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내시경 시술의 후폭뿡 (1)
[세계사 등급 업적 달성!]
딩동!
‘오?’
역시나.
기다렸다.
이 정도가 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바보다. 그러니까 나는 바보인 거 같다. 설마하니 드래곤한테 대장내시경 시술을 해준 걸로 세계사에 이름이 떡하니 박히게 될 줄은 몰랐거든.
‘이거 실화냐…….’
라키엘은 실감이 나지 않는 눈길을 던졌다. 그 눈길을 따라 알찬 내용의 메시지가 야물딱지게 떠올랐다.
[당신은 세계 최초로 드래곤 대장내시경 맹장수술을 성공리에 마친, 역사적 의료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이에 걸맞은 거대한 보상이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어떤 보상일까.
‘아마도 보너스 수명은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다.
사람이 충수염으로 수술을 못 받으면 100% 죽지만, 드래곤은 다를 테니까. 실제로 포르티스도 충수가 터질 때마다 셀프 회복마법으로 버텼다니까. 그러니 이번 수술은 드래곤의 수명을 늘려줬다기보다는, 불편을 개선해준 정도라고 보아야겠지.
그러한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당신이 시행한 수술은 드래곤의 수명 자체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기나긴 용생의 편의와 행복지수를 증진하는 데에 크게 일조하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드래곤 대장내시경 시술을 받은 환자 : 포르티스가 매우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드래곤 포르티스가 당신을 용생의 은인으로 여깁니다.]
[드래곤 포르티스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당신에게 ‘드래곤의 가호’를 선물합니다.]
‘음?’
드래곤의 가호라니?
저건 또 무슨 소리일까.
생소한 용어 앞에서 라키엘은 어리둥절함을 느꼈다.
‘드래곤의 가호 같은 설정은 소설 마검황에서도 나온 적이 없었는데. 좋은 건가? 좋은 거겠지? 그럴 거야. 제발!’
일단 타이틀(?)만 보자면 제법 굵직한 보상의 냄새가 킁킁 느껴졌다. 기대감이 절로 빵빵하게 부풀었다. 과연 이어지는 내용은 그 기대를 충족해주기에 충분했다.
[<드래곤의 가호>는 드래곤이 타 종족에게 부여할 수 있는 최고의 명예 증서입니다.]
[<드래곤의 가호>는 드래곤이 공증하는 후원서이기도 합니다.]
[<드래곤의 가호>에는 크게 2가지의 특전이 주어집니다.]
[1. 방어적 권리]
[1-1. 이 가호를 받은 당신은 세상의 모든 드래곤에게 공격받지 않을 강력한 권리를 지닙니다. 이 권리는 가호를 부여한 드래곤, <포르티스>가 공인하고 보증하는 권리입니다.]
[1-2. 이 가호를 무시하고 당신을 공격하는 드래곤은 그 즉시 <포르티스>의 철천지원수가 될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모든 드래곤에게 중범죄를 저지른 공적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입니다.]
‘오오.’
나쁘지 않다.
일단 이걸 지니고 있으면 어떤 드래곤에게든 시밤쾅 하고 비명횡사 당할 일은 없겠다. 그럼 두 번째 특전은 뭘까. 이어지는 설명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거기부터가…… 더 대박이었다.
[2. 권능 대여]
[2-1. 이 가호를 지닌 당신은 1개월당 1회에 한하여, 가호를 수여한 드래곤의 특정한 권능을 무상으로 빌릴 수 있습니다.]
[2-2. 당신에게 가호를 수여한 드래곤은 <등갑룡 포르티스>입니다.]
[2-3. <등갑룡 포르티스>는 용왕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드래곤을 통틀어 가장 튼튼한 신체를 지녔습니다.]
[2-4. <등갑룡 포르티스>가 당신에게 빌려주는 권능은 <금강불괴>입니다.]
[2-5. <금강불괴>의 권능을 발현하는 동안, 당신은 외부로부터의 그 어떠한 험난하고 흉악한 공격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 절대적 방어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2-6. 권능의 대여 시간은 1회당 5분입니다.]
[2-7. 권능의 대여 쿨타임 기간인 1개월은 ‘보름달’의 월출을 기준으로 합니다.]
[2-8. 보름달이 뜨기 전에 사용하지 않고 남겨둔 권능은 다음 차례로 이월되지 않고 자동으로 소진됩니다.]
‘……미친. 대애박.’
입이 쩍 벌어졌다.
요약하자면 딱 이거다.
‘절대 방어 능력이네.’
1개월에 1회, 5분이라는 제한이 있지만…… 적어도 권능이 발현되는 동안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피를 볼 일이 없게 됐다. 말 그대로 활용하기에 따라서 여벌의 목숨을 왕창 지니게 된 것이나 다름없겠다.
