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49화 (249/468)

249화. 드래곤 대장내시경 시술법 (1)

‘이건 못 참지!’

라키엘의 눈알에 희번덕 탐욕이 쑴펑쑴펑 치솟았다.

산삼은 비싸다.

산삼은 몸에 좋다.

어쨌건 그래서 산삼은 비싸다.

비싼 건 좋은 거고, 좋은 게 좋은 거다. 아무튼 좋다. 산삼이면 아무래도 좋아. 산삼이니까. 일단 생긴 게 산삼이랑 똑같으니까. 뭔가 비슷한 구석이 있겠지. 그러니까…….

‘게다가 드래곤 맹장, 충수잖아?’

문득, 한국에 있던 시절 종종 읽었던 무협 소설들이 떠올랐다. 요즘 최신 무협은 몰라도, 고전 무협을 보면 꼭 등장하는 ‘내단’이라는 놈이 있었더랬다.

영물이나 귀하고 영험하신 신비의 동물 등등을 잡으면 나오는 보상, 심장, 쓸개라든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어쨌건 그런 걸 주인공이 먹으면…….

‘내공이 몇 갑자씩 팍팍 늘어나고, 만독불침의 신체를 얻고, 환골탈태하면서 키 크면서 얼굴도 잘생겨지고, 기타 등등!’

어쩌면 눈앞의 저 탱글탱글하게 잘 익어…… 아니, 부어 있는 드래곤 충수도 비슷하지 않을까. 드래곤이니까. 이곳 세상의 영험한 영물로는 최고봉인 존재니까. 그런 존재의 내장 쪼가리면 뭐라도 좋은 게 있진 않겠느냐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후우, 생각지도 못한 추가 소득, 나이스.’

어차피 수술로 떼어낼 충수다. 그걸 챙길 생각을 하자 야물딱진 웃음이 절로 빵긋 맺혔다.

“자, 그럼 연장, 아니, 수술 도구 챙기자고들.”

그의 목소리에도 즐거운 각오가 팍 들어갔다. 반면, 데미안과 가르딘 경은 전혀 그렇지 못했긴 했지만 말이다.

“후우…… 알겠습니다.”

“예…… 전하…….”

터덜터덜, 비실비실. 모시는 분의 유별남 덕분에 팔자에도 없던 드래곤 창자 탐험(?)을 하게 된 두 사람이 한숨을 쉬며 도구를 주섬주섬 챙겼다.

하지만 라키엘은 개의치 않았다. 두 사람을 향해 오늘의 임무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잘 들어. 나가면 바로 상황이 시작될 거야. 드래곤의 소화액이 지독할 수 있으니 마음의 각오를 해둬야 해. 알겠지? 그리고 데미안?”

“예, 전하.”

“네가 오늘 메스 역할을 해야 해. 알고 있지?”

“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반복해서 설명을 들었으니까요.”

“그럼 다시 듣자. 내가 지시하는 부위를 따라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량의 출혈이 일어나면 휩쓸려서 떠내려갈 수 있으니 절개 직후에 특히 주의하고.”

“예, 전하.”

“그럼 가르딘 경?”

“예에…….”

“안색이 왜 그래? 무서워?”

“아닙니다, 전하.”

“이미 여기까지 왔잖아. 자자, 힘내자고. 오늘 경의 손에 봉합과 뒷정리가 달려 있으니까. 긴장하지 말고.”

“저기, 긴장이 아니라…….”

“아니라?”

“소변이 좀…… 마렵습니다.”

“응. 긴장한 거 맞네.”

“잠깐만 내시경 좀 밖으로 빼서 화장실 다녀오면 안 될까요?”

“응. 안 돼.”

“어, 어째서 말입니까?”

“소변? 화장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힘들여서 넣은 내시경을 뺐다가 다시 넣겠다고 하면, 드래곤이 참 좋아하겠다. 그치?”

“…….”

“차라리 그냥 지려. 그게 분노한 드래곤한테 밟혀 죽는 것보단 훨씬 나을 테니까. 게다가 그 방호복, 보기보다 방수도 엄청 잘된다?”

“…….”

“안 새니까 안에서 말리면 아무도 모를 거야.”

“전하?”

“응?”

“……아닙니다.”

“방금 욕 하려고 그랬지?”

“아닙니다.”

“이번에만 대답이 빠르다?”

“…….”

“됐고. 그럼 시작하자.”

세 사람은 내시경 2번째 칸으로 옮겨갔다. 그곳에 바깥 출입을 위해 특수 제작된 2중 해치 격실이 있었다. 우주선에서 외부로 나갈 때처럼, 격실로 들어갔다. 격실에서 내부로 향하는 출입문을 닫았다. 그 후에 외부 해치를 열었다.

