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별궁 한의원의 이빨요정 (3)
딩동!
[불사복치 뽀복이가 스킬 <으앙 쥬금 ㅠㅠ (Lv. 1)>을 시전합니다.]
털푸덕!
뱀파이어 송곳니 가루를 흡입(?)한 뽀복이가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느러미의 불꽃이 꺼지고, 눈이 하얗게 뒤집어지고, 혓바닥까지 봬앩 내밀었다.
평범(?)한 약재 성분 분석 과정이었다. 이미 익숙해진 라키엘은 차분히 기다렸다. 역시나 잠시 후, 뽀복이나 눈을 반짝 떴다.
“……뽀?”
딩동!
[불사복치 뽀복이가 스킬 <부활! (Lv. 1)>을 시전합니다.]
[불사복치 뽀복이의 거대화 1스택이 적립되었습니다.]
힘찬 메시지와 함께 녀석이 벌떡 일어섰다. 일어나기가 무섭게 한숨부터 푸욱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지느러미를 뚝 떼 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불사복치 뽀복이가 스킬 <일기 쓰기 (Lv.1)>를 시전합니다.]
여기까지도 평소와 같았다.
그런데…… 녀석이 쓰는 일기의 내용이 심상치가 않았다?
[오늘의 일기]
[오늘도 주인이 이상한 걸 먹였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나. 딱 약팔이스러운 멘트로 날 꼬드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니깐. 괜히 낚여가지고 퍽퍽한 가루나 삼키고. 맛은 또 어찌나 짠지. 게다가 이거 무슨 물질인지는 모르겠는데 먹자마자 혈관이 터질 거 같아. 갑자기 온몸에 피가 확 많아지면서 혈관이 빵빵해졌다니깐? 아주 미치겠다, 내가.]
……뭐?
피가 많아졌다고?
혈관이 빵빵해져?
‘그게…… 가능해?’
상식을 파괴하는 내용에 라키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이었다.
딩동!
[당신은 뱀파이어의 송곳니를 원료로 하는 새로운 약재, <뱀각산>을 발견하였습니다!]
“…….”
이거 설마.
어쩌면 진짜로.
두근거리는 예감을 느끼며, 눈앞에 떠오르는 내용을 빠르게 읽어내렸다.
[약재명 : 뱀각산]
[성상 : 흰색의 분말]
[주요 성분 : 뱀파이어의 정수]
[효능과 효과 : 환자의 혈액 성분을 복제하여 혈류량을 대폭 증가시킴으로써, 심각한 빈혈 및 과다출혈의 응급 치료에 매우 유효함]
[사용상의 주의사항 : 다음 환자에게는 투여하지 말 것 - 혈류량, 혈압이 정상인 환자]
[부작용 : 본 약재는 빠른 시간에 복용자의 혈류량을 대폭 증가시키므로, 그 영향에 따라 심혈관계의 심각한 손상 및 뇌출혈을 초래할 수 있음. 복용 후 어지러움, 안면 홍조 등의 증상이 나타날 경우에는 즉각 투여를 중단하고 헌혈 요법으로 일정량의 혈류를 체외로 방출하여야 함]
[저장 방법 : 1~15℃의 건조하고 서늘하며 그늘진 환경에서 보관.]
[사용 기간 : 가루로 조제한 뒤로부터 30년]
[발견자 :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
‘이게 무슨…….’
라키엘은 눈을 부릅떴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복용하자마자 환자의 혈액 성분을 복사한다고? 그러니까…… 피를 뻥튀기시켜 준다고? 미친 거 아냐?’
하도 상식을 초월하는 내용이라 거듭 읽어보았지만, 역시나 사실이었다.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한의원에서 출혈과다로 죽을 사람은 없겠구나, 라고.
‘진짜 미쳤는데?’
물론 부작용이 커 보이긴 했다. 멀쩡한 사람에게 먹이면 오히려 사람 잡기 딱 좋아 보였다. 체내의 혈액이 갑자기 많아지면 그만큼 혈압도 팍 오를 거고, 전신의 실핏줄이 다 터질 테니까. 뇌혈관을 포함해서 주요 장기의 혈관에 엄청난 타격이 가해질 테니까.
“…….”
땡 잡았다.
난 그저 드래곤 맹장의 독성을 중화, 법제할 재료를 확보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법제 준비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법제를 시작하기 전에 성분을 확인한 것뿐인데. 그런데 법제 재료에 이런 뜻밖의 효능이 있을 줄이야.