게다가 보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딩동!
[당신은 드래곤 대장내시경 시술이라는 세계 최초의 사례를 통하여, 로라시아 대륙의 의료계에 기념비적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지금까지 로라시아 대륙의 외과 수술은 신체 외부로부터의 절개와 봉합에만 치중되어 있었고, 이것이 당연한 상식으로 통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환자의 소화관과 복강 등의 내부로 삽입한 기구를 통한 내측으로부터의 수술’이라는, 이곳 세계에서 완전히 혁명적인 신개념을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업적은 비단 의료계뿐만이 아닌, 로라시아 대륙 인류의 역사에 길이길이 새겨질 것입니다.]
[당신의 이러한 기념비적 업적이 두루 인정되어, 명의 포인트(GDP : Great Doctor Point)가 수여됩니다.]
[162 GDP 를 획득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명의 포인트(GDP) = 264]
‘후아.’
보상 폭풍이다.
이로써 GDP로 바꿀 수 있을 거짓말 이용권이 2장이 되었다.
‘좋다, 좋아. 그런데 보상이 여기서 끝? 설마? 아니지?’
라키엘은 대만족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여전히 탐욕의 눈길을 반짜닥 불태웠다. 그리고 은근슬쩍 대놓고 오장육부를 압박했다.
‘어이? 뭐 해? 내가 이런 공적을 세웠는데 너희는 축하 같은 거 안 하냐? HP 없어? 응?’
그랬더니 역시나(?) 반응이 왔다.
딩동!
[강요에 떠밀린 당신의 오장육부가 마지못해 박수를 칩니다.]
[심장 : ……어휴. 굳이 안 그래도 줄려고 했는데.]
[허파 : 허허허…… 퍼허헣…….]
[대장 : 주고 싶다가도 대놓고 저러면 참 주기 싫어지지 말입니다ㅎ]
[간장 : 더러워서 주고 만다ㅋ 안 그래도 우리 사실상 24시간 풀근무인 것도 빡치는데ㅋㅋ]
[위장 : 난 그래서 이름도 개명할라고.]
[콩팥 : 개명? 뭘로?]
[위장 : 야그누스 수당리스 잔업키우스.]
[비장 :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장 : 야잌ㅋㅋㅋㅋㅋ 미친놈앜ㅋㅋㅋㅋㅋㅋ]
[오장육부가 당신의 거대한 업적과 성과를 축하하며 2,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18,400]
보고만 있어도 든든해지는 보상 보따리는 여기까지였다. 솔직히 오늘은 밥을 안 먹어도 계속 배가 부를 것 같다고 생각하며 라키엘은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드래곤 맹장까지도 통째로 챙겼고 말이지.’
어느새 드래곤의 항문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된 내시경. 그 앞머리 유리창 바깥에 매달아 놓은 맹장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산삼이랑 똑같이 생겼다. 그럼 효능은 어떨까. 벌써부터 기대감에 심장이 두쿵두쿵 훌라춤을 추는 느낌이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제 다 끝난 건가?”
내시경 해치 밖으로 나와서 보호복을 세척하고 벗자마자, 위쪽에서 묵직한 물음이 날아왔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목소리. 드래곤 포르티스가 호박색 거대한 눈동자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 끝났습니다. 혹시 아프진 않으셨는지요?”
“별로.”
포르티스가 장대한 콧등을 잔뜩 찡그렸다.
“아프지는 않았는데…… 아랫배가 거북하군. 제법 많이.”
“당연히 그러실 겁니다.”
“당연히?”
“예.”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부에 팽만감이 느껴지실 겁니다. 내시경이 장에 원활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공기를 주입해서 말입니다.”
“공기를……?”
“예. 여기, 내시경 앞머리에 작은 관이 여럿 보이실 겁니다. 이게 후방의 외부에 설치된 수동 공기 주입기, 풀무와 연결되어 있거든요.”
“풀무? 그럼 설마 아까부터 웨어울프 간호사들이 눌러대던 손잡이가 바로…….”
“보셨군요. 예, 맞습니다. 열심히 풀무질을 해서 포르티스 님의 장에 공기를 넣은 겁니다. 풍선에 공기를 넣듯이 말이지요. 그래야 내시경 시술이 편해지니까 말입니다.”
사실이었다.
내시경 시술을 할 때 장에 약간의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 그래야 장 내벽이 달라붙지 않아서 내시경으로 장 내부를 제대로 관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그렇게 해야 공간이 확보가 돼서 장에 상처가 안 생기니까요.”
“……그런 건가.”
“예. 그래서 아마도 방귀가 제법 나올 겁니다.”
“방귀?”
