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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252화 (252/468)

252화. 내시경 시술의 후폭뿡 (2)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은 은근히 많다.

시외버스를 타자마자 하핫 터져라! 를 외치며 빵빵해지기 시작하는 방광, 하체 운동을 처음 해본 다음 날 계단을 내려가다가 나도 모르게 순정만화 여주인공 자세로 풀썩 쓰러지게 만드는 저질 다리, 수술 후의 가녀린 궁둥짝을 비집고 나오는 웅장한 방귀까지.

그리고 오늘 여기.

또 하나의 비련(?)의 주인공이 탄생하였다.

그의 이름은 포르티스. 방년 3,610세의 꽃다……우진 않은 드래곤. 본의 아니게 자신의 항문을 인간들에게 개방한 역사 최초의 드래곤. 조금 전까지의 그는 나름 편안한 잠에 빠져들어 있었더랬다.

오랜만에 배가 아프지 않았다. 수년째 앓았던 충수염의 고통에서 해방된 첫날 저녁은 이 어찌나 안락하던지. 매 순간 습관처럼 시전해야 했던 셀프 회복마법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잠자리는 또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게다가 이곳은 인간 제국의 중심, 황도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별궁의 정원이었다. 그만큼 유명하고, 세간의 이목을 받는 곳이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어떤 주도면밀한 드래곤이라 해도 이런 곳을 뒤탈 없이 침공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세상에서 더없이 안전하게 느껴졌다. 평소 자신과 으르렁거렸던 몇몇 드래곤이, 자신의 수술 회복기를 절호의 설욕 기회로 여길 것임을 생각하자면 더욱 그러했다.

이곳은 안전하다.

그리고 나는 편안하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그러한 안도감이 그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팽팽하던 신경이 느슨해졌다. 느슨해진 안락함이 방심을 불렀다.

그리고 방심이 참사를 만들었다.

쿠와아아아아앙-!

그것은 아무런 예고도 없는 대폭발이었다.

“……긋?”

모처럼의 편안한 잠에 빠져들어 있던 포르티스는 기겁해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습격인 줄 알았다. 그만큼 엄청나게 웅장한 폭발음이었으니까. 몸을 누이고 있던 지축이 흔들렸을 정도였으니까.

‘어디지? 감히. 누구냐.’

순식간에 되찾은 팽팽한 긴장감. 적당한 경계심 속에서 포르티스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득였다. 감히 이곳까지 자신을 찾아온 대담한 적을 찾아내려 전신의 근육을 활성화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꾸르륵?

아직 적을 찾지도 못했는데 돌연, 아랫배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났다. 묘하게 배가 부글거리는 불쾌감. 거북한 느낌. 마치, 뱃속에 천둥이 도사리는 기분.

‘뭐지?’

포르티스는 의아함을 느꼈다.

3,600년이 넘는 용생에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종류의 이질감이었다. 어리고 어설프던 시절 마력 운용을 하다가 드래곤하트의 마나가 꼬였을 때도 이런 감각은 느껴보지 못했는데. 그런데 어째서 하필이면 누군가의 습격이 있는지도 모를 순간에 아랫배가 이러는 걸까.

……라고 생각하려던 무렵.

그는 느꼈다.

자신의 궁둥짝 골짜기 사이에서 용솟음치는 대폭풍의 칠성장어 승천댄스 회오리를.

쿠콰아앙아아앙!

“……!”

막을 수도 없었다.

참을 새도 없었다.

어? 하는 사이에 터져 나온 막대한 폭풍이 후방에 있던 모든 것을 휩쓸었다. 파릇파릇 자라나던 미래의 희망 같던 수양버들도. 어느 까치 부부가 오순도순 만든 둥지도. 그 언젠가 사랑스러운 어린이들이 소원 새긴 자갈을 던져넣은 아담한 연못도.

그 모든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포근하던 것들이 머나먼 저 하늘의 별나라로 사출되었다. 드래곤의 괄약근이 부주의하고도 힘차게 내뿜어낸 방귀 한 방에 의해서.

“무, 무슨……?”

포르티스는 대단히 당황하고 말았다. 그는 멍해진 눈초리로 폐허가 되어 버린 후방을 돌아보았다. 믿기지가 않았다. 꿈이라도 꾸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때로 현실은 악몽보다도 잔인(?)한 법.

……꾸르르륵?

“크읍?”

또다.

또 아랫배가 부글거린다. 묘하게 치닫는 불쾌감. 거북한 느낌. 뱃속에서 천둥의 잎사귀가 자라나는 파멸적 예감. 그리고 또…….