‘포르티스의 말에 따르자면, 뱀파이어 송곳니는 최고의 독성 해독 효능이 있다고 했지. 그래서 딱 그 정도까지의 이득을 기대했던 건데…….’
이건 기대 이상의 대박, 초대박이었다.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라키엘은 경건해지는 심정으로 입꼬리를 귀에 걸었다. 그의 내부에서는 오장육부도 덩달아 신이 났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놀라운 발견에 함께 기뻐합니다.]
[심장 : 네? 피가 복사가 된다고요?]
[허파 : 허어…… 파하핳……ㅋ]
[대장 : 형님들? 허파 형님이 뻥치지 말라는데 말입니다?]
[간장 : 솔직히 나도 안 믿김.]
[위장 : 그래도 저거 사실이면 ㄹㅇ 개사기 아님? 출혈 심해서 숨 깔딱깔딱 넘어가는 부상자도 저 가루 먹이면 피 채우고 개 같이 부활이자나ㅋㅋㅋ]
[콩팥 : 우리 몸뚱이네 한의원, 우리 몸뚱이를 닮아가나? 점점 약점이 없어지네.]
[비장 : 엥? 뭔 소리임? 우리 몸뚱이 약점투성이 아님?]
[콩팥 : ㄴㄴ 약점 없음.]
[비장 : 왜?]
[콩팥 : 약점이라는 건 다른 곳에 비해서 특별하게 더 약한 곳을 가리키는 말이잖아?]
[비장 : 그렇지.]
[콩팥 : 그런데 우리 몸뚱이는 온몸이 다 폐급이잖아?]
[비장 : 그렇지.]
[콩팥 : 그럼 어디를 봐도 다 똑같이 약한 거니까, 특별하게 더 약한 곳은 사실상 없는 셈이잖아?]
[비장 : 그렇네.]
[콩팥 : 그럼 약점이 없는 거 아님?]
[비장 : 아하.]
[오장육부가 당신의 새로운 약재 발견을 축하하며 500 HP를 후원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18,900]
“…….”
아하는 개뿔!
라키엘은 때아닌 내면의 디스(?)에 개탄했다. 하지만 눈물을 훔치며 무너지는 대신 드래곤 맹장 법제에 집중했다.
‘이건 시간 싸움이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드래곤 내장이라고 해서 용가리 통뼈처럼 천년만년 유지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밀히 말하면 고깃덩이니까, 엄연히 유통기한(?)도 존재할 것이다.
한데 따지고 보면 드래곤 포르티스의 맹장 수술을 해준 지가 시일이 제법 지났다. 지금까지야 별궁의 식품용 저온 창고에 애지중지 보관했다고는 하지만, 더 늦으면 자칫 상해서 못 쓸 우려가 있었다.
‘그러면 피눈물 나는 법이거든.’
세상에 드래곤 맹장을 얻어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아마도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훨씬 희박한 확률이겠지.
그걸 잃을 수는 없다는 집념! 불의는 참아도 손해는 못 참는다는 확고한 신념! 불타는 의지로 무장하고서 그는 거대한 드래곤 맹장을 별궁 안뜰로 꺼냈다.
“누우우? 누우!”
쿠웅, 철퍽!
5미터 길이의 거대한 산삼 모양 맹장이 우루스의 괴력에 이끌려 안뜰에 놓였다. 라키엘은 맹장의 상태부터 점검했다. 다행히 아직 신선했다.
“좋아. 그럼 다들, 각자 역할은 잘 숙지했겠지?”
“꼬슴!”
“뽀보!”
“코몽!”
“누우!”
“꾸꺄!”
라키엘의 물음에 환상종 3총사인 꼬슴이와 뽀복이, 코몽이가 힘차게 대답했다. 우루스와 아피로스 여왕벌 애벌레, 꾸꾸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임무를 수행한 환상종은 코끼리 환상종, 코몽이였다.
“코모몽! 코몽!”
거대화한 코몽이가 코로 분수를 뿜었다. 미리 준비한 맑은 물이 시원하게 뿌려지며 드래곤 맹장을 씻어냈다.
물론 라키엘이라고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직접 솔을 들고서 맹장 겉면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후! 후욱!”
워낙 커다란 맹장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닦았는데도 금방 체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가히 시내버스 한 대를 칫솔로 혼자서 세차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일을 떠넘기지도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건 무조건 내가 직접 해야 해.’
법제를 하는 과정이 그렇다. 장차 자신의 한의원에서 환자들에게 쓸 약재다. 게다가 다른 이들은 만져본 적조차 없는 생소한 약재다. 한데 그걸 남의 손에 맡겨야 할까. 아니. 절대로.
