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50화 (250/468)

250화. 드래곤 대장내시경 시술법 (2)

치이익!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 소리.

저 소리는 아름답다. 황홀하다. 육즙이 쫄깃쫄깃. 상상력이 쑥쑥. 절로 군침이 후룸라이드를 타고 식도를 초전도 펄스 패턴으로 안마하게 만드는 바로 그 향기와 맛, 소리!

하지만 고기를 구울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심지어 그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고기를 자르는 순간이 밑줄 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중요하지. 잘못 자르면 고기가 너덜너덜해지고. 어 왜 안 잘려? 이러면서 막 뒤적거리다가 육즙 다 빠져서 퍽퍽해지고. 그럼 너무 아깝잖아.’

그러니까 고기를 자를 때는 한 방에 깔끔하게 잘라내야 한다. 그러자면 고기가 너무 덜 익은 상태에서 가위질을 시작하면 안 된다. 생각보다 고기가 질겅거려서 깔끔하게 잘리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는가. 가위질하는 모습을 보면 고기 얼마나 구워 봤는지 견적이 딱 나온다고.

‘즉, 고기를 자를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굽기의 정도.’

지금도 똑같다. 드래곤 창자도 따지고 보면 고기니까. 그런데 고기가 안 잘려? 칼이 안 들어가고 부러져? 그래서 수술을 못 해? 그럼 간단하다. 익히면 된다. 적당히 구워 버리면 서겅서겅 수겅수겅 잘도 잘릴 거다.

“……라는 원리인 거지. 어때?”

꿀꺽.

데미안과 가르딘 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혼돈에 휩싸인 목젖의 출렁임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눈빛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라키엘이 눈치채지 못할 빛의 속도로 눈빛을 샤샤샥 교환했다. 우리 황태자 전하, 괜찮으실까요. 괜찮다네. 원래 좀 이상했잖나. 아하 역시.

“다 보인다. 눈빛 나누는 거.”

“…….”

머쓱해(?)진 두 사람을 향해 라키엘이 말했다.

“이거 왜 이래. 고기 안 구워 봤어?”

“구워 봤습니다.”

“그렇지?”

“예, 전하. 그런데-”

가르딘 경이 조금은 해쓱해진 낯빛으로 걱정스럽게 반문했다.

“이래도 괜찮을까요?”

“괜찮겠느냐니, 뭐가?”

“드래곤 말입니다. 지금 실시간으로 대장 조직이 뜨거운 열에 익어 버렸는데…….”

“아, 이거?”

라키엘이 만년필의 뜨거운 잉크에 익어 버린 수술 부위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렸다. 그의 입가에 별일 아니라는 여유로운 미소가 내걸렸다.

“괜찮아. 조금 따끔하겠지만.”

“따끔……이요?”

“어. 우리한테는 엄청 크게 보이는 부위지만, 덩치가 언덕만 한 드래곤에게는 뾰루지 정도의 면적으로 느껴질 거니까. 아마 손등에 촛농을 떨어뜨린 정도일 거야.”

“그, 그렇습니까?”

“어. 게다가 수술이 시작되기 전에 셀프로 마취 마법도 걸더라고.”

사실이었다.

이쪽이 드래곤 포르티스에게 미리 당부한 일이었다. 대장내시경은 그저 살짝 거슬리는 감각으로 그치겠지만, 본격적인 충수 절제가 시작되면 제법 아플 거라고. 그래서 묻는 건데, 혹시 셀프로 마취가 가능하냐고.

드래곤의 대답은 ‘예스’였다. 완전한 마취까지는 아니지만, 국소적으로 감각을 둔화시키는 마법은 가능하다고 했다. 하여 마법 사용을 부탁했다.

“그래야 우리도 안전해지니까. 만약 수술의 통증 때문에 드래곤이 몸을 비틀어대거나, 드래곤의 대장 조직이 꿀렁거리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생각해 볼 사람?”

“…….”

가르딘 경의 목젖이 상상력을 싣고 꿀꺽 움직였다.

“아마도, 음, 우리, 무사하진 못하겠지요?”

“분쇄되겠지.”

“…….”

