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결전병기의 위력 (2)
“자기야, 앙?”
“아앙.”
“꺄르륵-!”
“…….”
흑마법사 아난샤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의 황도 마젠타. 이 역사적인 도시에 첫발을 디딘 유의미한 순간에 들려온 저런 끔찍한 염장질이라니.
그는 약간의 원망이 담긴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방금 고농축 천일염을 팍팍 뿌려댄 커플은 어느새 인파 속으로 사라져 찾을 길이 없었다.
“쯧.”
신경 쓰지 말자. 이제부터는 이곳에 온 목적에만 집중하자. 그는 새삼스럽게 다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이 황도 마젠타인가.’
드넓은 거리는 화사했다.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인종과 종족이 뒤섞여 다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륙의 모든 인종과 종족을 다 모아놓은 전시장 같은 느낌. 과연 제국의 수도다웠다. 괜히 이곳이 ‘온 세상의 도시’라고 불리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거사를 벌이려 한다.
“…….”
아난샤는 자신이 지닌 힘을 떠올렸다. 다른 흑마법사들에게도 숨겨온 온전한 자신의 정체 또한 떠올렸다.
그러니 이제부터…….
“말 좀 묻겠소.”
아난샤가 한창 다짐을 곱씹던 도중이었다. 때아닌 물음이 그의 고막을 푹 파고들었다. 누가? 고개를 돌려보니, 2미터에 육박할 키의 거한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뭡니까?”
언제 다가왔지?
아난샤는 경계심을 품으며 거한을 살폈다. 자신 못지않게 멀리서 온 여행자인 걸까. 엄청나게 초라한 행색이었다. 제법 배를 곯았는지 볼은 푹 꺼졌으며, 옷도 군데군데 찢기고 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초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또렷하고 형형했다.
거한이 물음을 던져왔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 말 좀 묻겠소.”
“사람을…… 말입니까?”
“그렇소.”
거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난샤는 자신도 외지인이며, 방금 황도에 도착한 거라고 말하며 물러나고 싶었다. 그런데 거한은 그럴 틈을 주지 않고서 다짜고짜 물음을 던져댔다.
“리한 군의관을…… 아시오?”
“예?”
“리한 군의관 말이오. 통통하고. 빨간 머리에. 좀 건방지지만 이야기는 잘 들어주는 사람인데.”
“그게…… 누굽니까?”
“도망을 쳤소. 감히. 날 버리고.”
“…….”
“그래서 쫓아갔는데…… 리한 군의관이 이만큼 커져서……날 패대기쳤소. 쿵쿵. 쾅쿵쾅.”
“…….”
“하지만 난 그를 원망할 생각이 없소. 그저 꼭 찾고 싶은 생각뿐이오. 아니, 반드시 찾아야 하오.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 두통이 사라지거든.”
“……예에?”
무슨 소리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데 거한은 더욱 이해 불가의 행동을 보였다.
“리한 군의관의 노래와 함께 말이오. 내 손은 약손~ 내 손은 약손~ 에헤이야~”
“…….”
뭐지 이 미친놈은.
아난샤는 한 발짝 샤샥 물러났다.
“미안합니다. 그런 사람 모릅니다.”
“하지만 저기…….”
“다른 분한테 물어보십시오.”
확실하다.
미친놈이 맞다.
괜히 말 섞어 주다간 골치만 아파질 것 같으니 무시하자. 결론을 내린 아난샤는 재빨리 거한과의 거리를 벌렸다. 인파 속으로 능숙하게 섞였다. 다행히 거한이 더 따라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돌릴 수 있었다.
‘쯧. 제국의 황도라서 그런가. 별의별 인간이 다 있군.’
참으로 성가시기가 그지없다. 그러니 얼른 거사나 준비하자. 권속들을 불러들이자. 거사를 통하여 다른 흑마법사들을 끌어들이고 장대한 계획의 주춧돌을 심자.
아난샤는 결심하며 황도의 대로를 가로질렀다. 물론 그는 까맣게 몰랐다. 방금 자신이 받았던 질문의 탐색 대상이 바로…….
“리한 군의관…… 별명이 황태자인 거 같던데.”
