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흉수 족집게 (1)
고문은 무섭다.
비인간적이며 윤리에도 어긋난다.
그렇기에 때로는 정말정말 무섭다. 특히, 고문을 하는 자가 선을 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때가 그러하다.
바로 지금처럼.
“자아. 목마르지? 많이 마셔. 아쿠아?”
“예, 전하.”
“이분 목이 칼칼하시댄다.”
라키엘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그의 말에 ‘아쿠아’라고 불린 가르딘 경이 조용히 물통을 들었다. 그리고 물통 마개를 살포시 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저 물병을 열었을 뿐인데, 라키엘의 맞은편에 앉은 뱀파이어가 자지러지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읍? 으읍? 읍!”
물통의 뚜껑이 열리자마자 뱀파이어는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물통에서 불길한 냄새가 난다. 익숙한데 절대로 맡고 싶지는 않은 위험한 냄새다. 이 매캐한 자극. 후각과 영혼을 싸잡아 160km/h 포심 패스트볼로 지옥배송을 시작할 것 같은 이 감각!
‘마늘이다, 마늘이야!’
확실했다.
저 물통, 마늘즙이 들어 있는 거다. 콧구멍이 아니라 발가락 모공으로 맡아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짙은 냄새가 위기감을 새록새록 불러왔다.
“읍읍! 으읍! 읍!”
도망치고 싶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꽁꽁 묶인 채 온몸을 버둥거렸다.
그런 이쪽의 모습을 본 황태자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물을 마시려면 재갈부터 풀어줬어야 했는데.”
“읍! 으읍! 읍!”
“내가 배려가 부족했지? 미안해요?”
“……푸흐악!”
“어휴. 이제 숨 쉬기 편해졌죠? 물 마시기도 편해질 거야.”
“흐흡?”
“자아, 입 벌리시고.”
“읍!”
“벌리라고.”
“……긔엡.”
“아이고 착하다. 잘 마신다. 원샷.”
“……거거걲꺽ㄱ걱!”
강제로 벌려진 뱀파이어의 입속으로 마늘즙이 퐁실퐁실 흘러들어갔다. 양이 딱히 많지는 않았다. 너무 많이 마시면 배탈이 날 테니까. 딱 그러지 않을 정도로만.
“어때? 좀 시원해?”
“커거걱…… 콜록콜록!”
“아이쿠. 사레가 들리셨나? 좀 천천히 드시지.”
“나, 나한테 왜…… 커컥……!”
“왜긴. 편의를 봐주는 건데. 자, 다음 코스 갑시다. 플레임?”
뱀파이어에게 강제로 마늘즙 시식(?) 체험을 선사해준 라키엘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플레임’이라고 불린 데미안이 있었다.
“자아. 촉촉한 수분으로 몸을 적셨으니, 이제는 건강한 육체를 위해 선탠을 합시다아.”
데미안에게 신호를 보냈다. 데미안이 창가로 걸어가서 커튼을 걷었다. 촤악, 따스하고도 강렬한 햇살의 선샤인이 실내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덕분에 뱀파이어는 인상을 와락 찌푸려야 했다.
“……그읏!”
“아, 미안해요. 눈뽕이 좀 갑작스러웠나?”
“그으읏, 크읏!”
“따뜻하죠? 행복하죠? 알고 보면 적당한 일광욕이 우리 몸에 참 좋은 거거든요. 비타민D 합성도 팍팍 되고. 덕분에 골다공증 예방도 되고. 면역력도 올라가고. 거기에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도 활성화가 돼서 불면증과 우울증 퇴치에도 도움이 되고.”
“후, 후욱.”
“으음 그런데 역시, 이 정도 햇볕으로는 약빨이 없나 보네요? 생각보다 반응이 열렬하지가 않네?”
라키엘의 웃음이 은근해졌다.
뱀파이어는 원한 서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송곳니를 뽑아간 잔인한 인간 놈. 게다가 이런 고문까지 서슴없이 자행하는 놈.
‘하지만…… 이번엔 틀렸어. 내가 이런 평범한 햇볕 정도에 고통스러워할 줄 알고?’
속으로 비웃었다. 사실이었다. 아무리 뱀파이어라고 해도 건강한 상태라면 평범한 햇볕에 불이 붙거나 생명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다. 다만 그저 따갑고, 능력이 대폭 저하되어 불편해질 뿐.
