받기로 결심했으니까. 그래서 여기로 돌아왔으니까.

“어쭙잖은 칭찬이나 격려 따위는 필요 없다. 그런 건 빼고 해야 할 것부터 진행하면 좋겠는데.”

“예, 물론이죠. 그럼 진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진맥?”

“예. 진찰을 하는 겁니다.”

“내가 충수염이 있다고 네놈에게 알려줬을 텐데.”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요. 혹시 모를, 자각하지 못하고 계실 합병증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고 말입니다.”

라키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실제로도 당연한 소리였다. 세상 어느 의사나 한의사가 환자의 말만 듣고 진찰이나 진단을 생략하겠는가. 그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드래곤 포르티스는 라키엘의 대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지금 감히, 네놈은 내 말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자신은 완벽하다.

그런 종족이니까.

한데 고작 인간 주제에 자신의 말을 신뢰하지 않겠다니. 어이가 없었다. 물론 포르티스의 반응을 본 라키엘도 어이가 없어졌다.

“제가 왜 포르티스 님을 신뢰하지 않겠습니까? 신뢰합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포르티스 님은 저를 신뢰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어?”

“저를 신뢰하지 않는데, 어째서 제게 치료를 맡기려 하십니까?”

“그건…….”

“한의사로서 드리는 제 말도 좀 믿어주시죠. 어차피 저나 포르티스 님이나 피차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 않습니까.”

“감히 무슨 말을. 나는 존재 자체로 완벽한 몸이다.”

“그래서 맹장이 탱글탱글하게 부어서 절 찾아오신 거고요?”

“…….”

“진맥하겠습니다아. 손목 주세요.”

“…….”

나는 완벽한 존재가 맞는데. 그걸 가볍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맞는 건데. 한데 어째서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가 않는 걸까.

나…… 완벽한 거 맞나…….

포르티스는 새삼 영혼의 뿌리까지 착잡해지는 자괴감을 느끼며 손목을 내밀었다.

라키엘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진맥.’

내가 드래곤의 손목을 잡고서 진맥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새삼 경이로운 기분을 느끼며 정신을 집중했다. 한편으로는 드래곤을 진맥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곧 스킬의 반응이 왔다.

딩동!

[진맥을 시작합니다.]

[스캔 중.]

[3…… 2…… 1……]

[진맥 결과 연산 중…….]

[연산 중…….]

[지직…… 지지직…….]

[지짖짖…… 짖짖…… 푸스스…….]

‘어?’

진맥 스킬이 중단되었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진짜로 스킬이 강제로 중단되었다. 마치 과열돼서 꺼져 버린 기계처럼, 귓가에는 익숙한 스킬 안내 음성 대신 연기 새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덕분에 멀쩡히 잘 있던 이쪽의 오장육부도 때아닌 난리가 났다.

딩동! 딩동! 딩동!

[지직거리는 요란한 소음이 오장육부를 자극합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무분별한 스킬 사용에 항의하며 초인종을 연타합니다.]

[우리 모두 이웃을 위한 생활소음 감소에 동참합시다♡]

“…….”

어쨌건 알겠다.

‘혹시 진맥 결과가 안 나오는 건가?’

아마도 그런 듯했다. 그러고 보니 언뜻 짚이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포르티스를 마주 보았다.

“저기, 드래곤이시여?”

“음. 무슨 문제가 있나? 혹은 충수염 말고 다른 증상이 느껴지나?”

“아닙니다. 그건 아니고…….”

“그럼?”

“혹시 지금 포르티스 님의 상태가 말입니다. 신체 내부의 마나 흐름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본체와 아주 많이 다른 상태인 거겠지요?”

“당연하지.”

포르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 이 몸의 본모습을 보는 순간, 너 따위 미물은 두려움에 질려 바짓자락을 흠뻑 적시고 말 것이다.”

“아 예…….”

“그뿐일까.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이성이 잡아먹혀 바닥에 벌레처럼 엎드리고서 살려달라 빌겠지. 벌써부터 그 꼬락서니가 궁금해지는군.”

“아 예에…….”

라키엘은 대충 반응해주며 내심 확신했다.

‘본래의 모습이 아니어서 진맥이 제대로 안 되는 거구만!’

알겠다.

그러고 보니 소설 마검황의 설정이 떠올랐다. 마검황의 드래곤도 여타의 다른 소설들과 비슷한 설정을 지니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폴리모프’ 마법이었다.

‘폴리모프. 일종의 초 고위급 변신 마법이지. 어떤 종족의 모습으로도 원하는 대로 변신할 수 있는.’

눈앞의 포르티스도 마찬가지다.

폴리모프 마법을 통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본질은 드래곤일 것이다. 그 엄청난 갭 차이, 괴리가 진맥 스킬의 오작동을 불러일으켰겠지.

그럼 결론은 간단하다.

폴리모프를 풀면 된다. 본체 상태로 진맥을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건 당장 무지성으로 추진해선 안 될 일이기도 하다.

“우선 그럼, 황궁에 공문을 좀 뿌려야겠습니다.”

“공문? 무슨 공문?”