아난샤를 놓친 거한, 한때의 반란자 쟈빌론이 아픈 머리를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수시로 혼탁하게 꼬이는 기억. 그러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단 하나의 강렬한 목표. 쟈빌론은 거리의 다른 행인들을 붙잡고서 똑같은 질문을 던져 대기 시작하였다.
♣
“황태자여, 내가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도다.”
“예. 물어보시지요,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꼭 이런 자세여야 하나?”
“예. 꼭 이런 자세여야 합니다.”
라키엘이 당연하다는 듯 빵긋 웃었다. 그 웃음에 드래곤, 포르티스의 거대한 안면 가득 먹구름이 끼었다. 그는 불만스럽게 꼬리를 탕탕 흔들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대장내시경이라는 걸 받기 위해서, 시술이 진행되는 내내 이런 수치스러운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그래야 내시경이 안전하게 잘 들어가니까요?”
“…….”
위험했다.
순간 납득할 뻔했어.
포르티스는 그 사실에 작은 비애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유지하고 있는 이 ‘수치스러운 자세’를 새삼 점검하였다.
자신은 옆으로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두 팔로 뒷다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에 반해 꼬리는 한껏 뒤로 젖혔다. 덕분에 둔부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렸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환자분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이곳 정원에 출입금지령을 내렸으니까요.”
“그런데 저것들은 뭐지?”
“아, 이제부터 시작될 시술을 도울 인원들입니다.”
“저 많은 것들이? 전부? 족히 30명은 되는 것 같은데?”
“예. 저희 별궁 한의원의 훌륭한 간호사님들이지요.”
“훌륭하고 자시고 간에, 어째서 저것들이 내 수치스러운 모습을 구경하게 되는 거지?”
“말씀드렸잖습니까. 시술을 도울 인원들이라고 말입니다.”
“무슨 도울 일이 있다고!”
“도울 일이 많지요. 워낙 규모가 큰 시술일 거라서.”
“하지만!”
“시술…… 이제 와서 안 받으시려고요?”
“…….”
“혹시 두려우신 겁니까?”
“천만에!”
포르티스는 울고 싶어졌다.
라키엘은 더욱 방긋 웃었다.
“네. 당연히 두려움 같은 건 없으시겠지요. 위대한 드래곤이신데. 시술 동의서도 손수 다 작성을 하셨는데.”
“…….”
“그럼 이제 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크흣.”
“예?”
“아, 아니다. 빨리 시작하라.”
“물론이죠.”
“…….”
음차원의 영역으로 쑴펑쑴펑 추락하는 포르티스의 행복지수!
그 사이, 라키엘이 눈짓을 주었다. 황태자의 눈짓을 받은 데미안과 가르딘 경의 행복지수도 장렬한 번지점프를 선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드래곤처럼 말대꾸를 해 볼 권한이나 배짱도 없었다.
까라면 까야 하니까.
그것이 직업인의 비애니까.
그래서 깠다. 걸치고 있던 외투를 까듯이 벗고, 특수복을 입었다. 아니, 그것은 옷이라기보다는 우주복이라고 불러야 더 어울릴 모습의 방호복이었다.
“으, 우읏.”
미스릴을 비롯한 특수 금속. 거기에 갖가지 보호 마법이 덕지덕지. 황궁의 드워프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드래곤 대장내시경 시술용 특수방호복.
덕분에 20킬로그램이 넘어가는 묵직한 중량을 자랑했다. 나름 건장한 체격의 가르딘 경마저도 잠시 비틀거렸을 정도였다.
물론 라키엘도 예외가 아니었다.
‘후아. 장난이 아니네, 이거.’
실제로 입어보니 전신이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걸 입지 않고서 드래곤의 창자 속으로 들어갔다가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최악의 경우엔 소화액에 전신이 녹아 버릴 수도 있으니까.
라키엘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숨기며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시작될 시술에 앞서 다시금 주의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 안다. 뱃속이 거북하게 느껴져도 움직이지 말라고?”
“예. 기억해 주시니 다행이로군요.”
“넌 드래곤의 기억력을 뭘로 보는 건가.”
“죄송합니다. 어쨌건 그럼, 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우루스!”
라키엘이 신호를 보냈다.
대기하던 우루스가 화답하였다.
“누우우!”