이 정도의 햇볕에 위협을 받으려면?
아주 쇠약해진 상태이거나, 갓 태어난 약한 개체만이 위험할 뿐이다.
‘그러니 네놈이 내게서 뭘 얻으려는 건지는 몰라도, 이런 하찮은 수법은 통하지 않아!’
……라고 뱀파이어가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스윽.
라키엘이 데미안에게서 뭔가를 받았다. 아담한 손잡이. 그 위엔 동그란 테두리. 테두리 안쪽에는 도톰한 유리가 끼워진…….
‘돋보기?’
저게 왜 지금 나와?
뱀파이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라키엘의 입꼬리가 귀에 살포시 걸렸다.
“자아, 집중치료 들어갑니다아.”
치이익.
“……!”
“어이쿠. 여기 왕점이 있으시네.”
치이이익!
“……!”
이제 뱀파이어는 본격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만끽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라키엘도 돋보기로 한 점만 잔혹하게 지져대진 않았다. 오히려 화상을 입지 않도록 돋보기를 빠르게 움직여댔다. 그것만으로도 효과(?)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오오오오옥!”
“이야. 그렇게 좋아요?”
“갸아아야얄!”
차라리 죽여, 이 미친놈아!
뱀파이어는 말도 나오지 않는 고통 속에서 비명만 질러댔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황태자가 여전히 아무런 질문이나 목적을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즉, 정작 고문을 당하면서도 왜 이걸 당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차라리 질문이라도 받으면 대답이든 거부든 뭐든 하겠는데. 지금은 달랐다. 그저 어린애 손에 던져진 개미 꼴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끔찍하게 불안했다. 언제까지 이 짓을 당해야 하나 싶어서 막막하기도 했다.
물론 라키엘은 목적이 있었다. 그저 고통만 가하려는 가학적인 목적? 당연히 아니었다.
‘바뀐다. 녀석의 두뇌로 가는 기혈의 흐름이 바뀌고 있어. 역시…….’
마늘과 햇볕이 효과가 있구나.
라키엘은 고통에 부들거리는 뱀파이어의 신체를 관찰했다. 경혈 스캐닝 옵션은 진즉부터 켜둔 상태였다.
덕분에 낱낱이 볼 수 있었다.
뱀파이어의 두뇌 한곳에 배배 꼬여서 뭉쳐 있던 기혈의 흐름이 자극에 의해 조금씩 풀어지는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동시에 뱀파이어의 눈동자에 서린 핏빛이 서서히 지워져 갔다.
‘저 뭉쳐진 기혈의 덩어리, 그리고 붉은색 눈동자. 전부 세뇌의 영향일 거라고 했지.’
문득, 며칠 전에 대주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원래 뱀파이어는 독자적인 행동을 선호하지만, 간혹 수십의 단위로 뭉쳐서 움직일 때가 있다고도 했던가.
그러면서 당부했던 말이…….
‘그렇듯 뭉쳐서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대개, 그들을 지휘하는 강력한 상위의 존재가 있기 마련입니다. 또한 그런 경우, 지휘를 받는 하위의 뱀파이어들은 세뇌와 정신지배 상태에 놓이곤 하지요.’
……라고 했다.
딱 이번 케이스와 일치했다.
당연히 이놈들도 상위의 존재에게 세뇌와 정신지배를 받는 상태이리라 여겼다. 하여 송곳니를 뽑을 때부터 경혈 스캐닝으로 기혈을 관찰했다. 과연, 두뇌 속에 배배 꼬이고 뭉친 기혈의 덩어리가 보였다.
‘역시나. 마늘과 햇볕에 풀어지는 걸 보니까 세뇌 때문에 생긴 덩어리가 맞네.’
직접 보니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 사실상 이건 고문이 아닌 치료다. 말하자면 세뇌 치료.
‘일단 세뇌부터 풀어야 제대로 된 정보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이를테면, 놈들을 조종하던 상위 존재의 정체 같은 것들을 말이다.
라키엘은 더욱 상냥하게 웃었다.
그리고 꼬슴이표 가시를 집어들었다.
“자아, 다음 코스로는 마늘즙을 이용한 약침 시술을 받으며 우리 모두 더욱 건강해져 봅시다아.”
“…….”
제발 그만해 미친놈아.
뱀파이어는 울고 싶어졌다.
