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결전 병기의 위력 (1)
결전 병기.
국가적, 민족적, 종족적 운명을 건 거대한 전쟁에서 결판을 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최강 최후의 종결급 무기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 만큼, 고대 이후로 수많은 결전 병기가 역사의 페이지를 피와 오욕, 영광으로 장식하여 왔다.
인류 초창기 역사의 오버 테크놀로지 웨폰인 철제 무기. 동로마 제국의 액체 화학 병기인 그리스의 불. 냉전 시대를 거쳐 21세기까지 현재 진행형으로 군림 중인 핵무기까지.
물론 이곳 로라시아 대륙의 종족들도 비슷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드워프 종족에게는 유독 수많은 결전 병기가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최고의 대장장이가 100년의 세월 동안 두드려서 만든, 세상 어떤 물질이라도 베어낼 수 있는 극한의 검날이 있었다. 그러나 딱 한 번 드래곤의 비늘을 베어낸 직후, 빡친 드래곤의 딱밤에 의해 사용자와 함께 두 동강이 나는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 외에도 드래곤에 맞서도록 착용자의 전투력을 대폭 올려주는 기계 전투 갑옷, 드래곤의 습격에 대비하여 도시의 상공을 지키는 초대형 지대공 석궁, 드래곤의 일격을 능히 버틸 수 있는 거신의 방패까지.
그야말로 수많은 결전 병기를 만들어 낸 종족이 드워프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종족의 역사 초창기 시절부터 유독 드래곤에게 시달림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금광을 찾아내는 본능적인 재주가 있어서. 보물 세공에 뛰어난 재주를 지녀서.
드워프는 언제나 드래곤의 표적이 되었다. 속된 말로 하루가 멀다 하고 삥뜯기고 털리며 살았다.
물론 드워프라고 해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나름 반항을 시도했다. 보석 세공에 뛰어난 손재주를 무기 개발과 제조에 발휘하였다. 덕분에 그들의 무기 제조 능력은 나날이 발전하였으며, 위에 나열된 수많은 결전 병기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드래곤을 상대로는 효력이 없었다는 게 비극이었지.’
황실 공방의 드워프 장인, 아일스 코기두스는 굵은 눈썹을 찡그렸다. 조상들이 겪어온 수난과 굴욕, 좌절의 역사를 되새길 때마다 절로 숙연한 심정이 들었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망치질과 풀무질. 그 모든 대장장이 기술에 피와 땀으로 점철된 조상들의 드래곤 극복 의지가 깃들어 있음을 떠올리면, 사뭇 비장해지기까지 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간신히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조상님들, 드디어, 저희가 해냈습니다.”
그는 감격이 서린 시선을 들었다. 그의 말에 공방의 모든 드워프 대장장이들도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 방금 탄생한 새로운 결전 병기가 놓여 있었다.
이전의 어떤 무기와도 달랐다.
일단 사이즈부터가 거대했다.
총 길이는 약 200미터.
그 형상은 장대한 뱀을 닮아 있었다. 앞머리는 둥그렇고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졌다. 최고의 유리 장인이 달라붙은 덕분에 두께가 지극히 균일하여, 모든 방향에서의 압력에 능히 버텨낼 수 있는 뛰어난 내구성을 갖추었다.
거기에 몸통은 어떠한가.
장장 200미터, 지름 3미터에 달하는 원통형 몸통은, 각각 5미터 길이의 관절 39개로 이루어져 지극히 유연하게 구불거리며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관절의 둘레에는 탄성이 좋은 금속 뼈대가 두루 쓰였기에, 어떤 각도에서든 충분한 강도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었다.
“동지들이여, 우리가 만든 결전 병기의 모습을 보게.”
“코기두스 백년장님, 우리가…… 해낸 것 같습니다.”
“조상님들의 염원을 드디어 풀 수 있을 듯합니다.”
“마침내…… 우리가…… 흐흑!”
드워프 장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 어찌 아니 붉히겠는가. 자신들의 손에서 창조된 무기가 마침내 드래곤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장대한 드워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드래곤의 입에서 앓는 소리를 끌어낼 수 있게 되었음인데.