콰르륵!
미노타우로스의 왕이 전신의 근육을 불끈거리며 대장내시경을 붙잡았다. 그 사이, 보호복을 착용한 라키엘과 데미안, 가르딘 경이 차례로 내시경 내부로 들어갔다. 아니, 탑승했다.
“시작해.”
탑승(?)을 마친 라키엘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우루스가 화답하였다.
“누우-!”
쿠구구……!
우루스가 거대한 내시경 머리를 짊어졌다. 쿵, 쿵, 묵직한 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이 향하는 곳에 드래곤의 웅장한 궁둥짝이 있었다. 그 중심에 목표(?)가 보였다.
“누우!”
저곳(?)으로 찌르면 되는 거랬지.
우루스는 자신의 임무를 떠올리며 어깨 삼각근에 힘을 불끈 주었다. 내시경 머리를 한껏 치켜들었다. 조준했다. 앞으로 돌격하였다.
“누우우우우!”
쿠콰콰콰콰-!
전력으로 달려갔다. 한계까지 속도를 올렸다. 체중을 한껏 실어 내시경을 앞으로 찔렀다. 동그란 유리로 만들어진 내시경 앞머리가 드래곤의 항문을 단숨에…….
“……!”
포르티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째서 눈가에 눈물이 흐르는 걸까. 용생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만약 내가 궁둥짝에 힘을 주면, 내시경에 탑승한 황태자와 나머지 둘은 괄약근에 끼어서 죽는 인류 최초의 인간이 되는 걸까.
비애감과 함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사이, 슬라임 젤을 듬뿍 바른 내시경이 드래곤의 대장 내부로 쑥쑥 들어갔다. 드워프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내시경 몸체의 관절 구조 덕분이었다.
끼릭, 끼릭!
모든 방향으로 90도까지 꺾일 수 있는 39개의 복합 관절 구조! 거기에 동그랗게 만들어진 앞부분까지. 모든 요소가 시너지를 발휘하였다.
덕분에 구불구불한 창자 속에서도 유연하게 움직이며 경로를 찾아갈 수 있었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드래곤의 대장 속으로 역주행하며 거슬러 올라갔다.
물론 그동안 라키엘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전방 20미터 지점에서 좌회전!”
그는 내시경 앞머리의 유리를 통해 경로를 관찰했다. 경혈 스캐닝도 발동하였다. 목표물인 맹장, 충수를 찾아 눈을 번득였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경로를 정확하게 지시했다.
그의 지시를 받은 데미안이 외쳤다.
“좌회전-!”
데미안의 우렁찬 외침이 내시경 소리관을 타고 웅장하게 울렸다. 머나먼 뒤쪽, 내시경 바깥으로 전달되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웨어울프 간호사가 귀를 쫑긋거렸다. 자신이 들은 외침을 다른 간호사들에게 전달했다.
지시대로의 조종이 즉각 이루어졌다.
“크르릉-!”
변신 상태의 웨어울프 간호사들이 대장내시경 꼬리 부분의 거대한 도르래를 힘껏 밀고 돌렸다. 도르래를 통해 발생한 기계식 동력이 내시경 관절을 움직이게 했다. 구불구불, 내시경 앞머리가 뱀처럼 움직이며 부드러운 좌회전을 선보였다.
그런 모두의 노력과 협동 플레이 덕분이었다. 드래곤의 대장 속을 전진하던 어느 무렵, 라키엘이 두 눈을 번득였다.
‘……찾았다!’
경혈 스캐닝을 통해 보였다.
대장 벽을 따라 균일하게 흐르던 마나의 기세가 꼬이고 흐트러진 지점이 포착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시뻘겋고 탱탱하게 부은 조직 일부가 보였다.
대장 안쪽에서 포착된, 충수로 통하는 맹관 입구였다.
그런데 막상 스캐닝을 통해 실물(?)로 보게 된 드래곤 충수의 모습이…….
‘어? 잠깐만. 저거, 왜 산삼이랑 똑같이 생겼어?’
확실하다.
진짜다.
딱 산삼이다.
그런데 크다.
그것도 x나 큰 산삼이다.
‘이건 못 참지!’
라키엘의 눈알에 희번덕 탐욕이 촵촵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