콰아아아아앙-!

“……어윽.”

시원하다.

이것은 파괴의 쾌감일까. 혹은 방출이 안겨주는 해방감일까.

도저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다.

‘이게…… 방귀?’

태어나서 처음을 뀌어보는 드래곤 방귀였다.

더불어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이 사태가 누군가의 습격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방귀가 만들어낸 재난(?) 상황이라는 것을.

그제야 뒤늦게 떠올랐다. 아까 낮에 인간의 황태자가 신신당부를 했던가. 대장내시경 시술 후에는 방귀가 많이 나올 거니까 참고하라고.

‘큰일 났네.’

방귀라는 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아니, 그보다도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어떤 변명을 해야 완벽한 존재인 자신의 위엄과 품위를 지켜낼 수 있을까.

열심히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반응은 두뇌가 아닌, 괄약근이 먼저 했다.

뿌콰아아아아아앙-!

‘어윽, 제발!’

포르티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참고 싶었다. 자신도 이러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안 됐다. 아랫배와 괄약근이 말을 듣질 않았다.

마법?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수술로 장기 일부를 떼어낸 것이 불과 반나절 전이었다. 덕분에 아직 신체의 마나 균형이 엉망이었다. 마나하트에서 마력을 끌어내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았다.

뿡쾅아가아캌아아쾅, 뿌다아아알갸!

“…….”

아아, 눈가에 흐르는 뜨거운 이것.

이것이 눈물이라는 이름의 참담함인가.

몇 번의 시도를 반복했음에도 무심한 방귀는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그때마다 포르티스는 땅바닥을 넘어 행성 내핵까지 파묻히는 자존감의 쪼가리를 느끼며 소리 없이 울었고, 서서히 자포자기의 심정에 젖어들었다.

하여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누웠다. 옆으로 다소곳하게. 두 손으로 무릎을 끌어안고서. 궁둥짝은 그나마 부술 물체가 적어 보이는 곳을 향해 두고서. 준비된 사수로부터. 발사.

뿌다다다콰카쾅!

폭음 사이로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소리들. 황도의 밤하늘을 온통 채우는 한밤의 경보음. 인간들의 다급한 외침. 수술 후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니 다들 진정하라는 황태자의 목소리까지.

‘이제는 나도…… 모르겠어…….’

그날, 방년 3,610세의 드래곤 포르티스는 기나긴 용생에서 처음으로 이슬 대신 눈물로 가슴을 적시는 촉촉한 밤을 보내어야 하였더랬다.

무심한 밤은 한층 깊었다.

더욱 무심한 괄약근은 밤새 뿌쾅 울었다.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미안하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포르티스는 아침 일찍부터 자신을 찾아온 황태자를 내려다보며 깊고 진한 에스프레소 액기스 10톤을 원샷한 듯한 씁쓸함을 느꼈다.

“나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겠군.”

“뭐, 자다가 깨는 건 저한테는 흔한 일입니다. 특히 최근엔 밤에 통풍 환자가 많이 찾아오기도 했고요.”

“다른 이들은?”

“조금 뒤척였겠지요.”

“……면목이 없군.”

그리고 수치스럽다. 황도의 수만, 수십만에 달하는 인간들이 모두 자신의 방귀 소리를 밤새도록 감상(?)했을 테니까. 그 생각만 하면 당장에라도 극지방까지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수치스러움을 드러내는 포르티스를 애써 위로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심하게, 별일 없었다는 듯이 대하였다.

“그럼 이제는 좀 괜찮으신가요?”

“보다시피.”

“네. 장에 찼던 가스는 무사히 다 빠져나온 것 같군요.”

“……날 탓하지 않는 건가?”

“예?”

“망가진 정원 말이다. 건물도 한 채 날아갔는데.”

“소영빈관 말입니까? 괜찮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없어서 인명피해도 없고. 마침 제법 낡아 있던 터라 허물고 다시 지을까 생각하던 중이었거든요.”

“그, 그런가?”

“예. 오히려 철거 비용을 아끼게 됐으니 이것도 나쁘진 않은 듯합니다?”

“…….”

그게 아닌 거 같은데.

포르티스는 더욱 침울해졌다. 그리고 문득 눈길을 돌렸다. 초토화가 된 정원 한쪽이 보였다. 그냥 아주 제대로 갈아엎었다. 바위고 나무고 뭐고 남은 게 없었다. 아예 당장 농사를 지어도 될 수준이었다.

