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58화 (258/468)

258화. 흡입한다 부하아아앙 (1)

성물은 그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신이 내린 권능의 일부가 깃들어 있다. 그 양이 티끌에 불과할 극소량이라 해도, 발휘하는 신성력은 결코 조금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징성 또한 드높았다. 교단의 최상위 사제들에게만 주어지는 권위와 지위의 상징이었다. 대주교 이상급의 허락이 없으면 감히 지니거나 만지지도 못할 물건이기도 했다.

그런데 훼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신의 진노를 받을 일이다.

신성함을 모독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라고 생각했는데.’

대주교 베르토나는 마른침을 꿀꺼덕 삼켰다. 눈치도 없는 전신 모공에서는 식은땀이 갓 캐낸 아라비아 유전처럼 쑴펑쑴펑 치솟았다.

그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찌하여 성물이 작업용 고정쇠에 단단하게 물린 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인지. 어째서 자신이 톱을 들고 그 앞에 서 있는 건지.

“대주교님? 괜찮으십니까?”

믿기지 않는 상황에 멍하니 있던 탓일까. 대주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온 질문을 잠시 후에야 인지했다.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맞은 편에서 방긋거리는 은발 젊은이의 미소가 보였다. 황태자 라키엘이었다.

“혹시 이제부터 할 일에 법복이 불편하시면, 갈아입을 편한 의복을 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전하.”

“흐음, 괜찮다고 하시는 것에 비해선 땀을 많이 흘리고 계신데.”

“그야…….”

황태자, 댁이 성물을 반으로 뚝 자르자며 톱을 들고 왔으니까! 심지어 그걸 내 손에 쥐여줬잖나!

대주교는 속으로나마 빼액 외쳤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나, 이래도 되는 걸까.’

자신의 손에 들린 톱은 살벌했다. 날이 삐죽삐죽. 손만 갖다 대어도 상처가 날 것 같았다. 한데 이걸로 귀한 성물을 잘라야 한다니.

감히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이런 짓을 자신이 직접 하게 되리라곤 더욱 상상한 적이 없었다.

“신이시여…….”

절로 신음성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황태자도 그걸 들은 걸까. 묘한 눈초리로 이쪽을 쳐다보더니 이런 말을 툭, 건네어 왔다.

“대주교님? 혹시 두려우십니까?”

“예? 물론…….”

“저도 두렵습니다.”

“…….”

두렵다는 사람이 성물을 톱으로 자르자는 미친 생각을 이렇게 행동으로 옮깁니까?

대주교는 반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곧 깨달아야 했다. 황태자가 내뱉은 ‘두렵다’라는 말의 의미를 자신이 오해했음을.

“대주교님, 저는 환자들이 치료되지 못할 것이 두렵습니다.”

“…….”

“저를 희망으로 삼아 찾아온 사람들이, 끝내 좋은 결과를 맞이하지 못하여 더 아프게 될 것이 두렵습니다.”

“…….”

“그래서입니다. 성물이요? 백 번도 자를 수 있습니다. 만약 신이라는 분께서 정말로 우리 인간을 사랑하고 아끼신다면, 당신께서 내리신 물건이 사람을 치유하는 일에 쓰임을 오히려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저는 감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하…….”

“예, 대주교님.”

“정말로, 그러실까요?”

“답은 대주교님께서 저보다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

대주교 베르토나는 선뜻 대꾸할 말을 잃었다. 문득 부끄러워졌기 때문이었다. 감히 신의 성물을 자르려 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행위를 걱정하던 조금 전까지의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부끄러웠다.

‘나는 성물을 섬기는 사람이 아닌데.’

새삼 떠오르는 깨달음.

신을 섬기는 길에 처음 들어서던 시절의 다짐. 너무나 젊고 치기가 없었던, 그래서 오히려 지금보다 순수할 수 있었던, 그러나 오랜 시간 잊고 있던 다짐이 떠올랐다.

신을 섬기는 일은 사람을 섬기는 일이라고. 이웃을 사랑하고, 타인을 자애롭게 대하는 마음을 품으며,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신에 대한 봉양은 자연히 되는 것이리라고.

“…….”

나는 언제부터 그 깨달음을 잊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속세의 때에 더 많이 물들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대주교는 진심으로 반성하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안겨준 황태자에게 순수하게 감사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감사는 30초도 유지되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대주교님? 톱 좀 똑바로 잡아주시죠.”