콰르르르르!

외부 해치를 열자마자 드래곤의 대장에 가득 차 있던 소화액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예상한 바였다. 셋은 당황하지 않았다. 격실이 소화액으로 가득 차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각자의 호흡을 점검했다.

‘오케이. 이상 없고.’

내시경 실내와 방호복을 연결해 주는 굵은 생명줄. 그 속에 공기 순환 호스를 삽입한 덕분에 호흡에도 지장이 없었다.

“그럼 가자.”

셋은 해치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대장 내부의 소화액은 흐름이 거칠지 않았다. 세 사람은 해저를 걷듯이 느릿하게 이동했고, 곧 대장과 맹관 경계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라키엘이 데미안과 가르딘 경을 돌아보았다.

“이제부터 잘 들어. 여기부터 여기까지, 맹관으로 통하는 지점 전체를 절개할 거야. 그 후에는? 안쪽에서 절개된 충수 조직을 잡아당겨서 안으로 끌어올 거고. 봉합은 그 직후에 신속하게. 대장 내부의 물질이 복막으로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알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데미안과 가르딘 경.

라키엘은 흡족하게 웃었다. 역시 이 두 사람이 제일 믿음직하다. 그러니 여기까지 같이 들어온 것이고.

“그럼 시작하자.”

라키엘은 경혈 스캐닝을 발동하였다. 다시금 충수와 조직 일대의 기혈 흐름을 실시간으로 관측했다. 그렇게 수술의 전체적인 집도를 맡았다.

데미안이 검을 빼들었다. 그가 오늘의 메스였다. 날카롭게 벼린 검이 드래곤의 대장 내벽을 조준하였다.

그 옆에서 가르딘 경이 특수 사이즈 겸자를 비롯한 수술 도구를 착착 정리했다. 데미안의 절개 작업을 보조하며, 이후의 봉합과 뒤처리를 도맡을 준비를 마쳤다.

“절개하겠습니다.”

데미안이 검을 움직였다. 라키엘이 알려준 절개 방향을 따라 신중하게 검을 그었다. 혹여나 너무 큰 상처를 내면 큰일이 날 테니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태앵!

검이 튕겨 나왔다?

“어?”

데미안은 흠칫했다. 뭘까, 이 엄청난 반탄력은. 아니, 마치 한없이 질긴 가죽을 억지로 베려다가 실패한 듯한 이 손맛은.

“왜 그래?”

마침 황태자가 물어왔다. 데미안은 별일 아니라는 듯 빠르게 대꾸했다.

“아, 생각보다 대장 내벽이 조금 질긴 것 같습니다.”

역시 드래곤이라서 그런가 보다.

보기보다 말랑하지가 않다.

‘그럼 조금 더 세게.’

데미안은 다시 검을 그었다.

하지만…….

태앵!

검이 또 튕겨 나왔다?

“…….”

다시. 더 강하게.

지짖짓…….

그제야 겨우 스크래치가 나기 시작하는 대장 내벽! 역혈의 심법을 동원해야 겨우 흠집이 나는 수준이라니. 말도 안 되는 강도였다.

‘내장 조직마저 이렇게 단단할 수 있는 건가.’

과연 등갑룡이라고 불리는 드래곤다운 위엄(?)이었다. 데미안은 내심 혀를 내두르며 역혈의 심법을 전개했다. 거의 소드마스터 쟈빌론을 제압하던 때만큼의 힘을 가하였다. 그제야 검 끝이 대장 내벽을 몇 센티가량 파고들었다.

그때부터였다.

검을 찌른 채 옆으로 밀었다. 데미안의 팔뚝에 힘줄이 돋았다. 대장 내벽에 기다란 칼빵(?)이 새겨졌다. 1분에 30센티씩.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꾸준히.

그 순간이었다.

투캉-!

검이 부러졌다.

아니, 검 끝이 으스러졌다.

“무슨…….”

데미안은 흠칫했다. 내장이 얼마나 질기면 1미터도 자르지 못했는데 검 끝이 으스러지고 뭉개지는 걸까.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는 않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여러 자루의 검을 챙겨왔으니까.

“가르딘 경?”

“으음. 받게나.”

새 검을 받았다. 다시 절개 작업을 이어 갔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챙강!

1미터 남짓을 겨우 절개한 끝에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전하.”

“응, 나도 봤어.”

“이제 검이 다섯 자루가 남았는데. 어떡하죠.”

“흐음…….”

라키엘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내심 철렁하는 낭패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거 난리 났네.’