“다시금 말하지만, 면목이 없군. 저 손해는 내가 반드시 배상하도록 하지.”

“레어에 쌓아 두신 보물로 말입니까?”

“그렇게 해서 만족이 된다면.”

진심이다.

인간에게 방귀로 민폐나 끼친 드래곤으로 기록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어떤 형태로든 이번 일을 황태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보상해주고 싶었다.

한데 그런 이쪽의 마음을 꿰뚫어본 걸까.

황태자가 냉큼 말했다.

“실은 제가 보물이나 금전은 이미 넉넉한 편이라서 말입니다. 가능하다면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받고 싶은데요.”

“다른 방식?”

“예.”

“말하라.”

“포르티스 님에게서 채취한 맹장을 약재로 활용하는 법을 좀 알려주시죠.”

“…….”

“어제 수술을 마친 후에 제 환상종에게 부탁해서 성분을 분석해봤는데 말입니다. 글쎄 이게, 생긴 건 산삼인데 약성이 지나치게 강력해서 말입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지나치게 강한 약은 독이나 다름없다고.”

라키엘의 입가에 쓴웃음이 피어났다. 사실이었다. 어제 저녁이었던가. 뽀복이에게 부탁해서 드래곤 맹장의 성분을 분석했다. 분명 유효한 약 성분이 잔뜩 있었다. 그런데 너무 잔뜩이라서 문제였다.

“저걸 그대로 약재로 만들어서 사람에게 먹이면…… 난리가 날 겁니다. 저 약기운을 견뎌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으니까요.”

“허. 그래서 지나치게 강한 약성을 중화할 방법을 알려달라?”

“예.”

“그건 간단하다.”

포르티스가 피식 웃었다.

“고위급 뱀파이어의 송곳니를 갈아서 만든 가루를 넉넉하게 뿌리면 된다.”

“……예?”

“뱀파이어의 송곳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독성을 해독하는 필터 역할을 하거든.”

뜻밖의 대답에 라키엘이 멈칫하는 사이, 포르티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흡혈귀들은 인간을 포함하여 온갖 사냥감의 피를 빨면서 다니지. 그런데 그 다양한 사냥감들이 전부 깨끗하고 맑은 피만 지니고 있을까? 아니. 당연히 아니야. 병에 걸린 놈, 중독된 놈, 혈액 자체에 유해한 성분이 있는 놈까지. 별별 사냥감이 다 있지.”

“어…… 그래서, 송곳니가 사냥감의 혈액에 있는 유해한 성분을 걸러내고 중화하는 필터 역할을 한다는 겁니까?”

“그렇지. 이해가 빠르군. 덕분에 뱀파이어의 송곳니 가루는 최고의 해독제로 불리지. 인간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그, 그렇군요.”

“그럼 너의 요구대로 내 맹장의 중화법을 알려줬으니, 내 방귀…… 아니, 부주의로 인해 생겨난 정원의 피해 보상은 마무리가 된 것인가?”

“예, 뭐, 음, 그렇습니다.”

라키엘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속으로 아차 싶었다. 설마하니 드래곤 맹장의 약성을 누그러뜨리는 데에 저렇게 초 희귀한 재료가 필요할 줄은 몰랐던 까닭이었다.

‘하아. 망했다.’

차라리 보물이라도 달라고 할걸.

그는 쑴펑쑴펑 샘솟는 난감함 속에서 기억을 더듬었다. 이 세계의 기반이 되는 소설인 마검황. 그 내용 속에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던가.

없었다.

아예 없었다.

뱀파이어의 뱀 자도 나온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내가 뱀파이어를 볼 일 자체가 거의 없을 거 같은데. 그놈들 송곳니를 어떻게 구해?’

절로 막막해졌다.

기껏 엄청난 영약이 될 법한 드래곤 맹장을 얻었는데, 그걸 유용하게 써먹을 길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쯧. 아깝다. 배가…… 아프다…….’

어젯밤의 드래곤이 대장내시경 시술의 후폭풍으로 배가 아팠다면, 지금의 자신은 먹음직한 보상을 꿀꺽하지 못하는 갈망으로 아랫배가 살살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아쉬웠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런 기분이 며칠이나 갔다.

덕분에 이런 생각마저 살포시 들었다.

차라리 별궁 한의원에 치과를 신설하면 어떨까. 그럼 치아 건강에 관심이 많을 뱀파이어들이 알아서 찾아오지 않을까. 그러면 치료를 핑계로 살짝 썩은 송곳니 몇 개쯤 뽑아서 수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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