“예. 생각보다 좀 많이 나오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제 여길 떠나실 테니 그건 별로 문제가 안 되겠지만요.”
라키엘은 역시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드래곤에게서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여길 떠난다고? 틀렸다.”
“예?”
저건 또 무슨 소리일까.
드래곤이 짧게 웃듯 콧김을 풍, 뿜었다.
“당분간 여기서 머무를 거다. 그걸 인간들은 ‘입원’이라고 하였던가.”
“예에? 입원을요? 포르티스 님이, 여기 별궁에요?”
“그렇다.”
“왜요?”
“왜긴. 내 장기 일부를 떼어냈지 않나.”
드래곤의 시선이 내시경 앞머리에 매달린 자신의 맹장을 향했다.
“인간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은 태어나면서부터 완전무결한 존재다. 즉, 신체의 모든 기관이 지극히 조화롭게 균형이 맞추어져 있다는 뜻이지. 그런데 오늘의 수술 때문에 그 조화가 흐트러졌다.”
“아…….”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건가?”
“예. 대략은. 오늘 수술로 장기 하나를 떼어냄으로서 마나의 조화가 흐트러졌고, 그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 요양이 필요하다는 뜻이시겠지요?”
“정확하다.”
“그런데 그 요양을 왜 굳이 이런 누추한 인간의 시설에서…….”
“이곳이 제일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지.”
“……예?”
“마나의 조화를 되찾기 전까지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게 됐다. 다른 드래곤의 침입이나 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을 거라는 소리지. 그래서 여기가 제일 안전하다는 거다.”
“어째서 말입니까?”
라키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 인간의 별궁인 이곳이 다른 드래곤의 습격으로부터 제일 안전할 거라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해답은 돌아오는 포르티스의 대답에 있었다.
“간단한 문제다. 용왕 베르키스 님이 선포한 ‘드래곤의 율법’ 때문이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어떤 드래곤도 합당한 명분 없이 타 종족을 수탈하거나 살육할 수 없도록 행동을 제한한 율법이다.”
“그런 율법이 있었습니까?”
“뭐, 인간의 법과 비슷하다. 항상 올바르게 칼 같이 지켜지는 건 아니지. 하지만 적어도 여기처럼 유명하고 주목을 받는 곳이라면 그 율법을 어겨가면서 날 공격할 놈은 없을 거다.”
“……아하.”
그러니까 이 드래곤, 인간 제국의 황도 별궁인 한의원을 방패로 삼겠다는 거구만.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쁜 거래는 아닐 것 같다. 이쪽도 대가로 뭔가를 요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그럼 대신…….”
“떼어낸 내 맹장을 갖겠다고?”
“……눈치채셨습니까?”
“아까부터. 내 맹장 덩어리를 볼 때마다 내비치던 탐욕에 찌든 시선을 어떻게 못 알아볼까.”
“그럼…….”
“가져라. 날 도와준 대가로 충분하다면 말이다. 어차피 내게는 의미가 없어진 덩어리이기도 하니.”
“감사합니다!”
……득템!
쾌재를 부르며 딜의 성사를 외쳤다.
그렇게 드래곤 포르티스가 별궁 한의원의 입원 환자가 되었다. 다만, 그는 폴리모프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신체 마나의 조화와 균형이 깨져서 당분간은 용언 마법의 사용도 조심해야 한다나.
“그럼 정원 한쪽에 드래곤의 신체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제일 넓은 잔디밭이면서도 주위가 야트막한 숲으로 둘러싸인 달구름의 별정원이 적당할 듯한데, 괜찮겠습니까?”
“뭐, 알아서 해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부터 방귀가 제법 많이 나오게 되실 텐데…….”
“혹시 위력이 너무 클까 봐 염려가 되는 건가?”
“죄송합니다. 워낙 강력한 분이셔서…….”
“아니, 괜찮다. 알아서 잘 조절하도록 하지.”
“예, 감사합니다.”
그 후로 내시경 시술 후의 주의점을 몇 가지 알려주었다. 그걸로 시술의 마무리 절차가 종료되었다. 쾌재를 부르며 드래곤 맹장을 챙겼고, 드래곤을 달구름의 별정원으로 안내했다.
모처럼 마음이 후련해졌다.
졸지에 떠맡은 드래곤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해서. 빵빵한 보상까지 챙겨서. 더는 걱정할 게 없다고 느껴졌다.
적어도, 한밤중에 지축이 흔들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콰아아아앙-!
“……!”
자정 무렵의 난데없는 대폭발.
별궁 한의원 정원의 부속 소영빈관 건물 한 채가, 포르티스의 폭풍 같은 드래곤 방귀에 휘말려 저 하늘의 별나라로 시밤쾅 사출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