♣
고문을 빙자한 세뇌 치료의 효과는 확실했다.
라키엘은 며칠간 뱀파이어들을 꾸준히 괴롭…… 히진 않고 치료했다. 덕분에 나날이 세뇌의 뭉친 기혈이 풀어져 갔다. 뱀파이어들의 태도도 한결 고분고분해졌다.
“저기, 뭐든지 말할 테니 이젠 제발 그만!”
“다 말할게요! 전부 말씀드릴게요!”
“저 사실은 모태솔로입니다!”
“실은 저 구두 벗으면 180센티가 안 됩니다!”
“뱀파이어라서 피부 하얗고 창백하단 거 거짓말이었습니다! 그거 전부 썬크림 바른 거였습니다!”
세뇌가 풀려가며 갖가지 자백이 이어졌다. 그대로 놔두면 속옷 사이즈는 물론이고 어린 시절 첫사랑 썰까지 죄다 풀어놓을 기세였다.
그런데도 의외로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을 조종하던 상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하지를 못했다.
“……예에? 저를 조종하던 분이요?”
“어, 그게…….”
“이름이 잘…… 생각이…….”
“어윽, 갑자기 머리가!”
너를 조종하던 배후가 누구냐, 라는 질문을 받기만 하면 눈빛이 흐리멍덩해졌다. 마치 넋이 빠진 듯한 표정이 되었다. 일부러 꾸민 것? 아니었다. 경혈 스캐닝으로 관측되는 기혈의 흐름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금제가 걸려 있구나.’
라키엘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다른 대답을 할 때는 멀쩡하던 놈들이, 배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두뇌 기혈 흐름이 딱 느려지는 게 보였다. 아마도 일반적인 세뇌를 뛰어넘는 더욱 강력한 금제가 걸려 있는 듯했다.
하지만 라키엘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됐다. 저 반응만으로도 파악할 것은 전부 파악하고, 추론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이렇듯, 폐하께 알현을 요청하였사옵니다.”
결론을 얻은 라키엘은 부리나케 황제를 찾아갔다. 그리고 예를 표하자마자 자신이 추론한 사실을 황제에게 고자질(?)했다.
“하면, 근래 황도에 확산되던 뱀파이어 변이증의 근본적인 배후를 네가 알아냈다는 뜻이더냐?”
“그렇사옵니다, 폐하.”
라키엘이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아마 폐하께서도 최근 황도 시민들을 괴롭히던 변이증의 존재와, 제가 행하였던 그 치료의 과정을 알고 계셨으리라 보옵니다.”
“그랬지. 네가 다수의 뱀파이어를 잡아들여 괴롭히고 있음 또한.”
“그것도 알고 계셨사옵니까?”
“물론.”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험하듯 물었다.
“하면 묻자꾸나. 네가 추론한 변이증의 배후는 보다 상위의 뱀파이어인 것이더냐?”
“아니옵니다, 폐하.”
“……뭐?”
황제가 멈칫했다.
라키엘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추론한 변이증의 배후는 단순한 상위의 뱀파이어가 아닌, 흑마법을 사용하는 인간 마법사이옵니다.”
“흑마법사?”
“그러하옵니다, 폐하. 또한 그 흑마법사는, 의도적으로 변이증을 확산시켜 황도에 크나큰 혼란을 불러오고, 자신은 이 사태와 관련이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서 모습을 드러내어 공적을 세울 계획이었을 것이옵니다.”
“……말하자면 병 주고 약을 주듯이, 자신이 퍼뜨린 변이증을 치료하고 생색을 내며 사회적 공헌을 세울 작정이었다는 말인가?”
“바로 그러하옵니다, 폐하.”
“추측일지언정 참으로 뻔뻔한 의도로다. 하면, 그 결과로 흑마법사가 얻을 이득은?”
“제법 많았을 것이옵니다. 하여 이제부터 그것을 정리하여 말씀드리겠사옵니다.”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자신의 추측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만약 이번 일을 꾸민 흑마법사 아난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저도 모르게 팔뚝에 돋아난 소름을 털어냈을 만큼 정확한 내용들이었다.
그걸 들으며 황제 또한 문득 생각했다.
황태자가 말하는 저것과 비슷한 결론을 얻어내기 위하여…… 황실의 정보부는 어젯밤까지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고생하며 정보를 취합하고 회의를 거듭해야 하였는데, 라고.