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웅녀 테라피의 효능 (1)
사람을 비로소 사람으로 존재하게 해주는 것.
그것 중에 신을 향한 경건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만큼 으뜸인 것이 있을까. 황도 마젠타 교구의 대주교, 베르토나는 평소부터 그러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여 그는 기뻤다.
모처럼 황태자의 부름을 받아 별궁까지 오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대주교 베르토나는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솔직히 전부터 황태자와 교분을 다지고 싶었다. 한데 마땅한 계기가 없었다. 황제 아스테리온의 뇌졸중을 치료하던 때에만 잠시 접점이 있었을 뿐, 그 후로 황태자가 자신을 한 번도 부르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래선 안 되지. 곤란해.’
정말로 곤란했다.
장차 황가의 주인이 될 황태자였다. 한데 선대의 황제와 달리, 교단과 친밀하게 지내려는 기색을 영 보이질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황태자는 아예 별궁에 한의원이라는 것을 만들고, 나날이 키워갔다. 무상으로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최근엔 귀족들마저 한의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덕분에…… 황도 마젠타 교구의 수입이 25퍼센트나 줄어들어 버렸다!
“…….”
대주교의 표정이 아주 잠깐 침울해졌다.
사실 교단이라고 땅 파서 운영을 하는 게 아니었다. 신이라는 분은 사랑은 베풀어 주시되, 찰떡 크림빵을 내려주지는 않으셨다. 현실적으로 돈이 없으면 교단을 굴릴 수가 없었다.
그러한 교단의 가장 큰 수입원은 기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치료에 대한 감사의 기부였다. 교단의 성직자와 수도사들은 미약한 축복을 사용할 수 있고, 나름의 약초학에 조예가 깊었다. 사소한 감기나 몸살 정도의 질환은 다스리기에 충분한 역량이었다.
그렇게 명목상으로는 무상인 치료를 해주면,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감사의 형태로 기부를 하였다. 그것이 관례였고, 교단을 굴러가게 하는 경제적인 토대였다.
한데 황태자의 별궁 한의원 때문에 그 수입원이 왕창 깎였다. 이제 황도의 시민들은 아픈 곳이 생기면 근처의 수도원이 아닌, 별궁 한의원부터 찾게 되었다. 무상이니까. 치료 실력마저 더 뛰어나다는 소문이 자자하니까.
“……하아.”
다시금 흘러나오는 한숨.
솔직히 황태자를 찾아가 부탁이라도 하고 싶었다. 물론 불가능했다. 대놓고 ‘우리 수입원 끊기니까 당신네 한의원 영업 좀 줄입시다’라는 말을 황태자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찬스가 왔다!
황태자와 만날 기회가 생겼다!
‘무슨 일로 날 부른 걸까.’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기대감은 생겼다.
그동안 자신을 한 번도 찾지 않던 황태자의 부름이니, 분명 뭔가 아쉬워서 부탁할 일이 있겠거니 싶었다.
그러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황태자의 부탁을 들어주면 이쪽의 요구를 은근슬쩍 끼워 넣을 여지가 생겨날 테니까. 어떻게든 협상이라는 걸 해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나한테 부탁을 좀 해주세요, 황태자 전하!
대주교 베르토나는 바라고 또 바라며 별궁으로 들어갔다. 시종장의 안내를 받았다.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시종장이 안내를 하는 방향이 영 엉뚱했다.
“이쪽은 별궁 본관이 아닌 듯한데, 우리 어디로 가는 것인가?”
황태자를 만나는 거라면 응접실이 있는 별궁 본관이어야 할 텐데. 지금은 아니었다. 본관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시종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예, 대주교님. 황태자 전하께서는 1병동에서 대주교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1병동?”
“예, 대주교님.”
“…….”
뭘까.
어째서 자신을 환자들이 있을 병동으로 부르는 것일까. 해답은 병동에서 황태자와 비로소 마주하게 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대주교님. 먼 길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나저나, 이 환자 말입니다. 혹시 보고서 느껴지는 것이 있으십니까?”
“……예?”
자신을 보자마자 대뜸 환자 하나를 보여주는 황태자. 대주교는 얼떨떨함을 느꼈다. 그러다 이내 흠칫하게 되었다.
“어엇?”
황태자가 가리키는 환자를 보자마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마주쳐서는 안 될 존재와 맞닥뜨린 기분. 지극히 사악하고 음습하며 불쾌한 존재의 잔향. 찜찜함과 위기감, 경계심이 한꺼번에 범벅이 되어 뒷골에 달라붙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진단이 맞는 걸까요, 대주교님?”