라키엘의 말에 드래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인간, 진맥을 하겠답시고 설치더니 갑자기 공문이라니?

“아무 예고도 없이 포르티스 님의 본체가 별궁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야말로 엄청난 난리가 날 테니까 말입니다.”

“흐음? 역시 그런 건가? 이 위대한 몸의 위엄 때문에?”

“예. 아마도 황도 방위군에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전시에 준하는 계엄령이 내려지고, 식재료를 포함한 생필품 사재기 사태가 일어나고, 피난 행렬이 생겨나고, 경제가 흔들리고, 가정이 무너지겠지요.”

“후후. 그게 이 몸의 위력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하루만 시간을 주시지요.”

“그쯤이야.”

간단하게 포르티스의 양해를 구해냈다. 라키엘은 진맥을 잠시 미루고 시종장을 불렀다. 그리고 황궁으로 보낼 공문을 작성하게 하였다.

공문 내용을 들은 시종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드…… 드래곤이…… 별궁 정원에 말입니까?”

“으음, 그대로 쓰면 돼.”

“하지만, 전하?”

“왜? 경도 저 환자분의 정체가 드래곤이라는 건 알고 있을 텐데? 가르딘 경에게 들었을 거 아냐.”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기겁을 해?”

“다름이 아니옵고, 거대한 드래곤이 정원에서 본모습을 드러내면…….”

“그 결과 일어날 혼란이 걱정되는 건가? 그래서 공문을 쓰는 건데?”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그럼?”

“정원에 심어둔 귀한 화초가…….”

“어?”

“그중엔 제가 이름을 붙이고 매일 아침마다 직접 물을 주는 화초도…….”

“…….”

“이름이 아나스타샤라고…….”

“됐고. 시행해.”

“……전하아!”

시종장의 애타는 절규(?)도 소용이 없었다. 공문이 얄짤없이 작성되어 초고속으로 황궁에 배달되었다. 황궁의 놀람도 잠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덕분에 다음 날 정오, 별궁 정원이 싹 비워졌다. 드래곤의 본체 현신을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황제 아스테리온이 그 모습을 확인하러 친히 움직였다.

“하온데 폐하, 괜찮으시겠사옵니까?”

이곳은 별궁 본관 옥상.

그곳에서 황제의 호위, 근위대장 로베르토 경이 물었다.

“이렇듯 모습을 숨기시기보다는 아래로 내려가시어 황태자 전하와 함께 참관하시는 쪽이…….”

“아니 된다.”

칼 같은 확신을 품고서 로베르토 경의 조언을 자르는 황제.

그의 단호한 말이 이어졌다.

“짐이 내려가 녀석과 동석하는 순간, 녀석은 기고만장해지게 될 것이야.”

“하오나 폐하? 전하는…….”

“그래. 알고 있도다. 그렇게 쉽게 자만할 녀석은 아니지. 하지만 그럴 여지를 조금이라도 주고 싶지는 않군.”

“…….”

“실은 어제, 녀석이 보낸 공문을 받았을 때는 실로 경악하였도다. 설마하니 녀석이 드래곤을 구워삶을 줄은 몰랐거든.”

정말이었다.

물론 드래곤 환자가 별궁 한의원에 나타났고, 작은 소란을 피운 후에 떠났다는 보고를 며칠 전에 받기는 했던 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에서 끝날 줄 알았다. 설마하니 드래곤이 돌아오게 될 줄도, 정말로 별궁 한의원의 환자가 될 줄도 몰랐다.

‘저 아이는…… 어디까지 뻗어 가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자신은, 훗날 인류사에 길이 회자될 존재의 아버지로 역사서에 새겨지는 건 아닐까. 생각만 해도 날아갈 듯이 감격스러웠다. 보는 눈만 없다면 제자리에서 벙벙 뛰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였다.

자신이 이토록 붕 뜨는 기분인데, 당사자인 아들은 어떻겠는가.

“세상 어느 의사가 드래곤을 환자로 받아 진료를 해보았을까. 그런 위업을 세운 이가 또 누가 있을까. 없었도다. 적어도 짐이 아는 내에선 그러하지. 아마 녀석도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터이고.”

“그렇기에…… 황태자 전하가 자만할 여지를 주지 않으시겠다는 뜻이시옵니까?”

“그래. 자만은 나태와 방종을 부르는 법이니까.”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아들의 능력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걱정이 생겨 버렸다.

아들이 자신의 출중함에 취해 버릴까 봐. 하여 성장이 정체되거나 그릇된 길로 빠질까 봐. 오직 그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자꾸만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부모가 된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던가.’

걱정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건가.

이게 부모가 된다는 것인가.

새삼스러운 실감을 느끼며 황제는 아래쪽, 별궁 정원을 굽어보았다. 그곳에 자신의 아들과,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사내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황제와 별궁의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몸길이 120미터, 체중 6,500톤의, 초 경도 다이아몬드 180겹 엠보싱으로 이루어진 등갑을 지닌, 등갑룡 포르티스가 별궁 정원 시종장의 소중한 난초 ‘아나스타샤’를 쿠쾅 짓밟으며 본체로 현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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