두쿵두쿵, 심장이 실시간으로 16비트 봉산탈춤을 추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x 됐다는 예감이 친환경 차르봄바처럼 펑펑 터져 나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절개할 부분이 한참 남았는데. 이대로면 암만 봐도 검이 모자랄 거 같은데?’

딱 봐도 그랬다.

대략 견적(?)을 보자니 한 자루의 검으로 절개할 수 있는 길이는 대략 1미터 남짓. 남은 검은 5자루. 그러니 앞으로 절개 가능한 길이가 5미터쯤 될 거라는 소리다.

아주 신중하게 아껴서 써도 최대로 잡아야 6미터쯤?

그런데 그걸로는 택도 없겠다.

‘당연하지. 저거 지금, 절개 깊이도 얕잖아. 스캐닝으로 보이는 대장 벽 두께를 생각하면 한참 모자라. 같은 자리를 최소 세 번씩은 더 절개해야 해. 그렇게 계산을 해 보면…… 대략…… 필요한 절개 길이는…….’

얼추 12미터쯤 되겠다.

그러니까 결론은 명백하다.

‘ㅈ됐다!’

라키엘은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메스 역할을 해 줄 검이 모자라다. 검이 없으면? 아무리 데미안이라도 절개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결국?

‘수술을 진행하지 못하고 대장내시경을 빼야 하는 참사가 생기는 건데.’

과연 그 사태(?)를 드래곤이 용납할까?

아니.

절대로.

‘난리 났네.’

앞으로 진행될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착착 그려졌다. 너무나 뻔했다. 아무리 드래곤 포르티스가 관대하다고 해도, 이런 굴욕적인 시술을 또 받으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히 지금 이렇게 한 번의 시술을 받게 한 것조차도 거의 기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굴욕을 감수했는데도 시술에 실패하고, 목적은 달성하지도 못한 채로 내시경을 빼면? 아, 메스 역할을 해 줄 검을 모자라게 챙겨서 말입니다? 이번엔 잘 챙겼으니 다시 엉덩이 좀…… 이라고 말하면?’

……과연, 드래곤이 관대하게 방긋 웃어 줄까?

아니.

천만의 말씀.

개빡쳐서 별궁 한의원을 가루로 만들지도 모른다. 생각지도 못한 파국 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메스로 쓸 검이 모자라서! 고작 그 이유 때문에!

‘후우.’

라키엘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설마하니 내장 조직마저 이렇게 질기고 단단할 줄은 몰랐다. 그걸 예상 못 했다는 게 자신의 실수였다. 검을 더 챙겨왔어야 했다.

하지만 실수와 별개로 이미 닥친 상황이었다.

‘여기서 뭐라도 해야 해.’

이대로 빼는 건 안 된다. 그렇게 죽도 밥도 안 되면 모든 게 끝이다. 다시는 드래곤의 신뢰를 얻지도 못할 것이고, 추가 시술을 못 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엔 드래곤의 원수로 찍힐 수도 있다.

그러니 무조건, 여기 이 자리에서 해결법을 떠올려야 한다. 만들어야 한다. 검이 없으면 손톱으로 긁어서라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서라도. 뭐든지…….

‘잠깐.’

라키엘은 멈칫했다.

필사적으로 쥐어짜던 대뇌 전두엽 끄트머리에서 해법이 반짝, 떠올랐다. 그 해법의 정체는 바로.

‘만년필!’

방패 만년설과 짝을 이루는 화염의 무구. 오늘 수술에서는 긴급 지혈용으로 쓰일까 싶어서 챙겨왔던 만년필에 생각이 닿았다.

그는 도구 가방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하였다. 최대한 섬세하게. 원하는 온도의 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츠즈즉……!

만년필 끄트머리에 시뻘건 잉크가 맺히기 시작했다. 딱 봐도 엄청나게 뜨거워 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잉크를 대장 내벽, 절개 부위에 슥슥 발랐다.

곧 반응이 왔다.

치이이익-!

지글거리는 불판 위에서나 날 법한 그리운(?) 소리와 함께, 대장 내벽 절개 부위가 살포시 익었다. 그걸 보며 라키엘은 추억의 한순간을 츄릅 떠올렸다.

‘아, 막창 구워 먹고 싶다.’

동시에 한편으로 그는, 한국의 일상에서 얻었던 삶의 지혜 또한 떠올렸다. 아주 간단한, 한 번이라도 삼겹살을 구워 먹어 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몸으로 체득하는 원리였다.

그건 바로…….

“자, 데미안? 이제 다시 절개해 봐. 고기가 충분히 익었으니까, 아까보단 훨씬 쉽게 잘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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