“아마 최소한 아름답지는 못한 결과가 만들어질 거야. 그러니까 어쨌건, 이 정도 화상은 드래곤에겐 별일 아니니까 상관하지 말 것. 지금은 눈앞의 수술에 집중할 것. 알겠어? 데미안도?”

“예, 전하.”

데미안은 다시금 검을 들었다. 호흡을 고르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절개가 중단되었던 수술 부위를 노려보았다.

이번에는 잘될까.

부디 검이 오래 버텨 주기를. 그리하여 황태자의 호언장담처럼 수술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를.

바라며 신중하고도 과감하게 검을 움직였다.

그 결과는…….

수걱!

“……!”

생각보다 검이 스무스하게 대장 내벽을 파고들었다. 물론 여전히 엄청나게 질기고 단단했지만, 아까보다는 아니었다. 아까가 바위를 검으로 힘껏 긋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삼나무 책상을 검으로 가르는 기분이 들었다.

즉, 어찌어찌 할 만해졌다?

‘이게 될 줄이야.’

수술 부위를 절개하면서도 데미안은 내심 어처구니를 떨어뜨리는 웃음을 머금고야 말았다. 설마하니 수술 부위를 연하게 만들기 위하여 고기 굽기를 사용해 버리다니. 이토록 급진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을 떠올린 황태자가 새삼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게다가 황태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 손은 약손~ 내 손은 약손~ 에헤이야↗”

급기야 아예 옆에서 수술 부위 근처를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괴상한 노래를 불러 대기 시작했다. 예전, 앙부아즈에서 숱하게 듣고 보았던 그 괴상한 마취법이었다.

덕분에 집중력이 깨진 데미안은 칼질을 하다 말고 라키엘을 슬쩍 쳐다보아야 했다.

“뭘 봐?”

“……음, 그게, 지금 그 노래를 부른다고 하셔도 과연 소용이 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약빨 있거든?”

“그,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그러니 너는 곱창…… 아니, 창자를 썰거라. 나는 노래를 할 테니.”

“…….”

“뭐 해. 고고고.”

“…….”

신경 쓰지 말자. 정신 차리자. 데미안은 흔들리려는 멘탈을 힘껏 붙잡았다. 그리고 다시금 수술 부위 절개에 집중하였다.

썰고(?) 또 썰었다.

물론 마냥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익혔다 하여도 드래곤의 대장 내벽은 여전히 엄청난 강도를 자랑했다. 검이 부러졌다. 새로운 검을 다시 쥐었다. 또 절개했다. 부러졌다. 다시 새 검으로. 또. 땀을 흘려 가며.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검이 부러진 순간.

탱강!

“…….”

데미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손에 들린 반쪽짜리 검. 이제 더는 남은 예비 검이 없는데. 설마 실패인 걸까. 여기서 끝인 걸까.

아니었다.

옆에서 들려온 황태자의 신속한 지시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절개 완료. 이제부터가 중요하니 빨리 움직여. 빨리.”

정신을 차려보니 황태자가 예의 괴상한 노래를 중단하고서 재빠르게 손을 뻗고 있었다. 절개가 끝난 충수 조직을…….

“잡고, 당겨!”

지시에 따랐다.

힘을 썼다. 당겼다. 거대한 뾰루지처럼 염증으로 탱탱해진 충수가 대장 안으로 확 딸려 들어왔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황태자의 지시가 속사포처럼 이어진 까닭이었다.

“난 여기. 가르딘 경은 그쪽. 잡았으면 당겨서 맞물리게!”

황태자와 가르딘 경이 절개된 대장 내벽 양쪽을 잡아당겨 맞물리게 했다.

“데미안은 봉합용 바늘 들고! 찔러!”

외침의 뜻을 즉각 이해할 수 있었다. 드래곤의 내장 조직이 생각보다 질기고 단단하니, 가르딘 경의 힘으로는 봉합 바늘로 찌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즉석에서 역할을 바꾼 것이겠지.

그때부터였다.

데미안은 봉합 바늘을 들었다. 가르딘 경의 지시에 따라 차근차근 봉합을 실시했다. 다행히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조금 비뚤비뚤하긴 하지만, 옷을 바느질하는 것과 얼추 비슷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어찌어찌 수술이 끝났다. 떼어낸 충수 조직을 대장내시경 끝에 고정했다. 내시경 안으로 돌아왔다. 물론 보호복을 벗을 수는 없었다. 보호복이 온통 드래곤의 소화액으로 범벅이 된 까닭이었다.