“아, 예, 전하…….”

“이거, 우리 호흡이 잘 맞아야 잘 썰리는 겁니다?”

“아, 예에…….”

“꽉 잡으셨죠?”

“예, 전하.”

“그럼 시작합니다?”

황태자가 기다란 톱의 반대쪽 손잡이를 잡았다. 대주교도 비장한 각오로 톱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 톱은 양쪽에 손잡이가 있고, 중간에 기다란 톱날이 있는 형태였다. 그렇게 성물을 사이에 두고서, 2인용 톱질이 삐걱삐걱 시작되었다.

“영차, 영차, 하나둘, 하나둘!”

“끗, 급? 끳, 흡!”

“……대주교님?”

“예에?”

“혹시 톱질 처음 해보시는 겁니까?”

“아, 예. 보시다시피…….”

“후우.”

“…….”

대주교는 문득 억울해졌다. 정말로 톱질이 처음인데. 영 손에 익지가 않아서 서투를 수밖에 없는 건데. 사람이면 그게 자연스러운 건데. 어째서 나는 고작 톱질 때문에 황태자에게 혼이 나며 눈치를 보아야 하는 걸까.

“대주교님? 호흡을 잘 맞춰야 톱질이 잘되고, 그래야 톱질로 썰리는 물건의 단면이 깔끔해지는 법입니다.”

“아, 예…….”

“그런데 이렇게 삐걱거리면 성물에 흠집이 잔뜩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

“기왕 반갈ㅈ…… 아니, 뚝 자르는 거, 깔끔하게 해야 나중에 붙여도 뒤탈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말입니다. 전하?”

“예?”

“이걸 왜 저와 전하가 직접 해야 하는 것입니까?”

대주교는 진심을 담아 물었다. 솔직히 정말로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톱질을 어째서 서투른 자신과 존귀한 황태자가 직접 해야 하는가. 기왕 하는 거면, 익숙한 이들에게 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돌아오는 황태자의 대답은 뜻밖에도 너무나 단호했다.

“다른 이들을 시키자구요? 안 됩니다.”

“예? 어째서…….”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이런 짓을 하면 꼼짝없이 화형 당첨일 테니까요.”

라키엘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말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대주교님은 원래부터 신을 섬겨오신 분이시니, 설령 신의 진노를 받더라도 덜 억울하시겠지요. 게다가 엄연히 이 성물의 소유자이자 관리자이니 이런 일은 직접 하심이 옳고 말입니다.”

“그럼 전하께서는……?”

“저야 이 짓을 하자고 꼬드긴 사람이니 책임을 져야죠. 게다가 제국의 황태자이니 화형까지 당할 일은 없을 거고.”

“아…….”

“이해가 되셨습니까?”

“예, 전하. 다른 이들에게 덤터기를 씌우지 않겠다는 뜻이신 거로군요.”

“감사합니다. 정확하게 이해해 주셔서.”

“벼, 별말씀을.”

대주교는 당혹감을 감추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황태자를 슬며시 쳐다보았다.

방금은 솔직히 조금 놀랐다.

‘황태자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자신은 황태자와 딱히 교분을 다지거나 교류를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주위를 통해 들은 바는 있었다. 병약한 시절에는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던 황태자가, 건강을 조금씩 되찾으며 소탈한 모습으로 바뀌었노라고.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심지어 주위를 이런 식으로 배려하는 사람일 줄은 더더욱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황족인데. 그러면 자신의 안위부터 지나칠 정도로 챙기는 것이 몸에 밴 당연한 습관일 터인데. 그런데 신의 진노를 살지도 모를 이런 일을 스스로 감행하다니. 그걸 남에게 미루지 않는 이유가, 억울한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는 뜻이었다니.’

이런 생각을 하는 황족을…… 자신은 본 적이 있던가.

아니, 결코.

없다.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으며, 문헌으로도 좀처럼 찾아보지 못하였다.

한데 그런 전대미문적 사람이 눈앞에 있다. 심지어 셔츠 소매를 둘둘 걷어 올리고서 자신과 마주하며 씨익 웃어 보이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젊은 시절에 추구했던 이상적인 성직자의 모습과 닮아 보이는 것은 자신만의 착각일까. 그래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일까.