“진단을…… 하신 겁니까, 전하?”
“예. 뱀파이어, 맞습니까?”
“…….”
대주교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확인이 필요해 보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런 그의 손에는 어느새 신성 교단의 둥근 상징물이 들려 있었다.
한데 대주교가 내민 상징물을 본 환자가…….
“그흡?”
눈을 홉떴다. 온몸을 경직시켰다. 그러더니 소리를 쳤다.
“사, 사람 살려어! 살려줘!”
“……!”
너무나 갑작스러운 난동이었다. 환자가 당장 이곳에서 뛰쳐나갈 기세로 날뛰었다. 만약, 적절하게 나선 수간호사 아니스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환자는 누가 말리기도 전에 창밖으로 뛰어내렸을지도 몰랐을 일이었다.
꽈악!
“……긥!”
아니스의 엄청난 악력이 환자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환자가 꼼짝도 못 하고 짓눌려 식은땀을 뻘뻘 흘려댔다.
대주교의 표정이 굳었다.
“성물을 보며 이런 반응이라면…… 이자…… 뱀파이어, 혹은 비슷한 다른 언데드로 몸이 변이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습니까?”
“예, 전하.”
“역시…….”
라키엘의 표정도 굳었다. 솔직히 혹시나 싶었다. 모든 환자들의 목덜미에 새겨진 송곳니 자국. 그리고 마늘 냄새를 기피하는 행동. 그걸 보며 ‘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대주교를 불렀다.
자고로 뱀파이어, 흡혈귀를 때려잡는 데에는 성직자만 한 존재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확인을 부탁했더니 결과가 역시나였다.
대주교가 심각해진 눈초리로 물어왔다.
“전하? 이런 자를…… 어떻게 데리고 있게 되신 겁니까?”
“어쩌다 보니 이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별궁으로 몰려오게 됐습니다.”
“몰려오게…… 됐다고요?”
“예.”
“그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전하?”
“대략 200명이 좀 넘는 듯하군요.”
“…….”
이제는 심각하다 못해 아연실색하는 대주교. 그를 향해 라키엘이 물었다.
“그래서 대주교님께 묻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혹시 교단에서는 뱀파이어로 변이되는 사람을 치료할 수 있습니까?”
어쩌면 치료가 가능할지 모른다. 교단이니까. 과연 잠깐의 당혹감을 털어낸 대주교가 믿음직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전하.”
“그렇습니까?”
“예.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상관없습니다. 전원 치료가 가능합니다.”
“오오. 어떤 방법을 쓰는 겁니까?”
치료율 100퍼센트라니.
이건 못 참지.
라키엘은 배움과 참고의 기회를 느끼며 물었다. 한데 돌아오는 대주교의 대답은…….
“불에 태우면 됩니다.”
“예?”
“자고로 뱀파이어 변이증에 걸린 사람은 정화의 불꽃으로 깨끗하게 태워서 재로 만들면 되는 법이니까요.”
“무슨…….”
“그렇게 남는 재는 안전하고 깨끗합니다. 정화의 불꽃이니까 말입니다. 당연히 변이증도 더 진행이 되질 않습니다, 전하.”
“…….”
어이가 없어졌다. 말이 정화의 불꽃이지, 직역하자면 그냥 환자를 화형하자는 뜻이 아닌가 말이다.
‘뭐 이렇게 극단적인 거냐고.’
그래. 태워서 없애면 변이증도 사라지는 건 맞긴 하네. 참 좋네. 깔끔하고. 여한 없이 한 줌 다이옥신으로 승천하고. 미세먼지 수치는 치솟고. 지구온난화는 가속되고. 호흡기 건강과도 영원한 안녕을 고하고. 아무튼.
“교단에서 쓰는 치료법이 설마, 그걸로 끝인 겁니까?”
“예, 전하.”
“…….”
“교단에서는 예로부터 가장 확실하고 전통적인 치료법으로 화형을 택했습니다. 물론 어이가 없으시겠지요. 선뜻 이해가 안 되시겠지요. 하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입니까?”
“애초에 뱀파이어 변이증이 치료가 불가능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변이증 환자를 보는 대주교의 눈빛에 안타까움이 스몄다.
“화형이 극단적이라는 점은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단은 예로부터 수많은 언데드, 그중에서도 뱀파이어와 대립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변이증의 결과는 변이, 혹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변이, 혹은 죽음이라…….”