“그런데 코기두스 백년장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으음, 물어보게.”
드워프 장인들의 리더이자, 황실 대장간의 100년을 책임지는 백년장 코기두스가 동료 대장장이를 돌아보았다. 동료 대장장이가 물었다.
“생각해 보니 이번에 우리가 만든 이 결전 병기 말입니다. 완성이 되었음에도 아직껏 마땅한 이름을 붙이지 않은 듯하여서…….”
“아, 이름이라. 그건 이미 전하께서 붙여 주셨다네.”
“황태자 전하께서요?”
“으음.”
코기두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감격을 담아서 말하였다.
“전하께서는 역사상 최초로 드래곤을 유린할 이 무기에, ‘대장내시경’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음이야.”
“대장…… 내시경…….”
“뭔가 강력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을 주는 이름이로군요.”
“일단 대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과연 드래곤을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무기라는 느낌이 확 듭니다.”
“그럼, 이걸로 별궁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드래곤을 박살 내는 겁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자, 그러니 어서 모이게! 어서!”
코기두스의 성화에 모두가 최신형 결전 병기(?) 대장내시경 앞으로 후다닥 모였다. 그리고 각자가 포즈를 취하였다. 그러자 인간 화가가 대장간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캔버스를 펼치고 붓을 들었다.
대장장이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저기, 백년장님? 또 궁금한 게 생겼는데 말입니다?”
“으음, 물어보게.”
“저 인간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며, 우리는 지금 뭘 하는 겁니까?”
“황도의 최신 유행을 따르는 중일세.”
“유행……이라니요?”
“쯧쯧. 자네들은 아직도 못 들어보았는가? 인증샷 말일세. 인증샷.”
“예에?”
“황태자 전하의 별궁에 입원했던 귀족들이 한의원을 떠날 때마다 이런 걸 남긴다더군. 병이 완쾌되어 퇴원하는 순간을 기념으로 남기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니 우리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내 드래곤을 제압할 결전 병기를 완성한 이런 뜻깊은 순간이라면 더더욱 말일세.”
“……아!”
“그런 뜻이!”
“결전 병기와 우리의 기념비적인 모습을 종족의 역사에 대대로 남기실 생각이신 거로군요.”
“역시…… 백년장님다우신 안목!”
와글와글, 바글바글, 들뜬 드워프 장인들이 해맑게 웃으며 대장내시경과 더불어 인증샷을 남겼다.
그날 오후, 완성된 대장내시경이 마침내 별궁 정원으로 배송(?)되었다. 그 과정과 모습 또한 지극히 장관이었다. 무려 40대의 특대형 수레가 동원되었다. 기다란 대장내시경을 싣고서, 열차처럼 줄줄이 연결된 수레 행렬이 황도 시가지를 가로질렀다.
황궁 대장간에서 별궁까지.
수많은 구경꾼과 호사가들의 시선을 받았다. 별궁에서 기다리던 라키엘은 생각보다 훌륭한 퀄리티의 내시경에 방긋 웃었다. 그걸 본 드래곤, 등갑룡 포르티스의 행복지수가 음차원의 영역으로 추락하였음을 물론이었다.
“저걸…… 내 몸에 넣는다고?”
“예, 포르티스 님.”
“그게 가능할까?”
“당연하지요.”
“정말?”
“예.”
“…….”
좀 아니라고 해주면 안 돼?
포르티스는 애타는 시선으로 라키엘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항문을 통해서 수술을 진행할 기구를 넣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뜨악했지만, 막상 자신의 궁둥짝을 유린할 실물을 보게 되자 더더욱 거부감이 심해졌다.
정말로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과연 자신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냥…… 충수염이 좀 짜증 나게 아프고 계속 회복마법을 걸어서 터진 자리를 메꿔야 하지만…… 저딴 걸 내 몸에 넣을 바엔 그냥…….’
이대로 좀 불편하고 아프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자괴감이 실시간으로 전두엽 대뇌피질을 콕콕 쑤셔왔다.