“……전하?”

“예?”

“아, 아닙니다. 톱질, 다시 시작할 테니 구령을 넣어주시지요.”

“당연하죠. 그럼 쉬려고 그러셨습니까?”

“예에? 그건 당연히…….”

“우리 대주교님, 그렇게 안 봤는데 말입니다?”

“허허. 저도 마찬가지로 전하를 보며 놀라는 중입니다.”

“좋은 뜻으로 주신 말씀이시겠지요?”

“허허허. 당연하지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각오는 되셨지요?”

“전하께서야말로 이번에는 감탄할 준비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과연. 지켜보겠습니다. 영차, 영차!”

“하나둘! 하나둘!”

……신이시여.

이 모자란 이가 당신께서 내리신 물건을 감히 훼손하나니, 그 대가로 저를 벌하시되 많은 사람을 아픔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소서.

대주교는 성심껏 기원하며 톱질에 집중했다. 황태자와의 호흡을 맞추려 노력했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혹은 톱이 좋은 덕이었을까.

성물은 의외로 톱질 몇 번 만에 깔끔하게 뚝 잘렸고, 속이 빈 반구 두 쪽으로 거듭났다.

“후우, 고생하셨습니다, 대주교님. 그럼 이걸로 바로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때부터였다.

자른 성물의 단면을 매끈하게 정리한 라키엘은 곧바로 치료를 개시했다. 환자가 된 발렌티노를 일으켜 세우고 상의를 벗겼다. 꼬슴이표 하얀 가시를 빼곡하게 꺼내 들고 시침을 시작하였다.

톳! 토돗! 톳!

우선, 척추를 따라 독맥(督脈)을 이루고 있는 척중혈(脊中穴), 현추혈(懸樞穴), 근축혈(筋縮穴)을 연달아 찔렀다. 한데 그 시침의 방법이 이전까지와 판이하게 달랐다.

푹푹푹푹푹푹푹푹!

찌르고자 하는 경혈을 마구잡이로 여러 차례 찔러댔다. 무자비하게, 바늘로 인형에게 화풀이를 하듯, 혹은 가학적인 새디스트가 성취감을 맛보듯.

덕분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엇?”

“허어?”

발렌티노를 잡아주던 아니스도, 소문이 자자한 황태자의 침술을 직관하게 된 대주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라키엘은 개의치 않았다.

‘다음은 임맥(任脈).’

독맥이 뒤쪽이라면, 임맥은 앞쪽이었다. 그는 임맥을 이루는 배꼽 위쪽의 하완혈(下脘穴)을 시작으로 더 위의 수분혈(水分穴)과 중완혈(中脘穴)에 시침을 하였다.

물론 방법은 아까와 동일했다.

푹푹푹푹푹푹푹푹!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마구잡이로 찌르기!

“…….”

저거, 정말로 치료를 하는 게 맞는 걸까. 모두가 그런 생각을 떠올릴 무렵이었다.

라키엘이 반구 형태로 잘린 성물 두 쪽을 부항컵 잡듯이 양손에 나누어 들었다. 양쪽 성물의 잘린 단면을 발렌티노의 배와 등에 갖다 대었다. 조금 전에 마구잡이 시침을 선보였던 자리였다.

포폭.

마치 밥그릇 두 개로 배와 등을 꾹 덮는 듯한 모양새.

라키엘이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했다. 그의 심장에 자리한 써클이 거세게 회전하며 강력한 흡입력을 호로록 발휘했다.

키이이이잉-!

흡입력에 이끌린 혈맥 속의 마나가 독맥의 척중혈, 현추혈, 근축혈로 몰려왔다. 아까 라키엘이 과격한 시침으로 낸 피부의 구멍을 통해 약간의 혈액과 함께 빠져나왔다.

뱀파이어 변이증에 오염된 피였다.

그 피를 부항컵 역할을 하는 성물이 맞이했다. 가두었다. 컵 바깥으로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그리고…….

……치이이익!

오염된 혈액이 성물 안쪽 면과 만났다. 빛의 속도로 순삭, 아니, 정화당하며 16비트 칠성장어 승천댄스를 흔들어 재꼈다. 뱀파이어 변이증 완치의 성공적인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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