“예, 전하. 교단에 쌓인 옛 기록에 따르면 변이증에 걸린 사람 20명 중의 하나가 뱀파이어로 거듭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반면, 나머지 19명은…….”
“죽는 겁니까?”
“예. 아마도 신체의 급격한 변이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 원인일 테지요.”
“……쯧.”
비로소 교단이 화형을 유일한 선택지로 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편으로 의문이 들었다.
“그럼 혹시 말입니다. 교단에서도 변이증 환자에게 갖가지 치료 시도를 해보았을 텐데, 그중에 마늘 요법이 있었습니까?”
“예?”
고개를 갸웃하는 대주교.
그 모습을 보자 예감이 들었다. 마늘을 써본 적은 없구나. 동시에 희망의 불꽃이 살포시 피어났다.
“그럼 대주교님? 다른 환자를 데려올 테니, 그의 상태도 한번 보아주시겠습니까.”
“다른 환자라니요?”
“나흘 동안 생마늘과 쑥만 먹인 환자입니다.”
“……예?”
대주교의 눈동자가 진도 8.0 규모의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개의치 않았다. 복도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이내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한때는 별궁 한의원의 의사였던 자, 발렌티노였다.
“이 환자입니다. 최초로 목격된 변이증 환자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럼 이 환자에게, 나흘 내내 생마늘과 쑥만 먹였다는 겁니까, 전하?”
“예.”
“그거, 고문 아닙니까?”
“변이증을 극복하고 인간으로 돌아오기 위한 치료법입니다.”
“…….”
그게요?
왜요?
대주교는 묻고 싶었다.
라키엘은 자신감(?)을 담아서 말했다.
“우연히 발견한 사실인데, 변이증을 지닌 이들이 마늘 냄새에 기겁을 하더군요. 예외가 없었습니다. 그걸 보니 문득 떠오르더군요. 동방의 어느 고대 왕국의 건국 신화가 말입니다.”
“건국…… 신화요?”
“예. 저도 우연히 접한 문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 건국 신화에 따르자면, 인간이 되고 싶은 곰이 마늘과 쑥만 먹고서 그 꿈(?)을 이뤘다더군요.”
“하지만 그건 비유적인 신화일 뿐인 듯한데…….”
“게다가 뱀파이어가 마늘을 극혐, 아니, 싫어하는 건 유명한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아뇨. 처음 들어봅니다, 전하.”
“그래요?”
“예.”
“…….”
이쪽 세계에선 그 사실이 안 알려져 있었구나. 애초에 여기 사람들이 마늘을 적게 먹어서 그런 건가.
뭐 어쨌건.
“그러한 발견을 통해, 저는 하나의 가설을 세웠습니다. 뱀파이어 변이증을 앓는 환자에게, 뱀파이어가 기겁하는 마늘을 대량으로 먹이면 변이증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 환자에게 생마늘을…….”
“예. 먹였죠. 꼬박꼬박. 삼시세끼.”
“…….”
미친 새끼.
대주교는 황태자의 마수(?)에 걸린 환자에게 안쓰러움을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눈앞에 새로 데려온 변이증 환자의 안색이 매우 칙칙했다. 볼은 움푹 들어갔고, 눈 아래는 퀭했다. 당장에라도 손대면 톡 하고 터질…… 아니, 쓰러질 것만 같았다.
‘세상에. 얼마나 괴롭게 시달렸으면 이 지경일까.’
안쓰러웠다. 보고 있자니 비통함과 인류애가 쑴펑쑴펑 치솟을 지경이었다. 차라리 화형으로 편하게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전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기엔 조금 주제넘을지는 모르겠으나…… 마늘을 먹인 이 환자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지요?”
“예, 전하.”
“그럼 아까 환자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 환자에게도 성물을 내밀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
왜?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대주교는 순순히 황태자의 말을 따랐다. 아까처럼 성물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환자 발렌티노의 멍하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 우으아악!”
아까의 환자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성물을 보자마자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나. 마늘 같은 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거다.
……라고 대주교가 착잡한 생각을 떠올리던 무렵.
황태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발렌티노? 성물이 좋아, 마늘이 좋아?”
“……성물이요!”
와락!
대주교가 어찌 반응할 틈도 없었다. 환자 발렌티노가 열렬한(?) 표정으로 성물을 와락 껴안았다.
로라시아 대륙에 전혀 알려진 바가 없던 뱀파이어 변이증의 신개념 치료법, ‘웅녀 테라피’의 효능이 처음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