그러나 이미 너무 멀리(?) 온 마당이었다. 눈앞의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랍시고 저런 비싼 기구까지 만들어 버렸으니, 이제 와서 싫다고 내뺀다면 무슨 욕을 먹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지금 와서 도망치면 내가 겁을 먹은 거라고 생각하겠지?’
황태자를 비롯한, 이번 일을 아는 모든 인간이 그렇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건 더 싫었다. 자신은 위대한 드래곤이었다. 한데 한낱 인간과 드워프가 만든 도구 따위에 겁을 먹고 도망쳤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 너무 늦어 버렸다.
‘젠장…… 젠장!’
외통수에 몰려 실시간으로 허물어지는 멘탈을 부여잡았다. 하지만 그의 멘탈을 더욱 와르르 흔들어댈 사실이 더 남아 있었다.
“어차피 저 대장내시경을 통해서 저와 데미안, 가르딘 경이 포르티스 님의 대장 내부로 들어갈 거니까 말입니다.”
“……뭐?”
“……예?”
“……네?”
라키엘의 폭탄선언.
그걸 들은 포르티스와 데미안, 가르딘 경의 눈빛이 다 함께 손잡고 멸망의 세레나데를 불러제끼듯 몹시 흔들렸다.
제일 먼저 반문을 꺼낸 이는 포르티스였다.
“저기, 잠깐만. 내가 방금 뭔갈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저와 데미안, 가르딘 경이 대장내시경을 통해서 포르티스 님의 내부로 들어갈 거라는 이야기 말인가요?”
“어. 그거.”
“제대로 들으셨는데요.”
“……어째서!”
포르티스가 빼액 외쳤다.
라키엘이 뭘 그리 놀라냐는 듯이 대꾸했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포르티스 님의 육체는 너무나 완벽하고 무결하며 튼튼해서, 외부에서는 결코 상처를 입힐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비늘을 가르지 못하고, 개복 수술을 할 수가 없으니까 항문을 통해서 내시경을 넣는 거고요.”
“아니, 그러니까 내시경은 그렇다 치고, 너희는 왜…….”
“사람이 들어가야 수술을 하지요. 탱탱해진 충수를 절제해서 떼어내야 할 것 아닙니까.”
“…….”
“게다가 여기 가르딘 경은 외상 관리와 수술에 관해서는 저보다 훨씬 뛰어난 의사입니다. 믿고 맡기셔도 될 겁니다.”
라키엘이 흐뭇하게 웃으며 가르딘 경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덕분에 가르딘 경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저기, 전하……?”
“응?”
“꼭…… 이 방법이어야 하는 겁니까?”
“으음? 뭐가? 왜?”
“아니, 그게, 꼭 드래곤…… 님의 뱃속으로 직접 들어가야 하는 건지가 궁금해서 말입니다?”
“당연히 들어가야지.”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방금 내가 포르티스 님한테 해드린 설명을 들었을 텐데.”
“예…….”
“그럼 이유는 충분히 알겠네.”
“…….”
“게다가 생각해 봐. 가르딘 경? 이번 기회에 인류 최초로 드래곤의 항문에 들어간 사람으로 역사서에 길이 남겨지…….”
“……고 싶지 않단 말입니다아아!”
가르딘 경이 눈물을 뿌리며 진료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의 텅 빈 자리만큼 진료실이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데미안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저, 퇴직…….”
“하지 마.”
“…….”
“하기만 해봐, 아주.”
“…….”
데미안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진심으로 생각했다. 드래곤 항문 돌입조라니. 그럴 바엔 차라리 마계왕을 확 깨워 버릴까. 온 세상이 멸망하면 자신이 드래곤 항문으로 들어갈 일도 사라질 테니까. 어쩌면 그게 낫지 않을까.
‘인생 진짜.’
데미안의 한숨이 깊어졌다. 그걸 보는 드래곤 포르티스의 눈빛이 우수에 젖었다.
‘용생 진짜.’
……그렇듯, 라키엘의 거친 생각과, 모두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드래곤의 회한 가득한 번민 속에서 마침내, 역사적인 드래곤 대장내시경 시술이 Ang 하고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