“갑갑하겠지만 조금만 참아. 나가서 물로 깨끗이 씻어낸 후에 벗어야 안전할 테니까.”

“예, 전하.”

……이렇게 다 끝낸 건가.

데미안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땀에 젖어서 이마며 얼굴에 온통 달라붙은 머리칼을 좀 떼어내고 싶었다.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웃음도 나왔다.

“오늘 저 없었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습니까.”

저도 모르게 곁의 황태자를 향해 툭, 내려놓듯이 물었다. 들어왔던 때와 반대 경로로 빠져나가고 있는 대장내시경. 그 안에 나란히 앉아 숨을 돌리던 황태자가 소리 없이 웃었다.

“글쎄.”

“망하셨겠지요?”

“아마도?”

“인정하시는 겁니까?”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어? 저기 회충이다.”

“……예?”

“못 봤어? 방금 엄청 크고 허연 회충 한 마리 지나갔는데.”

“그런 게 있었습니까?”

“어. 있었어. 나만 봤나? 아깝다, 아까워. 우리 데미안, 진귀한 구경거릴 놓쳤네.”

“그런 건 딱히 안 봐도…….”

“살면서 드래곤 회충 직관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냐.”

“…….”

그런 거 필요 없다니깐요.

데미안은 내심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그와 반대로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곁에 있던 가르딘 경도 마찬가지였다.

“전하.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말입니다.”

“응? 가르딘 경도?”

“예, 전하.”

가르딘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은근슬쩍 진심을 담아서 물었다.

“저는 딱히 안 들어와도 지장이 없었을 것 같지 않습니까?”

“…….”

“생각보다 한 게 별로 없는 거 같아서…….”

“…….”

“그런데 왜 데리고 오셨습니까?”

“어, 봉합할 때 써먹으려고?”

“정작 바늘은 카이엔 경이 잡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봉합할 조직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줬잖아? 나랑 같이.”

“그건 딱히 제가 아니었어도…….”

“…….”

“저보다 힘세고 잘 당길 사람들, 별궁에 수두룩했을 텐데…….”

“음, 그렇게 들어오기 싫었어?”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아, 나와 함께 고난을 극복하는 게 싫었던 거구나. 그랬구나.”

“아뇨, 그게 아니라…….”

“뭐가 아니야. 맞는데.”

“…….”

“우리 가르딘 경, 그랬네. 그랬어.”

“…….”

궁지(?)에 몰린 가르딘 경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걸 보며 라키엘은 소리 없이 흐뭇하게 웃었다. 사실은 가르딘 경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책을 하는 거겠지. 자신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원래 봉합 담당이었으니까. 한데 그 역할을 데미안에게 맡겨야 했으니까. 아마도 미안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느껴졌다.

하지만 라키엘은 굳이 그걸 위로해 주진 않았다. 대놓고 그러면 나중에 가르딘 경이 혼자 더 자책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그는 그냥…….

“오늘 둘 다 수고했어.”

툭 내려놓아 건네듯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무심한 듯하게 슬며시.

좌우의 가르딘 경과 데미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역시 이런 방식이 낫다. 내심 흐뭇한 훈훈함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가르딘 경이 여전히 훌쩍이는 듯한 어조로 물어왔다.

“그런데 전하?”

“응?”

“그럼 이제 우리 말입니다. 드래곤의 항문에 돌입한 최초의 사람으로 역사서에 새겨지는 거겠지요?”

“어? 아마도?”

“크흑!”

“…….”

그냥 그게 싫었던 거구나.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어, 음, 미안.”

“……흐흑!”

“너무 그러지 말고. 수당 챙겨줄게. 보너스? 응?”

그 후로도 라키엘은 상심(?)한 가르딘 경을 한참 달래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시경이 드래곤의 대장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순간, 반가운 소리가 그의 귓가를 가득 채웠다.

딩동!

[세계사 등급 업적 달성!]

[당신은 세계 최초로 드래곤 대장내시경 맹장 수술을 성공리에 마친, 역사적 의료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이에 걸맞은 거대한 보상이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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