‘오직 나만 경혈 스캐닝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걸로 맹장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으니까.’
드래곤의 맹장이라서 그런 걸까.
본체(?)에서 떼어낸 지 시일이 제법 지났음에도, 맹장에는 여전히 마나의 기운이 활발했다. 덕분에 경혈 스캐닝으로 그 흐름과 상태를 관측할 수 있었다.
“훅! 후욱!”
맹장을 다 씻어내는 데에만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꼬슴아?”
“꼬슴!”
꼬득, 퍼엉!
라키엘의 신호를 받은 꼬슴이가 빨간 해바라기씨를 씹고 거대해졌다. 온몸의 가시를 빡 세우고서 맹장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꼬스슴! 꼬슴!”
푸푸푸푸푹!
맹장에 미세한 구멍이 수천 개씩 생겨났다. 그 후에 우루스가 나섰다.
“누우!”
파팍!
구멍이 송송 뚫린 맹장에 굵은 소금을 팍팍 뿌렸다. 그렇게 소금에 절이는 것까지가 법제의 1단계 과정이었다.
“자아, 하루만 휴식!”
“꼬!”
“뽀!”
“코!”
“누!”
“꾸!”
법제의 피곤에 절은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동안 드래곤 맹장도 소금에 푹 절었다. 염분 때문에 조직에서 수분이 빠져나오며 숨이 죽었다.
그 후에는?
“양념 치대기!”
모두가 오순도순 모여서 뱀파이어 송곳니 가루, 뱀각산을 꺼냈다. 숨이 죽은 드래곤 맹장 전체에 뱀각산을 꼼꼼하게 발랐다. 주물렀다. 해독 성분 양념(?)이 충분히, 깊은 곳까지 배어들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이것은 가히 김장을 담그는 듯한 광경! 덕분에 라키엘의 입에는 침이 잔뜩 고였다.
‘아. 수육 땡긴다.’
자고로 김장하는 날에는 겉절이에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육 한 덩이를 알차게 싸서 새우젓갈 찍고 우물우물 씹어준 후에 막걸리로 입가심을 싸악!
그것이 전통이고, 진리이며, 인류의 DNA에 새겨진 법도이자 보편타당한 미풍양속이 아니겠는가.
“……하아.”
불현듯 고향의 입맛을 그리워하는 라키엘의 한숨 사이로, 역사적인 드래곤 맹장 법제의 첫 시도가 성공적인 결실을 맺었다.
그럼 다음 차례는?
당연히…….
“담가.”
퐁당!
거대한 산삼 모양의 드래곤 맹장이 통짜로 술에 담가졌다. 그 언젠가 숙성을 마치고 알차게 쓰일 날을 위하여. 앞서 담가진 선배(?)인 베스파로스 담금주, 기간토피스 담금주와 나란히 라키엘의 약술 콜렉션이 되었다.
그렇게 드래곤 맹장의 법제와 약술 담그기를 마친 후에야 라키엘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후아.”
하지만 한숨은 잠깐 몰아쉬는 것이기에 한숨일 뿐. 그는 잠시 미뤄두었던 다음 일에 곧바로 착수했다.
♣
“그럼 이제…… 정말로 시작하시려는 겁니까?”
“어.”
데미안의 물음에 라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황도에 사상 초유의 규모로 뱀파이어 변이증이 번졌던 상황이잖아? 그런 상황에서 스무 명이 넘는 뱀파이어가 무더기로 잡혔어. 그럼 변이증 확산의 범인이 누굴까?”
“그야 당연히…….”
“그래. 놈들이겠지. 혹은, 놈들을 움직이는 더 큰 배후가 있을지도 모르고. 문헌에 따르면 뱀파이어는 단독 행동을 선호한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스물이 넘는 놈들이 합숙하듯이 한 저택에 머물고 있다가 집단으로 사고를 당하고 매몰됐다? 이건 무조건 뭔가가 있는 거거든.”
그러하다.
하니 당연히…….
“이제부턴 놈들과 알찬 상담 시간을 가져야겠지. 그러니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물의 전사 아쿠아와 불의 전사 플레임이여, 준비됐나?”
빵긋 웃으며 돌아보는 라키엘.
그의 물음을 받은 일명, ‘아쿠아’와 ‘플레임’. 가르딘 경과 데미안이 각자 물고문용 고농축 마늘즙 물통과 불고문용 햇빛 돋보기를 들고서 착잡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